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최근까지 방송가와 유튜브 채널은 먹는 방송, 소위 ‘먹방’이 난공불락의 대세였다. 예능, 다큐, 교양, 심지어 드라마까지 음식과 관련한 아이템이 아니면 시청자나 구독자를 잡아놓지 못할 정도였다. 냉장고를 부탁해, 맛있는 녀석들, 밥블레스유, 수요미식회, 식신로드 등 인기 먹방 프로그램들은 계속 나왔고, 몇 십 만 명은 기본, 100만 명을 훌쩍 넘는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유튜버들도 대거 등장했다. 방송가에서는 ‘먹방 다음에는 무엇일까?’ 그걸 찾는 자가 다음 방송가를 휘어잡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었다. 그리고 현재 왕좌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먹방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 서바이벌 프로그램, 매칭 프로그램, 다양한 포맷들이 그 뒤를 이었지만 최근 2년 사이 대세를 탄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솔루션 쇼’이다. 집사들을 위한 솔루션 프로그램 <세상의 나쁜 개는 없다>,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이어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는 본방송도, 유튜브 채널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솔루션 쇼, 상담 포맷의 프로그램이 몇 년 사이 급부상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영상 콘텐츠로서뿐 아니라 예술과 춤의 영역에서도 이 흐름에서 읽어야 할 지점을 발견했다.
상담 포맷의 대표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 ⓒ채널A |
솔루션 쇼 열풍, 이유 있다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이 하나로 묶인 형식이 된지는 오래다. ‘솔루션 쇼’라고 말하지만 예능적, 오락적 성격만 있다면 이 정도로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가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솔루션을 그 자리에서 제공함으로써 동물을 키우는 집사들,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게 포인트다. <금쪽같은 내 새끼>의 경우 오락, 쇼의 성격보다는 상담 교양 프로그램의 성격이 더 강하다.
그러면 집사나 육아를 하고 있는 부모들만 이 프로그램들에 열광할까. 프로그램의 세일링 포인트와 세그멘테이션이 분명할 만한 프로그램인데 의외의 지점이 발생했다. 요즘 출연자 오은영 박사와 함께 화제가 되고 있는 <금쪽같은 내 새끼>의 제작진에 따르면 방송 2년 차 이후부터 10~20대 여성들의 시청률과 유튜브 조회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혹시 미래의 어머니가 될 사람으로서 미리미리 육아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것일까? 제작진의 분석은 이렇다. 시청자들이 어린 시절 자신의 상처를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바라보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부모님도 나의 부모님과 별반 다르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잘못되고 실패한 것들에 대해서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 그래서 육아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우울증의 시대, 솔루션이 필요하다
솔루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지난 17년 동안 OECD 국가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약 10년 동안 국내 자살률은 100% 이상 증가했다. OECD의 2020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6명으로 OECD 평균 11.3명의 2배 이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자살이다. 1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로 나타났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자살하는 10대가 3배나 많다.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며, 40~50대의 경우 자살은 사망 원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자살 문제에 관해서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OECD 주요국 자살률, 2000년 이후 국내 자살률 추이 ⓒ통계청 |
자살과 함께 자주 거론되는 게 우울증이다.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는 경우가 종종 많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자살 위험을 얼마나 높이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통계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위험률을 3~66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에서 우울증과 불안증의 발생이 2배 이상 증가했는데 한국은 우울증 유병률 1위, 36.8%로 나타났다. 한국 국민의 10명 중 4명은 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울증 치료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 우울증 치료율은 미국의 66.3%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인 11.2%다. 그나마 가벼운 우울증은 제외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심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치료율만 따져서 그렇다. 의료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는 점은 우울증 유병률 1위인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우울증 치료를 받기 어려운 나라란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비정신과 의사들의 경우 SSRI 항우울제를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도록 규제되어 있다. 우울증 약은 60일 정도의 복용으로는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의료계에서는 우울증이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유병률이 비슷하고,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내분비내과 외 모든 진료과에서 치료하는 것처럼 우울증도 정신건강의학과 외에 다른 진료과에서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간호사도 우울증 약을 처방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넘쳐나는데, 치료하고자 병원을 찾아도 진료를 받거나 상담을 받거나 약을 처방받는 과정은 험난하다. 규제에 대한 완화, 의학계의 움직임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우울증 유병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예술과 춤, 여가와 취미에 치료와 치유의 영역으로
이렇게 우울감과 우울증이 심각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위로, 공감, 그리고 그것의 응원을 받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솔루션 쇼의 시청률과 구독자수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울감은 누구나 흔하게 가질 수 있지만 그걸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은 있어야 하고, 우울감과 더 나아가 우울증 해소는 이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고, 예술활동은 항우울제와 더불어 좋은 치료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2021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예술과 정신분석의 연결을 탐색한 대담을 진행했다. 서울대 정도언 교수는 예술과 무의식의 승화, 트라우마와 예술의 관계, 예술가와 감상자의 무의식을 예술작품으로 매개로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대담을 기획한 대전시립미술관의 선승혜 관장은 예술과 정신의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공감미술을 시작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대담이 진행된다는 건 지금 이 시대에 예술을 통한 치료와 치유효과에 대해 인식하고 예술작품의 역할이 단순히 취미, 애호, 여가 이상을 넘어선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예술치료가 대학에서 전공과정으로 만들어진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고 지금까지 예술치료에서는 미술치료가 그나마 가장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심리극을 통한 치료로서 연극도 많이 활용되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음악치료 과정들이 만들어져 의학과도 손잡고 있다. 예술치료에서 가장 성장속도가 더딘 것은 무용이다. 댄스테라피의 경우 미국에서 1940년대에 시작해서 미국의 대학에서 전공과정이 생긴 게 1970년대이지만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건 1990년 초반이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최근 몇 년 간 치매, 파킨슨, 유방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무용이 어떤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 심포지엄을 통해 알리고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아직 초기 단계이다. 춤이 갖는 치료와 치유의 능력을 의학계와 손잡고 나아가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앞으로 춤계의 움직임은 커뮤니티댄스 활성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에 춤을 통한 예술치료는 더 확장될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춤은 전문적인 영역으로서 무용수나 안무가, 기획자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축이 만들어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상으로 들어오는 춤으로서 하나의 축이 세워질 것이다. 지금은 애호가 층 자체가 얇기 때문에 이 둘이 혼재돼 있고, 이렇게 양 축으로 세분화될 필요성 자체가 크지 않았지만 이 방향으로 움직여갈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댄스테라피 현장 모습 |
무용수를 위한 재활, 신체와 정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편, 예술치료, 무용치료에 있어서 일반인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상태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는 종종 예술이 갖는 치유의 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것을 수행하는 예술가들의 정신과 마음건강은 미처 돌아보지 못한 부분이 있다. 무용수들은 다른 직업군과 다른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부상에 늘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부상 자체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일 무릎이나 다리에 부상에 발생했다고 하자. 일반인들이라면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경우라면 우울증까지 동반되는 확률은 낮을 수 있지만 무용수에게는 생존이나 앞으로의 인생계획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와 연결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재활치료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정신적 치료는 신체기능 회복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부상을 당한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 무용수라는 직업군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들이 있다. 무용수들이 공연 연습이나 공연 중 다쳤을 경우 병원비, 재활비 지원 제도나 상해예방과 재활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대부분 신체적 기능에 무게가 실려 있다.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 등 정신적 치료를 받기 위한 지원비나 관련 프로그램들은 아직은 미비하다. 최근 국립발레단 김희선 무용수의 죽음 뒤에 우울증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 번 무용수들에게 적합한 정신적, 심리적 치료와 예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더 나아가 전문무용수가 되기 위해 교육받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정신적 케어에 관한 부분은 뒷받침되어야 한다. 비단 무용뿐 아니라 음악이나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전공을 한다는 것이 결정되는 순간 엘리트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 속에서 학생들의 마음은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기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재활에는 정신, 심리적 치료도 병행되어야 한다) |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의 개념이 정신적 영역에 있어서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예술이 갖는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승화'와 ‘정화’인 것은 분명하다. 승화, 카타르시스, 정화는 만족되지 못하는 욕망에 대한 자기방어 기제로서, 그리고 문명화된 사회에서 가장 안전하게 자기해소를 할 수 있는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활동을 통한 효과는 두통약을 먹으면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도 한 시간 안에 가라앉는 것처럼 단기간에 나타나진 않는다. 예술이 갖는 치료효과를 증명하고 프로그램이 개발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건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에서 솔루션 쇼나 상담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예술을 수행하는 자도, 향유하는 자도, 우리 모두에게 정신적 솔루션은 필요하다. 한 쪽에는 예술경험을 통해 힐링할 방법이, 다른 한 쪽에는 건강한 예술활동을 펼쳐지기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단비
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KBS 교양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를 시작, SBS 보도제작국, YTN 보도제작국, MBC 시사교양국 〈문화사색〉 작가 등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일해오고 있다. 춤 경험과 방송작가 이력의 융합으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 발레와 무용 칼럼 집필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연 구성과 기획, 대본 집필 등 공연 창작으로 영역을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