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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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춤의 바람직한 만듦새는 무엇일까? 국제현대무용제(MODAFE-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는 ‘Focus on Body's Movement'라는 주제로 국·내외 초청작을 선보였다. 그중 2012년 5월 22일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오후 8시에 공연된 미나유의 〈Exiles〉는 우리춤의 나아갈 만듦새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만한 내적 고립을 다루고 있는 〈Exiles〉는 같은 시공간에서 살면서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추방자가 된 것 같은 무력감을 표현하고 있다.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Exiles〉에서는 미나유 특유의 직설적인 춤 화법을 통하여 감정을 후련하게 털어내 보이면서도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본 작품은 철학적 담론이나 새로운 움직임 개발에 주력하는 공연과는 달리 안무가의 현재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므로써 관객과의 공감을 형성하고 어떤 미묘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iles〉의 전체적인 초점은 춤자체보다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맞춰져있다. 본 작품의 세명의 출연자인 김봉수, 손나예 그리고 기은주의 몸은 끊임없이 접촉하며 관계를 맺고 있으나 각각의 춤은 자신의 존재만을 드러내는데 집중되어 있다. 이로써 갈등상황이 빚어지고 이런 갈등이 반복되며 실제로는 상처받고 소외된 춤꾼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소리로 엮어지는 회화적 이미지
무대 중앙에 자리한 하얀 1인용 및 3인용 소파와 마이크를 이용한 소리는 이 작품의 중요한 상징적 소품으로써 기차 경적 소리와 함께 기차안 일상의 공간을 보여준다. 춤꾼들의 몸들이 부딪히는 연속적인 상황은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고, 춤꾼들의 흔들거리는 몸동작은 세사람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나타낸다. 소파를 축으로 춤추는 춤꾼들의 몸은 춤보다는 원초적인 소리를 택하여 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마이크를 통한 소파를 문지르며 내는 투박한 소리, 마이크를 상대의 몸 부위에 들이대는 소리, 그리고 내용보다 억양을 강조하며 외쳐대는 춤꾼들의 목소리는 춤보다 강렬하다. 연속되는 자극적인 소리는 말할 수 없는 불안한 춤꾼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간결하고 진솔한 소통(communication)의 힘
일반적인 소통은 상대와의 교감을 통하여 이뤄지지만, 〈Exiles〉에서 춤의 소통 방식은 춤꾼들이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듯 상대의 움직임에 개의치 않고 있다. 이것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주장만을 하는 춤꾼의 모습에서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말해 아이러니하게도 일방적인 춤꾼들의 독백이 나의 상황을 대변하듯 관객과 춤꾼 사이의 동일한 정서적 교감을 경험할 수 있다. 관객과의 소통에 집중하는 작품 〈Exiles〉는 춤이 움직임과 무대를 합리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다. 오히려 협소한 무대 사용이 공간적 밀도감을 높여 감정을 집중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거창한 주제가 없이도 진실이 담긴 표현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간결하게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미나유는 몸의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움직임을 춤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안무가의 춤은 도식적이지 않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자연스럽고 간결하다. 때론 차가울 정도로 불필요한 볼거리를 배제시키지만 기본에 충실한 그녀의 춤을 통해서 감각적인 몸의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춤은 관객과 어떤 만듦새를 통해 공감할 것인가? 춤꾼과 안무가들은 신선한 자극과 끊임없이 새로운 춤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심오한 철학적 내용과 신선한 움직임 발견만이 우리춤의 위상을 세워줄 수 있는 것일까? 안무가들은 과연 관객과 공감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현실적인 고민을 충분하게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작품 〈Exiles〉에서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일상적 고민과 얘기들이 몸을 통해 대화하듯 간결하고 진솔하게 배어있어 쉽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더불어 현실의 냉엄한 벽 앞에서 느끼는 안무가의 실제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진솔함이 백색(白色)의 무대공간을 통해 표현된 것이 더욱 담백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