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5
나를 깨우친 매력과 충격들
남영호_재불무용가

내가 왜 프랑스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는지 나 스스로도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처음 프랑스 파리에서 받았던 충격, 매력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26살에 파리에 도착해서 열심히 어학 공부를 할 때였다. 프랑스말, 대화들을 듣고 접근하기 위해 TV를 참 많이 보았었다. 어느 날, 그날도 TV 켜고 뉴스와 광고 두루두루 보고… 이어 어느 다큐멘터리 시간이었다. 파리에서 스타들이나 세계적 인사들이 이용하는 고급 호텔들(Ritz, Renaissance, Maurice…)을 취재한 다큐였다.

장려한 호텔 모습들, 유명한 스타들 얼굴들이 죽 소개된 끝에 취재진은 그 호텔의 청소부들과의 인터뷰를 소개하였다. 기자가 한 청소부에게 물었다. “선생님들은 이런 고급 호텔에서 일하면서 화려한 스타들, 재벌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자괴감이 들거나 할 때도 있는가?” 그 청소부가 대답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행복이 있다. 나는 오늘 오후 6시면 일이 끝나는데, 남편이 오늘 저녁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내 아이들이 나를 반가이 기다리고 있다. 난 그것으로 행복하다.”

그 여성의 답은 내 머리를 띵 하게 만들었다. 철학자 같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을 것이다. 근데, 한 청소부의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철학적이라 느꼈다. 그 생각과 마음이 매력적이고 주체적이다. 한국에도 이런 매력적인 분들이 왜 없겠는가. 다만 나는 그 매력을 프랑스 언론의 다큐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 후로 프랑스를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5년으로 생각했던 프랑스 유학이 어느덧 32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브르타뉴 해변가에서 어느 날




그다음으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선거, 투표였다. 난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거의 선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당시 내 생각은 “내 하나가 무슨 힘이 있다고 선거를 하며, 아무 힘이 없는데 선거해 봤자 뭐 변하겠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선거일은 나에게는 그냥 어느 공휴일에 불과했다. 그렇게 대학 4년 동안 선거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학 졸업 후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사람들의 선거 참가 행동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난 참 어리석었고, 내 나이에 비해 정신이 정말 어리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사전투표라는 것은 없다. 반면에 자기 표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는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제도이다. 선거일 당일 자기 구역에서 선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 표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는데, 그 절차가 엄청 귀찮다. 경찰에 가서 서류를 써야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 양도한다면 그 사람 신분증까지… 엄청 까다롭다. 근데 선거철만 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 앞에서 몇 시간 별 불평 없이 줄 서서 책 한 권 들고 읽으면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 끝에, 본인은 그날 투표를 할 수 없어도 자기 한 표를 친구나 이웃에게 양도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자기 한 표를 양도하기 위해 몇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고 서류 작성하고 그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본다. 프랑스 사람들은 내 한 사람의 작은 표가 모여서 힘이 된다고들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후로 나는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여기서 관찰하고 듣고 있다.




수잔버지무용단원과 함께, 지금은 마리케쉬현대무용제의 예술감독이다




세 번째로 프랑스에서 받은 충격은 사람들의 판단 수준, 그리고 사람들과의 신뢰였다. 프랑스 무용수들은 좋은 무용단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좋은 안무가를 찾으며 그들과 작업하길 바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무용단이 그리 많은 급료를 주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안무가와 작업하길 바란다. 출발부터가 주체적이다. 일테면 자기가 동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자기 생각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도 알고 싶어 한다.

내가 무용단의 무용수로 있을 때, 한국에서 일이 터지면(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등) 꼭 나에게서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당시, 그저 그 사건들이 일어난 나라가 내 나라라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해서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무용단을 만들어 안무가로 활동하고, 코레디시(여기 한국) 페스티벌을 만들고 난 후부터는 내 생각을 밝혀야 할 경우가 더 늘어났다. 인터뷰, 대화할 때마다 그 사람들은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남북 문제, 입양아 문제, K-Pop 등등)에 대해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도한 신문에 게재된 나의 인터뷰 기사, 2018년 4월




몇 해 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전세계 언론들에 나갔을 때이다. 몽펠리에 주요 일간지 〈Midi Libre〉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남-북 정상이 만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는 기자라 아주 자유롭게 즉석에서 얘기했었다. 다음 날 신문에 내가 했던 말이 그대로 나올지 몰랐었다. 그 후로 더욱 한국 정치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내 의견을 잘 말하려면 어쨌든 알아야 하니까. 그러다 보니 애국심도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작업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성격의 프로젝트인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프로젝트도 잘 설명해야 한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러 질문들도 많이 한다. 돈은 그다음 문제이다. 오랫동안 춤작품을 만들지 않아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무용수들에게 퍼포먼스 영상 작업을 위해 연락했을 때 즉각 동의해준 그들… 처음 코레디시 페스티벌을 만들었을 때, 훌륭한 프로젝트라고 응원하면서 흔쾌히 사이트를 무료로 만들어준 친구, 내 주위에 그런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난 그들을 보고 관찰하며 인생과 철학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1. 12.
사진제공_남영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