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의학의 시각: 춤의 세계 - 그림의 세계 5
무대 뒤 연습실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다
문국진_원로 법의학자

19세기 전반에 비해서 다소 열기가 식긴 했지만 발레는 여전히 상류층과 중산층의 고급스러운 여가활동의 하나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파리 오페라 극장(현재 오페라 가르니에)에는 무희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발레장면을 보로 오는 상류층과 중산층이 많이 있었다.
 또 대중들이 발레에 열광하는 것은 이것이 음악과 미술, 연극을 결합한 오감 만족의 종합예술이라는 점이며, 여기에 늘씬한 무용수들의 매혹적인 자태를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공개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숨길 수 없는 인기의 비결 이었다. 그래서 당시 파리는 유럽 발레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그럼으로 다감한 화가 에드가 드가 (1834-1917)는 당시만 해도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무희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연습과 공연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사생해야 하는 등 발품을 팔아야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드가는 신체의 선을 강조하는 발레가 인간의 순수한 미를 나타낸다는데 착안하게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발레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장면보다는 무대에 오르기 전 리허설이나 옷매무새를 단장하고 있는 무희의 모습이나 대기실 등 공식적으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공연을 준비하거나 공연을 마친 후 앉아서 쉬고 있는 무희의 모습을 그리기로 했다.
 이렇게 드가의 무희 작품은 대부분이 무대 뒤편에서 힘들게 발레수업을 받는 소녀 무용수들의 고된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묘사한 무희들은 오늘날의 전문무용인들처럼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예술인이라기보다는 마치 무용이라는 노동을 하는 일꾼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 많다.
 드가는 발레 연습실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혹독한 연습에 시달리는 무희의 고통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고 그 모습을 생생히 기록했다. 이 때문에 아름다운 무희의 모습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춰야하는, 삶에 찌든 무희의 모습들을 그렸기 때문에 무희개인의 아름다움 보다 여럿이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데 역점을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드가는 무용수의 훈련과정을 체계적으로 탐구한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대체로 한 가지 소재를 다채롭게 변용해 표현함으로써 하나의 착상으로부터 가능하면 많은 것을 얻어내려 애쓴 것을 알 수 있다.




드가 〈무용연습〉(1872),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드가의 〈무용연습〉(1872)이라는 작품을 보면 대낮에 햇빛이 들어오는 연습실에 무희들이 연습하고 있는 장면인데 오른쪽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강렬한 빛은 연습하는 무희들과 무용실 배경을 드러내며 인물들의 얼굴에 명암을 드리우고 있으며, 마치 무대 위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하듯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햇빛 속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을 그리는 동안 드가는 발레라는 소재가 선사하는 순간의 역동성과 빛의 변화를 그렸다. 세밀한 관찰력과 정확한 묘사력으로 현장의 움직임을 현실감 있게 전해준다. 무희들이 끊임없이 연습할 동안 화가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나간 것이다.
 그림의 정면 왼쪽에 보이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면 유연체조를 마친 무희들이 삐걱대는 넓은 마루위에서 연습들 하고 있는데, 무용의 여러 전문동작을 취하고 있다. 발레 기법의 기초는 다리와 인체의 포지션이며 운동으로서는 파와포즈에 속한다.
 무희들의 모습을 보면 ‘즈테’라 하여 한발로 뛰어 올랐다가 다른 발로 내려서는 동작, ‘피루에트’라 해서 반회전만 하는 동작, ‘롱 드장브’라 해서 한발로 원 그리기, ‘프웽트’라 하는 발끝으로 서는 동작 등 자기가 아직 습득하지 못한 동작을 해보는 장면을 표현했다.
 즉, 이 무용실 그림은 무희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자기가 익히고 싶은 동작을 연습해 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드가 〈무용실〉(1872),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드가의 다른 발레그림으로 〈무용실〉(1872)이라는 작품을 보면 춤은 인간의 다양한 신체 움직임인 몸짓을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이 그림 안에는 여러 무용수가 등장하지만 저마다 다른 자세와 동작을 취해보고 있다. 또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연습에 깊이 몰두하는 무희가 있는가 하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도 동료들의 춤동작을 유심히 관찰하는 무희도 있다.
 즉, 앞서의 그림 〈무용연습〉의 경우는 여러 무용수가 다 같이 모여서 자기 나름대로의 무용동작을 자기 마음대로 연습하는 장면인데 비해서 이 〈무용실〉 그림은 그 자유연습 단계를 지난 무희들이 한명 씩 나와 음악에 맞추어 익힌 동작을 표현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신체동작에 관심이 많았던지 드가는 거울에 비친 무용수의 뒷모습까지 그렸으며, 넓은 무용연습장의 분주하고도 자연스런 모습들을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했는데 드가가 이렇게 여러 동작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소묘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드가 〈무용 수업 동안에 (카르디날 부인)〉(1881), 필라델피아미술관




 드가의 또 다른 발레 그림인 〈무용수업 동안에(카르디날 부인)〉이라는 작품을 보면 어린 무용수들이 파 드 트루아(pas de trois)라는 세 사람이 어울려 추는 춤으로 마치 음악의 트리오(trio)와 같은 춤을 연습하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무희들을 지도하는 선생이 보이고 어느 무희의 보호자인 듯한 노부인(카르디날 부인)이 무용연습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신문을 보고 있다. 이렇게 부인을 화면 맨 앞에다 부각시킨 것은 딸의 무용동작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머니는 늘 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딸의 처녀성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비싼 값을 부르는 후원자를 찾을 때까지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때문에 연습이 끝나면 어머니는 딸을 마치 장사 밑천 같이 중히 여겨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까지를 표현함으로서 드가는 예술은 일상생활의 연장에서 출발되는 것임을 표현한 듯하다.




드가 〈무용 수업 동안에 (카르디날 부인)〉의 부분 확대; 카르디날 부인이 신문 보는 모습




 그림의 좌측에서 파 드 트루아를 연습하는 무희를 보면 세 명의 무희 중 가운데 앞에 있는 무희의 오른쪽다리는 발목으로 서서 발가락을 집고 직선으로 강하게 힘을 주고 있는데 이러한 동작을 무용 전문용어로는 프웽트 (Échappé sur les poi ntes)라고 하는데 이렇듯 발레기법의 기초는 다리와 인체의 포지션을 교환하는 파와포즈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드가의 작품에 나오는 무희들은 각자 무용자세만 취할 뿐 뚜렷한 개성이 없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드가의 관심은 무용수 각자의 성향이나 기질이 아닌 ‘움직임과 형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무희들을 정확하게 관찰해 순식간에 변하는 동작을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개성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드가는 무용수나 발레 자체가 아니라 무용수들이 펼치는 움직임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무대보다 분장실이나 연습실에 있는 무용수들에게 관심이 많았으며, 고된 연습 탓인지 그녀들은 지쳐있기도 하고 때로는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자연히 연습 동작들도 그다지 즐겁거나 경쾌하지 않았으나 드가는 이런 연습실의 나른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해 그의 다른 그림에는 무용수들이 등을 긁거나 하품을 하고 있는 모습까지 그린 것도 있다.
 그러나 무용실이라는 공간은 보다 극적(劇的)인 공간이어서 그 공간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는 무희들의 모습은 싱싱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것으로, 그들의 춤동작을 통해 육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행위이라는 것을 전해주려고 드가는 여러모로 애를 썼으며, 그것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여성적인 관능미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문국진 박사(1925~ )는 한국 최초 법의학자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한국 법의학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
2019.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