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정은혜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고양된 정신으로 얻어낸 춤의 은유
권옥희_춤비평가

전통춤, 특히 궁중춤을 보다보면 ‘김천흥’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이번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12월1일, 대전시립연정국악원 대극장) 무대에 오른 ‘춘앵무’, ‘처용무’, ‘학춤’, ‘일무’는 더 그러했다. 특히 한성준에서 김천흥, 그리고 정은혜로 내려오는 ‘학춤’의 전승, 그 연결고리의 확인, 지역설화에 기반하여 안무한 ‘유성학춤’은 ‘법고창신’에 걸맞는 의미있는 작업의 재발견이었다. 무대는 소제 ‘김천흥전통유산 창작으로 만나기’에서 밝힌 것처럼 김천흥선생의 ‘해금과 일무’(국가문화유산 종묘제례악), ‘처용무’(춤과 가면 제작)와 ‘춘앵전’ 그리고 ‘학춤’을 창작춤으로 재안무, 총 4장으로 풀어올렸다.





정은혜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태례 ⓒ옥상훈



1장, ‘태례太禮’. 검은색의 긴 의상과 두건에 몸을 감춘 원로들의(이병옥, 이금주, 허순선, 장유경) 춤에 더하여 최영숙(원로)이 합류, 몸을 접은 자세로 팔을 위로 들어올린다. 예를 올리는 것으로 ‘인류문화의 고마움’ 혹은 ‘천지자연과 인간조상’에 대한 몸짓이라 짐작된다.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이든 ‘긴 역사’의 시간을 원로들의 춤으로 설정, 배치한 듯 보인다. 원로들의 춤은 무대 중간막이 열리면서 여자(조경진)와 남자 네 명이(허은찬, 최재호, 김민혁, 오해초) 하늘에 제사(禮)를 올리는 창작춤으로 연결된다. 학모양의 흰색 종이를 뒤로 잡고 다시 등장한 원로들이 종이(학)를 들고 춤을 춘다. 비틀, 주춤거리는 춤. 긴 시간을 건너온 우리역사의 그림자라 하자.





정은혜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춘앵전-그 역사적 풍경으로 바라보기 ⓒ옥상훈



2장, ‘춘앵전-그 역사적 풍경으로 바라보기’. ‘춘앵전’을 해석한 창작춤(1999년도)을 다시 자식을 잃은 순원왕후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문예에 뛰어나고 효심이 깊었던 효명을 노랑색 천과 꾀꼬리로 분한 세 무용수(꾀꼬리, 혹은 여기(女技))의 배치로 은유, 다소 무기력하게 풀어냈다. 무대 하수께에 서 있는 그 안쪽 가장자리를 돌아 반원 형태로 상수께 경사가 진 무대장치까지 깔려있는 흰색 천, 천은 순원왕후(정은혜)의 연두색의 짧은 한삼까지 이어진다. 정은혜가 앉아있는 화문석은 정재춤을 추는 크기로 보인다. 그 곳에서 벗어나 화문석을 향해 추는 순원왕후의춤, 비통해 보인다. 순원왕후(정은혜)의 춤과 달리 꾀꼬리로 분한(류은선, 나소연, 허이진) 이들의 춤은 가볍고 경쾌하다. 등을 보인 채 중앙에 앉아있는 슬프고 무력해 보이는 효명(이규은)과 노랑색 천. 다 안아들지 못할 정도의 부피의 치마를 걷어 안고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온다. 효명의 주위를 돌며 추는 정은혜의 춤은 왕후가 아니라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한탄의 춤이다. 춤은 치마를 싸안고 다시 화문석(궁중)자리로 돌아가며 마무리된다.

(궁중)체계의 억압은 잠깐 벗는 긴 한삼으로, 전복도, 쇄신도 초월도 못함은 자식의 죽음을 오래 슬퍼하지도 못하고 돌아가 앉아야 자리(화문석)로. 아름다운 은유와 상징으로 잘 설명한 춤이었다.





정은혜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처용 ⓒ옥상훈



3장, ‘처용’.

처용을 해석한 춤. 달과 처용과 처용의 처. 역신. 반원 형태의 무대소품 풀어낸 작품은 인물의 의상색과 춤으로 풀어냈다.

처용각시의 시선이거나(〈달꿈〉1998), 처용의 덕에 초점을 맞춰(〈처용〉2010)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 나례의식에 출연하였던 원로들의 춤을 배치함으로써 예의 춤이, 예를 올리는 의식이 국가문화유산 처용무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는 시공간의 흐름을 말하고 싶었던 듯.

처용의 고뇌, 역신과 처용각시의 놀음을 한 무대에 파편의 형식으로 펼쳐놓는다. 상황을 피하려하는 처용의 발목을 역신이 잡아끄는가하면, 사랑에 미쳐 날뛰는(사랑이라고 하자) 처용과 처용각시의 수많은 분신들인 남녀들의 춤을 처용의 눈앞에 들이대지만 외면한 채 돌아서 있는 처용. 흥미롭고 재미있는 해석이었다. 삶의 한 모서리를 살면서 기필코 감지되어야 할 현실의 기미를. 현실(삶) 또한 처용에게 다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신이 짊어진 틀(공교롭게 십자가 형태로 보인다), 등에 얹고 힘겹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 뒤로 괴로워하는 처용각시. 정은혜는 은유를 염두에 두지 않고도 현실에 은유적 힘을 부여한 듯하다.

다섯 명의 원로무용가들이 검은색 의상에 처용탈을 들고 나란히 걸어 들어온다. 처용이 서 있는 등 뒤로. 두려운 듯, 그 자리에 가만히 눕는 처용. 처용의 초월적 시선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현실이 춤적 가치를 띠는 계기에 정신과 감각을 집중한 작품이었다.



정은혜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유성학춤 ⓒ옥상훈



4장, ‘유성학춤’. 춤에 앞서서 김천흥의 생애와 춤 업적 영상이 시작된다.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를 보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영상으로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성행하던 학춤이 일제강점기에 맥이 끊긴 것을 한성준이 복원, 1969년 이후 김천흥으로 이어진 학춤을 뿌리로 정은혜가 재창조(안무)한 작품’이라는 해설이 ‘유성학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나무와 돌이 놓인 작은 자연(이라고 하자). 자연을 지시하는 무대장치보다 학의 움직임 자체가 자연으로, 이것이 춤에 들어오는 방식은 적절하다기보다 감쪽같아서 특별히 학이 노니는 자연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늘 무대 거기에서 노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자연이 학춤의 주제인지 배경인지를 따지는 일이 그만큼 부질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학춤의 정한은 자연과 구별되지 않았고, 춤을 추는 동작 하나하나의 감정은 자연에서부터 배어 나와 다시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정은혜, 이금용, 조경진, 김민혁, 오해초, 안지현이 추었다.



정은혜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유성학춤 ⓒ옥상훈



‘학춤’이 주는 ‘고고함’과 ‘평화로움’은 그 춤을 익히고 추는 이의 고된 훈련이 만들어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의 상징성이 특별한 힘을 누리게 되는 것은 학 그자체가 지닌 우아하고 고고함에도 물론 있을 것이나, 그것은 춤을 추는 이의 고된 훈련을 가리고 서 있다. 춤추는 이는 모든 노력과 애씀을 동시에 바쳐야 하는데, 그 간절한 심정이 학춤을 눈여겨 바라보게 하고, 무용수는 긴장된 시선의 힘을 받아 단순히 학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은유적 관념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가지고 있던 관념을 현실의 생명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춤이 요구하는 은유 하나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지성과 감각을 바닥까지 끌어낼 때 새로운 춤정신의 자리를 열어내고 그 정신을 춤으로 옮겨놓게 된다. 옛춤을 유연하게 본받으며 새로운 춤으로 법고와 창신을 도모한 정은혜의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법고보다 창신에 무게가 더 실린 무대로, 오래된 춤을 추켜올리고 고양된 정신으로 새로운 춤을 추어올릴 때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얻어낸 춤의 은유들이 빛을 발한 무대였다. 학의 머리를 안고 달려나온 정은혜의 커튼콜은 나이가 무색한, 가볍게 날아다니는 작은 ‘학’의 분신 같았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5. 1.
사진제공_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