춤, 현장
〈춤웹진〉은 다액의 공공지원금으로 열리는 주요 춤제전 행사에 대해 일반 관객의 객관적이며 다양한 시선과 의견을 수렴하여 여론화함으로써 춤제전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공공지원금이 효율성을 진작하도록 자극을 가하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관객평가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3 관객평가단은 올해 연말까지 운영된다. 〈춤웹진〉은 해당 행사에 관한 관객평가단의 소견을 원고로 모아 원고 작성인의 개별 이름은 밝히지 않으며 해당 행사 평가단의 공동 작성 명의로 게재 공개한다. 춤제전들의 진지한 기획과 춤창작자들의 열성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소견Ⅰ
이번 축제는 지난해보다 커진 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도 광고로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닿고자 한 많은 노력을 통해서 이번 축제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많은 축제 운영진들의 많은 고민이 느껴졌고 그 결실이 드러난 것 같았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많았다. 코로나가 공연예술계의 어떠한 영향을 남겼는지 볼 수 있었다.
NDT2 〈Ten Duets on a Theme of Rescue〉 〈Cluster〉 〈Bedtime Story〉 9월 28일(목)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다양한 해외 작품들을 보면 아쉬운 점들이 매우 공통된다. 이 작품 또한도 그 점이 뚜렷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조명의 사용이다. 조명이 매우 어두웠고 별 다른 연출이 없었다. 분명 무슨 의도로 그러한 연출을 했는지는 짐작 할 수 있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의도인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연출이 잘 먹히는 상황은 관객석과의 거리가 가까운 곳에서는 충분히 잘 먹힐 것이다. 그렇지만 관객석이 2층까지는 있는 대극장에서 그런 연출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무용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도 보이지 않아 매우 답답함이 느껴졌다. NDT2의 작품 중 첫 번째 순서였던 〈Ten Duets on a Theme of Rescue〉에서 그런 점이 보였다. 초반에는 전등을 주된 소품으로 사용하여 전등의 이동과 흐름을 봐야 하기에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전등의 밝기조차도 밝지 않았는데 전체적인 조명도 조도 또한도 낮아서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자리에서는 무용수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표현하는지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구원에 대한 표현 매우 좋은 주제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조명의 밝기 하나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두 번째로 아쉬웠던 것은 난해한 안무이다. 과연 이 음악과 이 연출과 주제에 어울리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두 번째 파트인 〈Cluster〉에서 느꼈던 감정이다. 웅장한 음악 속 그렇지 못한 난해한 움직임들의 조화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또 옷을 최소화 하여 더욱 움직임과 무용수들과의 관계에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의도였겠지만, 사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관객들도 존재 할 것이다. 물론 안무가의 연출 스타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공연은 결국 관객들을 위한 것임을 반드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NDT2 〈Bedtime Story〉 ©Rahi Rezvani |
그렇지만 이 작품이 아쉬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서인 〈Bedtime Story〉는 에너지 넘치는 음악과 안무를 통해서 개막식의 마지막 순서에 매우 어울리는 넘버였다. 아프리카가 연상이 되는 음악과 의상은 관객들은 흥에 취하게 되었다. 또 초반부터 강하게 휘몰아치는 안무는 음악에 힘입어 관객들도 더욱 몰입하고 들썩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무용수들끼리 안무와 분위기에 취해 넣게 되는 추임새이다. 오히려 자유로워 보였고 이러한 에너지를 내는 무용수들에게 존경심까지 갖게 된다. 넘버가 끝난 후에 나오는 기립박수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소소한 아쉬움은 남는다. 신나는 분위기 속 잊혀진 작품의 본 의도이다. 이 작품의 본 의도대로 침대에서 하게 되는 두려운 상상을 떨치는 이 넘버의 스토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개막식이기 때문에 축약이 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좋은 에너지 속 그 본 의도가 전달되지 않음에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Inbal Pinto 〈Living Room〉 10월 8일(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예술에는 항상 답이 없다. 그렇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서 완전해지고는 한다. 이 공연을 본 후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 과정이 이뤄졌다.
이 작품의 시작부터 무대 세트라는 거대한 오브제를 소개하는 방식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독특했다. 무용수가 벽면을 따라서 이동하는 것이었다. 정말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무대 세트가 어떠한 질감인지, 어떠한 모양인지 멀리 있는 관객들에게까지 전달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초반에는 한명의 무용수만으로는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완전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남자 무용수의 등장부터이다. 무용 공연에서 서로의 몸을 컨택하여 표현하는 안무는 매우 필수적이다. 그러나 몸이 떨어져 있음에도 분명히 둘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느껴지면서 무엇을 드디어 표현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느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 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또한 둘이 컨택을 하면서 했던 안무도 너무 멋있어 계속 감탄을 하면서 봤다. 서로가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가 분명히 보인다.
Inbal Pinto 〈Living Room〉 ⓒEdouard Serra |
이 작품에서는 안무가가 직접 무대 세트를 제작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 있는 작은 소품들까지도 아무런 의미 없이 놓여있는 것이 없었다. 또한 소품들이 공중을 날고 있던지, 움직인다던지, 벽에 붙어 돌아간다던지 하는 모든 움직임들이 무용수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작품의 엔딩도 꽤 기억에 남는다, 여자 무용수는 자신을 둘러싸고 수많은 영향을 주었던 방에서 나오게 된다. 영상을 통해서 보게 된 여자의 모습에는 영향을 받기만 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동물들과 사물들과 서로 자극을 주고받게 된다. 여자가 스스로 본인의 테두리를 벗어나 한 단계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은 관객과의 대화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작품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나, 작품의 의미를 더 자세히 풀어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안무가와 무용수들만 말을 하며 관객들을 감명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객 또한도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관객과의 만남이 그랬다. 다양한 질문과 답변 속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관객들의 소감까지 이어져 더욱 풍성한 작품의 대한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중 안무가가 정말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로도 관객들 중에는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자체도 매우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다양한 의미가 더해져 작품이 더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Hofesh Shechter Company 〈Clowns〉 〈The Fix〉 10월 15일(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용 동작으로 관객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임의 경우 분명한 동작과 호흡으로 가능하고, 연기의 경우는 대사로 전달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무용의 경우는 그것조차도 동작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에 의미 전달이 매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서 분명한 의미 전달에 성공하여 크게 감명을 받으며 볼 수 있었다.
〈The Clowns〉의 경우 인상은 시작부터 강렬했다. 웅장한 음악으로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연상시켰고 빠른 리듬의 음악은 오히려 관객들을 집중시키기에 좋았다. 대다수의 안무가들은 원할 한 기승전결식 전개를 위해 초반을 어둡고 느리게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오히려 분위기를 루즈하게 만들어 집중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빠른 전개로 오히려 몰입을 높여 작품이 끝날 때까지 집중이 깨지지 않았다.
또한 조명 연출을 아주 영리하게 써 감탄을 했다. 암전을 꽤 여러 번 사용했는데 그 짧은 암전의 시간 동안 즐거웠던 분위기에서 무서운 분위기로, 또 퍼져있는 대형에서 모여 있는 대형으로 순식간에 바뀌며 임팩트를 더했다. 그리고 특정 안무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서로를 죽이고 즐거워하는 안무였다. 매우 무섭고 섬뜩한 안무인데 이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여 주제가 확실히 전달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이니 만큼 한국 전통 가요에 맞춰서 춤을 췄다.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주최 측에 대한 예우를 표현한 것 같이 느껴져 감사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엔딩을 그 동작으로 끝내 끝까지 주제를 놓치지 않았다.
〈The Fix〉의 경우는 〈Clowns〉만큼 강렬한 인상은 아니었다. 매우 대조가 되었다. 부드럽고 잔잔한 분위기와 감미로운 음악으로 전개가 되었다. 그렇지만 두 작품은 연결이 되어 있었고, 이전 작품에서 제시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잔잔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큰 감동이었다. 하지만 첫인상이 매우 강렬했기에 그만한 인상을 남기기 어려웠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Hofesh Shechter Company 〈Clowns〉 ⓒTodd MacDonald |
모다페를 즐기며 가장 먼저 생각이 들었던 것은 프로그램북의 역할이다. 미디어 북을 통해 각 공연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안무가와 팀에 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가끔은 안무가의 철학과 신념 등 다양한 정보를 기록한 곳도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내가 보는 공연에 대해 더 빨리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안무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또 다양한 작품의 사진을 통해서 공연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이번 모다페의 프로그램북은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안무와 팀에 대한 정보, 또 안무가의 철학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내용들이 많았다. 또 공연을 대표하는 사진을 담아서 공연을 기억하기에도 매우 좋았다. 그렇지만 공연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내용의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사실 프로그램북의 경우 일 만원이라는 가격으로 어느 무용 축제에서나 저렴한 가격에 만나 볼 수 있다. 만원에 모든 공연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매우 저렴한 셈이다. 그렇지만 당연하게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한 정보가 담겨있지 않을 때에는 조금은 그 가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만원이라는 가격에 담을 수 있는 정보와 사진의 양이 한정이 되어 있다면 가격을 올려서라도 분량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태양의 서커스의 경우 프로그램북이 2만원대이지만 사람들이 공연을 추억하기 위해 산다. 프로그램북을 모든 관객들이 필요로 하지 않겠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프로그램북에 더 많은 내용들을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견Ⅱ
MODAFE Collection 10월 6일(금)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DAPcompany 〈HOME〉
같은 듯 다른 8개의 움직임이 인상 깊었다. 화면에 비치는 그림자는 1명이지만 여러 무용수가 움직임을 이어갔다. 어느 때는 8명의 무용수가 하나의 춤을 추기도 하고 어느 때는 각각 다른 춤을 췄다. 작품 내의 인물들이 처해 있는 상황도 그와 같다고 느껴졌다. 불안정한 삶을 이어나가는, 혹은 지속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춤으로 잘 드러났다.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지만 8명의 무용수가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 하나의 삶을 여러 명이 표현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비닐봉지의 사용도 기억에 남는다. 부푼 비닐에 둘러싸인 무용수가 등장하며 작품이 시작되었는데, 안정감과 동시에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불안정함이 존재하는 집을 잘 나타냈다. 의상인 셔츠를 활용해 춤을 추는 부분에서도 집의 의미를 한 번 더 떠올려보았다. 셔츠로 몸을 감싸고 펼치는 움직임을 통해 세상과 단절될 수도, 감싸주는 따뜻한 것이 될 수도 있는 집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작품 설명을 읽고 가지 않았더라면 집이라는 주제를 떠올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으나, 집이라는 키워드 하나만 알고 관람해도 이야기의 흐름이 보여 좋은 작품이었다.
알.에이 컴퍼니 〈본〉
춤을 통해 이어지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본〉이라는 제목에서 근본 본 자가 떠올랐다. 근본적인 움직임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용수 6명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나 그 가운데 춤을 통한 연결이 보였다. 마지막에는 흐름을 넘어 신체적으로도 연결되는 것을 보았다. 이야기보다는 움직임에 집중한 공연이었기에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오로지 춤으로써 소통하고, 고민하고 움직임을 드러내는 과정을 관객 입장에서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 작품을 만들 때 무용수가 고민하는 모습을 춤으로 보여주었다고도 생각했다.
TOB GROUP 〈BARCODE〉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칠 수 없었던 작품이다. 먼저, 상자의 움직임과 무용수의 움직임이 돋보였다. 무용수가 상자를 움직인다기보다 무용수의 움직임과 함께 상자도 춤을 추는 듯했다. 소비되는 상자, 인간이 소비하는 상품으로서의 모습이 더욱 실감 나게 나타났다. 이를 통해 작품에 내재된 이야기가 잘 나타났다. 무대 위 상자들과 무용수들의 춤이 조화로웠다. 많은 상자가 있었음에도 춤의 힘이 밀려나지 않았다. 상자에 적힌 알파벳으로 단어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방식도 재치 있었다. 어떤 단어가 될까 추측하며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직접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면 예측하고 집중하는 재미가 떨어질 수 있으나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글로 된 해설과 상자들이 조합한 단어는 관객에게 실마리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 움직임을 통해서 이야기를 확장했기에 관객이 자유로운 해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 확장을 시도한 것도 인상 깊었다. 박스로 만든 제2의 스크린 혹은 공연장, 장치 반입구 사용 등 작품에 적합한 방법을 적용하였다고 생각한다. 무용 공연에서 이처럼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에 정말 재미있었다.
메이드인댄스예술원 〈월하독작〉 ⓒhanfilm/MODAFE 2023 |
MODAFE Choice #1 10월 11일(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메이드인댄스예술원 〈월하독작〉
공연을 보는 동안 동명의 시가 떠올랐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듯한 춤이 으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작품에 사용된 소품이 분위기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특히 중앙에 있던 둥그런 상징적 소품이 작품의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이 소품이 달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얇은 실들이 커튼처럼 달을 둘러싸고 있어 공간을 사각형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 공간을 중심으로 부드럽고 잔잔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네 명의 무용수가 계속해서 같은 춤을 추는데, 관객도 춤에서 느껴지는 흥취에 빠질 수 있었을 것 같다. 또, 무용수들의 춤과 잘 어울리는 무용음악이 있어 작품에 집중하기 좋았다.
SAL 〈꽃을 씹어먹은 나의 가장 연약한 괴물들에게〉
다인원의 춤이 주는 강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솔로 파트에서도 강력함이 지속되어 인상 깊었다. 직접적으로 작품 제목을 보여주어 놀라기도 했다. 휘몰아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얽히고설키는 춤, 그를 통해 연상케 되는 작품 흐름도 재미있게 보았다. 전체적으로 내면의 대립이라고 해석되었는데, 한 사람과 나머지 사람들의 대립으로도 느껴졌다.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선과 악을 나눌 수 있는 것인지, 누구의 승리이고 패배인지 알 수 없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어 흥미로웠다.
Project Gae:mi 〈After meeting〉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느껴졌던 작품이다. 등을 맞대고, 손을 잡고, 의지하는 듯한 움직임이 많았다. 팔과 몸, 사람이 교차하는 춤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느껴졌다. 세 무용수만이 무대에 올라와 공연을 꾸려나갔는데, 끊임없이 춤만으로 교감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작품의 길이가 긴 편이 아닌 점도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관람하기 전, 작품 소개를 보았는데 세 무용수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결되는 장면이 좋았다.
故 이숙재 〈홀소리 닿소리〉 ⓒhanfilm/MODAFE2023 |
MODAFE Universe 10월 15일(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해준 〈트라우마 3.0〉
어둠 속에서 아무 소리도 없이 춤을 추는 초반부가 기억에 남는다. 조명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무용수들의 춤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조명이 비추는 범위가 넓어지면 트라우마의 원인이 움직임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다소 폭력성이 느껴져 놀랐다. 해당 내용을 사전 관람 안내로 공지했더라면 좋았겠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개인 혹은 집단에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는 사회의 면면이 떠올랐으며 트라우마를 마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촘촘히 느껴졌다. 춤 본연이 가진 서사와 조명을 적절히 활용한 작품이었다.
박관정 〈Reboot : 출발점 위에 서다 2.0〉
춤을 통해 표현되는 변화와 교차가 인상적이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 변화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움직임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이 함께 추는 춤이 많았는데, 이를 통해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연상할 수 있었다. 무대 바닥 사용도 재미있었다. 공간을 설정해두고, 조금씩 변화를 주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공간 설정에 사용된 선이 소품으로 활용되는 흐름도 흥미로웠다. 작 후반부에 육상 경기 시작 전 출발 자세를 한 뒤 달려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잘 보여주었다. 계속하여 도움닫기를 하고 도달한 출발 지점에서 느끼는 긴장이 느껴졌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 사람들의 혼란스러움 혹은 설렘과 같은 감정들이 드러나며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故 이숙재 〈홀소리 닿소리〉
작 초반부에는 정확하지만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한글을 표현했다. 곧이어 부채를 사용했다. 부채를 펼치고 흔들고 공간을 휩쓰는 춤에서 홀소리 닿소리가 가진 다채로움이 드러났다. 어떤 관객이 보아도 한글을 연상할 수 있는 춤이라 좋았다. 후반부에는 구조물에 올라간 무용수들이 우리 한글을 몸으로 나타냈다. 한글은 글자로서도, 춤으로서도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시대에 한글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