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지난 11월 23일 3·15아트센터 소극장(500석)에서 ‘김해랑춤보존회’(명예회장 김행자, 회장 이남주)가 주최하는 〈김해랑 춤의 아리랑 9〉 공연이 열렸다. 김해랑선생(본명 김재우, 1915-1969)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전통과 민속을 두루 익히던 중, 최승희 공연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18살이던 1932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이시이 바쿠와 다카다 세이코의 문하에서 춤공부를 하고 7년 만에 귀국하여 본격적인 국내활동을 하게 되는 이른바 손꼽히는 신무용가이다. 선생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이후 연구 과제로 넘겨야 할 일임을 기억하며, 이 자리에서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어느 선생님에 대한 제자들의 꾸준히 이어지는 추모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공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보존회 주최의 추모공연은 김해랑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9회를 맞이하였고, 이전에는 선생의 걸출한 제자인 최현 선생이 2000년 3월 서울 문예회관(지금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본인이 총감독을 맡아 대대적인 추모공연을 진행한 바 있다. 이는 2004년부터 마산무용협회 주최로 마산에서 추모공연(예술감독 정양자)이 열리는 계기를 마련하여, 2010년까지 7번의 추모공연이 매년 이어졌다. 이후 보존회가 만들어지고 형성된 후인 2015년에 추모공연이 다시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사실 추모공연은 2000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거의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선생에 대한 추모가 마산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온 배경에는 선생이 유학파임에도, 서울에서 무용협회의 전신인 한국무용예술인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서울에서의 활약이 대단했음에도 42세 때 돌연 마산으로 귀향하여 ‘김해랑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마산에 안착하여 지속적인 교육과 대외활동을 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62년에 제1회 경상남도 문화상과 66년에 한국무용협회 무용공로상을 수상한 공로를 인정받아 69년 선생의 장례는 마산시민장으로 치러질 만큼 마산지역에서의 선생의 입지는 뚜렷한 것이었다.
김해랑 선생의 제자의 맥을 살펴보면, 최현(전 국립무용단장), 정민(재일 한국예술무용인협회 이사장), 한순옥(최승희 제자, 김해랑무용연구소 강사역임), 진영자(전 숙명여대 무용과교수, 재미), 권려성(재미 무용가), 김송자, 김신덕, 김행자(전 김해랑춤보존회 예술감독), 정양자(한국무용협회 마산지부장 역임), 이남주(전 창원시립무용단장, 현 보존회장) 등이다.
이번 공연에서 〈교방타고무〉를 선보인 김태덕 무용가는 정민교방춤보존회 소속으로 정민 안무의 작품을 선보였고, 첫 작품인 〈화관무〉는 마산무용협회 고문인 김순애무용가가 군무로 구성하였다. 김해랑선생 원작의 작품은 〈애수의 선자〉(재안무 정민, 출연 오시현), 〈환희〉(재구성 백혜임, 출연 백혜임 무용단), 〈화랑검기무〉(재안무 이남주, 재구성 박미), 〈산조춤〉(재안무 이남주, 출연 이남주), 〈장고춤〉(재구성 김행자, 지도 이남주, 박소희) 등 9개의 작품 중 5개의 작품이 올랐는데 어느 해보다도 선생의 원작을 복원하려는 작품이 많아 보존회의 많은 노고를 감지할 수 있었다.
김해랑춤보존회가 중심을 갖고 가면서도 정민교방춤보존회, 김순애우리춤보존회, 백혜임무용단, 춤터별진, 진주삼천포농악, 함안화천농악 이수자, 전수생들이 작품과 악사로 참여하여 지역의 민속춤과 전통춤 역량이 합심하고 망라하여 만들어 내는 모습이 무대를 더 풍성하게 하여 공연 그 이상의 감흥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 사회가 급변하여 우리에게서 과거라는 시간에 대한 감수성이 많이 사라진 지금, 그리고 신무용가에 대한 한 때의 관심이 요즈음은 뜸해서인지 김해랑선생의 추모공연은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버린 신무용기라는 한 시절을 지금 현실에서 고스란히 만나는 묘한 향수와 묘한 시간의 중첩을 느끼게 해주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되었고, 그런 공연을 마산 지역에서 한 선생을 향한 제자들의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공연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특별했다.
그날 공연에서는 다섯 살 때부터 김해랑무용연구소를 다닌 인연으로 창원대 영문과 이지훈 명예교수가 사회를 봤는데, 팜플렛에 수록된 자료사진 중 1957년에 제1회무용학원발표회에 여섯 살의 나이로 참여한 족두리를 쓴 모습에서 그 당시를 기억하며 가슴 뛰었던 무용학원에서의 춤수업과 현재 연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한국춤과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어린시절 김해랑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운 것에서 나오는 듯하다고 전하였다.
나는 우리춤의 근대시기를 춤의 양식에 국한하여 칭하는 것으로 좁아진 신무용이라는 용어보다는 근대무용, 근대춤으로 부르기를 권하는데, 일제하에서 자발성은 떨어지나 근대라는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적극적 창작 활동까지 한 그 시기의 무용인들을 다른 시기와 명확히 구분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용적으로 한국창작춤 1세대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그들은 전통춤과 서양춤을 모두 배우고 그 형식적 차이에서 미학적 고민을 했으며, 이전의 무용인들과는 완전히 달라진 환경인 근대식 극장의 출현 이후라 창작을 공간과 더불어 고민해야 했으며, 거기에 앞선 세대에서 본 적이 없는 개인의 미적 취향, 생각이나 감성을 작품에 넣어 창작해야 하는 상황 등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신무용이라는 다분히 일본식의 개념용어보다는 근대무용가라고 부르고 우리의 근대시기 속에서 그들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해랑 선생은 조택원보다는 8살, 최승희와는 4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거의 동년배에 가까운 나이이고, 일본 유학에서는 한발 늦었으나 일본에 머문 시간은 더 길었으며 일본에서 무용연구소만 다닌 것이 아니라 야마구치 중학교를 졸업하고 니혼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하여 수학하는 등 다른 무용가와는 다르게 인문과 예술의 기초를 대학교육을 통해 닦은 인물이다.
이번 〈춤의 아리랑 9〉 공연에서 선보인 선생 원작의 작품이 어느 정도 원작에 가까운지, 어느 부분이 유실되었고, 재안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존회의 활동과 연구를 기대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김해랑선생의 춤의 향기를 미약하나마 느낄 수 있는 몇가지 부분이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화랑검기무〉(재안무 이남주, 재구성 박미) ⓒ김해랑춤보존회 |
〈장고춤〉(재구성 김행자, 지도 이남주, 박소희) ⓒ김해랑춤보존회 |
〈화랑검기무〉는 지금의 관객도 사로잡을 만큼 춤의 기상이 빼어났고, 〈장고춤〉은 농악의 신명의 지점을 매우 잘 무대화하여 허튼 틈이나 어색한 부분이 없이 깔끔한 안무가 돋보였으며, 〈시나위 소고춤〉(김해량류 이남주제)에서도 소고춤과 농악이 어울리고 맞물리는 부분에서 적절하게 무대를 고려하면서도 농악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흐름이 매우 좋았다.
특히 그 시절 무용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산조춤〉은 어느덧 안무가의 개성이나 차별성을 뚜렷하게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와 비교한다면 아주 뚜렷한 스타일 갖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감성이 전통적 감성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김해랑선생의 산조춤에서는 지연과 함께 호흡하고, 공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을 둘러싼 대기와 더불어 춤추고 더불어 호흡하는 공존의 느낌이 강했고 그러기에 침잠하기 보다는 공명하였다. 수건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하나의 유파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수건을 대하는 방식, 감성, 바라봄의 공백들이 잘 살아있었다. 그 춤을 보며 최현 선생의 춤과 안무에서의 사유의 여백을 떠울리며 그 기원을 짐작해 보았다.
〈산조춤〉(재안무 이남주, 출연 이남주) ⓒ김해랑춤보존회 |
춤은 동작을 넘어 어떤 ‘맛’으로 드러날 때 춤이라 할 수 있다. 공연도 서울에서만 볼 때는 다 같은 공연으로 보였는데, 마산에서 본 공연은 공연 너머의 어떤 다른 맛이 느껴졌다. 그 맛은 함께하는 따뜻한 맛이었고, 함께해서 풍성한 맛이었으며, 거의 100년 전 예술가의 고민을 느낄 수 있는 묘한 기시감이 드는 과거의 맛이었고,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판굿과 춤, 농악과 춤의 조화로움에서 오는 마음이 밝아지는 맛과 멋이었다.
많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과거와 뿌리를 기억하고 자신을 다시 위치 지우기 위한 마음으로 드리는 연례(年例)의 제의로서의 추모공연! 지금 우리에게 기억에 있었던 맛을 보여주며 많은 질문을 던진다.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