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무향(舞香) 춤 페스티벌
이만주_춤비평가

제2회 무향 춤 페스티벌

전통예술이란 긴 세월, 한 공동체의 삶과 문화 속에서 인정받거나 합의된 형태나 양식이 갖추어져 전승되어 내려오는 예술이다. 전통예술은 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따라서 전통예술의 원형 보존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고 예술도 시대와 더불어 변해야 한다. 특히 예술이란 창작과 재창조가 생명이다. 따라서 원형 보존과 현대적 변용 내지 재창조는 전통예술의 계승에 있어 고려해야 하는 두 요소이다.



제2회 무향 춤 페스티벌 포스터



2023년 5월 24~26일, 사흘간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제2회 무향 춤 페스티벌’(예술감독:백현순, 연출ㆍ기획: 김기화)은 향기 짙은 우리 전통춤 중에서도 여러 갈래 민속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춤의 향연이었다. 종목별, 최고 기량을 갖춘 전수자, 이수자들 춤에 국악 생음악 연주가 곁들여져 화려한 춤의 꽃밭을 이루었다. 전통춤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당연히 공적 지원을 받는 행사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자발적인 행사라는 점이 놀라웠다.

세계 1, 2위 자리를 양보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춤의 유산을 담고 있는 것이 한국의 전통춤이다. 그 모든 것을 사흘 동안에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24명이나 되는 전통춤꾼이 오늘날의 공연춤이라 할 수 있는 교방춤을 위시하여 많은 우리 홀춤을 펼쳐 보인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평자, 마지막 날 관람.)

살풀이춤을 위시한 교방춤들은 한국 민속춤의 근간이라고 할 만큼 많이 추어지고 한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춤이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교방춤들은 한국 전통춤의 예술성 내지 한국적 미학을 대변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삶의 철학을 알게 해 주는 춤이다.

발표된 춤의 종류로 살펴보면 교방춤인 살풀이춤, 태평무, 교방굿거리춤이 각 3편, 수건춤이 2편, 승무, 입춤이 각 1편, 재인청 계열 춤인 진쇠춤이 1편이었다. 유파(流派)별로 살펴보면 이매방류 살풀이춤 3편, 김수악제 김경란류 교방굿거리춤 3편, 강선영류 태평무 2편, 강선영류 입춤 1편, 신관철류 수건춤 2편, 궁중춤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한영숙류 태평무 1편, 조갑녀류 승무 1편, 이동안류 진쇠춤 1편이었다. 그리고는 박병천작 진도북춤, 진유림작 규장농월 등 만든 사람이 존중되어 ‘작(作)’이 붙여진 춤이 24편 중 10편이었다.

춤은 무형성, 순간성, 은유성이 특징이다. 또 무대예술이므로 일률적이지 않은 무대에 맞춰 적응해 추어야 하기에 변형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원형’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특히 한국 전통춤에 있어서 정재로 대표되는 궁중무라든가 종교의식무에서는 원형의 주장이 가능해도 민속춤에 있어서는 원형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승무, 태평무의 경우도 여러 유파가 존재하고 살풀이춤의 경우, 오늘날 한영숙류, 이매방류, 이동안류 등으로 대표되는 유파의 춤이 추어지지만 실제로는 수십 가지의 유파가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고착된 하나의 양식으로 이해되던 ‘원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발전되고 합리적 개념인 ‘전형’이 대두된 것 같다. 이번 페스티벌과 병행된 학술콜로키움에서 무용학자이자 전통춤 춤꾼인 김기화의 ‘전형’ 개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 전개는 의미가 있었다. “당대의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춤 종목의 근간이 되는 원리가 ‘전형’이며 최초 보유자가 연행한 춤에서 계보 특성, 구축한 양식을 분석하여 그런 것들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 간에 공감이 이루어져 타당성을 확보한 것을 전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무형문화재를 큰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동시대에 맞춘 변용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형’의 논의는 중요하다. 2016년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어 무형문화재를 지정함에 있어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고 소모적인 다툼이나 불만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전형’ 개념의 확립은 필요한 사안이 되었다.


김유미의 춤 〈산홍珊紅-붉은 산호의 노래〉

이번 페스티벌에서 ‘유(류流)’도 그렇고 ‘작(作)’도 그렇고, 출연자 춤꾼 모두가 창시자의 춤을 그대로 답습, 재현해 추었다. 전통춤의 계승과 미래 세대로의 전승을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에 맞춘 창조적 변용이랄까, 발전적 지향을 하는 이도 있었다. 주목할 만한 도발적 춤꾼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통의 큰 틀은 살리되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 재창작해 춤을 추었다. 자신의 창작 작품, 〈산홍〉를 들고 나와 그녀 스스로 춤을 춘 김유미.

“한겨울 유리성 안에 박제되어있는 것 같은 춤들을 따뜻한 봄날, 사람들 가슴 속에 피어나는 꽃으로 만들고 싶다. 한국 전통춤의 본질이 존중되면서도 동시대와 소통하며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우리 전통춤을 재창작하고 싶다.”

김유미는 설장구춤을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창작했다. 오늘날의 현대예술과 마찬가지로 다른 장르와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과 융복합의 전통춤을 만들고 춘 것이다.



김유미 〈산홍珊紅-붉은 산호의 노래)〉 ⓒ무향춤페스티벌



본래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인 김유미는 진주의 논개에 버금가는 의기(義妓)이자 여류시인인 ‘산홍’을 제목으로 들고 나왔다. 기녀(妓女)란 각종 기예의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당시에는 낮은 신분이면서 남존여비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우연히 김소영의 그림 '붉은 산호', 바닷속 춤추는 산호의 모습을 보게 되자 기생 산홍과 바닷속 산호는 어우러지면서 그녀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산호’가 ‘산홍’의 메타포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한문 제목을 ‘산홍(山紅)’의 山자 대신 ‘산호 산(珊)’자를 써서 ‘珊紅’으로 하고, 부제를 ‘붉은 산호의 노래’라고 붙였다.

“산홍은 말이 없는 바다 꽃 산호를 닮았다. 푸른 물결의 흔들림에 몸짓으로만 이야기하고 속울음을 운다. 이 봄, 붉어서 더 서러운 산홍의 혼이 가락을 타고 넘실거리며 기개 넘치는 춤으로, 시로, 이야기로 다시 피어난다.”



붉은 산호 / 김소영 그림



춤의 도입은 구음의 시작으로 ‘다스름에서 내드름’ 가락을 사용하여 바닷속 깊이 잠들었던 산호가 깨어남을 절제된 춤으로 표현했다. 이어 구음굿거리춤에서 처음에는 아련한 살풀이춤을 추다가 한껏 흥을 돋우지만 웃음과 울음이 섞여 있다. 다음, 동살풀이춤에서는 환희와 기쁨을 마음껏 표현했다. 다시 이어지는 휘모리춤은 북을 두드리며 추는 ‘승무’의 마지막 부분, 해탈의 춤 장면 같았다. 춤의 마지막은 구음만 들리는 가운데 산호는 바닷속에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김유미 〈산홍珊紅-붉은 산호의 노래)〉 ⓒ무향춤페스티벌



본래 설장구춤(수장구, 상장구라고도 함)은 농악의 공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행이었다. 판굿의 백미로 우두머리 장구잽이(연주자)가 막판에 나와 다양한 장구 장단에 맞추어 화려한 춤(발림) 솜씨를 발휘하며 관객들의 추임새와 반응을 유도한다. 설장구춤의 가락과 춤은 지역에 따라 또 연행자마다 각자 나름대로 구성할 수 있다.

작품 분위기에 맞춰 보랏빛 치마, 저고리에 그 안으로 살짝 비치는, 깊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속치마를 입고 등장한 김유미는 무대 전체를 종횡무진 휘저었다(의상 제작: 신근철, 구경숙). 엄청스럽게 연습을 한 것 같았다. 기아일체(器我一體). 장구가 그녀였고 그녀가 장구였다. 장구는 그녀의 심장이 되었고 산홍의 심장이 되었다. 악가무일여(樂歌舞一如). 국악 연주와 소리와 구음(김율희), 춤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대부분 설장구춤은 남자들이 추기 마련인데 여성이 추니 더 화려하고 고혹적이었다. 역동성과 박진감, 한국적 멋과 흥, 신명이 넘쳐났다.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관객과의 공명이 이루어졌다. 관객도 흥에 휩싸였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연행이었으리라.

외양의 화려함과는 달리 삶의 애환을 갖고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살아야 했던 기생의 삶. 의기였기에 당한 핍박. 하지만 김유미는 슬픔을 승화시켜 한을 신명으로 바꾸었다. 그녀의 춤에 산홍의 넋도 위무가 되었으리라.

시대는 변하고 모든 환경도 바뀌었다. 한국의 국력은 놀랍게 신장되었다. 가난하고 서러웠던 옛날의 한국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 자신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많은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제 모든 면에서 세계 6~7위의 부국이자 군사강국, 문화강국이다.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모든 것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한(恨)의 정서’, ‘한국의 여백과 느림의 미학’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예술도 동시대 환경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특히 빠른 템포에 길들여져 있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려면 한의 정서, 슬픔의 카타르시스보다는 멋과 흥겨움과 신바람이 더 들어맞는다.

우리가 현재 전통춤이라 하는 것도 긴 세월을 내려오며 생성된 후, 무수한 습합(習合), 유입, 수정에 따른 발전의 산물일 것이다. 춤의 유파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10개 작(作)들도 세월이 가면서 인정받고 사라지지 않으면 새로운 춤 종목이 되고 유파가 될 것이다. 또한 김유미의 이번 작품 〈산홍〉도.

〈산홍〉에 대해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일었다. ‘한국창작춤’ 내지 ‘창작춤은 이제는 ‘컨템포러리 댄스’와 큰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한국창작춤을 컨템포러리 댄스의 범주에 넣는 경향도 보인다. 하지만 기왕에 ‘한국창작춤’라는 용어가 있으니 전통춤의 색채가 강한 〈산홍〉의 경우에는 다른 용어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본인 스스로는 ‘전통창작 작품’이라 했다. 그러나 모호한 용어의 사용이다. 김태원 춤비평가에게 자문을 구하니 ‘신전통무’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하지만 이번 김유미의 경우는 여러 면에서 많은 창작이 들어가 있다. 재구성전통춤도 어색하다. 설장구춤은 본래 있었던 것이니 ‘창작전통춤’ ‘재창작전통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춤 작품 〈산홍〉은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은 한바탕의 춤이었고 굿이었다. 우리 판소리를 ‘혼자서 하는 오페라’라고 하듯이 혼자서 추는 김유미의 춤도 종합예술이었다. 그녀는 한국 전통춤의 전통을 살리고 있었다. “춤에 있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그녀의 바람을 이루고 있었다.

이만주

춤비평가. 시인. 사진작가.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국영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적인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과 「삼겹살 애가」, 「괴물의 초상」을 출간했다.​​​​​​​​

2023. 7.
사진제공_무향춤페스티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