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게임과 공연이 섞이는 현상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게임이 예술과 무관하다거나 게임을 하대하는 시각에선 그런 현상을 외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게임과의 접속을 시도하는 공연이 점진적으로 시도되고 있고, 그런 공연에서는 게임에 대한 인식이 물론 긍정적이다. 이 같은 추세가 공연예술계 전반에서 주목받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한다.
지난 2021년 봄과 겨울 2회에 걸쳐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과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가상 정거장’ 페스티벌(예술감독: 김성희, 주최/주관: 근미래우주선)은 근대적 예술 개념과 사유, 실천이 기술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이었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 드러내는 정치적, 철학적, 미학적 논제를 비평적 관점에서 다루는 동시대 다원적 성격의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그중에서도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게임의 형식을 취하면서 게임을 소비하는 문화 양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공연 작업들이었다. 예를 들어 시각예술작가 김지선의 〈슬픔의 집〉에서 관객은 행화탕,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 내 가상 극장,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게임 스트리머가 실시간으로 플레이하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문화연구자 오영진이 기획, 연출한 〈에란겔: 다크 투어〉에서 50명 남짓의 게임 참여자들은 배틀그라운드라는 온라인 생존 게임 속 주공간인 에란겔섬을 함께 투어했고 약 55분간의 투어 과정은 유튜브로 생중계된 바 있다.1)
‘가상 정거장’ 전시장 행화탕 ⓒ김채현 |
사실 미디어아트에서 게임 기술과 문법을 차용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시도였다. 미디어아트는 게임이 지니는 목표성, 놀이성, 상호작용성, 경쟁성 등을 접목하여 관객의 몰입도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갖는 동시에 예술의 표현 방식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가상 정거장에서 소개된 작품들의 경우 두 가지 측면에서 보다 진전된 시각을 거론하게끔 한다. 먼저, 예술 표현의 도구로서 게임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게임이 예술의 주매체로 사용되어 그 최종 결과물이 게임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예술로서 게임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두 번째로는 공연과 게임 간 교차 지점의 탐색이다. 공연예술계에서 게임 기술을 도입하거나 기존 게임을 차용한다든지 또는 게임 공간을 공연 공간으로 전유해서 사용하는 등의 시도는 상대적으로 미미했었다. 이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퍼포머가 아닌 일반 플레이어의 수행적 행위에 의해 전개된다는 점에서 공연이 아닌 설치미술 또는 웹아트와 같은 형태로 접근하기가 수월했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상 정거장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슬픔의 집〉과 〈에란겔: 다크 투어〉를 통해 게임적, 공연적 요소를 결합하여 다양한 방식의 공연 구성과 연출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논제를 중심으로 공연과 게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먼저 미디어아트가 게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되고 게임과 예술 간의 장르적 구분이 모호해진 이즈음, 그렇다면 게임 역시 예술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공연에 적용했을 경우, 게임 환경과 구조, 내용을 제작하는 것을 일종의 공연 제작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게임 플레잉 또는 스트리밍을 공연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 게임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순 있으나 예술로 불릴 정도로 높은 수준의 미학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주장2)에 의해 예술로서의 게임에 관한 논쟁이 2005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론 스머츠(Aaron Smuts)에 의하면 게임은 총체적인 배경 및 구조를 고안하고 복잡한 시나리오 및 캐릭터를 창조하며 삽입 영상, 카메라워크, 조명, 사운드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제작과정이 요구되며 이는 영화의 제작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3) 사실상 게임과 예술의 위계적 관계는 본질적·내재적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예스퍼 율(Jesper Juul)은 수준 낮고 저급한 장르인 게임으로부터 예술을 구별 짓기 위한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4)
예술로서의 게임에 관한 담론은 예술계 내에서 점차적으로 퍼져나갔다.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은 14개의 비디오 게임을 소장하였으며, 시각적 측면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행동 코드 및 디자인의 세련미, 기술적 혁신, 역사적, 문화적 관련성을 고려하여 소장 게임을 선정하였다고 밝혔다.5) 같은 해 스미소니언미술관에서는 비디오 게임 관련 기획전 〈비디오 게임의 예술〉(The Art of Video Games)이 열렸다. 게임 〈디어 에스더〉(Dear Esther)의 디자이너 댄 핀치벡(Dan Pinchbeck)은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는지 보다는 왜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으려는지가 더 흥미로운 질문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6) 게임연구자 홍선표 역시 비디오 게임이 어떤 예술이며, 비디오 게임이 추구하는 유희성의 미학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였다.7)
필자는 예술과 게임 간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닌 그 둘의 상호관계성에 주목하는 사례로서 김지선의 〈슬픔의 집〉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가상 정거장 페스티벌 이전 2020년 1월 서강대 메리홀에서 오프라인 공연으로, 그해 9월에는 벨기에의 쿤스텐페스티벌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극장에서 동시에 진행된 바 있다. 이 작업의 시작은 작가가 페루의 아마존에서 만난 친구 ‘민’이 만든 게임을 전달받게 되면서부터였다. ‘민’은 자신의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려고 게임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플레이했는데, 작가는 ‘민’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남미 원주민의 기억술과의 연관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슬픔의 집〉은 작가가 ‘민’의 게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내레이션으로 덧붙여 만든 게임이다.8) 여러 단계의 스테이션으로 구성된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막, 쓰레기 더미, 동굴, 갤러리 등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민’과 작가의 기억, 전세계의 기억술에 대한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김지선 <슬픔의 집> 속 마인크래프트 온라인 극장 ©김지선 |
작가는 이 게임을 오프라인 공연 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했으며, 따라서 게임 스트리머가 무대 위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중계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구성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연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면서 작가는 마인크래프트에 온라인 극장을 짓고 그 속에서 다른 온라인 참여자들과 게임 플레잉 영상을 시청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그리하여 2021년 3월 가상 정거장 페스티벌에서는 게임 스트리머의 퍼포밍을 관람하는 행화탕 관객, 마인크래프트 속 온라인 극장에서 게임 플레잉을 관람하는 마인크래프트 관객, 마인크래프트 온라인 극장 모습과 게임 스트리밍을 시청하는 유튜브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공연 관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작가는 공연 속 게임을 스탠드얼론 게임으로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슬픔의 집〉은 게임을 접목한 예술뿐만 아니라 예술의 주매체가 게임인, 온전히 게임으로서 존재하는 작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존 현대 예술에서 게임을 소재, 주제로 한 작업들과 차별화된 시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논제인 공연과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조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서 필자는 레베카 캐논(Rebecca Cannon)이 제시한 예술적 성격을 띤 게임 형식의 세 가지 분류를 참고하겠다.9) 캐논에 따르면, 예술적 성격의 게임 작업을 ‘아트 게임’ ‘아트 모드’ ‘게임 아트’로 분류 가능하며, 각각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아트 게임’은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을 이용하지 않고 완전하게 창조된 게임을 지칭하며, 문학적이고 예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나 경쟁 기반 플레이라는 게임의 형식을 갖춘 것을 말한다. ‘아트 모드’는 기존 게임에 개입하거나 그것의 형식을 응용, 완전히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아트 모드는 변형에 의해서 기존의 게임 기능을 상실한 이미지, 영상 등까지도 포함하기에 종종 플레이가 불가능하거나 경쟁이 없는 방법에서 플레이하는 방식을 취한다. ‘게임 아트’는 예술의 소재, 주제, 도구로서 게임을 사용한 모든 예술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너무 광범위한 범주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존 샤프(John Sharp)는 게임 아트의 정의를 보다 구체화하였다. 그에 의하면 게임 아트는 게임 자체를 재료로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서, 최종 결과물이 본래의 형태인 게임이 아닌 이미지, 필름, 음악, 설치미술 등의 예술 형태를 가진다.10)
게임 아트와 아트 모드의 경계가 매우 애매하고 작품의 최종 형태가 게임인지 예술인지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의 분류에 따라 명확한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분류는 공연과 게임이 교차할 수 있는 여러 지점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슬픔의 집〉과 〈에란겔: 다크 투어〉 사례에 적용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슬픔의 집〉이 게임 스트리머의 플레잉으로 진행된 공연 형태인 경우 게임 아트라고 볼 수 있다면 출시될 게임 그 자체는 아트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슬픔의 집〉의 경우 게임과 공연의 접목이 다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따라서 그 결과물 역시 다중적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김지선 <슬픔의 집> 속 게임 공간 ©김지선 |
〈에란겔: 다크 투어〉 작품을 먼저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작업은 100명 중 1명의 플레이어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배틀로얄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배틀그라운드 게임의 공간인 에란겔섬을 전유하여 그 공간을 기존의 생존주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행위들로 채워나가는 이벤트였다. 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장소를 탐방하는 ‘다크 투어리즘’에서 영감을 받아 ‘다크 투어’라고 명명한 것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퍼포머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 플레이어와 조교, 그리고 관객-플레이어로 구성된 세 개의 팀은 동시다발적으로 섬의 세 곳으로 흩어져서 각각 탐방한다.
〈에란겔: 다크 투어〉 ©가상 정거장 |
리더 플레이어는 관객-플레이어를 이끌고 다니면서 몰락한 구소련의 한 연방을 연상케 하는 전쟁으로 페허가 된 공간들을 탐색하고 이곳에서 행해지는 살생 행위들에 대한 생각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원래의 게임 속에서 지나치고 무의미하게 여겼던 미장센, 소품, 그리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 되돌아보게끔 한다. 폭력, 살인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합의된 약속 아래 투어를 진행하던 세 팀은 투어의 마지막 순간에 한데 모이게 된다. 푸른 빛 자기장이 그들을 향해 좁혀오고 밀려오는 자기장 내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종말을 기다리며 함께 춤을 추고 결국 자기장이 소멸되면서 모든 플레이어는 죽음을 맞는다.
〈에란겔: (불)가능한 공동체〉 속 드론 뷰 ⓒ가상 정거장 유튜브 https://youtu.be/EWGowcYzfJs |
그들의 여정은 편집된 다중화면과 함께 외부의 관찰자인 스트리머에 의해 중계되어 유튜브로 송출되고 시청자들은 폭력의 현장이 연대의 장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드론 뷰를 통해 적막 속 좁혀지는 자기장 속에서 죽어가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들의 저항적 움직임은 실패로 끝났어도 그것은 플레이어와 시청자 모두에게 실패가 아닌 일상을 변화시키는 잠재적 힘으로 살아 숨 쉬게 된다. 〈에란겔: 다크 투어〉는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전유하여 기존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서로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지 않는다는 새로운 행동 규칙을 설정함으로써 기존의 게임 형식에 개입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아트 모드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을 재료 및 주제로 활용하여 플레이어 공동참여형 공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게임 아트로 정의할 수도 있다.
〈슬픔의 집〉과 〈에란겔: 다크 투어〉 두 작품 모두 게임을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보는’ 행위로서 향유되고 있는 문화를 반영하여 게임의 공연화를 고안한 작업이었다. 게임 매체가 지니는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미장센, 캐릭터, 규칙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용자의 플레잉와 스트리머의 중계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연출하였다. 여기서 관객은 온라인, 오프라인 시청자뿐만 아니라 공동-퍼포머로서 플레이어의 역할까지 부여받게 된다.
그렇다면 춤과 게임은 어떤 방식의 접점이 가능하며 그것이 어떠한 예술적, 미학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먼저 게임 아트, 아트 모드, 아트 게임의 분류를 바탕으로 춤과 게임이 만나는 방식을 상상해볼 수 있다. 안무 구성에 있어서 게임 엔진과 같은 기술을 사용하거나 게임을 차용하여 창작한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미술, 영상 등은 게임 아트의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기존 게임 속의 움직임 패턴 및 구성을 조작하여 재구성하거나 게임 속 실제 환경에 개입하여 새로운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등의 아트 모드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안무 결과물이 게임 형식을 갖는 아트 게임 작업으로는 안무가가 게임 속 미장센, 캐릭터, 스토리텔링, 움직임을 구성, 연출하고 관객이 플레이어로 참여하면서 공연을 관람 또는 재구성해나가는 방식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작업에서 춤의 형식은 공연에서 영상, 설치미술, 게임까지 다변화되고 춤의 매체는 무용수/퍼포머의 신체, 관객의 신체, 그리고 (비/의인화된) 가상의 신체까지 포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기서 안무란 인간 움직임뿐 아니라 가상 신체의 움직임 창작에서 가상 세계와 플레이어와의 인터페이스 구성까지 그 개념을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이렇게 춤과 게임의 결합은 단순히 게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춤 공연 창작을 넘어 춤 형식과 매체의 다변화, 안무 개념 및 접근 방식의 확장, 그리고 전통적인 퍼포머와 관객의 위치 및 역할의 재고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춤계의 입장이 아닌 게임계의 측면에서 볼 때도 무용가와의 협업은 게임의 시공간 속 신체 움직임의 풍부한 표현 방식, 캐릭터의 신체를 재현하는 양상을 둘러싼 정치성 인식 및 도전, 플레이어와 캐릭터 간 상호작용 경험의 다양화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처럼 서로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춤과 게임의 협업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
1) 〈에란겔: 다크 투어〉 소스로 제작된 영상작업 〈에란겔: (불)가능한 공동체〉(2021)는 다음의 링크에서 관람 가능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4Vx0lez_rbo
2) Roger Ebert (2005. 11. 27). Why Did the Chicken Cross the Genders?. Roger Ebert’s Journal. 〈https://www.rogerebert.com/answer-man/why-did-the-chicken-cross-the-genders, 2022. 1. 27〉.
3) Aaron Smuts (2005). Are Video Games Art?, Contemporary Aesthetics, 3. 〈https://www.contempaesthetics.org/newvolume/pages/article.php?articleID=299, 2022. 1. 24〉.
4) 예스퍼 율(2014). 하프 리얼. 장성진 역. 서울: 비즈앤비즈, p.36.
5) Olivia Solon (2012. 11. 29). MoMA to Exhibit Videogames, From Pong to Minecraft. WIRED. 〈https://www.wired.com/2012/11/moma-videogames/, 2022. 1. 15〉.
6) Keith Stuart (2012. 12. 6). Are Video Games Art: The Debate That Shouldn't Be.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gamesblog/2012/dec/06/video-games-as-art, 2022. 1. 27〉.
7) 홍선표(2015). 비디오 게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담론 사례 연구: 와파 빌랄의 전술적 매체 작업을 중심으로. 미술이론과 현장, 20, pp.119-145.
8) 김지선(2020). 집을 짓는 슬픔, 김지선. 아트선재센터. 〈http://homework-artsonje.org/2020/the-house-of-sorrow, 2022. 01. 11〉.
9) Rebecca Cannon (2003). Introduction to Artistic Computer Game Modification. Plaything Conference 2003 (Sydney, Australia).
10) John Sharp (2012). A Curiously Short History of Game Art.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Foundations of Digital Games. pp. 26–32.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