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꽃 꽃다발 한아름을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 춤꾼들에게
30회 생일을 맞은 〈신인춤제전,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 춤꾼들에게 30년간의 격려사를 가려 뽑아 봄꽃으로만 한 다발 묶은 양 한 아름 몸속 깊이 올려 드립니다. 무엇인가 굳게 맺은 약속의 오래된 정표(情表)입니다.
어떠한 춤으로 세상에 첫걸음을 뗄 것인가
어떠한 춤으로 첫걸음을 뗄 터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춤 새내기 여러분!
6년, +6년, +4년, 16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이제 막 세상에 첫 걸음을 내디디려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동안 나를 품어주며 자라나게 하고 키워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떠나, 이제 미지의 세계, 낯설고 두렵고 험난한 사회에 춤을 가지고 첫발을 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춤을 추어서 몸으로 세상에 첫인사를 드릴까요? 어떠한 춤으로 세상과 첫 말문을 틀까요? 어떠한 춤으로 거세게 밀어닥칠 세상의 풍파를 견뎌낼까요!
어떠한 춤을 가슴에 품고 품어 한 평생, 한 살매를 춤꾼으로, 지독한 춤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할까요? 과연 어떠한 춤이 있어 새내기 춤꾼으로 맞는 이 첫 고난을 뚫고 견디어 이겨내게 하리요,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여든 여덟 살로 지난 해 이맘 때 돌아가신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춤으로 짙은 인연을 맺은 춤 벗나래 동사(同事) 여러분! 어떠한 춤이 내게 그런 축복을 내려주실 것인지 몸으로 더불어 생각해 보입시다. 그리고 그 춤을 이번 신인춤 제전,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에 내놓아 보는 것이지요.
(제28회, 2022년 4월 15~17일, 민주공원 소극장)
이런 봄에는 봄같지 않은 봄춤도
어느 때인들 춤추지 않으리오마는 봄을 맞아 추는 춤은 또다른 감흥을 일으켜 줍니다. 꽃이 피고나서 잎이 돋는 봄나무처럼 봄날의 춤은 몸을 먼저 던지고서는 생각을 나게 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몸 쓰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봄춤은 ‘육체로 사유한다’는 춤의 본령을 어느 춤보다도 강력하게 예시해 줍니다. 한 편 봄이 와도 봄같지 않은 것이 일터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만의 느낌만은 아닐 겁니다. 내면의 풍경을, 아리따운 청춘을, 삶의 고뇌를 그리는 춤도 좋습니다마는 봄같지 않은 봄춤을 추는 것도 춤추는 이의 할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없이 사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이들과 더불어 하는 춤은 춤의 사회적 의미를 더욱 깊게 해 줍니다. 아름다운 춤은 아름다운 사회를 노래해 주지만, 보기에 아름답지 않아도 훌륭한 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래도 아름다운 예술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먼저입니다. 아름다운 예술 속에서 사는 것보다 이름다운 사회 속에서 사는 게 더 먼저입니다. 아름다운 사회를 앞당겨 실현하기위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뒷전에 두고 못난 춤을 선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출세계를 위해 정진해온 1, 2, 3, 4기 언니들과 이 춤판의 성격을 더욱 뚜렷하게 해주는 특별찬조 작품의 안무자와 출연진, 그리고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들께 고마운 정과 함께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
(제5회, 1999년 3월 19~21일, 경성대학교 소극장)
춤의 세기를 기약하는 작은 몸짓
새로운 세기, 새천년을 맞이하는 첫해, 새봄입니다. 세상이 뒤바뀔 듯이 수선스럽던 새 밀레니엄 맞이 축전 행사도 한 바탕 지나갔고, 한때 울렁거림도 가라앉아 다시금 평온해졌습니다. 어느 땐들 봄맞이 차비에 생기발랄한 분위기가 없겠습니까마는 새 천년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또다른 감회에 젖게 됩니다. 다가오는 세기에 대한 밝은 전망 속에는 세기말적 위기의식과 인간 내면의 아지못할 불안이 잠복해 있습니다. 온갖 문화정보가 넘쳐흘러 자유분방한 삶을 한껏 누린다고 해도 자기 내면과 우리의 주변은 황폐한 삶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곧은 정치, 사회평등, 생태계 회복, 통일 염원은 구두선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인생을 노래하고 속 편히 아름다운 춤을 추기엔 아직 때가 아닌 겁니다. 21세기는 문화와 가상세계와 창조의 시대라고 합니다. 몸을 통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개발이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삶을 스스로 제작해내는 자기 연출의 시대를 맞고 있는가 하면, 몸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표현주체가 되어 춤과 노래와 연행이 뭉쳐나오는 페스티벌, 근원적인 세계로 회귀하는 큰 굿판이 지역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생산하고, 몸으로 굿을 하는 춤꾼이 새 시대에 해야 할 일은 자명해졌습니다. 젊고 푸른 춤의 새내기들이 벌이는 이 작은 춤판, 이 작은 몸짓으로 삶의 그늘을 걷어내기엔 벅찬 노릇입니다마는, 그래도 그것이 소중한 것은 새 세기를 향한 밝은 전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공원이 마련하는 첫 무대에 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비롯하여 여러 뜻있는 이들이 그를 후원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제6회, 2000년 3월 24~26일, 민주공원 소극장)
예술춤이 아닌 데에 춤의 열정을
춤은 예술지향의 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예술춤과 일반인의 유흥춤, 양쪽 모두에게 원컨대는 이러하다. 예술 지망자 뿐만 아니라 기성의 예술가까지도 예술공연을 잠시 접어두고 일상인이 추는 춤판으로 이런 예술춤 공연의 열기를 옮겨보는 것이다. 스스로를 절제하고 반쯤만이라도 민중의 삶의 춤판에 예술적 열정을 쏟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잃어버린 듯한 춤의 옛 기운이 그의 몸속에서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청소년층의 힙합도, 중장년층의 스포츠댄스도 몸 에너지의 돌이킬 수 없는 탕진이라면 나쁜 춤바람일 뿐. 그럼에도 몸의 정서가 던져주는 신령스런 우주 교감은 차라리 마구잡이춤이 이를 더욱 부추기는 바일 것이니. 사람마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온갖 미물이든 몸섞어 신기가 통하는 천지공유의 신명판이 이를 통해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하면 이땅에서 춤의 사회적 토대도 튼튼해질 것이고, 마구잡이 춤도 질적으로 고양될 터이니, 그때 예술춤은 이를 타고 노니는 것이다. 그때 예술적 성취감은 말로도 못하게 넘쳐날 것이다.
이러한 예술춤 속에는 일 해방, 신·우주와의 소통·교류, 자연과의 합일, 죽임축출과 심신의 치유, 공동체 결집 등 이제는 소멸된 듯한 인류 본원의 옛 춤의 주제와 효능들이 다시 소생하여 있을 것이다. 정신적·육체적 나약함과 시대적 병폐에 젖고 쩔은 21세기의 초입에서 다시금 21세기가 춤의 시대임을 확신하는 것은 왜 그러할까. 이러한 원초적이고도 강력한 주제들이 수천 년 은폐된 자리에서 떨쳐나와 예술이 아닌 데서부터 밝게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 천지만물에 신령한 기운을 유통시키는 옛춤바람, 風流가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춤이 아닌 데에 쏟아붓는 새내기 춤꾼들의 젊고 푸른 열정이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앞당겨 열어젖히고 있다. 새로운 세기에 새로운 춤바람이 분다. 새 천년 이른 봄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제7회, 2001년 3월 21~23일, 민주공원 소극장)
살아온 인생의 1/3 이상을 춤과 함께 해 온 사회 초년생 여러분은,
대학과정을 마쳤으니, 이제는 춤은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오랜만에 스스로 다시 던질 때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7, 8년이 넘도록 (찰랑거리는 시간들의 방랑과 유혹 속에서도) 나를 이끌어오던 춤은 과연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것이 있어 살 수 있었다고 할 그 춤이란 것이 과연 나에게 절대절명의 존재인가. 나를 키워주고 감싸주던 보호장치들은 거의 거두어졌습니다. 낯선 사회 속에 나는 혼자 던져졌습니다. 내가 춤을 선택한 것은 나에게 옳았는가. 온갖 가능성의 한가운데서 그것이 나에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자문자답의 질문을 옮길 때를 대비해야 할 시점입니다.
'내가 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춤이 나를 선택하였다.' 라고 한 백년을 춤과 같이 산 마사 그레이엄은 느즈막에 그렇게 선언하였습니다. 그것은 ‘춤으로 다 이루었다’라는 그 자신만의 마니페스토였습니다. 춤에 대한 이보다 더한 자긍이 있을까요? 춤이 춤이기 위해서는, 춤을 다 이루기 위해서는, 춤이 나를 필요로 하였다는 것이지요. 이는 불경에 가까운 오만입니다..그러나 또한 그것은 춤에 대한 한없는 겸손입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춤이 택하였으매 거기에 엎드려 따를 뿐. 춤의 부름을 받자옵고 춤의 제단에, 가시밭길에 한 몸 모두를 바치는 것이지요. 그것은 춤의 축복입니다. '춤과 나' 사이의 헌신적 교류, 그것은 춤을 춤답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대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좁게는 춤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에 대한, 춤의 살(煞)에 대한 싸움입니다. 춤의 신명은 춤이 나를 택하여 살과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분노가 춤의 목숨을 되살리는 첫 디딤입니다.
(제8회, 2002년 3월 22~24일,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
우리는 우리춤 언어로 춤을 춥시다
우리춤이 전통사회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인 1935년에 한성준선생님은 당시 전통춤을 집대성하여 첫무대 공연을 올리셨습니다. 나이 예순둘이셨고, 춤 종목이 20여 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춤의 백미로 꼽히는 승무와 살풀이도 이때 무대공연물로 첫선을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후 한성준선생님이 추신 춤 종목은 제목이 알려진 것만해도 아흔 가지가 넘습니다.
선생님은 ‘춤에서 음악장단이 나왔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리듬의 원천이 몸움직임이라는 것이지요. 몸짓말이 율동을 낳는다는 것은 우리 춤언어의 바탕이 무한한 생성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려서 어릿광대놀음과 줄타기와 토속춤을 익혀서 장단의 명인으로 명고수가 되었고, 명고수와 피리명인으로 명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체득하고 섭렵하고 익힌 종목은 무속가무악을 비롯하여 예인, 재인청 가무악, 놀량패 가무악, 기방 가무악, 판소리 창극 민요 등의 노래춤, 풍물, 탈춤, 불교의례춤 등 실로 당시 한국 전래춤의 전 종목에 이른다 하여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의 춤언어는 전통사회 춤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야말로 풍성하고 다양한 언어 구사입니다. 선생님은 이를 집대성하고 하나하나 무대작품으로 창작해내신 것입니다. 소재와 주제의 광활함도 이에 따른 결과입니다. 지금은 승무, 살풀이, 학무, 태평무로 압축, 선택되고 있을 뿐 선생님의 풍요롭고 다양한 춤언어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춤 활동하는 분들이 무슨 말을 쓰고 있는가. 문학자가 훈민정음 이래 시대의 변천을 거듭하며 질게 내려온 우리말을 잘 쓰고 있듯이, 한국에서 춤 활동하는 분들이 이 땅에서 잘 소통될 수 있는 친근하고 또렷하고 아름다운 우리춤의 언어를 써야하지 않겠는가, 한성준선생님의 춤을 생각할 때마다 이 점에 무엇보다 먼저 깊은 뜻을 되새기게 됩니다. 선생님은 음악의 장단마저도 춤에서 나온 것으로 보시면서, '3천 뼈마디의 춤'이라든지 '춤은 노동의 연장'이라든지 하셨지요. 학춤만 보더라도 비록 궁중학춤에서 틀을 잡았지만 새로운 학춤을 위하여 학을 실제로 방안에까지 들여놓고 그 생태를 면밀하게 관찰하셨다지 않습니까. 하늘과 사람에 대한 공경심만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공경심이 그 춤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천한 노릇을 하는 자로서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간절하게 우리춤의 바탕을 지키시고 근대 춤언어로 새로이 갈고 닦아 전통춤을 근대 예술세계로 이행, 정립해 놓은 것이지요. 우리 춤언어로 춤을 추고, 우리 춤언어를 공경하기를 우리춤의 새내기들에게 간곡히 요망합니다.
(제21회)
오늘날 소통하기에 알맞은 현대한국 춤언어를 찾아서
한국전통춤은 어떤 양식의 춤을 전공했던 간에 우리 모두의 공동유산입니다. 거기서부터 창작의 물줄기를 대어 우리춤의 역사적 지속성을 지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지금 대학춤교과에 한국춤, 현대춤, 발레, 재즈 등 춤양식의 3분법 또는 4분법에 따라 전공을 가르고,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춤실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춤언어와 춤양식의 기초교육실습으로는 각기 그 독특함을 살려내야 하나, 새로운 춤 창작 상에서는 그 경계가 허물어지도록 부추기는 것이 춤언어의 소통력과 확장을 위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한국에서의 춤을 전통춤과 외래춤으로 놓고 이를 가려 쓰면서 현대 한국 춤언어의 정립과 확장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말과 외래어를 구분하여 언어구사의 기본틀을 명확히 하면서 오늘날 소통하기에 알맞은 현대 춤언어를 찾아 살려나서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전통춤의 여러 갈래들을 춤언어로, 양식으로 두루 섭렵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지금 한국춤 전공자의 주요 기본인 궁중무, 승무, 살풀이, 태평무로 국한되어서는 하릴없는 얘기가 되고 맙니다. 더구나 한국춤의 기본의 기본이라 하여 입춤(허튼춤), 신무용류의 기본춤(한국춤 전공교수마다 제각기 만들었다는)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일찍이 80여년 전 한국 근대춤의 초기 때 한성준 선생께서 창작하신 춤 종목은 제목만으로도 아흔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체득하고 익히신 종목은 궁중무를 제외하더라도 각 지역 무속 가무악을 비롯하여 예인, 재인청 가무악, 놀량패 가무악, 기방 가무악, 판소리 창극 민요 민속악의 노래춤, 각 지역 풍물굿, 각 지역 탈춤, 불교의식춤, 동학, 증산교 등 민족종교의례춤 등 실로 당시 한국춤의 전 종목에 이르고 있습니다. 풍성하고 다양한 우리 춤언어를 구사함으로써 당대 민중 삶의 이모저모를 예술춤으로 풀어 엮은 것이지요. 선생님이 물려주신 춤 언어 유산이 한국 현대 창작춤의 수원지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춤사회에 첫걸음을 디딘 새내기 춤꾼 여러분, 앞에 다가오는 예술창작의 고뇌와 갖은 사회적 시련은 우리말로 된 춤으로, 자신의 말인 오늘 춤으로 풀어 헤치시길 바랍니다.
(제24회)
오늘 이 땅의 〈칼노래 칼춤〉을 기약하며
우리 전통춤에는 여러 갈래의 칼춤이 있습니다. 신라 때 황랑창무에서부터 궁중의 검기무, 그리고 상여 앞에서 길을 터주는 휘쟁이춤, 사람 목을 따는 망나니칼춤이라든지, 기방이나 교방청에서의 검무, 무당춤의 칼춤, 무예로서의 칼춤 등 여러 가지가 있지요. 요즘 들어서는 여러 지방관아나 기방에서 추던 검무가 새삼 발굴, 복원되어 우리춤의 날카롭고도 덤덤한 풍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올 초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밀양 검무 기생 운심이와 관원과의 숙명적인 사랑 얘기를 소재로 하여 우리 사회의 대통합을 간절하게 그린 소설도 나왔습니다.(김춘복의 장편소설 〈칼춤〉) 또한 칼춤은 몸운동의 지극한 현실적인 무기이자 표현인 무예가 어떻게 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잘 짚어내줍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들고자 하는 것은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추었다고 하는 검결(劍訣)입니다. 수운 신사는 1860년 4월 5일 경주 용담정에서 하늘의 소리와 형상을 깨친 이후 ‘불온사상’ 포지자로 몰아쳐 이듬해 겨울 남원 교룡산성의 은적암에서 피신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도피와 변혁기운의 검붉은 심사 속에서 달빛 받아 칼노래 칼춤을 스스로 만들어 부르고 춤추고 이로써 심신을 닦은 것(守心正氣)입니다. 검결은 나중 동학교도들이 예배 양태로, 또 자기 심신 수련의 한 방편으로 추었다고 하지요.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비산비야의 그리 높지않은 구릉에 올라 상차림을 진설하고서는 13자 주문을 외고 약물을 마시고 소지하면서 심신이 그윽해지면 이윽고 목칼을 양손에 잡고 칼춤을 추는 것입니다. 한 번 훌쩍 뛰어 허공에 오르면 한참 후에야 지상에 내려왔다고 하는데, 동학농민전쟁 때는 농민군 훈련이나 모의전투의 한 방식(전쟁춤)으로 쓰이기도 했답니다. 이 칼춤은 한울님을 모시는 이마다 누구나 하늘임을 깨친다는 동학사상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주는 춤입니다. 또한 이 춤은 생명을 수호하면서도 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춤입니다. 수운 신사는 혹세무민죄로 대구 장대에서 처형을 당하였는데 그때 "요상한 노래를 부르고 칼춤을 추어 사람을 현혹시키고 국정을 모반했다"라는 죄목이 덧씌워졌습니다. 동학을 내세우고 혁신사상을 포지한 자로서 죽임에 이르게 된 죄목의 확증이 바로 이 칼노래 칼춤이라는 겝니다. 그만큼 칼춤이야말로 잘못 추다가는, 아니 제대로 추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춤이라는 점에서 죽음과 삶이 서로 맞물려 교차하는 역설적인 생명의 춤입니다. 그 〈칼노래 칼춤〉은 곡조와 춤은 남아있지 아니하고 노래가사만 전해지고 있어 그 내용을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만년 만에 때가 이르렀으니, 나서서 칼노래 칼춤으로 호호탕탕한 기운을 펼쳐 해와 달을 희롱하고 우주 만물을 뒤덮을 새 어느 누군들 당할 자가 있겠는가" 장쾌한 변혁 기운을 담지한 이의 자기 결단의 춤으로서 사회개혁, 우주 개벽의 웅혼한 기상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입니다. 이 〈칼노래 칼춤〉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땅은 150년 전의 칼노래 칼춤이 죽음의 되죽임을 통해 되살아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한평생 춤의 길을 가고자 하는 새내기들에게 오늘 이땅은 이 시대의 〈칼노래 칼춤〉을 노래 부르고 춤추길 갈구하고 있습니다.
(제22회)
팬데믹 시대 춤을 춘다는 것은
코로나19 역질로 인한 팬데믹 사태는 춤예술 자체의 생존력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몸과 몸 움직임)의 위축이나 질환은 그대로 춤을 쪼그라뜨리고 병들게 합니다. 춤의 위축이나 불건강함은 세계인식의 위축과 인간 행위의 불건강함을 뜻합니다. 몸과 몸 사이의 격리조치는 현장예술로서의 춤의 목을 비틉니다.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팬데믹 사태를 극복하는 지속적인 대응방식인 한, 춤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생존권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쩌면 춤을 포함하여 현장예술 장르인 연극이나 음악 연주, 뮤지컬, 서커스, 나아가 온갖 양태의 축전과 의례, 페스티벌 등이 공동으로 부닥친 각각의 정체성 위기와 생존의 문제입니다. 특히 청관중과 공동으로 문화복합공간을 짜나가는 마당극이나 거리극, 퍼포먼스 등 판의 예술은 자신의 존립 근거조차 위협받는 상황으로 내몰릴지 모릅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격리조치로 제대로 춤출 수 없게 된 상황에 어떻게 대항하겠는가가 초두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 대응 방안은, 그렇게 만든 상황 조건을 불러가지고 그것으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곧 팬데믹 사태를 불러일으킨 반생명적 요인을 소재로 하고 매체로 하여 춤을 추는 것입니다. 이는 처용설화가 잘 얘기해주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죽음과 같은 역신의 행태를 현장 목격하고 이와 대결하여 역신을 가무로 감복케 하여 물리치는 병굿 같은 것이지요. 팬데믹 시절에 춤을 되살리는 일은 팬데믹 사태를 불러와 춤을 제대로 못추게 하는 '그 죽임의 세력‘을 죽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반생명의 척결과 생명운동의 펼침입니다.
춤은 살풀이를 통한 신명의 쟁취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춤출 수 없는 죽음을 춤춘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역설입니다. 그러한 춤이야말로 우리의 의식과 일상 속에 파고들어 있는 자연질서 파괴와 생체 에네르기 착취, 과학문명 만능주의 등을 도려내고, 해원상생의 공동체 의식으로 치유하면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사물을 공경하는 삼경(三敬) 정신의 실천으로 새 삶을 실천하는 새로운 생명 평화운동인 것입니다. 인간 삶의 사회적 거룩함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춤이 그러하기에 춤은 살아있음의 자기확인이고, 살아있음에 겨운 신명의 기화(氣化)입니다. 이는 생명과 미적 평화와 신명 천지입니다.
(제27회)
너나없이 미물조차 서로 신명나는 세상 삶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술 속에서 아름답게 사는 것보다 아름다운 사회 속에서 신나게 사는 것이 먼저이고 궁극입니다. 이 땅의 젊고 푸른 새내기의 춤은 못난 춤으로 이를 이루어내려고 몸부림합니다. 보는 이마다 몸서리치도록 동의, 동감하고 살 맛에 흠뻑 젖어듭니다.
위와 같이 요약하여 봄꽃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