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988년부터 20여 년간 나는 서울 인사동을 자주 출입하였다. 1988년 12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을 결성한 이래 민예총은 인사동과 낙원동에서 터를 잡고 있었다. 나는 민예총 민족춤위원회 회의와 잦은 모임에 수시로 참석하였고 어떤 주는 매일 출근하곤 했다.
지하철 종각역이나 종로3가역에서 내려 민예총으로 향할 때 어느 식당 옆을 지나쳐야 했는데, 종종 그 식당에 눈길이 꽂혔다. 파고다공원 뒤편 낙원동 떡집 골목 들머리에 음식점, 주점들이 많고 많았건만 그 식당은 유독 허름한 행색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낙원상가 초입 길가 단층 가옥에 해장국집 간판을 내건 이 가게는 입구에 가마솥을 걸쳐놓고 국을 끓이고 있어 구미가 당겼고 바깥에서 보려니 안쪽에 드럼통 같은 식탁 몇 개와 손님 몇몇이 좀 한가로이 식사하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나 식당이나 저마다 인상(印象)이라는 걸 주기 마련이다. 식당이라는 것도 인상이 마음에 들어야 들어가지 않는가. 낡은 간판, 입구 처마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비닐 차단막, 약간 어둔 조명, 때묻은 좁은 입구 등등 이모저모 연륜은 상당한 듯한 식당인데 그래도 혼자서 선뜻 들어가기에는 좀 망설여지는 그런 인상이었다. 인사동에서 만나는 누구 하나 이 식당을 말하거나 소개한 사람은 없었고, 물어보기도 좀 그랬다. 눈에 밟히는 그 식당에 호기심만 키워가던 어느 날 요기도 할 겸해서 민예총 회의 시간 훨씬 전에 한번 가보기로 작심하였다.
학부에서 미학에 입문하던 1970년대에 아취(雅趣)가 서린 인사동을 종종 간 적이 있다. 고서적과 옛날 시서화, 골동품을 거래하는 여기서 우현 고유섭 선생의 우리 미학과 고미술 연구서를 구하고 화랑들의 전시회에 가기도 했다. 비록 2000년대 들어 인사동 일대가 전통 보존 문화지구로 지정되고부터는 마치 한복에다 양장을 덧입은 듯이 아주 어색해진 탓에 내 취향과는 멀어져 발걸음도 자연 뜸한 곳이 되었지만, 유명한 통문관(通文館)을 비롯한 고서점들과 골동품상, 문방사우 서화 재료상이 집결해 있고 고급한지가 귀태를 흘리던 1990년대까지는 그렇질 않았다. 민예총 일 때문이라 하더라도 그런 거리는 자주 가도 물리지 않았고 거기다 호기심을 끄는 식당마저 나타난 것이다.
그 식당엘 들어서자 이리저리 놓인 목로(木壚)가 먼저 눈에 들어 왔다. 목로는 선술집에서 술잔과 안주 그릇 등속을 놓는 기다란 나무 상을 일컫고, 그 둘레에서 음주를 한다. 팔이 긴 남성의 아름을 넘어서는 나무 등걸을 다듬어 만든 이 식당의 드럼통처럼 둥그런 목로들은 묵직하고 단단한 모양들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싼 가격이었다. 벽에 붙인 종이엔 서툰 손글씨로 쓴 메뉴와 값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그때 한 그릇 1000원이었을 것이다. 손님들은 제각각 묵묵히 아니면 두엇이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해장국을 들고 있었고 어느 목로 위에선 술잔이 보였다.
여기의 메뉴는 해장국 딱 한 가지였다. 우거지 얼큰탕. 목로 곁의 의자에 앉으면 주문이랄 것도 없이 뚝배기 한 그릇, 공기밥 하나, 깍두기 한 종지가 뚝딱 놓인다. 뚝배기에는 갈색조의 국물에 배추 우거지와 두부 한 덩어리가 섞여 있었다. 잘게 빻은 고춧가루가 목로 위에 비치되어 있어 그걸 뚝배기에 첨가하면 더 얼큰해질 것이다. 밥공기는 작아서 한 끼 식사보다는 요기하기에 적당한 그런 크기였다. 해장국은 국과 밥을 말아야 제격이라 그리 해서 첫술을 떠보니 맛이 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데다 양도 적당해 부담스럽지 않았다. 깍두기는 시큼한 맛이 센 편으로 해장국의 조용한 미각을 일깨우는 면이 있었다.
그집 해장국, 낙원동 ©2016 김채현 |
이렇게 발걸음을 내딛고부터 그 식당을 종종 간 것은 물론, 혼자서만 출입하였다. 그러다 2013년에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개강 기념 삼아 세상 물정도 공유할 겸해서 간 적은 있다. 30년 가까이 여기를 출입할 동안 언제 가도 그 검정 등걸의 누렇고 둥그런 목로 위에 뚝배기, 공기밥, 깍두기가 뚝딱 나오는 것은 한결 같았고, 그 사이에 값은 500원 단위씩 올라 지금은 2000원일 것이다. 선술집이 사라져가는 데다 식당들도 간결 깔끔 화사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요즘 세태에 목로 또한 사라져 가는데, 이 집은 좀 예외다. 그러다 몇 해 전 이곳 거리 일대를 정비하는 서울시 사업으로 해묵은 간판이 어느새 흰색 바탕의 밝은 새 간판으로 바뀌어 생소한 감이 들었다. 그래서 과거 느낌의 역사성이 엷어진 느낌인데,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것이다.
속풀이국을 해장국이라 하되 속풀이와 무관하게 일용되는 게 해장국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저마다 입에 맞는 해장국이 적어도 서너 가지는 있어서 오늘날 해장국은 국의 대명사일지 모른다. 알다시피, 속풀이국에 쓰이는 재료는 실로 다양해서 그 범위는 밑도 끝도 없다. 심지어 맹물, 꿀물은 물론 식초를 탄 물까지 해장국에 들지 모르겠다.
우리네와는 달리 해장커피나 레모네이드 외에도 중국에서는 콘지라는 죽, 독일과 북유럽에서는 롤몹스라는 청어말이, 러시아에서는 라솔닉이라는 절임오이 수프가 해장 음식의 고전으로 들어진다. 전세계의 해장국을 꼽아보면 재미날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해장국은 지역에서 익숙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라 부산의 해장국하면 재첩국을 떠올리겠지만 지금에 이르러 환경 훼손으로 부산과 재첩국은 관련성이 아주 떨어진 것 같아 참 애석하다. 낙원동의 이 식당 해장국은 소뼈로 우려낸 국물에다 거친 겉배추 우거지를 푹 고은 것이다. 소뼈 해장국은 서울과 중부 지역에 흔하다. 그래도 이 집의 것은 국물이 소박하고 섬유질이 거친 겉배추가 주재료이며 두부를 한 토막 섞어 개성이 분명하다. 국물에 조미료가 약간 첨가된 느낌이긴 하나 그 소박한 맛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그 해장국집은 나이가 곧 70을 헤아린다. 이제 연륜은 그 식당의 누추함마저 다르게 보도록 한다. 백수(百壽)를 넘길지 두고 볼 일이다. 매우 착한 값으로 문턱이 낮아서, 맛이 한결 같아서, 간결한 재료가 건강한 듯해서 그리고 치장으로 겉멋을 부리려 하지 않아서 그곳은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해장(解酲)국집은 속풀이만 아니라 술을 깨러가는 곳이므로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과거에 해장국집이 으레 새벽 아침에 붐빈 것도 이 때문이다. 해장을 마치면 곧장 일어나는 게 상례이며 아니면 밉상이기 십상이다. 해장국집에서 버젓이 해장을 하고서도 일어서기를 까먹는 이변도 없지 않을 테지만, 글자 그대로의 뜻대로 해장국집은 실상은 속을 풀려고 잠시 들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해장국집에서는 붐빌 때 낯선 사람과 잠시 합석하는 것이 응당 양해되며 잠깐이므로 서로 눈길 마주치기를 삼가고 말을 나누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좋은 해장국을 앞에 두었는데 낯선 사람과의 잠깐 불편한 자리라도 어떠랴. 그런 중, 일행이 있다면야 분위기는 바뀔 것이고 식당이 한갓진 시간대에는 그런 어색함을 피할 수 있겠다.
범국민행동 촛불집회, 광화문 앞 ©2016 김채현 |
촛불집회의 발걸음들이 청와대 옆 청운동으로 가고 있다, 광화문 ©2016 김채현 |
2016년 12월 24일, 박근혜퇴진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있던 그날 밤에 낙원동의 그 식당에 또 갔었다. 이미 12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가결된 그 시기에 사람들은 앞으로 있을 헌법재판소에서의 탄핵 심판을 확실히 성사시키기 위해 성탄 전야에도 광화문 일대에 모여 들었던 것이다. 광화문에서 청와대를 향해 여러 경로로 행진하고 옆의 안국동에서도 촛불집회가 있었다.
그날 나는 오후 대낮부터 광화문 일대에 있었다. 청와대 옆 청운동까지 진출한 다음 안국동 집회에도 참가한 탓에 추운 겨울 밤 헛헛한 시장기가 돈다. 확성기 소리를 뒤로 하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200미터 정도 떨어진 익숙한 그 식당엘 갔다. 겨울날 밤 8시경인데도 그 시각에 식당은 탄핵 정국 탓인지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촛불집회, 안국동의 공간 사옥이 보인다 © 2016 김채현 |
촛불집회의 촛불들, 광화문 ©2016 김채현 |
입구 목로에 연장자 한 분이 이미 식사하고 있고 빈자리가 보여 가벼운 목례로 양해를 구하고 얼른 합석하였다. 일단 합석하면 상대편을 의식하되 서로 부담을 주지 않으려 가급적 눈길마주치기를 삼가는 게 예의다. 그러다 상대편이 먼저 일어나면 조금 편하겠으나 다른 상대편이 합석한다면 또 달리 불편해질지도… 그런데 해장국 식사를 마친 그 연장자는 일어서질 않고 일순간 뜸을 들이더니 막걸리를 주문하였다. 노란 알루미늄의 막걸리 잔과 함께 막걸리 한 병이 놓이고 그이는 잔에 막걸리를 괄괄 부어 한 잔을 쭉 들이켰다. 혼술! 그러더니 언뜻 나를 향해 ‘한 잔 하겠수?…’하는 그이의 돌발적인 권주언(勸酒言)이 살가운 듯해서 ‘그러지요’ 답하며 잔을 받고 그이의 잔도 채워주었다.
20여 년 동안 그 식당에서 주문하는 말밖에는 한 적이 없었는데, 뜻밖에 낯선 손님과 말을 섞은 것은 2016년 12월 24일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말문이 열리려면 상대와 통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말문은 권주언으로 트였고 서로 통하는 바는 쉽게 찾아졌다. 그 연장자가 대뜸 ‘나 오늘 촛불집회 하러 강북으로 왔어요… 전에 은평구에서 교편을 잡다가 은퇴 후 한강 이남으로 가 살고 있소’하며 청하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먼저 죽 늘어놓은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쪽에서도 화답이 가야 했었고, 막걸리 잔을 놓고 서로 오간 말들은 탄핵과 시국에 대한 전망 등등으로 더 이어졌다. 정말이지 생면부지 초면에 유독 정치적 의제로 말문을 이어가기가 갈수록 쉽지 않은 터에 그이와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토크는 순탄하게 끝났다. 국정농단의 적폐(積弊) 시기 시민들 가슴 속 몽우리는 그런 식으로도 해장되고 있었다.
〈춤웹진〉의 에세이란 ‘오래오래’ 소개
춤비협 회원 개인들의 소중한 기억, 체험, 추억을 독자와 나누는 란입니다. 공연작과 무대 현장에 기우는 경향을 벗어나 삶과 일상에 맛깔을 더하는 문화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소개합니다. 개인의 뜻있는 여행, 만남, 추억이 개성적·비평적 시선으로 그려집니다. ‘오래오래’ 란은 게재 내용에서 특정 업소(예: 식당, 주점 등) 이름이나 특정인을 홍보하는 듯한 서술을 배제합니다. 외부인의 투고 참여도 가능하며 투고분에 대해 〈춤웹진〉 편집위에서 게재 여부를 통보합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