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치매 치료 기적, 춤무대에 서다 (2)
김채현_춤비평가

지난 호에 소개한 대로, 예비역 육군 장교 최순국씨는 치매 치료 후 지난 5월 4일 〈가방 이야기〉라는 춤 공연에서 한 시간 넘게 무대에 섰다. 그는 올해 83살로, 서울에서 딸네 집에서 거처하던 중 작년 봄 치매 치료차 입원하였다가 증세가 호전되어 퇴원하고 지난 5월 춤 공연에 출연하였다.
 〈가방 이야기〉는 최순국씨의 삶을 소재로 하였다. 최순국씨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 시기를 살아왔고, 작품도 그 시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춤 작품 〈가방 이야기〉는 일반 무용 공연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노령의 일반인 노인이 출연한 점, 출연한 노인이 치매 치료를 경험한 점, 그 노인의 한평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공연에 당사자가 직접 출연한 점, 출연한 노인이 예비역 장교라는 점이다. 끝으로, 이번에 출연한 노인이 공연작(〈가방 이야기〉) 안무가의 아버지라는 점도 일반 무용 공연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이번 〈치매 치료 기적, 춤무대에 서다〉 기사는 지난 호에서 이어진다.




최수진 〈가방 이야기〉 ⓒ김채현




치매, 강 건너 남의 일 아니다

내년에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5% 이상이어서 고령사회가 된다. 6년(빠르면 5년) 후에는 그 비율이 20% 이상으로 초고령사회가 된다. 국내 치매 인구는 2018년 기준 75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 70명당 1명이다. 2029년부터 전체 인구는 줄어들고 치매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는 2040년에는 인구 25명당 1명이며, 2050년에는 ‘인구 16명당 1명’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 언젠가 자기도 그 1명일 수 있다는 예측을 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
 치매를 불치의 병으로 단정하므로 우리 주변에서 치매를 말하기 꺼리는 풍조는 여전하다. 치매 치료는 치매 당사자와 가족, 의료진의 일로 인식될 뿐, 사회적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그럴수록 치료법과 예방법마저 지지부진해졌을지도 모른다. 최수진씨가 아버지를 처음 입원시켜 드릴 때 곁의 복지사부터 절대 치료되기를 바라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한다. 이런 통념의 세상에서 무슨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터뷰하는 최순국씨




 “아버지의 치료 일화를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것이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치매에 관해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치매를 인정하고 치료를 빨리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치매는 감기 앓는 정도에서 시작할 겁니다. 불치의 병으로만 여기니까 우선 환자 본인에게는 청천벽력일 테고 당사자에게 말하기도 어려워 입원을 꺼려하게 됩니다. 치료에서 마음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고 평소의 정상적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뜻만 있다면 호전될 것입니다.”(최수진)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치매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 이틀 전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치매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빠른 고령화 현상은 치매 환자 증가로 직결되며, 치매의 사회적 공론화는 빠를수록 좋다.
 아직 현대 의학에선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차선책으로 치매 치료보다는 증세를 완화하거나 억제하는 방향으로 약물이 개발되는 수준이라 한다. 다만 여러 종류로 분류되는 치매 증세 가운데 10% 정도는 완치될 수 있고, 지금으로선 치매를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매 대책의 매우 효과적인 하나로 춤의 역할을 주목하는 의료진이 지난 몇 해 아주 조금씩 느는 것은 희망적이다.


치매 치료의 드문 요인, 춤 DNA

치매 치료 과정을 소개하며 최수진씨는 담당 의사의 치료법이 주효한 것 같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인터뷰 후 담당 의사와 전화 통화로 도움말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대화에서 최순국씨의 춤 경험이 치매 치료에 어떤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에 담당 의사는 확증은 없어도 과거의 춤 경험이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가방 이야기〉에서 최순국씨는 군 장교 시절에 사교춤을 배운 것으로 소개된다. 그는 고1 때인 1953년 7월 16일 대전시 길거리에서 징집되었고, 징병 훈련 도중인 그해 7월 27일 한국전쟁은 휴전되었다. 그해 11월 소위로 임관되었다. 전쟁에서 선두에 서던 초급 장교들이 흔하게 희생되고 빠르게 보충되어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 10대 소년이 장교로 임관되는 것은 예사였다.
 그가 근무한 경기도 지역에서 연천, 전곡, 초성리, 동두천, 의정부 등지의 최전방 가옥들은 폭격으로 무너졌다. 군부대 인근에 소위 하꼬방이라는 임시 가옥에서 장교와 가족들은 모여 살았으며, 면회 왔다가 돌아가기가 마땅찮은 가족은 그냥 눌러앉기도 했다. 군인과 가족이 모여 살다보니 여가 오락 활동들도 자연히 늘어난다.
 1955년 휴전협정 1년여 후 쓸모가 없어진 미군의 공병 대대가 해체되면서 최순국씨의 최전방 야전 공병대대는 미군 조직을 그대로 인수하며 한국군과 미국군의 장교가 함께 근무하는 체제를 갖춘다. 매주 수요일 장교 식당에서 회식을 갖고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장교 클럽에서 춤 선생을 초청하여 한 두 시간 댄스 파티를 갖는다. 인터뷰에서 최순국씨가 소개하는 장교의 춤활동을 비단 치매 치료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당대의 춤 풍속을 들여보는 관점에서 잠시 소개한다.




인터뷰하는 최순국씨




 장교 클럽 댄스파티에서는 소수의 한국군에 다수의 미군이 춤추었고, 전원 남성으로서 민간인은 출입이 불가하였다. 음악은 축음기에 마이크를 달아 해결하고, 제니스 회사의 진공관 라디오도 사용되었다. 댄스 종목은 재즈, 블루스, 차차차, 맘보, 트로트, 왈츠, 탱고였다.
 그는 공병대 수송관으로 근무하면서 매주 토요일 서울로 외출을 갔다. 3, 4년간 종로 국일관과 라틴 쿼터, 용산 카바레, 화신백화점 지하의 카바레, 미도파 카바레, 청량리 카바레 등지에서 춤을 섭렵하였다. 1957년 부산으로 전속되어 6년 동안 외출 시에는 카바레로 갔다. 부산의 전포동, 부전동 등 서면 일대에서 트로트, 블루스, 탱고, 왈츠를 추었으며, 부산에서 장래의 부인을 만나게 된다. 부인에게 지르바를 가르쳐 지르바 경연에 출전하기에 이르렀고 부인은 해마다 부산 마산 울산 지역에서 1등을 하였다.
 “카바레 운영주는 고객을 끌기 위해 경연대회를 개최하였는데, 당시 한국의 사교춤은 세계 최고라 생각돼요. 부산은 항구 지역이라 미군 입항, 미군 병기와 원조물자 등 미국 문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어서 사교춤이 활성화되었어요.”
 한국전쟁 휴전으로 진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는 1960년대에 중위로 예편하고 부산에서 거주하였다. 1990~96년 그는 장태완 회장 시절의 재향군인회에 회장단으로 관계하였고, 이후 미국 LA로 이민하였다.
 최수진씨는 부모가 집에서 춤추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며 성장하였다. 앞서 기사에 소개된 대로, 병원에 아버지 면회를 가면 종종 카페에서 과거의 춤을 기억해내고 스스로 스텝도 완전하게 밟았다는 사실에서 최수진씨는 아버지의 체질화된 춤 DNA가 치매 치료에 모종의 효과를 낳았으리라고 믿는다.
 최순국씨는 20년 이민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춤을 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에 와서 보니 사교춤은 전통이 다 달라져서 속상했어요. 3각 지르바가 4각으로 바뀌고 원 스텝이 3 스텝으로 바뀌었어요. 나이가 드니 몸도 굳었는지 새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춤을 추자는 사람도 없어요. 지금 사교춤들은 춤의 정서를 살리기보다 운동이 된 것 같아요. 나로선 원 없이 추었으니 만족하지만.”(최순국)




인터뷰하는 최순국씨




낫는다는 본인 의지 +치료 가능하다는 사회 인식

치매 증세에서는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최순국씨는 2005년경 자기가 날아가는 꿈을 꾸면서 이를 (자기도 모르게)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어 가족을 놀라게 하였다. 가족들은 이것이 치매 전조 현상인 줄을 몰랐다고 후회한다. 병원에 입원한 것은 증세가 한참 깊어진 후의 일이다.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최순국씨는 자신이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을 좀체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인지상정의 심정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치매를 완전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만, 치매 치료를 경험한 가족으로서 최순국씨 부녀가 밝히는 치료 요령을 몇 가지 소개한다. 초기에 병세를 잡으려고 하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관건이다. 동시에 가족은 면회 등으로 환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만, 일부 병원에선 가족이 면회를 오면 환자를 잘 대해주는 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신과 및 노년내과의 협진으로 환자 개인의 증세에 맞춰 다각적인 치료책이 활용되어야 하는데, 환자를 묶어 통제하려 드는 행태가 요양원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이는 치료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밤의 야뇨증 등을 비뇨기적으로 처치하여 치매에 흔한 배회 행동 자극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저녁 6시 이후 물을 적게 섭취해서 밤에 일어나는 횟수를 줄이고 수면제를 병행할 만하다. 이렇게 생체 리듬을 회복하면 다음날 호전되는 효과가 있다.
 최순국씨는 지난해 8월 병원을 퇴원한 후 치매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웃음 치료, 노래 교실, 서예 공예 운동 교실을 선택하여 1주 2회 4시간씩 참여하였다. 5개월 정도 지나니 변화가 보였으며, 노래 등으로 즐거운 마음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설거지 하며 함께 하는 놀이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센터의 강사 생활 보장이 미흡해서 치매지원센터 강좌가 가끔 비는 게 현실이다.
 치매 치료에서 춤이 적극 참여하자는 취지는 명분을 갖는다. 반면에 치매 환자들은 춤을 하려 하지 않는다. 웃음, 노래, 서예, 공예, 운동 심지어 설거지 놀이까지 치매 환자들은 수용한다. 치매 환자들이 춤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로 보인다. 치매 환자들에게는 치매 환자들에게 맞는 춤이 제공되어야 한다. 치매 환자들이 재미를 느끼되 부담을 느끼지 않는 춤은 무엇인가? 치매 환자들에게 맞는 춤을 개발하고 유포하는 것은 오늘 무용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 〈가방 이야기〉 중 최순국씨가 출연한 부분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 치매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위한 공공 사이트 안내 중앙치매센터(보건복지부 산하)  바로가기
* 치매 예방에 중요한 조기 진단을 위한 공공 사이트 안내 치매 안심센터(전국 시군구 산하)  바로가기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2019. 07.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