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대구전통춤문화제
동무(同舞)와 이립(而立)
권옥희_춤비평가

전통춤사위의 정중동은 대립면의 공존과 의존이라는 큰 틀 안에 있다. 전통춤의 이런 형식과 춤사위가 이루어지는 원칙은 상호의존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전통춤은 상호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며, 고립적이지 않은 개방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지부장 추현주)가 주관하는 ‘대구전통춤문화제’(11월2일~3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공연이 있었다. 2018년 창단, 첫공연 이후 활동을 접은 단체를 재정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전통춤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임원진과 회원들을 살펴보니 학연과 지연을 가르는 경계가 사라졌다. 오랫동안 불화하였다. 대구무용협회를 둘러싼 이권과 권력다툼이 학연과 지연으로 번지면서 갈등과 반목을 불렀다. 보이지 않는 불화가 더 두터워지고 지속되기 전에 그 봉합의 실마리와 물꼬를 트는 계기가 있어야 했다.

그 계기가, 지난 해에 지부장을 맡은 추현주가 전통춤을 추는 이들에게 같이 춤을 추자고 제안, 같은 세대(50대 전후반)들이 화답하며 시작되었다. 옳게 생각한 것이다. 옳게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의 반복을 명철한 의식으로 맞선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추현주가 전통춤으로 걸고 있는 화합을 위한 기획과 노력, 그 성패의 과정에서 현재 대구춤계가 봉착하고 있는 문제의 그림과 전망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춤추는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은 춤으로 자신을 성찰, 세계를 넓히는 일이지 경계를 짓는 일이 아니란 것을. 정말 지켜야 할 고고한 수세의 경계석 안과 밖 어느 자리에 누구를 위치시킬지는 다음 세대가 결정해야 할 몫이다. 전통춤을 추는 데 있어서 형식의 과장됨과 잘 추고자 하는 욕심의 절제, 중요하다. 누군가 일가(류)를 이룬 이의 춤 기량을 뛰어넘는 춤을 춘다 해서 그 ‘류’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누구의 ‘류’를 무작정 따라(복사) 추는 것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한 숙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틀에 걸친 중진들의 무대 ‘동무(同舞)’와 신진들의 무대 ‘이립而立’을 본다.



  

신명진 〈승무〉, 이인애 〈가인여옥〉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첫날, 중진들의 무대 ‘동무(同舞)’. 신명진의 〈승무〉, 이인애의 〈가인여옥〉, 윤경재의〈달구벌입춤〉, 박성희의〈도살풀이춤〉, 박정희의〈태평무〉, 추현주의 〈소고춤〉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신명진의 〈승무〉(이매방류)는 호흡이 잦고, 현란한 북가락에 몸이 과하게 들썩이는 등 춤이 살짝 가볍게 뜨는 느낌이었다. 굿거리에 들어온 장구장단도 들릴 듯 말 듯 약해서 춤을 채 받쳐주지 못하여 아쉬웠다. 황금색치마에 먹빛치마를 입고, 쥘부채를 들고 추는 이인애의 〈가인여옥〉(박재희류 벽파입춤)은 젊은 여인네의 정서를 곱게 잘 담아낸 힘있고 푸릇한 기운이 넘치는가 하면, 아름다운 태가 돋보이는 춤이었다. 춤사이마다 보이는 교태미는 춤을 추는 무대와 장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 알았으면.



  

윤경재 〈달구벌입춤〉, 박성희 〈도살풀이〉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이정진 〈입춤〉, 박정희 〈태평무〉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윤경재의 〈달구벌입춤〉(최희선류). 다리를 든채 손목을 툭 떨어트리며 장단을 먹는 춤에서 ‘달구벌입춤’의 질박한 특색이 잠깐, 슬쩍 얼굴만 비추다 말았다. 치마 속, 보이지 않는 춤을 분명하게 추어야 치마밖으로 춤선이 드러난다. 박성희의 〈도살풀이〉(김숙자류). 상체를 무작정(스승의 춤(류)이 그러하기에) 구부리고 말아 안고 추는 춤과 낮게 추는 춤 안에 높은 정신과 혼을 담아낸 춤은 다르다. 자진모리장단에서 한의 정서가 춤에 실리며 춤이 살짝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이정진의 〈입춤〉(임이조류)은 투둑, 두 번 떨어트리는 과하지 않은 호흡, 연두빛 치마에 살구빛 저고리 길을 길게 내려입고, 툭툭한 춤(몸)집으로 안정감있게 춤을 풀어냈다. 자진모리에서도 감정을 크게 흩트리지 않고 담담하게 누르고 멈추고 지숫는 무게감 있는 춤이었다. 3인무(박정희, 윤수경, 고선옥)로 무대에 오른 박정희의 〈태평무〉(한영숙제 박재희류). 긴장한 듯, 딱딱하게 굳은 춤(몸)과 장단을 맞추는 듯한 잦은 눈짓의 산만함이 객석의 시선을 춤에 잡아두지 못하면서 춤의 기운이 흩어졌다.



추현주 〈소고춤〉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마지막, 추현주의 〈소고춤〉(권명화류). 태평소 소리가 시작되자 소고로 얼굴을 살짝 가린채 흔들, 걸어나오며 추는 춤. 비스듬히 뒤로 몸을 젖혔다가 다시 회복하는 춤(몸)의 탄력성, 소고를 슬쩍 올려치거나, 소고와 채를 든 팔을 툭 떨어트리고 몸으로 장단을 먹고 서 있으니 흥취가 인다. 객석에서 “얼씨구”로 화답한다.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돌아드는 춤맵시와 팔을 위로 든채 어깨로 받아내는 장단, 투박함과 가벼움을 조화롭게 섞어 내딛는 발디딤, 날렵하게 돌아선 뒤 추는 듯 안추는 듯 어르고 지숫는 춤에 재기와 신명이 넘쳤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 녹음음악의 혼동 때문에 다시 이어진 굿거리장단에 추현주가 즉흥으로 춤춘 뒷얘기는 웃프다. 지난해 공연에 이어 올해도 삼현육각에 춤을 얹지 못한 가난한 단체의 비애다. 어쩌면 가난했기에 모두 함께 할 수 있었는지도.

둘째날 ‘이립’ 무대(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 ‘전통춤’은 모범이 되고 규범적인 형식을 말한다. 나머지 춤형식의 경험이 그것에 견주어 판단되는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춤꾼 개인의 내밀한 심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춤으로, 순서만 익혀서 춘다고 모두 ‘전통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막 전통춤 공부에 들어섰거나, (춤)뜻을 세우고 있는 중인 이들의 춤기량, 그 편차가 컸다.



  

김도연 〈화선무〉, 유경원 〈태평무〉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이은영 〈부채춤〉, 이서현 〈살풀이〉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박소현 〈남도소고춤〉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김도연의 〈화선무〉(임이조류)는 전통춤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전통춤 발디딤보다 , 예쁜 춤사위로(만)춘 춤이었다. 반면 유경원의 〈태평무〉(한영숙제 박재희류)는 조신하고 단정한 춤(몸)집을 가지고 있는 춤꾼으로, 긴장을 한 듯한 춤에 비장미가. 편안하게 추어야 보는 이도 편안하게 춤을 즐길 수 있다는. 이은영의 〈부채춤〉(김백봉류)은 화사한 춤으로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드는 춤이었다. 미소를 띤 자연스러운 표정과 좋은 춤(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자진모리장단의 춤은 가볍고 유려했다. 이서현의 〈살풀이〉(한영숙류). 단단하지 못한 발디딤으로 전체춤이 흔들렸다. 〈남도소고춤〉(김평호류)을 춘 박소현은 여리여리한 춤(몸)집과 달리 호흡과 과하지 않게 추어낸 춤정서가 좋았다. 단정하게 춤을 배우고 있는 중인 듯, 몸으로 춤을 받아내는 동작이 차분하고 진중하다. 한다리를 들고 도는 회전동작에서 흥을 돋우고, 호흡을 살짝 내려놓는 데서 일어나는 흥취도 좋다.



김혜미 〈노랫가락장고춤〉(성윤선작)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마지막 김혜미의 〈노랫가락장고춤〉(성윤선작). 짙은 보라색 치마에 꽃을 단 먹빛저고리, 노랑색 고름이 경쾌하다. 느리게 시작된 춤이 자진방아타령으로 가락이 바뀌자 한바탕 놀아볼 준비가 되었다는 듯, 가볍고 날렵한 춤으로 싹 바뀐다. 춤에너지는 물론 장구 장단도 좋다. 태평소와 꽹과리(김영진, 권순기) 연주가 들어오며 춤은 신명으로 넘실거린다. 재원이다.

춤기예라고도 한다. 누구의(류) 춤을 잇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그 춤을 받아 추며 춤추는 몸에 새기는 것일까. 지혜로운 춤꾼은 자신이 어떻게 춤을 춰야할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문제가 문제인 것을 안다. 그리고 이들에게 남게되는 것은 전통춤의 존재방식에 대해 품었을 질문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 일반론을 만들어 가지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 단체가 전통춤의 형식인 상호관계와 개방성을 빌려 대구춤계의 소통을 꾀하는 것을 고민하며 구체적으로 문제를 종식시키는, 한 실마리를 붙잡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도) 같다. 여러 의미에서 전통춤으로 그 터를 공고히 하고 다져가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지를 보여준 무대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4. 12.
사진제공_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