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무대와 객석은 사람친화적인 곳이다. 현장은 코로나19에 밀려 사선에서 오락가락한다. 공연계과 춤계는 무대를 잃어버리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고, 그래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장을 포기하고 랜선을 타기로. 무대의 영상화, 온라인을 통한 관객과의 만남은 코로나19로 계획보다 훨씬 빨리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왔다. 그렇게 버텨온 시간이 이제 1년이 되어간다. 무대와 현장을 잃은 대신 우리는 무엇을 얻은 걸까. 코로나 백신이 상용화될 때까지 어떤 모습으로 버티고, 또 이후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랜to랜, 온라인 공연 1년
올해 초, 설 연휴 이후 코로나19에 대한 소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이 뉴스를 보게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춤 공연들은 3월이 되어야 본격적인 시즌에 들어가기 때문에 2월 한 달은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 결국 하나 둘 공연이 취소되면서 극장들에서 먼저 온라인 공연의 테이프를 끊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공연 영상화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진행해온 예술의전당은 이미 고화질, 고음질의 영상물을 제작해 왔고 지역과 군부대, 여러 보호시설에서 상영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연극, 무용, 클래식 공연들을 온라인에 풀었다. 무용작품으로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이 첫 온라인 상영작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내 손 안의 극장’이란 이름으로 오페라, 무용, 클래식, 어린이 공연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온라인 상영했다. 서울시무용단의 〈놋〉(No One There)이 무용작품으로는 첫 상영작이었다. 국립극장도 처음으로 공연 전막 실황을 온라인에 오픈했는데 무용작품으로는 국립무용단의 인기 레퍼토리였던 〈묵향〉 〈향연〉을 상영했다. 이들 극장들은 플랫폼으로 모두 유튜브 채널을 선택했다.
유튜브 외에 다른 플랫폼으로는 네이버TV가 각광을 받았다. 네이버TV는 기존에도 창작산실이나 여러 공연들을 한 번씩 송출했던 플랫폼이기도 하다. LG아트센터의 경우 다른 극장들보다 뒤늦게 온라인 상영에 들어갔는데 해외의 저명한 예술단체들과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이 줄줄이 잡혀 있었고, 이미 연초에 여러 작품들을 패키지로 묶어 대거 티켓판매를 했었기 때문에 포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LG아트센터는 ‘디지털 스테이지 컴온’(CoM+On, CoMPAS Online) 이름으로 5월부터 해외 명작들을 하나씩 오픈했고, 무용 작품은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로 스타트를 끊었다. 컴온 상영작들은 전체 30만 뷰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어서 시즌2까지 진행했다.
LG아트센터 ‘디지털 스테이지 컴온’ 첫 무용작, 매튜본 〈백조의 호수〉 ⓒLG아트센터 |
예술단체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신작 공연을 무대가 아닌 온라인으로 오픈하는 과감함을 보이며 이름 그대로 컨템퍼러리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10주년을 맞이한 올해, 페스티벌도 ‘친하게 지내자’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온라인으로 하나씩 오픈하면서 지금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경우는 발레 클래스 영상을 오픈했고 댄스필름 제작에도 나서면서 오랫동안 무대가 공석이 된 것을 커버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오픈된 국립현대무용단 올해 신작, 신창호 안무 〈비욘드 블랙〉 ⓒAiden Hwang(국립현대무용단) |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 온라인 페스티벌 '친하게 지내자' 포스터 ⓒ국립현대무용단 |
국립현대무용단 '친하게 지내자'에서 선보인 댄스필름,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 ⓒ남택근(국립현대무용단) |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건 민간 예술단체들이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이전부터 공연의 영상화와 플랫폼을 통한 송출에 강점을 보여왔는데 올해에도 활발하게 이런 작업들을 해오면서 민간 예술단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단체를 한국관광공사 영상으로 처음 알게된 대중들에게는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춤계에서 오랫동안 이 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알고 봐왔기 때문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입장일 것이다. 서울발레시어터도 유튜브 채널을 오픈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활발하게 업로드하면서 민간발레단으로서 자구책을 찾고 있는 중이다.
축제들도 온라인 오픈이 대세가 되었다. 상반기에 있었던 모다페, 대한민국발레축제는 객석을 제한적으로 열면서라도 행사를 진행했지만 수원발레축제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무용 축제들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올해 23회를 맞이한 시댄스(SIDance, 서울세계무용축제)는 개막작 〈춤비나리〉 외에는 국내 프로그램은 네이버TV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했다. 해외 프로그램의 경우 신청자에 한 해 관람 링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축제를 진행했다. 이때 플랫폼은 비메오를 사용했다. 20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도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났다.
온라인으로 오픈된 시댄스의 다양한 작품들 ⓒSIDance |
2020 SPAF(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포스터 ⓒSPAF |
온라인 공연 유료화, 후원 제도로 가능할까
극장이든, 예술단체든, 축제사무국이든 공통적인 고민은 관객을 현장으로 데려오지 못하니 운영 자체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상반기만 해도 랜선공연들은 모두 무료 오픈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1년 가까이 공연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문제가 계속되고, 이런 흐름이 한 두 달 안에 당장 개선되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LG아트센터는 최근 랜선공연 유료화를 조금씩 시도해 보고 있다. 지난 9월, 영국의 현대무용 단체 램버트 댄스 컴퍼니(Rambert Dance Company)와 영화감독 빔 반데키부스가 손잡고 만든 작품 〈내면으로부터〉를 유료 공연으로 오픈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 9개 극장에서 상영됐는데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루프탑에서의 장면만 사전에 미리 제작한 영상이고 모두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진행된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11월에는 올해 공연 예정이었다가 취소된 크리스탈 파이트와 조너선 영의 합작품 〈검찰관〉을 유료로 오픈했다. 똑같이 유료 랜선공연이지만 현격한 차이점은 있었다. 전자는 램버트 댄스 컴퍼니의 홈페이지를 통해 오픈됐고, 티켓료(관람료)를 지불하는 형태였는데, 후자는 네이버TV로 오픈됐고 후원금을 내는 형태였다는 점이다.
LG아트센터의 시도로 상반기부터 논의가 되어왔던 온라인 공연의 유료화는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2020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도 네이버와 손잡고 이번 행사의 프로그램들을 후원 공연으로 오픈했다. 차이가 있다면 LG아트센터가 〈검찰관〉 작품을 온라인으로 오픈하면서 12,000원이라는 정해진 후원금을 받았다면, SPAF는 5,000원 이상이라는 자율 후원금 제도를 도입한 점이다. 이미 여러 해외 단체들은 상반기부터 랜선으로 공연을 오픈할 때 후원금을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해외보다 공연에 대한 후원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랜선공연의 유료화에 대해서 선뜻 진행이 안됐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논의 과제가 된 것이다. LG아트센터와 SPAF의 후원 공연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뒀는지가 향후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랜선공연을 유료화한다면 관람료인가, 후원금인가, 이런 문제도 여전히 해답이 나오진 않은 상태다.
후원 공연으로 온라인 오픈한 크리스탈 파이트 X 조너선 영 〈검찰관〉 ⓒLG아트센터 |
남겨진 숙제, 플랫폼과 공연 영상의 연출
방송작가 활동을 해오면서 올해만큼 ‘플랫폼’이란 단어를 자주 들은 적도 없었다. 홈쇼핑, 물류산업, IT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플랫폼은 가장 중요한 하나로 꼽고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플랫폼에 대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말하는 건 ‘관련한 모든 기업과 콘텐츠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춤계로 따지자면 관련 예술단체와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사이버상의 공간이 될 것이다. 현재 유튜브 혹은 네이버TV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무용 공연에 특화되어 있는 채널이나 플랫폼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플랫폼이 예술계에 등장할 경우 그 운영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냐는 것이다. 무용 공연은 일반 관객에게 티켓 파워가 큰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플랫폼도 수익 추구 관점에서 운영하려면 어려움이 상당할 것이다. 공적인 성격을 가진 기관을 통해서 플랫폼이 만들어지거나 조금 더 나가면, 정책적으로 무용 공연 플랫폼을 다룰 전문 기관이 만들어지거나, 둘 중 하나여야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각 예술단체들이 자신만의 플랫폼을 운영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이것도 결국 자금 문제로 귀결되는 게 안타까운데 지금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이 숙제는 언젠가는 풀어야 할 부분이긴 하다.
네이버TV 공연전시 분야 채널들 ⓒ네이버TV 화면캡처 |
공연의 영상화에서 또 하나의 숙제는 무대 공연을 얼마나 영상으로 잘 구현해서 온라인으로 송출하느냐는 문제이다. 계속 논의되어 왔던 문제가 현장에서의 공연과 온라인 공연을 같은 공연으로 볼 수 있느냐,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방송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온라인으로 보는 공연작품은 현장의 공연과는 전혀 딴판이다. 영상이 주는 정보들이 작품이 주는 정보를 넘어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통해서 나오는 장면들은 안무가의 의도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의 눈 안에 관객을 가두는 계산된 연출이 들어 있다. 같은 장면을 현장에서 볼 때 A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영상으로 만들어진 공연을 볼 때는 B라는 감정으로 전달될 수 있다. 여기에서 A는 관객의 자율권이 보장된 감정이고, B는 관객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전략에 가깝다. 예를 들어, 주인공 두 사람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고 하자. 만일 연극이라면 관객은 객석에서 전체적으로 무대를 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두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물건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장면을 TV드라마로 만들면서 PD와 작가가 의도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주인공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 주스 뒤로 비쳐지도록 연출했다고 생각해 보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오렌지 주스가 협찬사 제품이거나 아니면 그 오렌지 주스가 이 장면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오브제이거나. 어느 경우든 사람들은 그 오렌지 주스를 주목해서 보게 된다. 연출자의 의도에 소위 ‘낚이는’ 것이다.
무용 공연도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영상화할 경우 어느 장면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객의 감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안무가는 무대 공연에서 미처 생각지 않았던 부분들을 계산하고 고민해야 한다. 와이드한 풀 쇼트(full shot)로 촬영한다면 오히려 영상에 대한 정보를 전부 제거하고 공연 그대로 내보낼 수 있지만 이미 화려한 영상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이런 온라인 공연이 눈에 들어오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영상은 결국 모니터를 통해서 나가기 때문에 평평한 2D 상태로 관객에게 전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상의 쇼트(shot)들은 다양해질 필요가 있는데 촬영감독에게 모든 것을 일임할 경우 안무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메시지가 관객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안무가도 영상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촬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영상의 각 쇼트, 카메라 무빙이 주는 효과들에 대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영화제작과 카메라 촬영법, 영상 연출에 관련한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코로나 그 이후, E석의 오픈
힘들게 버텨온 1년, 그나마 코로나19 백신 예방 효과가 90%라는 뉴스가 희망적이다. 하지만 백신이 상용화되고 툭 하면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개선되더라도 비대면 문화가 전부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사람들은 경험했고, 온라인 공연은 오히려 그동안 서울에만 집중돼 있던 문화 예술의 혜택이 지방까지 확산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해외에 나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한국에서는 잘 공연되지 않는 많은 작품들을 해외 플랫폼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점은 온라인 공연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가 해결된 이후에는 온오프라인 공연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한다. 현장에서도 R석, S석, A석, 이런 식으로 좌석이 구분돼 있고 관람료가 다르게 매겨지는 것처럼 온라인 공연은 E석으로 판매되면 어떨까 싶다. 이제 영상과 온라인은 현장성이 중요한 무대공연에서도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득이 될 거라는 의견이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배운 경험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어나간다면 올 한 해 우리가 견뎌온 시간들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단비
KBS, SBS를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MBC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