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춤의 도시 뉴욕, 무용 프로듀서로 10년 살기 8
오미크론의 기승을 박차고 뉴욕 무대에 서다
박신애_코리아댄스어브로드 대표

드디어 막이 올랐다. 2022년 1월 14일과 15일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47번가, 유엔본부 근처에 자리한 재팬소사이어티(Japan Society)에서 ‘최강프로젝트’(공동대표: 최민선, 강진안)가 〈Complement〉를 공연했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미국에 제대로 상륙하기 직전 시애틀에서 귀국한 후 나로서는 꼭 2년 만에 대면(In-person)으로 진행한 해외 공연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온라인 형태를 빌어 댄스필름, 온라인 레지던스 및 컨퍼런스 등 국제교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그리고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하게 애를 썼지만, 한편으로 해외 무대에서 그들이 살아있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할 이 시간을 숨죽여 고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객석에 앉아 무대에 선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십 년 전 처음으로 기획한 공연이 뉴욕에 왔을 때 기분이 이랬을까.




공연장 가는 길, 최강프로젝트 ⓒ박신애



공연이 열린 재팬소사이어티(Japan Society) ⓒ조은진




출국 이틀 전의 이야기다. 새벽녘 잠결에 무심코 쳐다본 핸드폰에 긴급한 이메일 알람을 발견하고 급히 눈을 비비며 이메일을 읽어 내려갔다. ‘참가하기로 했던 일본 아티스트가 의료적인 이유로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해 이번 공연을 포기하고 비디오로 대체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상황이 위험하기에 공연을 목전에 두고 이제야 취소를 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가는 것 역시 너무 위험한 일 아닐까?” “공연히 고집을 부려 우리 아티스트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 “ 가서 우리 중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후속 조치는 어찌 해야 하지?”. 때마침 뉴스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 행사들로 인해 미국 내 오미크론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나의 걱정은 태산처럼 부풀어 새벽이라는 시간도 잊은 채 두 안무가에게 긴급하게 연락을 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오후에도 연습 일정을 앞두고 있었고, 비자와 항공 및 모든 출국채비를 다 한 상태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을 그들에게 그 새벽 나의 다급한 연락은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으리라.

그날 이후, 나를 포함해 미리 출국해서 공연 준비를 하기로 했던 몇몇은 긴급하게 출국 일정을 연기했고, 현지 기관 측과 긴밀한 회의를 시작했다. 현지의 오미크론 확산세가 정말 심각해 언제 공연이 취소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 공연을 취소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다가도, 또다시 현지의 다른 공연들도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그래도 오랫동안 준비해오며 몇 년씩 미루어진 이 공연을 어떻게든 성사시켜보자는 의견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혔다. 시차를 고려해 며칠씩 새벽마다 회의를 위한 전화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치 롤러코스터 위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참여진의 안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아티스트들의 의지. 그 어느 것 하나도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신중했고, 깊이 고민했다. 그렇게 며칠 미국, 한국, 대만에서 각각 회의를 진행하고 그 의견을 서로에게 전달한 후 또다시 조율하며 긴밀한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한국과 대만 아티스트의 굳은 의지를 반영하여 공연은 지속하기로 결정됐다.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과 많은 걱정이 일면서도, 한편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집어삼킨 코로나라는 놈에게 정면 승부를 던지는 아티스트들의 행보에 내심 감사함과 시원함도 느꼈던 것 같다. ‘그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있었고 이쯤이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실제로 오미크론(Omicron) 변이 바이러스가 강타하기 직전에 뉴욕은 거의 예전의 모습을 찾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공연을 떠나기 직전, 오미크론 확산세가 세계적으로 심각해지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공연이어서 였을까, 나는 뉴욕에 도착해서부터 공연이 오르는 그 순간까지 불안함과 떨림에 잠을 이루기 힘이 들었다.




객석에 자리한 관객 모습. 이틀간의 공연은 만석을 이뤘다 ⓒ박신애




다행히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끝났다.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이 전달되었을까. 관객이 많이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최 측의 우려를 뒤로하고 이틀간의 공연은 만석을 이루었고(백신패스 및 N95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였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무엇보다 초대하기 어렵다는 뉴욕타임스의 Brian Seibert가 공연에 방문했고 리뷰(2022. 1. 16.)를 썼다. 현지에서도 무용단들이 서로 앞다투어 ‘뉴욕타임스 리뷰’ 한번 받아보겠노라고 짧게는 공연 몇 달 전, 길게는 몇 년 전부터 러브콜을 보낸다. 물론 초대도 힘들 뿐 아니라 리뷰가 나온다고 해도 내용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아서 설사 공연장에 그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데, 그런 그의 리뷰에서 최강프로젝트의 작품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함께 그들의 재치있음에 대한 긍정적인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뉴욕에서 기획자로 일을 시작한 10년 전, 뉴욕타임스 건물을 바라보면서 “내 꿈은 너다!”라고 맘속으로 외쳤던 적이 있다. 무려 그 뉴욕타임스… 그 리뷰를 받았다.






뉴욕타임즈 지면 리뷰 ⓒYoko Shioya




실상 뉴욕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그리고 충격적이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길 위에 허다했고, 자가격리도, 사회적 거리 두기도 없는 현지 상황에서 우리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 사람들 말로는 오미크론 이후에 정말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원래는 거의 마스크 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며. 정말 뉴스에서 보고 듣지 않았다면 여기가 지금 전염병이 돌고 있는 위험한 곳이 맞나? 싶은 모습이었다. 평일은 맨해튼 길거리에 예전과 비교하면 사람이 좀 덜한가 싶었지만, 주말이 되니 레스토랑마다 젊은이들이 넘쳐났고 카페고 펍이고 북새통을 이뤘다. 이렇게 무감각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왜 더 공포심을 느꼈을까? 마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서 이 심각한 사실을 우리만 알고 나머지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 장면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덕에 우리 아티스트들은 감염을 우려해 공연 전까지 제대로 된 식당 한번 가지 못하고 음식을 사들고는 호텔 방에서야 겨우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그들은 무사히 공연을 마쳐 뉴욕을 떠났고, 그래도 우리 중에는 감염되거나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전화를 받았다. 관객 중에 양성 확진자가 있었고 또, 함께 참여했던 대만 무용수가 결국 양성이 나와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호텔 방에서 격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대기실은 따로 썼지만 그래도 며칠간 무대 공간과 복도 등 동선이 겹치니 한국에 도착한 후 꼭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는 주최 측의 걱정 어린 연락이었다. ‘정면돌파를 했다!’는 뿌듯함은 잠시, 그들이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여 문제없이 자가격리 기간을 끝내기를 또 걱정해야 했다. 혼란스러웠다.

이 공연이 계획된 그 몇 년 전, 그때부터 참 많은 사람이 긴 호흡을 함께했다. 오랜 시간 동안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또다시 연기될 수도 있는 공연을 준비하며 그 누구보다도 아티스트들이 가장 곤욕을 치렀다. 비록 이 공연 하나로 인생이 변하지 않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에 깊은 동감을 느끼며, 이 글을 통해 쉽지 않은 결정을 해준 최민선, 강진안의 의지와 용기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 흔쾌히 이들의 결정에 따라준 스탭들의 용기와 희생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각자의 위치에서 이 공연을 가능하게 해준 모두의 노력과 살아있는 반응을 보여준 관객들의 생동감을. 나 역시 오랫동안 잊지 못할 듯하다.

이번 투어처럼 희비가 교차하며 짧은 시간 매우 기쁘기도, 또 많이 두렵기도 한 공연이 또 있을까 싶다. 몇 달 뒷면, 내년이면, 이제 정말 괜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코로나19는 점점 더 긴 시간 동안 예술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젠 내 삶에도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코로나의 출몰로 요즘 국제교류를 위한 몸부림 속 알 수 없는 전우애가 싹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류는,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재난 상황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또다시 함께하기를 염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감성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공연 관객들에게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은 지속되어야 한다.

박신애

민간무용단체의 해외진출을 돕는 비영리기관인 코리아댄스어브로드의 박신애 대표는 무용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프로듀서이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뉴욕92Y 하크니스 댄스센터에서 아시아/코리아 릴레이티드 프로그램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국제 솔로 페스티벌 모노탄츠서울의 예술감독, 프랑스 파리 SOUM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2022.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