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누군가가 현불사* 뒤, 남선봉
가파른 산언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위 쌍둥이 나무 밑에
한 춤꾼이 묻혀 있노라고
삼우제를 지낸 후
지노귀굿을 하던 무녀 왈(曰)
“이 땅이 답답하여
하늘을 나는 새가 되었으나
언젠가 다시 인간의 탯줄을 받아
인간으로 태어나리
그리곤 못다한 춤의 완성을 이룰 것이야”
정말
우리가 다 간 뒤
새가 되었던 그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춤꾼으로 한껏 춤을 출까
녹두장군 혁명 100주년 되던 해
그는 춤을 추었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미완의 혁명이라지만
녹두장군 혁명은 지금도
계속되지 않는가
한상근의 춤예술도 미완이 아니다
그의 춤도 세월 따라 계속 이어지리라
지난 3월 초순, 이공희 영화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타계한 부군 한상근 무용가의 10주기가 돌아오니 조촐한 추모행사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갑작스런 비보를 듣고 애석해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니.
3월 14일 오후 6시에 그녀와 김채현 교수, 그리고 필자, 셋이 홍대전철역 근처에 있는 ‘아카데미아인’(김채현 운영)에서 만나 협의를 했다. 한상근 무용가 10주기 추모행사를 4월 29일 오후 7시에 ‘아카데미아인’에서 영상 상영과 토크쇼로 진행하기로.
‘2023년 오늘, 영상ㆍ토크로 기리는 한상근의 춤세계’ 추모행사 현장 ⓒ춤웹진 |
4월 29일 행사 당일, ‘2023년 오늘, 영상ㆍ토크로 기리는 한상근의 춤세계’라는 제목을 내건 추모행사에는 의외로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10년간 대전에서 춤축제 〈명작을 그리다〉를 계속 열어온 한상우 추진위원장, 대전시립무용단의 복성수 무용가, 김종석 사진작가, 강민호 무용가, 이승옥 연극배우, 최유진 연극연출가, 황두진 연극연출가, 전찬일 영화평론가, 김혜신 영화평론가, 낭희섭 한국독립영화협의회 대표, 정철원 연극배우, 필자를 비롯한 수 명의 춤비평가 등 30여 명이 넘는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했다.
김채현 교수의 진행으로 주최자인 이공희 영화감독(뉴미디어댄스H포럼 대표이기도 함)이 사회를 본 행사는 특이하게도 와인을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한상근의 대표작인 〈꽃신〉의 부분 부분과 그의 생전 모습이 동영상으로 상영되었고 또 다른 대표작인 〈적색경보〉 등의 공연 사진들이 비추어졌다. 그리고는 각자 고인과의 추억을 얘기했는데 거의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해서 좋았다.
‘2023년 오늘, 영상ㆍ토크로 기리는 한상근의 춤세계’ 추모행사 현장 ⓒ춤웹진 |
한상근은 2013년 4월 13일(음 3월 3일) 갑작스레 타계했다. 필자가 무용평론을 쓰기 시작하는 게 2008년이고 2010년부터 춤비평가라는 타이틀을 쓰기 시작했으니 필자는 그의 대표작들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후, 영상으로 보았다. 전통춤과 신무용 계열의 춤을 추던 한국무용 전공자들의 오랜 고민 끝에 1970년대 후반, 한국창작춤이 발아하여 1980년대 한껏 피어나던 시절, 무용가로는 드물게 한상근은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는 〈꽃신〉, 〈적색경보〉, 〈무초〉, 〈비행〉 등의 실험성 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한국창작춤의 위상을 한층 높였음은 우리가 다시금 평가해야 되는 그의 업적이다.
그는 안양예고에서는 연극과 영화를 뒤늦게 들어간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무용을 전공하였기에 춤과 공연예술에 관한 한, 그 자신이 많은 지식과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었다. 춤 작품을 보는 눈이 예리하고 정확했다. 예술 전반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춤예술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고, 국내외 여러 곳과 외국의 유명 안무가들을 실제로 찾아다녔다. 발품을 팔아가며 일본의 부토세계를, 탄츠하우스의 부퍼탈을 돌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필자에게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가서 한 달여 숙소를 정해놓고 머무르며 온갖 공연을 다 보았다”는 얘기를 직접 들려주었다.
그는 타계할 때까지 춤예술가로서 정상을 향해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터였다. 한국 춤계라는 원(circle) 안에서 의식 있고 색깔 있는 춤을 추며 구심점 노릇을 했다. 한국 전통춤, 창작춤, 컨템퍼러리댄스의 접점 구실을 했고 남성 무용가들과 여성 무용가들의 교량이 되는 역할을 했다. 춤예술에 있어 그의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의 허리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무용가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선배 노릇을 충실히 했다. 그것은 그가 춤 실력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그와 같은 역량을 가진 무용가가 다시는 쉽게 출현할 것 같지 않다.
‘2023년 오늘, 영상ㆍ토크로 기리는 한상근의 춤세계’ 추모행사 현장 ⓒ춤웹진 |
필자는 그가 춤추는 모습을 세 번 보았다. 제일 처음 본 것은 어느 대학로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추어진 짧은 춤이었다. 정식 공연을 본 것은 2008년 어느 날 아르코대극장에서 〈비가(悲歌), 어두운 기억 저편에 서서〉라는 작품이다. 그가 직접 출연하여 여행배낭을 등에 메고 무대를 왔다갔다 하며 춤을 추고 연기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수년 후, 대전에서 있은 〈명작을 그리다〉 춤축제 뒤풀이를 하던 어떤 홀에서 취기에 젖어 있던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공연에 빙의가 되었던지 나도 모르게 배낭을 메고 무대로 나가 그의 〈비가(悲歌), 어두운 기억 저편에 서서〉 일부 장면을 추어, 나 스스로도 놀란 적이 있다(실제로 여러 무용가들이 목격했다).
필자의 막내동생은 코로나 시국 전, 그가 사는 충남 보은군 속리산 천왕봉 골짜기에서 매년 ‘천왕봉너와집음악회’를 열었는데 나는 고인에게 춤을 부탁한 적이 있다. 기꺼이 응한 그는 〈상념〉이라는 제목으로 20분간 공연을 했다. 그때 일종의 목격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을 발표했었다. 무용관계자들이 보지 않은 공연이었으므로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한상근의 춤 작품, 상념(想念)〉
2011년 6월 11일 오후 8시를 전후한 무렵, 속리산 천왕봉 밑 도화리 너와집 야외무대. 한상근은 20여 분간에 걸쳐 〈상념〉이라는 퍼포먼스(행위예술)에 가까운 공연을 펼쳤다. 그날 그는 속리산 기슭과 너와집 야외무대 전체를 넓게 이용하여 소위 요즘 말하는 장소맞춤형(Site-specific) 공연을 했다.
천왕봉 밑 너와집은 필자 막내동생의 농가주택으로 동생은 매년 한 번씩 널찍한 야외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곤 하는데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명칭은 음악회지만 국악, 가요, 팝송 외에 마임, 퍼포먼스 등도 이루어지며 공연이 끝나면 밤새도록 막걸리 파티가 이어진다.
도화리는 도로가 포장되기 전까지는 전국에서 가장 깊은 오지 중의 하나로 꼽히었을 정도로 산골짜기이나 어느덧 너와음악회의 팬들이 생겨 음악회가 열릴 때면 경향 각지로부터 2백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상근이 공연하던 때는 6회째였는데 그날도 현직 군수로부터 전직 국회의원, 서울과 지방으로부터 자연을 찾아온 사람들, 산골동네 사람들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특이한 관객군을 이루고 있었다.
종이로 된 수의를 입고 산기슭 숲 속에 숨어 있던 한상근이 도자로 된 유골함을 안고 내려와 춤을 추며 퍼포먼스를 시작하자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시에 숨을 멈춘 것 같아 천왕봉 일대에 일순 침묵이 흘렀다. 제목은 〈상념〉이었지만 누가 보아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공연이었다. 죽음이란 인간 누구에게 있어서나 궁극적인 의문이 아니겠는가.
그가 공연하던 동안, 농부고 국회의원이고 이미 취한 취객이며 모두 침묵에 잠겼다. 이따금 산골의 적막을 깨는 풀벌레 소리만 들렸을 뿐 처연한 정적 그 자체였었다. 공연이 끝나자 한때 연극을 했었고 수년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홍보팀장을 했던 동생이 내게 말했다.
“형은 춤비평가로 어떤 공연을 좋은 공연이라고 보는지 모르겠으나 내 경험으론 간단해요. 조금 전, 한 선생이 공연할 때 보셨지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그 20분 간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지 않았습니까? 조용하다는 것은 관객이 몰입되었다는 얘기이고 그런 공연이 좋은 공연이라는 것을 저는 경험으로 알아요.”
한상근의 공연은 그 밤의 하이라이트였고 그날의 음악회를 격상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연을 화제로 삼았다. 산골 야외무대에서 이루어진 공연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정성이 깃들어진 수준 높은 공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리를 떠, 홀연히 사라져 더더욱 짙은 여운을 남겼다. 그의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타계처럼….
아마도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그 공연은 한상근이 그의 예술 생애에서 거의 말년에 혼자서 출연하여 직접 춤을 추고 연기한 귀한 공연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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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불사: 대전 서구 도솔로 477에 있는 절.
** 〈녹두꽃이 떨어지면〉: 동학혁명 100주년을 맞아 한상근이 안무하고 자신도 무용수로 출연한 춤 작품. (1994.4.19~20.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이만주
춤비평가. 시인. 사진작가.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국영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적인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과 「삼겹살 애가」, 「괴물의 초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