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몸을 놀려 움직이는 동작’을 일러 짓이라 한다. 그 짓을 평안에 붙인 ‘평안의 짓’으로부터 생성과 음양, 태동, 무욕, 액몰이, 신명에까지 ‘짓’을 붙여 박진미가 꾸려 올린 전통춤판. 〈달구벌 타(打), 짓〉(12월 24일, 꿈꾸는 씨어터). 지난 해 끝자락에 있었던 흥미로운 춤판을 소환한다.
춤의 예술성은 무의식적이다. 춤꾼이 춤을 출 때는 자신이 춤꾼인지를 어느 순간 잊어버린다. 춤의 기교라는 것이 그것을 의식할 때에는 진정한 기교가 못 되기 때문이다. 춤꾼이 춤을 출 때 자신의 예술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가 보고 듣는 것은 객석의 관객이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가락과 구음이다. 그것이 그 춤꾼의 의식이다. 〈달구벌 타(打), 짓〉은 이러한 춤꾼의 의식이 잘 드러난 춤판이었다.
같은 영남춤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과 신명에 따른 춤태와 정서가 경남(부산)과 경북(대구)에 따라 묘하게 다름을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같은 스승아래서 동시에 춤을 배워도 춤꾼마다 가진 춤(몸)에 따라 춤이 다른데 하물며 나고 자란 지역(정서)에 따라 춤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더 흥미로운 점은 춤을 보고 즐기는 관객들의 확연하게 다른 정서와 태도다.
〈달구벌 타(打), 짓〉은 앞서 언급한 춤꾼의 의식과 서로 다른 관객의 춤 정서가 한데 섞여 들끓은 현장으로, 춤에 화답하듯 “잘한다” “좋다”는 추임새로 연신 흥을 돋우며 춤을 즐기는 경남지역 관객과 조용하게 숨죽이고 보는 대구 관객의 정서가 한데 섞인 이색적인 춤판이었다.
이경림 〈진춤-엄옥자류〉 ⓒ이재봉/춤판닷컴 |
‘평안의 짓’으로 무대를 연 이경림의 〈진춤-엄옥자류〉은 자진모리 가락에서 슬쩍슬쩍 들어 올리고, 밟아 도는 발에 흥이 실리는 시원한 발놀음이 눈에 띄는, 단아한 춤이었다. 내내 조심스러운 몸짓(객석에서 지켜보는 엄옥자선생을 의식한 탓인지) 에 채 실리지 못한 신명과 흥, 기개를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문진수 〈광대소고춤-문진수류〉 ⓒ이재봉/춤판닷컴 |
이어 ‘생성의 짓’무대에 선 문진수의 〈광대소고춤-문진수류〉. 춤은 문진수가 ‘1925년 독일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기록한 영상을 토대로 ’복원, 재현, 재구성, 재창작한 작품’으로 교방춤 계열의 ‘소고춤’과는 확연하게 다른 구성의 춤이었다. 원래 마당춤이었던 소고춤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그 구성의 독특함이 인상적이었다. 소고를 위로 던져 올리고, 받아 내리는가 하면 손에서 돌리고 두드리는, 소고를 들고 노는 재기와 가락에 따른 춤(흥)의 다양한 변화와 조화로운 춤과 달리, 늘려 추는 굿거리와 춤 사이의 호흡이 다소 어색하였다.
마당춤으로 놀았던 춤(몸)의 호흡과 무대춤으로 발전한 현재 전통춤 호흡이 같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긴장한 듯한 춤꾼에게 (부산)관객 몇이 추임새로 힘껏 흥을 돋운다. 징이 붙으면서 휘몰아치는 가락에 가만히 서서 한 쪽 발등에 소고를 올려놓고, 다리를 들어올린 뒤 도는 연풍대는 예인들의 재기를 복원한 동작으로 보인다. 춤이 끝난 듯, 가만히 서 있다가 빨라지는 장단의 변화에 이어지는 문진수의 춤에서 우리 춤연희에 대한 적막하고 처연한 사랑이 읽힌다.
장홍심 〈바라승무-이성자류〉 ⓒ이재봉/춤판닷컴 |
‘음양의 짓’ 무대에 선 검정색 장삼의 장홍심의 〈바라승무-이성자류〉. 흰색치마저고리에 검정색 장삼과 붉은색 가사, 북이 놓이는 자리에 바라가 놓여 있는 것 외에는 ‘승무’와 춤의 구성은 거의 유사하다. 객석을 뒤로 두고 비스듬하게 엎드려 시작하는 이매방류나 한영숙류 등과 달리 무대 한가운데서 객석을 마주 하고 엎드려 춤을 시작, 마지막 부분에 채를 놓고 장삼자락을 손으로 잡고 뒤로 묶는다. 태평소와 북이 춤을 받쳐주니, 앉은 채 바라를 두드리고 휘두른 뒤, 서서 훨훨.
장홍심의 절제되어 있는 호흡과, 꾸며 추는 춤의 유혹과 미끼에 나대지 않겠다는 감각의 춤은 마치 쓸데없는 춤의 기교라는 그물에 걸려들지 않겠다는 단단한 정신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박진미무용단 〈진도북춤-박병천류〉 ⓒ이재봉/춤판닷컴 |
〈진도북춤-박병천류〉(박진미, 장요한, 곽민정,우수민,박소현). 신명과 흥이 특별한 ‘태동의 짓’ 군무. 정박에 북을 친 뒤, 박자와 박자 사이에 슬쩍 한 번 더 북을 치고 들어간다. 마치 농담처럼. 고개짓(흥)에 얹은 여유 있게 풀어내며 온 몸으로 받아내는 춤짓의 신명이 객석을 달군다. 끝나는가 했더니, 돌아서 들어가던 박진미가 “재밌지요?” “한 번 더 갈까요?” 묻자, “예~”라고 객석이 화답. 한바탕 더 논다.
박진미무용단 〈남사당 덧뵈기〉 ⓒ이재봉/춤판닷컴 |
〈남사당 덧뵈기〉(신하교, 서희연,이지원, 한유진). 총 4과정 중 1과장인 마당씻이 과장을 올렸다. 대구 무대에서 처음 보는 남사당만의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가면극이란 데 의미가 있었다.
흰색 의상에 붉은 색 소맷자락, 탈을 쓴 채 상모를 돌리고 악기를(꽹과리. 징, 장구, 북) 두드리고, 사설까지 하며 무대에 들어온다. 얼굴에 쓴 탈 때문인지 사설의 내용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불구하고 ‘멍쇠야’ ‘먹쇠야’로 서로를 부르며 “놀아볼까?”에 이어 “얼럴럴, 내(니)기럴꺼!‘(’제기럴‘의 방언으로 짐작되는)라는 소리를 시작으로 장단의 변화를 즐기며 한바탕씩 논다. 남사당으로 떠도는 고단한 사당패의 힘듦을 “얼럴럴, 내(니)기럴꺼!”에 담아 하소연 하면서도 이들은 왜 이’짓‘에 발을 들였을까. ‘무욕의 짓’이라 붙인 무대가 그 대답일지도.
문진수 〈열두 발 상모춤-문진수류〉 ⓒ이재봉/춤판닷컴 |
〈열두 발 상모춤-문진수류〉 일 년, 열두 달을 상징한다는 열두 발 길이의 긴 줄을 잡고 문진수는 한참을 잔잔하게 춤을 춘다. 줄넘기를 하듯 뛰고 돌고, 머리 위에서 채찍처럼 돌리는가 하면, 장단이 바뀌자 고무줄놀이를 하듯 뜀뛰기를 한다. 이윽고 줄을 살짝 밟은 뒤, 발을 나란히 붙이고 팔짱을 낀 채 서서, 천천히 상모를 돌리자 발 주위로 뱀이 또아리를 틀 듯 두 발을 감자, 다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풀어낸다. ‘반복 순환하는 지속적인 연희구조 안에 담긴 질서와 조화를 담아낸 재주’ 중의 하나로 보인다. 상모를 돌리면서 앉은 채, 손바닥을 들어 화장을 하는 흉내를 내는가 하면,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객석을 향해 날린다.
잊혀졌던 ‘열두발 상모춤’. 춤을 보면서 오래전 구경꾼들을 매혹했던 춤과 그 춤을 잊게 만든 것이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춤을 보는 형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진정한 질적 변화를 초래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춤의 아름다움을 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야를 제한하여 넓게 보던 것을 더 좁게 보게 할 뿐이라는 데 있을지도.
문진수의 〈열두발 상모춤〉은 조용하고 선량한(춤으로 본 그의 성품) 한 예인이 상모에 바치는 진정을 통해 연희라는 또 다른 춤의 모습을 감지하게 된 무대였다.
박진미 〈남도소고춤-김평호류〉 ⓒ이재봉/춤판닷컴 |
〈남도소고춤-김평호류〉 객석에서 누군가 “진미야~” 소리쳐 부르니 박진미가 답을 하듯, 하수 막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춤꾼이 무대를 직시하고 정시하려 하는데 춤현실이 각박할 때, 거기에 춤 상상력의 공간이 두텁게 마련되기는 쉽지 않다. 불구하고 박진미는 춤 발산의 ‘짓’들을 위트 있게 끌어낸다. 그리고 춤을 잘 춘다. 부드럽게 추다가 흥으로 연결, 다시 활기차게 엮어가는 다양한 춤가락으로 이어지는 ‘남도소고춤’은 박진미의 몸에 맞춘 듯, 그의 춤재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신명이 실은 춤이 어느 순간 웃음기를 싹 걷어낸다. 애환이 묻어나는 춤짓이 주는 서늘한 슬픔에 객석에 정적이 인다. 소고를 들고 내리는 춤에 온갖 풍상이 묻어나는가 하면, 휘몰아치는 가락을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받아내는 몸(춤)에 흥이 범람하기 직전, 이내 살짝 미소를 띠고 무대를 돌아드는 춤을 따라 관객들의 시선이 홀린 듯 따라간다. 발로 바닥을 슬쩍 쓸어 든 뒤, 발밑에 던지듯 딛는 발 놀음과 툭툭 떨어트리는 호흡에 묻고 쌓아둔 삶(춤).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삶(춤)만이 현실을 감당할 수 있을 터인데, 박진미의 춤적 서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도, 춤적 서정으로 획득하게 되는 힘도 흥과 신명, 애환이 교차하는, 춤을 향한 굳은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서 시연되지 않은 전통춤으로 구성한 박진미의 〈달구벌 타(打), 짓〉. 진주교대에서 같이 수학한 인연(송미숙과 문진수)과 전통연희(남사당놀이)까지 품어 안은 무대는 시종일관 예술성과 흥이 넘실거렸을 뿐만 아니라, 관객의 (문화)정서교류로 이어진 춤판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의 한결같은 춤 태도는 어느 주눅 든 상황이나 어떤 암담한 현실에 처해서도 자기감정을 추슬러 올리고 춤 정신을 자극하여 고양된 춤 정신 속으로 그 상황과 현실을 추켜올릴 것이다. 하여 그 춤의 정신으로 추고자 하는 춤이 힘을 얻고, 그 힘이 다시 춤 정신의 상승에 가속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박진미의 춤이 온몸으로 추어내는 ‘짓’이며, 자신의 존재이유이기도. 이제 막 활기를 띠는 대구 전통춤 무대에 끼칠 그의 (춤)역할이 적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