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전통춤과 그 춤을 해석한 창작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린 흥미로운 무대가 있었다. 구미시립무용단의 〈춤 · 동심결〉(구미강동문화복지회관 천생아트홀, 12월 15일). 작품 제목 〈춤 · 동심결〉은 전통춤과 전통을 재해석한 창작춤이 ‘서로 맞죄어져 풀리지 않도록 묶은 매듭’(동심결)처럼 춤으로 묶인 한 정신이라는 의미라고.
같은 무대에서 전통 한자락을 춘 뒤, 바로 이어 창작춤으로 풀어내는 형식으로, 예술감독(김현태)은 〈처용무〉를 ‘장張’으로 김백봉류의 〈부채춤〉을 ‘선線’. 그리고 김수악류 〈검무〉를 ‘검劍’으로 해석하여 올렸다.
구미시립무용단 〈춤 · 동심결〉 ⓒ구미시립무용단 |
첫 번째, ‘장張’으로 풀어낸 〈처용무〉와 창작춤. 무대는 폭이 좁은 다섯 장의 긴 막이 내려져 있다. 막 뒤에 어른거리며 서 있는 무용수들. 막이 올라가자 가운데 황색의상의 무용수를 중심으로 살짝 틀어진 사각형의 네 방위로 서는 처용들. 다른 이들이 가만히 서 있은 가운데 한 처용이 춤을 추면, 다른 한 처용이 이끌리듯 춤을 춘다. 한 명이 두 명으로, 세 명의 춤으로 번지는 듯한 변화를 형태로 처용무를 풀어낸다. 이윽고 춤을 추며 한 줄로 퇴장하면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처용을 향해 달려 나온다. 차마 부르지도 잡지도 못하는 처용을 향한 몸짓에 마지막에 서서 들어가던 처용이 걸음을 멈춘 채, 조용히 서 있다. 전통과 창작을 잇는 좋은 장치의 서사였다.
이어 붉은 색 의상을 입은 남자가 서너 겹으로 접혀진 흰색 이불을 머리에 이고 걸어 들어온다. 이미지가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 같다. 남자로 인해 무대는 현실의 시간이면서 조금 낯선 시간이 된다. 이불을 들고 풀어내는 남녀의 아름다운 춤은 아득한 욕망에 의한 위태로운 삶으로, 처용의 속절없는 감정의 상징적 장치(머리에 인 이불의 무게)로 의미를 얻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시간에서 ‘처용’이 노래한 ‘어찌하리오’는 체념에 의해 저 낯선 시간으로 한 걸음을 옮겨 딛게 하는 장치인지도.
구미시립무용단 〈춤 · 동심결〉 ⓒ구미시립무용단 |
상반된 이미지로 풀어낸 두 번째 ‘선線’. 김백봉류의 〈부채춤〉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꽃 속에 노니는 나비 같은 환한 춤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다. 이어 퇴장하는 무용수의 발걸음을 재촉하듯 어둡게 변한 무대에 검정색 의상에 푸른색 부채를 든 무용수가 무대에 스며든다. 시계 초침소리 같은 전자음악에 무용수들이 무리지어 들어오고 푸른 색 조명아래 푸른 색 부채가 뿜는 기괴한 느낌. 머리의 붉은 색 댕기와 함께 춤에 따라 슬쩍슬쩍 내보이는 갈라진 의상이 뒤집어지며 드러나는 붉은 속. 섬세한 움직임의 춤은 대금소리가 들어오면서 마무리된다.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춤으로 흥미로웠다.
구미시립무용단 〈춤 · 동심결〉 ⓒ구미시립무용단 |
그리고 세 번째, ‘검劍’, 김수악류의 〈검무〉를 전통춤으로 올렸다. 무용단이 보유하고 있던 ‘검무’를 그대로 수용하였다고. 팥죽색 치마에 연한 베이지색 저고리에 쾌자. 손목을 턱 꺾고, 호흡과 함께 춤을 멈추곤 하는 다섯 명의 춤사위와 장구장단에 얹힌 구음이 조화로운 춤이었다.
창작춤은 흰색 치마의상에 목이 돌아가는 검을 든 군무에 남자의 장검무를 같이 배치한 평이한 작품으로, 의상에서 검의 해석까지 좀 더 과감하게 현대적으로 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구미시립무용단 〈춤 · 동심결〉 ⓒ구미시립무용단 |
마지막 춤, 김현태(예술감독)는 자신이 무엇을 그려야할지, 어떤 춤현실이 가능할지 스스로 묻는 작업으로, ‘못찾겠다 꾀꼬리’를 편곡한 음악에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은 28명의 무용수들이 춘 폭발적인 군무로 시민들의 마음을 흔들고 풀어놓는다.
돌아서 가는 처용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처용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고, 잡아야했던 것을 놓쳐버린 그녀의 손 때문에 잠시 슬퍼서, 꽃부채에서 피어오르는 나비를 따라 나섰더니, 영혼의 바람소리 같은, 짙푸르고 기괴한 다른 시간의 세계를 보여주고, 칼날이 뿜어 빚는 빛의 힘으로, 추위를 조각내는가 하면, 일상의 고단함을 꾀꼬리를 찾으며 노는 이들의 화사한 놀이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 현실이 아닌 세계. 예술감독 김현태가 〈춤 · 동심결〉로 보여준 특별한 시간이었다
공공의 유용성이란 요구와 예술감독의 춤창작 의도에 있어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감독의 역할은 포기할 수 없는 춤창작의 발산을 조직해내야 한다는 것에 그 어려움이 있다. 김현태 예술감독은 전통춤을 ‘장張’과 ‘선線’ ‘검劍’으로 해석, 동시에 창작춤을 배치한 〈춤 · 동심결〉 작업으로, 공공성을 현명하게 수용하였다. 춤을 추는 이로서 자신의 재능과 춤적 실천에 있어 게으름이 없는 이의 예술적 발현으로 예술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