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품은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나온다. 내 작품의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구상했던 작품들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다음 작품에 대한 물꼬가 트이게 된다.
최근에 추는 춤은 주로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며 추는 즉흥 솔로. 2년 전 매년 5월 제주도 돌문화공원에서 개최되는 ‘국제즉흥춤축제’에서 비롯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명료해지는 것 같다. 그해 가을에 있은 ‘idance Taipei’의 즉흥춤축제를 거쳐 ‘2024년 3월 신촌’이라는 타이틀로 창무춤터에서 하고 연이어 ‘2024년 11월 대학로’라는 타이틀로 아르코 대극장으로 연결되었는데 아직 싫증이 나지 않으니 이 즉흥 춤 솔로 컨셉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현재 소품으로 사용하는 우산은 2006년도에 당시 한예종 미술원에 재직한 윤동구교수 팀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우산의 천을 다 없애고 남은 앙상한 대에 은박지를 달아서 장식한 별난 우산을 받으며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과 함께 놀고 싶었어. 일상이 심각한데 무대에서 만이라도 농담하고 싶잖아. 중국 현대미술가 웨민쥔(岳敏君)이 말했지. ‘한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웃음이 없는 하루는 버린 하루다’. 힙하면서 장난 끼가 있는 윤교수와의 작업은 그 과정이 심플하면서도 쾌적하고 자유로웠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인 학교에 재직하여 다른 분야 예술가들과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미의식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였단다.
이 작업 덕분에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이시이 가오르씨의 야심찬 프로젝트 ‘Woman in Asia’에 참가하면서 〈흉내〉라는 타이틀을 가진 솔로 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 후에 〈고백〉 솔로, 군무로 확대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드러내어도 양파껍질 벗기는 것처럼 미흡함이란. 당시 팸플릿에 쓴 글 ─ 노쇠해지며 지각하는 몸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 방법은 오직 끊임없이 춤을 추는 것이라 믿기에 지금도 그냥 춤을 추고 있습니다.
솔로를 하면서 소품으로 다시 벽장 속의 짐 무더기 사이에 끼어서 찡그리거나 미소 지으며 용케 버티고 있던 그 문제의 우산이 등장하였지. 평소에 가짜-페이크를 혐오한다며 잘난 체하다가 소품이랍시고 등장시킨 것이 은박지로 오려 붙인 반짝이 장식이 너풀거리면서 제 기능도 못 하는 다 떨어진 우산인 걸 어떡해. 그동안 숨기던 나약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외로움이 드러나도 괜찮아. 그 모순된 상황을 즐기기로 했잖아. 흰 머리를 휘날리면서도 아직도 사랑에 대한 갈망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때로는 사춘기 아이가 되고 싶은 심정을 그대는 아는지.
사실 벽장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숙성한 이 우산은 작품의 구상 과정에서 마치 요술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열 수도, 접을 수도, 높이 치켜들 수도, 바닥에 놓인 그 속으로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고 들어갈 수도 그리고 잘 접어서 영국 신사처럼 단장(短杖)으로 쓸 수도, 그렇지 나를 방어하고 적을 공격하는 무기, 흉기로도 가능한 이 물건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며 존재를 드러내었다. 아니 나의 고갈 된 상상력에 불을 붙이고 그 타오르는 속으로 나를 낚아채 가서는 어느덧 나는 그가 제시해 주는 게임을 수동적으로 빨아드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믿음직한 동반자와 함께라면 어느 무대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 흔하게 여기는 일상의 오브제들이 실제로는 가장 특별한 것이잖아. 평범한 것에서 영감을 얻고 생활 깊숙이 깃들어 있는 것들에 또 다른 해석을 달고 생명을 불어 넣는 재미를 니들은 아니?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강태환씨의 색소폰을, 이시이씨는 다카하시유지(高橋悠治)씨의 피아노를 택하였다. 이 조합으로 한국에서는 그해 국제 현대무용제에 초청되어 아르코 소극장에서, 일본에서는 동경의 Theater X와 나고야 시립극장에서 공연하였다. 공연할 때마다 조금씩 훼손되는 우산은 황송하게도 강태환씨에 의해 매번 보수되었다. 그는 공연이 있는 날이면 오전에 공연장에 도착하여 자신의 분장실에 자리 잡고 악기를 다 분해하여 한 부분씩 세밀하게 닦아 낸 후에 다시 정성껏 조립하곤 하였다. 일본에 와서 남들이 다 좋아하는 사시미도 야끼니꾸도 마다하고 편의점의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왜 하는지 물어보니 악기가 오래되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새로운 악기보다 이 오래된 악기가 얼마나 친밀하고 훌륭한 소리를 내는지. 그렇고 말고요.
그 대화 후에 나는 내 악기인 내 몸을 매일 돌보는 일에 당위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 신체성은 잔인하다고? 나이듦이란 누구나 알면서도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라고? 글쎄요. 그건 현란한 춤을 추는 K-pop 스타들에 관한 이야기지요. 300년 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처럼 잘 조율된 몸을 가진 나이 든 무용수의 몸에서 나오는 존재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몇 년 전에 본 영국무용단 DV8의 공연에서 백발의 조그만 여자 무용수가 커피잔을 들고 마시면서 춤추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아무 근육도 사용하지 않는 듯한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단순하고 가볍고도 명료한 단가(短歌)처럼 절제된 몸짓!
강태환씨의 즉흥 색소폰에서 시작된 음악은 작곡가 박성선씨가 선택해 준 라벨(Maurice Rabel)의 왈츠로 방향을 바꾸었다가 다시 하자센터서 만난 소니아의 즉흥 아코디온 연주를 거쳐 최근에는 보비 맥피런 Bobby McFerrin의 ‘Don’t worry, Be Happy‘와 함께 하고 있다. 이 노래는 자칫 우울한 무드에 빠지게 되는 일본 생활에서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뇌는 주문이었는데 결국은 춤의 동반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다음 음악은? 그건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의상으로 화제를 바꾸자. 더 이상 무용 의상으로 제작된 옷을 입지 않고 일상복을 입고 춤춘 지는 꽤 오래되었다. 동경의 집 근처에 있는 빈티지 숖은 나의 단골 가게이다. 어릴 적에는 구호물자 옷을 입었고 대학 시절에는 구제품 옷으로 멋을 부린 나에게 이 가게는 향수를 되살리는 장소이며 저렴한 가격으로 개성적인 의상을 발굴할 수 있는 보물창고이다. 우연히 건진 질 샌더(Jil Sander)가 유니클로를 위하여 디자인한 흰색 원피스는 넉넉하게 내 몸을 감싸 주어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어 한동안 애용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발견한 레트로풍의 검정 레이스 원피스로 변덕을 부렸지. 왜냐고? 아무리 의상이라지만 같은 옷은 지루하기 짝이 없거든. 잘 때는 잠옷, 일어나서 운동할 때는 운동복, 스트레칭 요가 할 때는 요가복, 집안 일 할 때는 실내복, 산책할 때는 스포티한 옷, 그리고 누군가와 식사 약속이 있으면 좀 멋 부린 옷. 그리하여 나는 하루에 여러 번 옷을 갈아 입는단다.^^
춤출 때 신는 빨간 양말은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에서 나왔다. 동화에서는 빨간 구두를 신으면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형벌을 받는다고. 동화 속의 소녀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발을 잘랐지만 그 발은 계속 춤을 추고 다닌다. 19세기 덴마크의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안데르센은 춤의 마력을 감지하고 그것을 경고하려 이 동화를 썼을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도 춤은 여전히 미궁 속에서 반짝거리며 많은 이들을 홀려 내어 춤바람에 빠지게 하면서 춤의 역사를 진행시켰다.
춤추는 것이 벌인가? 나는 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이상 젊은 시절의 너와 경쟁하지 말고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꿈꾸면서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이 참나무를 보고 한 말, ‘벌거벗은 맨몸’의 힘을 믿어 보자구요.
남정호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