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송년 모임 많은 12월, 밤늦은 시간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도로에 나와 손을 들기보다는 스마트폰의 앱을 켜는 모습을 더 흔하게 보게 된다. 대리운전도 앱으로 해결한다. 연내에 해결해야 할 업무가 쌓인 사무실, 야식은 전화보다 앱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배달음식, 택시, 숙박을 넘어서서 카페, 도서 구매까지 폰 하나로 안 되는게 없는 세상.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온 지 딱 10년.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나싶을 정도로 생활 전반에, 그리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 폭발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방송계도, 춤계도 그 영향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생활의 혁신, 산업의 변화를 일으킨 스마트폰의 등장 @Wikipedia commons |
예술도 O2O 시장에서 판매되나요?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 온라인이 언제 어디서나 on이 되어있는 시대. 그 영향으로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인 것은 앞서 이야기한 사례처럼 O2O(Online-to-Offline) 시장이다. 2017년 7월 메를린치의 보고서에서는 글로벌 O2O 시장이 2025년까지 3350억 달러(약 374조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에서 모바일 비중이 점점 올라가고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O2O 시장은 성장세를 타고 있다. 이런 변화가 공연계와 춤계에는 어떤 영향을 가져왔을까. 가장 여실하게 드러나는 점은 춤계의 홍보, 마케팅에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같은 예술계이지만 미술 시장은 O2O 시장의 성장에 효과적으로 대처를 하고 있다. 오프라인 갤러리들이 미술 작품들을 온라인상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플랫폼화시켰고 이 작업이 성공한 것이다. 애호가들과 작가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욱 쉽게 만나고 연결된 것이다. 영국의 사치 갤러리(Saatch Gallery)가 운영하는 온라인 갤러리 사치아트(Saatchi Art)가 대표적이다. 이제 미술 시장에서 온라인 갤러리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온라인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 쇼핑 비중 @통계청 2019 |
미술작품의 온라인 시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영국 사치 갤러리 @Wikipedia commons |
그런데 이런 작업을 춤계에 적용하기는 왜 어려울까. 요즘 움직임과 공간성을 중시하는 미술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설치미술이나 조각품의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그림의 경우도 색감의 차이, 그림이 주는 압도적인 아우라는 실물을 봐야 하겠지만 콜렉터들이나 애호가들은 이미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도 그림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어느 정도 장착하고 있다. 어쨌든 그림은 구매를 통해 소장이 가능하고 다시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은 가능하다. 춤은 현장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플랫폼화 하는데 있어서는 그만큼 한계가 있다. DVD로 작품을 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럴 경우 사전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DVD 제작 준비까지 함께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는 없는 시점이지만 효과적인 전략을 세우기 위한 방향성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예술작품이 작품이지 제품은 아니지만 티켓을 판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O2O 시장의 활용은 필요하다.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가 예약 서비스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만큼 이를 통한 이벤트와 티켓 판매는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커머스 시장의 진출, 온라인을 통한 입소문은 필수코스다. 최근 한 갤러리의 전시 오프닝 파티에 참석했는데 이런 트렌드를 적극 활용한 기획력에 놀랐다. 간단한 음식과 리셉션으로 이어지는 여느 갤러리의 오프닝 행사와 달리 미리 초대장을 보낸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션을 주고 완수하면 선물을 주는 형태로 진행됐는데 그 미션은 SNS에 갤러리 현장을 업로드 하는 형태였다. 최근 춤계에서도 공연 현장에 SNS 기자단, 서포터들을 선발해 홍보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보다 이 방법이 진일보 했다고 여겨진 점은 이 모든 행위가 ‘그 자리에서 즉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런 마케팅 방법은 후기나 입소문이 중요한 다양한 분야의 오프라인 숍에서 최근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고객이 자리를 뜨기 전에 ‘현장에서 즉시’ 후기를 남기거나 SNS에 업로드를 유도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보통 춤 공연이 하루 이틀 이내에 끝나는 경우는 많지만 장기공연, 최소 3일 이상의 공연이라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외에 소셜 커머스와 손잡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소셜 커머스의 경우 구매자, 공연을 보고자 하는 관객들의 입소문과 티켓 구매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지만, 높은 할인율이 보장돼야 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구매 희망자가 모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 연극, 뮤지컬 분야는 소셜 커머스를 잘 활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관객 동원력이 약한 춤 공연은 이 방법을 쓰기가 어렵다. 그래도 올해 몇몇 춤 공연들은 네이버와 손잡고 할인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네이버는 O2O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배달 뿐 아니라 공방, 놀이공원, 키즈카페, 헤어숍, 펜션, 그리고 전시와 공연까지 예약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시스템으로 예약할 경우 할인보다는 네이버 페이를 지급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데 전시, 뮤지컬, 연극 등등의 분야에서는 꽤 잘 진행되고 있고 심지어 미술작품의 경우 온라인 작품 판매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춤 공연에서도 이 흐름을 한 번 눈여겨 볼만하다.
네이버 전시․공연 예매창 모습 |
방송계를 흔드는 OTT, 적과의 동침이 시작됐다
TV가 마을에 딱 한 대만 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 같이 웃고 울던 그 시절이 지나고 1가구 1TV, 1인 1PC 시대를 거쳐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에 연결할 수 있는 손 안의 PC, 스마트폰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변화는 방송가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더 이상 편성표에 맞춰 TV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됐고, 더 나아가 이런 모바일 환경에 발맞춰 유튜브 같은 개인 방송이 포털 사이트와 방송계 모두를 흔들어놓았다. 여기에 또 하나, OTT(Over The Top)의 공격이 가해졌다. PC,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콘솔 게임기 등을 통해 인터넷 연결만 가능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방송, 영화,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시스템. 넷플릭스가 대표주자인 OTT 시장은 곧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진출할 예정이고, 애플TV, SKT의 웨이브 등 국내외 업체들이 합세해 내년에는 엄청난 각축전이 예견되는 상황이다. 최근 가장 뜨겁게 떠오른 플랫폼이다.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위한 두 번째 방향은 OTT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방송계나 춤계, 모두가 마찬가지로 풀어야할 숙제다. 방송국들은 이전에 종편채널이 탄생할 때 못지않게 OTT 시장에 대한 대응, 대처방안에 고심하고 있는데 최근 방송계의 흐름은 넷플릭스와 손잡고 ‘적과의 동침’을 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길 수 없으면 변화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 SBS '베가본드', MBC '신입사관 구해령' KBS '동백꽃 필 무렵', 모두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JTBC의 'SKY캐슬',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CJ ENM의 '비밀의 숲,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미스터 션샤인'도 넷플릭스와 함께 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상황에 춤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무용수나 안무가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는 몇 가지로 나눠진다. 뉴스, 다큐멘터리,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공연소식이나 혹은 특이한 이슈가 있을 경우에 뉴스에 보도가 되기는 하지만 주요 뉴스 순서대로 배치되는 뉴스의 특성상 문화예술계 소식이 정치나 경제 뉴스보다 앞서기는 어렵다. 드라마의 경우는 안무지도나 자문의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직접 출연하더라도 주연 배우들이 있는 상태에 보조적인 역할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방영을 마친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에서도 최수진 무용수와 서울발레시어터가 합류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하면서 얼굴이 알려지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춤 배틀 프로그램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춤과는 전혀 상관없는 데이트 프로그램,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섭외가 되고 있다.
무용수나 안무가가 주인공으로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르는 다큐멘터리다. 한때 다큐멘터리는 방송가에서 비중 있는 장르였지만 예능이 크게 힘을 받으면서 점차 편성비율이 낮아지고 있고,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들은 잇달아 폐지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데 스마트폰으로 소일거리로 쉽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가볍거나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면 좀처럼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가에서는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이 합쳐진 프로그램, 업계에서는 보통 ‘쇼양’이라고 부르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면서 교양 프로그램의 명맥과 편성비율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에서는 오히려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이 예능을 흡수해서 리얼리티를 살리는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예능이 교양 프로그램을 흡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OTT의 수많은 선택지에서 무용수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선택될 가능성은 높지는 않다. 서비스 되는 영상에 훌륭한 춤 공연의 중계방송이 올라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일 자체가 성사되기도 쉽지 않고 혹여 올라갔다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얼마나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OTT 시장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춤 공연이나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도 서비스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요원한 꿈을 꾸어 볼 수밖에 없지만 이 시장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은 필요하겠다.
OTT 대표주자 넷플릭스(Netflix)의 전시 부스, 2017년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컨벤션 센터 @Wikipedia commons |
유튜브 노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춤계에서는 이제는 공연 현장, 연습 현장을 동영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 인지했고, 공연 촬영을 하지 않는 팀은 거의 없다. 소스를 확보해 놓는 건 필수적으로 하고 있지만 활용이 문제다. 그래서 셋째, 현실적으로는 유튜브의 활용이 미디어 노출에서는 중요한 답이 될 수 있겠다. 유튜브 열풍은 방송계, 춤계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왔다. 방송업계에서는 종편 채널이 성공적인 행보를 걸으면서 지상파에 몰려있던 광고수익을 케이블과 종편채널과 나눠 갖는 문제가 생겼는데, 이제는 유튜브가 파이 나눠먹기의 가장 큰 경쟁자로 부상했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회사 이름이나 팔고자 하는 상품의 노출빈도를 높이기 위해 이런 ‘옮겨 다니기’를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방송가에서도 유튜브 채널들을 만들어서 운영할 정도로 유튜브는 필수가 되고 있고, 많은 무용단, 발레단에서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무용수 개인이 유튜버로 활약하고 있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최수진&하휘동 부부의 댄싱쀼, 국립발레단 김명규 무용수의 뀨TV가 대표적이다. 당분간 유튜브의 성공적인 행보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겠다.
세상이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해가면서 춤과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춤 공연이야말로 현장에서 관객에게 전해주는 공기, 그 자체도 공연의 중요한 일부란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도 안무가와 무용수, 그리고 관객의 면대면 호흡이 살아있는 이 현장이 카메라나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의 차가운 시선을 통과해 세상에 나가지 않으면 우리끼리의 잔치, 소통이 어려운 장벽, 배고픈 무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이게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스마트폰이 새로운 플랫폼을 여는 시대, 무대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혁신적으로 등장하는 플랫폼을 주시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단비
KBS, SBS를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MBC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작, 집필하고 있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