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Choreography (명) 1. 안무 2. 연출 1)
오랜 시간 무용계에서 통상 움직임을 짜고 작품을 구성하는 행위라는 일반 명사의 뜻으로 통용되어온 ‘안무’, 코레오그래피라는 용어. 무용계에서 너무도 일상적으로 쓰여 온 단어였기에 이것이 안무 작업 행위라는 직관적인 뜻을 넘어선 어떤 개념으로 공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어느새 다양한 매체에서 이 명사가 일종의 장르로서의 위상 아래 친숙하게 표기되고 있음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방영된 MNET의 ‘스트릿우먼파이터’(이하 스우파)를 필두로 댄서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전국민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트렌드를 휩쓰는 가운데 힙합, 왁킹, 락킹, 비보잉, 재즈 등 전통적인 스트릿댄스의 장르들로 포섭되지 않는, 다시 말해 특정 장르를 벗어나 안무를 구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댄서들의 독자적인 영역이 점차 드러나고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MNET 〈Be Ambitious〉 화면 댄서네임 상단에 표기된 장르가 코레오그래피로 쓰여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MNET |
얼반 댄스(Urban Dance)에서 코레오그래피로
이렇듯 춤현장에서 조금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코레오그래피라는 용어의 전면적인 등장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일견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지는 코레오그래피라는 장르적 개념2)의 가장 가까운 뿌리는 2010년대 국내외 댄스씬에서 활발하게 사용된 ‘얼반 댄스’(urban dance)에 위치하고 있다. 필자는 석사학위논문(2018)에서 얼반 댄스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당시 이미 코레오그래피라는 명칭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여타 춤 장르에서 ‘choreography’가 안무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통용되는 것과 구분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얼반 댄스’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서술했음을 밝힌 바 있다.3) 이미 2010년대 중후반 스트릿 현장에서는 대중적인 장르적 용어로서 얼반 댄스와 씬 내부적 및 구체적 용어로서 코레오그래피가 혼용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국내에서는 얼반 댄스라는 용어가 현장 안팎에서 대표성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4) 대중성/활용성의 측면에서 얼반 댄스로 명명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얼반 댄스라는 단어는 몇 년 사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어떤 연유로 코레오그래피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일까?
BLM 시위 현장 사진 ⓒCNN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 생경하게도 2021년을 기점으로 뜨겁게 펼쳐진 ‘Black Lives Matter’(이하 BLM)으로 통칭되는 흑인 인권 운동에서 발견된다. 2012년 플로리다주에서 17세의 흑인 남성 트레이번 마틴이 자율방범대원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으나 총격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촉발된 BLM운동은 이후 연속적으로 발생한 흑인 사망사건들을 거치며 커지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으로 크게 확산되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여 동참과 지지를 받는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2020년의 사건을 계기로 가장 강력하게 발화된 BLM운동은 문화계 영역까지 큰 영향을 미쳐 오랜 시간 은연중에 흑인 음악을 기존의 백인 음악과 별개로 범주화함으로써 다른 카테고리로 묶는 것에 일조했던 얼반 뮤직(Urban Music)5)이라는 장르를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에 대해 상반된 의견 또한 존재했으나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자회사 리퍼블릭 레코드를 필두로 음악계에서 ‘urban’ 명칭의 사용을 거부하는 성명문을 발표했고, 자연스레 이 흐름을 따라 댄스 씬에서도 ‘urban’ 명칭의 사용을 거부함에 따라 얼반 댄스로 통용되던 스타일과 흐름을 지우고 ‘코레오그래피’로 명명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댄스 커뮤니티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얼반 용어의 정정은 빠르게 이루어졌으며 국내 역시 씬 내부의 공통의 합의를 거쳐 대세로 사용됐던 얼반 댄스라는 명칭을 코레오그래피로 빠르게 대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제 고유 장르가 아닌 안무 작업을 주로 하는 댄서들의 대표 범주로서 얼반 댄스가 아닌 코레오그래피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춤 현상으로서 코레오그래피: 춤 예능 그리고 K팝
그렇다면 여전히, 코레오그래피는 하나의 장르로 분류될 수 있을까? 현재 스트릿댄스 현장에서 ‘코레오그래피’라는 분야는 음악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움직임을 수용하는 특성상 고정된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기보다 장르의 경계 없이 움직임을 담아내는 스타일로 이해된다. (이제는 얼반 댄스가 아닌) 코레오그래피에 몸담고 있는 댄서 및 안무가들 또한 스트릿댄스 속 코레오그래피를 하나의 고정된 장르로 명시하기보다 작품 목표와 음악 장르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스타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스트릿댄스, 아카데믹 댄스 등의 경계를 넘어 작품 목표에 따라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코레오그래피-안무 의 본래 성질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고민과 시도들은 코레오그래피의 전신인 얼반 댄스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필자는 코레오그래피의 뿌리를 얼반 댄스로 볼 때 코레오그래피 역시 일종의 장르 혹은 장르적 스타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움직임과 테크닉 중심의 기존 댄스 현장에 음악적 표현과 이를 기반으로 갖춘 대중성을 키워드로 도전하는 안무 작업의 대두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변화로 주목된다. ‘안무’가 중심이 되어 작동하고 있는 지금의 이 현상을 특정 ‘장르’라 부르지 않더라도 춤 현장에서는 너무도 뚜렷한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숱한 유명 스트릿댄서들이 등판해 화제를 모으며 인기를 끌었던 ‘스우파’ 참가 크루와 댄서들은 힙합, 왁킹, 크럼프, 비보잉 등을 주장르로 두고 있는 경우도 많았으나 프로그램 경연 미션 전반은 코레오그래피를 주력으로 삼는 안무가들의 역량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같은 음악에 각 크루가 안무한 작품를 제출해 대결하거나 각자 개성 넘치는 음악과 컨셉을 담은 고유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기존 장르 테크닉들의 연결 이상으로 다양하고 신선한 동작들을 음악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창작해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러한 프로그램 포맷은 스우파에 이어 방영된 〈스트릿걸스파이터〉 〈비 엠비셔스〉 등의 파생 프로그램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스트릿댄스 현장에서 ‘코레오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댄서들이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는 작업 형태이기도 하다.
〈스트릿우먼파이터〉 공식 포스터 ⓒMNET |
대중들 또한 특정 곡에 안무 작업을 하는 댄서들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듯 코레오그래피라는 개념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케이팝 문화의 영향이 단연코 강력한 역할을 했다. 케이팝 성장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축을 담당한 춤 영역에 대한 대중의 깊은 관심은 무대 뒤에 감춰져 있던 안무가의 존재까지 전면으로 드러나게 하는 데에 이르렀고 무대 위의 춤-댄싱이 아티스트의 영역이라면 이를 만들어낸 창작자로서 안무가에 주목하고 이 안무가들의 동향을 좇아가는 경향까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국내를 흔들고 있는 춤 예능 영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케이팝 시장에서도 기수를 잡고 있는 것은 명확히 코레오그래피, 즉 안무라는 개념을 내포하는 스타일임이 자명하다.
코레오그래피의 최전선은 어디인가?
예술춤계와 스트릿댄스 현장 모두에서 안무라는 개념은 항상 존재해왔지만, 이것이 춤 영역 전체를 통틀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기존의 안무라는 개념과 어떻게 구분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 독자적인 스타일이 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춤의 영역을 확장시키거나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탐색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춤을 추고 향유하는 문화에는 언제나 그 이유가 있지 않은가.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강한 존재감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코레오그래피라는 현상을 소개하고 살펴보는 가운데 춤계의 기존 장르들과 신선한 흐름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무용계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것으로 여겨졌던 케이팝이 코레오그래피의 최전선이자 유연한 문화현상으로 기능하고 있는 양상에 주목하며 조금 다채로운 방법으로 관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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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스퍼드 영한 사전
2) 코레오그래피를 ‘장르’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스트릿댄스 내적으로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이기에 장르로 확명하기보다는 장르적 개념으로 서술하였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소개한다.
3) 이아로미, <얼반 댄스(Urban Dance)의 개념과 장르 형성 기준 논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2018, p.1
4) 방송 매체, 댄스 학원 등의 교습 현장 등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새로이 등장한 스트릿씬에서의 안무 중심 활동을 대표하는 용어로서 명확하게 기능하였다.
5) ‘urban’이라는 단어는 도시의, 세련된 등을 뜻하는 형용사이지만 미국 역사에 있어 단어 자체의 의미와 별개로 필연적으로 덧씌워진 ‘ghetto(게토; 빈민가)’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통용되어왔다. 이에 따라 흑인들의 음악을 백인 음악과 별개로 범주화하고 게토의 의미로 격하시킬 수 있는 얼반 뮤직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주요 메이저 음악사들을 중심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얼반 개념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주요 메이저 음악사들을 중심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얼반 뮤직 장르 및 개념의 사장을 결의했다.
이아로미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 및 무용원 이론과 전문사를 졸업 후 코레오그래퍼/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