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화가 에드가 드가가 화가가 되고서 처음에는 정지된 인물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였다. 그러다가 기존의 인물그림에서 벗어나 사람의 동작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한 뒤 여러 번의 드로잉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는 움직이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그리는 독자적인 수법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보는 각도를 바꾸어 가면서 정확한 데생과 풍부한 색감으로 무희를 모델로 한 작품들이 많아 '춤의 화가'로도 불린다.
이런 방식을 통해 드가가 보여주려 한 것은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자세나 동작을 사진처럼 잡아내 발레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어떤 한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실은 이 순간의 포착처럼 보이는 동작을 드가는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게 하여 무희들을 수없이 드로잉하면서 작품을 완성하였고, 공간 구성은 방의 구석에 초점을 맞추어 배경 대부분을 화면에서 잘라내는 과감한 구도를 선보였다.
발레는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게 하여 강인한 발레기술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발은 온 몸의 체중을 지탱해주는 부위로 피로가 가장 많이 쌓이는 부위이기 때문에 특히 무희지망생의 맹훈련으로 다리와 발의 통증을 느끼는 무희들이 많았다. 그것을 본 드가는 신체의 선을 강조해 인간의 순수한 미를 표현하는데 몰두하였지만 그녀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 발과 다리의 모습도 놓치지 않고 그렸다. 그래서 그러한 작품을 통해 무희들의 고통과 아픔의 진상을 알아 보기로 한다.
드가 〈외발 서기〉(Les Pointes)(1877-78), 개인소장 |
드가의 작품 〈외발 서기〉(Les Pointes)(1877-78)라는 그림을 보면 예쁘게 몸치장을 한 무희가 화려한 무대 위에서 한쪽 다리를 높이 수평으로 올리고 다른 한쪽 다리로 섰는데 무대바닥에 닿은 발은 그 무희의 발바닥이 아니라 발끝으로 섰다. 발레를 추는 동작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되는 이미지인 발끝으로 서는 기술을 포인트 (point)라고 하며, 그림과 같은 자세의 동작을 아라베스크라 한다. 이를 본 관객들은 마치 무희가 토슈즈를 신고 ‘체중 없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다. 몸이 만들어내는 조형미에 관심을 가진 드가도 이 동작을 놓칠세라 하고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과 같은 동작을 연속적으로 연출하게 되는 무희들은 다리와 발에 심한 부담이 가해져 통증을 느끼게 된다. 사람 몸 면적의 불과 2% 밖에 되지 않는 발이 98%의 몸무게를 견디어내야 하는 현상에 대해 일찍이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람의 발을 가리켜 “인체공학(工學) 상 최대의 걸작이자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발의 구조와 기능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쪽 발은 뼈 26개, 관절 33개, 근육 64개, 인대 56개로 이뤄져 있으며 근육은 발의 움직임 전반에 걸쳐 작용하며 인대는 격렬한 긴장과 비틀림을 견디어내게 된다. 또 발 관절들을 각 근육의 기능을 연결시켜주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에 나온 명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발레를 지속적으로 연습해 빨리 숙달되기 위해 무리하게 연습하게 되면 과로로 인해 다리와 발의 기능은 극에 달하게 되고 결국은 장애를 초래해 통증을 느끼게 된다.
드가 〈수평봉에 발을 올린 무용수들〉(1888), 필립스 미술관 |
드가의 작품 〈수평봉에 발을 올린 무용수들〉(1888)은 드가가 1870년대 중반부터 발레 연습용 바(barre)에 다리를 올린 무용수를 모티브로 그리기 시작한 시리즈 중 후기 작품으로 드가가 사망했을 당시 작업실에서 발견된 작품이라 한다. 다른 무희 작품들과 비교해 사이즈(130.2 x 97.8cm)가 크며 파스텔이 아닌 유화작품이라는 점과 그림 배경이 주황색과 노란색 붓 터치로 처리돼 다른 무희 작품들 보다 미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는 평을 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두 무용수들은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며 각자 다른 쪽 다리를 스트레칭하고 있다.
스트레칭은 몸을 곧게 쭉 펴서 근육이 늘어나게 하기 위해 수행하는 운동으로 부상 방지와 체력단련 및 피로 회복이 되는 한편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데도 필요한 동작이다. 특히 무희들이 스트레칭을 자주하는 것은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가동범위를 넓혀 유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무희들은 연기를 전후해서 필히 행하게 된다.
드가는 시야의 중심부가 잘 보이지 않는 황반변성(黃斑變性)이라는 장애가 있었다. 발레 연습용 손잡이와 거울이 방 가장자리인 벽에 붙어있어 연습하는 무희를 드가가 그렸던 것은 화면의 중심이 될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 그에게는 불편 없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으며, 그렇게 많은 발레그림을 그려 일명 무희 화가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은 그의 눈의 장애가 그를 유명한 발레 화가로 탄생시킨 셈이다.
드가 〈두 발레 무희의 휴식〉(1879), 쉘부른 미술관, 미국 버몬트 |
드가는 젊은 무희들의 생기 넘치고 발랄한 동작들을 주로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나 〈두 발레 무희의 휴식〉(1879)아라는 작품을 보면 고된 일과를 잠시 멈추고 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지친 모습들이다. 아마도 힘에 넘칠 정도로 과도한 연습을 한 모양인데 드가는 마치 스케치를 하듯 그려진 거침없는 파스텔의 흔적이 완연히 드러나 보이며, 인체의 윤곽선들은 자유스러운 선들로 간략하게 묘사되었다.
현세에서 대중들은 드가를 흔히 '데생의 천재'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그는 그림 속에 섬세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며 드가의 작품들에 주로 등장했던 주인공들은 무희로 대부분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쉬는 두 무용수의 모습에서 그녀들은 지금 몹시 지쳐있어 마치 그녀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며, 드가는 단지 움직이는 사람들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리라 움직임을 멈춘 무용수에서도 그녀들이 나타내는 어려움과 아픔의 호소를 그대로 표현하였다.
무용수는 예술을 실천하는 동작인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발가락으로 온몸을 지탱하는 동작이 많고, 점프도 하게 되어 다리와 발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다리와 발의 관리를 소홀하면 무용을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인체는 약 206개의 뼈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발에만 양쪽 합쳐 52개의 뼈가 있어 몸 전체 뼈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뿐만 아니라 발에는 몸에서 가장 굵고 강한 근육이 발달돼 있으며 우리 몸 중에서 인대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발에는 수많은 혈관이 분포돼 있어 발은 ‘제2의 심장’으로 불린다. 실제 발은 1km를 걸을 때마다 12t의 압력으로 피를 심장으로 다시 보내주는 한편 발은 몸을 설수 있게 하여 두 손을 자유롭게 해 인류문명을 시작하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림의 두 무용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우측 무용수는 발목과 무릎관절을 만지고 있으며, 좌측 무용수는 양손으로 양종아리 근육의 긴장과 아픔을 풀고 있다. 말할 수 없이 고된 훈련과 연습으로 몸을 지칠 대로 지치다 못해 통증을 느껴야 하는 지경에 빠지게 된 모습을 표현한 그림으로 대체로 무희 지망생이라면 누구나가 겪는 하나의 과정인 듯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드가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잘 묘사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렇듯 드가는 무희들을 모델로 자기의 예술적 기량을 마음 것 발휘하는 한편 무희들의 아픈 고통을 알리는 데도 자기의 기량을 조금도 아끼지 않은 그야말로 무희의 참된 화가이었음을 여실히 보이고 있다.
문국진 박사(1925~ )는 한국 최초 법의학자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한국 법의학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