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동경에 가면 자동적으로 만나던 하세가와 로쿠씨와 이시이 가오르씨가 세상을 떠난지 4년째.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같이 늙어가는 동세대와 교류하게 되는 시간이 왔다.
이름만 들어도 유대계인 걸 알게 되는 린다 라빈Linda Rabin. 언젠가 이시이씨와 줄리아드에서 함께 공부했다고 소개받았는데 우리가 만난 지도 어느덧 17년이나 되었다고. 나보다 6살 많은 린다에 관하여는 위키페디아에 들어가면 꽤 많은 정보가 기다리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으며 5살 때부터 춤을 추었고 뉴욕의 쥴리아드에 유학하여 본격적 현대무용을 배웠다고. 그 후 당시에 춤을 추는 ‘몸’에 호기심이 많은 무용가들이 거쳐 온 Alexander Technique, Pilates, Ideokinesis, Kinetic Awareness, Voice and Theater의 경험을 한다.
미국을 떠나 선조들이 있는 이스라엘로 가서 오하드 나하린이 정착하기 전의 바체바무용단, 그리고 런던의 램버트발레단의 연습감독을 거친 후 몬트리올로 돌아와 기교와 창작에 기반을 둔 ‘현대무용학교 L’ecole de Danse Contemporaine de Motreal’를 공동창설한다. 캐나다 훈장 수여! 1990년에 와서 접한 BMC(Body Mind Centering)와 Continuum(컨티뉴엄) 메소드의 지도자로 변신하여 몬트리올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용가뿐만이 아니라 각 다양한 예술가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녀의 몸에는 히피와 포스트모던댄스가 만연했던 60년대의 뉴욕이 새겨져 있다. 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던 나에게는 린다를 통하여 아직도 살아있는 지나간 현대무용사의 조각들을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초기에 그녀의 작업이 궁금해 한예종에 특강으로 초청했을 때 물이 들은 조그만 풍선을 사용하여 인체 장기를 설명하는 것에 감탄했었지. 나중에 이 방법론이 Bonnie Bainbridge Cohen의 BMC에서 나온 것을 확인했지만 이미 불이 붙은 린다의 컨티뉴엄에 대한 호기심으로 프랑스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하던 1주일의 연수에도 홀린 듯이 따라붙었다.
몬트리올에 장기 체류하는 기회를 가진 후배 무용가 국은미씨에게 린다를 소개한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Feldenkrais 지도자를 겸하던 은미씨가 벌써 4번째 이태원의 멋진 스튜디오에 린다를 초청하여 컨티뉴엄 워크숍을 기획, 통역해 주고 있으니 중매쟁이 노릇을 잘한 것 같아 참 흐믓하다.
은미씨는 참 좋은 무용수였다. 나는 아직도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된 당시에 초청된 프랑스인 안무자 Joelle Bouvier의 작품에서 본 그녀의 춤을 기억한다. 요란한 테크닉을 구사하지 않았지만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춤. 일상에서도 큰소리 내지 않고 성심성의껏 자기 일을 하듯이 섬세하고 배려 깊게 이 땅에서 드문 존재감을 가진 움직임을 구사하는 춤꾼이다.그런데 요즘은 공연을 안 하는 것 같다. 공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가?은미씨가 나보다 더 깊게 컨티뉴엄에 접근한 것은 확실하다. 나는 왜 이런 somatics를 접할 때마다 한계선을 긋고 대하였던가. 인체 해부학 공부를 다시 해야 하니 게을러서? 아님 맛만 보고 다 알았다고 간주하는 오만함? 어쩌면 너무 깊이 들어가서 맹신자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나. 하긴 요가를 하다가 춤을 팽개치고 요가 지도자로 변신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나. 나도 이런 것에 완전히 빠져서 춤을 추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워 필요한 정보들만 챙기고 빠져나오는 얌체 노릇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더 구체적 시기를 유추하면 코로나 이후에 컨티뉴엄이 정색을 하고 다가 왔다. 그 많은 somatic movement 중에서 하필 왜 컨티뉴엄인가. 물론 린다 덕분이다. 그 분야 전문가의 인간적 매력에 사로잡히면 헤어나올 수 없다. 전문가로서의 신뢰는 당연. 인간적인 쾌활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천진함은 그녀의 큰 장점이다. 린다의 따뜻한 긍정적인 힘이 위안이 되었고 그녀와 불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 그렇다고 언어의 장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연습복과 일상복을 구별하지 않는 일본 문화에 중독된 채식주의자와 친구가 되어 여자 친구들이 하는 비밀 주고받기 순위까지 가 버렸다.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바뀌는 것. 린다와 함께 하며 알아가는 컨티뉴엄이 오랜 공직생활에서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데 적절한 처방임은 분명하다. 그렇지! 부질없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혹사했던 나의 몸 그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을 다독거리는 데 컨티뉴엄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마 린다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매일 하는 아침 운동의 레퍼터리에서 컨티니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넓어진다. 등뼈를 통관하는 ‘오’ 사운드를 몇 번 내고 그리고 척추와 만나는 각 부위에 ‘이’ 사운드를 보내면 등뼈에 꿈틀거리는 파동이 생기고 걷잡을 수 없는 물결이 밀리듯이 세포로부터 낙지의 많은 다리들의 작은 움직임micro movement이 나와서 꿈틀거리며 온몸을 돌아다닌다. 입술은 꽃잎처럼 조금씩 피어 오르고 반쯤은 자고 반쯤은 깨어 있는 상태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생명의 기원을 느끼게 하는 즉흥 움직임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움직이는 명상meditation!
눈을 감고 하기 망정이지 나는 아직도 내가 하는 것을 아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거의 실시간으로 시범하는 린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기다란 목과 활짝 열린 가슴과 연결된 팔을 보며 매번 경탄한다. 때로는 과제를 주고 본인도 함께 하니 스스로도 즐기는 것은 틀림없다.
몸으로 한참 고함지르고 난 후에 바닥에 고요히 누워 눈을 감는다. Open attention! 음식을 먹고 나서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세포들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나서 나의 몸에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해한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힘든 노동 후의 휴식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요가의 사바사나?
린다는 on과 off를 잘도 넘나들지만 나는 이 여운을 음미하고 싶은 순정파다. 조금 더 가면 기다리고 있을 경건한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특별한 영성 세계를 방문하여 그 속에 들어가 한 몸이 되었는데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채 후다닥 나갈 수 있다니.
다른 분야 사람들과 함께 강습생이 되려면 무용가 근친 집단에 익숙했던 시절에 생략했던 기본적인 대인 예의범절을 다시 익혀야 한다.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서울에서 할 때와 동경서 할 때가 다르다. 서울이나 동경이나 컨티뉴엄 강습에서는 신체 요법 지도자들이 꽤 있다. 남을 치료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치료가 필요한 법.
일본 강습은 사나운 태풍 시즌에 동경 근교 국립공원에 있는 미타케 산록에서 이루어졌다. 잠시나마 세속을 떠나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는데 35년 전부터 했다는 사람도 있으니 컨티뉴엄이 가진 중독성을 실감한다. 환경 탓인가. 같은 과제라도 일본인들은 너무 집중하여 자칫 종교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져 광신자들의 집회 냄새가 슬쩍 날 때도 있다. 그래서 어쨌다고? 인간은 종교적 동물!
올해는 서울, 동경 두 도시 일정 사이에 제주방문을 권한 것이 실현되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동의 매력적인 공간 ‘고요한 아침’에서 통역이 필요 없는 주위 분들과 함께 기초 클래스를 두 번 하면서 컨티뉴엄이 더 친밀하여졌다. 그러니까 잊어버릴 만하면 하게 되는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무대에서 버틸 수 있는, 춤을 출 수 있는 것에 큰 힘이 되었구나.
여름의 한복판에서 함께 일주일을 보내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여자 친구와 지내는 재미도 있었다. 그게 뭐냐고? 목욕탕도 함께 가고, 속옷 차림도 불편하지 않고, 밥도 같이 해서 먹고 음식 투정도 하고, 남의 흉도 보면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과 케이티 랑K.D Lang의 ‘Halleluya’를 비교하며 낄낄거리는 등 말하자면 긴장하지 않고 재미나게 지나는 거지요.린다도 나처럼 춤의 역사를 한 몸에 담고 있다. 자유로운 원초의 춤을 추던 유년시절에서 정규적으로 발레 테크닉을 연마하던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에서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꾼 것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던 무용의 역사가 우리들의 몸에 압축되어 있다. 린다는 현재 춤을 추지 않지만 안무가, 무용수들의 개별 코칭도 하고 있다니 춤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논어 구절에 솔깃하여 내 몸에 새겨질 또 하나의 역사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열심, 살고 있다.
남정호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