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개인사진전으로 엿본 내 나름의 미학
이만주_춤비평가

“저질러.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야. 인생 그렇게 길지 않아.” 한국의 여자 피카소라 일컫는 지인의 말이다. 남의 사진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만 하다가 정작 자기 자신은 남들 눈이 두려워 전시회 한 번 못 열고 생을 마감하는 사진작가들이 있다. 지나고 보니 지난 연말연시에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제5회 개인사진전’(2022.12.28.~23.1.3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3층 3관)을 한 것은 이모저모 좋았다.

그야말로 갑작스레 다섯 번째 개인사진전을 하게 되었었다. 처음에는 평소 알고 지내는 전시기획자가 연말연시에 여러 화가들의 미술 작품으로 전시회를 하니, 사진 두 점을 찬조 출품하라 해서 별 부담이 될 것 같지 않아 승낙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이 생겼던지 다시 요청하기를 작은 전시실 전체를 사용해 개인전을 하라는 것이다. 이 확정적 언질을 받은 것이 12월 28일부터 시작되는 전시회, 5~6일 전이었다.



〈바다에서 온 여자〉 (홍선미 안무, 2012) ⓒ이만주



후배 사진작가가 자기 일처럼 전적으로 도와주어 전시회는 대과 없이 치러졌다. 우리는 매사 즉흥적이다. 어떤 원로 연극평론가가 들려주었던 경험담이 생각난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연극제를 관람하러 갔었다고 한다. 한국의 연극단이 야외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던 날 아침, 해당 장소에 가보니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놀라움과 함께 이렇게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야 과연 저녁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녁에 또 한번 놀랐다고 한다. 막이 올라가고 연극이 진행되는데, 언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마련했는지 무대장치도 근사하고 손색없는 연극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 이것이 한국인의 저력이구나 생각했다는 것. 즉흥에 강한 것이 한국인의 개성이자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이번 갑작스런 사진전이 가능했던 것은 사진의 아날로그 시절, 전세계를 다니며 찍어놓은 슬라이드 필름과 디지털 시대로 바뀐 후 촬영해놓은 사진 파일 수 만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경우 이미 중학교 때, 앞에 주름이 있는 ‘레티나(Retina) 접이식 카메라’로 흑백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니 사력(寫歷)이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우주에서의 잠〉 (2010) ⓒ이만주



사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또 어떤 것이 역사상 최초의 사진인지에 대해서는 주장이 분분하다. 어쨌든 대략 200여 년이 된 사진의 역사에서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카메라가, 즉 기계가 똑같이 재현해 주는 것을 예술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했었던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진과 관련해서는 “예술이란 무엇일까”를 곰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진이 복사기와 같이 판에 박은 듯한 복사 기능만 갖고 있다면 예술이 될 수 없음이 맞다. 하지만 같은 사물,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어떤 구도로 어떤 방식으로 촬영하였는가에 따라 사진의 결과는 다 다르다. 많은 식자들이 사진의 편향될 수 있는 의도와 오도될 수 있는 영향력을 비판했다. 즉 사진도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찍는 사람의 의도대로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얼마든지 상징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모든 특성을 인정하게 되면 사진도 엄연히 예술이 되는 것이다.

한 시대 미국 지성계의 여왕이었던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은 1977년에 펴낸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라는 책에서 “사진작가가 현실을 비추는 데만 관심을 가지려 해도, 은밀히 작동하는 자신의 취향과 의식마저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을 했다. 사진작가도 각자의 철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주관적인 작업을 하기에 예술가인 것이다. 카메라는 도구일 뿐이다.



〈갈매기들의 독서〉 (2013) ⓒ이만주



30여년 전만 해도 사진에 손을 댄 것이 발각되면 상을 주었다가도 취소되는 경우가 있었다. 즉 사진은 정직해야 하며 합성 또는 삭제 등의 조작을 하면 사기행위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오늘날은 소위 포토샵으로 마음껏 수정, 조작해도 되며 현상과 인화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기교를 부려도 된다. 인간의 예술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도 인지가 발달하면서 계속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여타의 문명의 이기가 그러하듯 카메라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카메라도 다른 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몇 달 간격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된다. 브랜드 뉴(brand new)이었던 카메라 신제품이 6개월 지나면 백 넘버, 올드패션드(back number, old-fashioned)가 되어버린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오늘날의 카메라는 별의별 수많은 기능을 갖는다. 전문작가들조차 그 기능들을 모두 숙지할 수 없어 일부 기능만 사용할 뿐이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춤 공연을 찍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었지만 요즘은 누구나가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좋은 춤 사진을 찍었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도 계속 발전되어 스마트폰으로도 춤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좋고 비싼 최신의 카메라라야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그 옛날 원시적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에도 무수한 걸작들이 있다. 사진의 역사에서 보면 유명 사진작가들은 70~80년 전, 지금 보면 한없이 원시적인 아날로그 카메라로도 현재 이 시점에서 보더라도 감탄할 만한 명작품들을 남겼다. 결국 예술이란 예술가인 작가의 안목과 능력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인연이라는 끈〉 (2005) ⓒ이만주



나 자신 왜 사진에 빠졌을까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인데 순간을 정지시켜 보관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둘째는 내가 세상에서 원하는 부분을 선택하고 재단한다는 것이 특권처럼 느껴졌다. 셋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이 탄생한 후, 모사와 기록의 역할을 했던 회화는 무한한 자유를 얻어서 추상이라든가 초현실주의로 나아갔다. 그런데 사진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이제 사진 예술에서도 주제, 대상, 기법, 테크놀로지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세상을 다니면서, 세계를 떠돌면서 있는 그대로를 찍기에도 바빴다.

이번 전시회를 도와주던 김수길 사진작가가 “형은 짠한 사진들이 목표네”라고 한마디를 했다. 또 누군가가 “다른 이들이 형님처럼 세계를 다니면서 이런 사진들을 어떻게 찍습니까?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얼마나 부지런했을까? 덩치 큰 서양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배짱을 부렸을까?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이 셔터를 눌렀을까? 사진들에서 다 보여요. 이런 사진들을 못 찍으니 별의별 장난들을 다 치는 거예요” 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사진 미학이 있는 것이고 실험은 예술의 생명이다. 예술의 실험이 계속될 때 인간의 세상은 그만큼 확장되는 것이다.



〈3인의 바디페인팅〉 (1999) ⓒ이만주



한동안 기내지, 잡지, 사보에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하다 보니 사진들을 제대로 정리치도 못하고 세월이 갔다. 2007년, 원로 그래픽디자이너이신 김호근 선생이 내가 그간 어떤 사진들을 찍었는지도 모르시면서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4월 23일)을 기념하여 사진전을 해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그 제의를 받고 슬라이드 필름들을 뒤져보니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진 그가 운영하던 서울 인사동 ‘갤러리 VOOK’S‘에서 〈책을 보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제1회 개인사진전을 했다.

그리고는 제2회 사진전에서 제4회 사진전까지는 춤꾼들의 춤 작품이 소재였다. 제2회 개인사진전은 고 이숙재 교수의 배려로 2009년 5월 21일~31일까지 서울 개포동의 춤전용 M극장 로비에서 ’춤추는 사람들, 그 무대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했다. 그런 다음 매년 춤사진전을 했다. 2010년 9월 29일~10월 12일까지 ’무대 위,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제3회 개인사진전을 할 때는 달리 생각을 했다. 사진전도 그렇고 모든 전시회라는 것이 첫날만 사람들이 모이고 그다음에는 별로 관람객이 없다. 나는 대중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대학로 ‘맥도날드’ 뒤, 지하에 있는 ‘종로 보쌈 빈대떡집’(지금은 없어짐)의 안 벽을 이용하여 사진전을 했다. 장소를 사람들로 떠들썩한 빈대떡집으로 바꾼 것도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제4회 개인사진전은 2011년 12월 12일~26일까지 〈무대 위, 빛과 그림자 2.0〉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장소에서 했다. 3, 4회 모두 인화지에 인화한 것이 아니라 각기 크기가 다른 큰 헝겊에 소위 실사라는 것을 해서 전시회를 했다.



〈날자, 하늘을〉 (1998) ⓒ이만주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나는 사진을 10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사진의 스승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때 서울 충무로에서 영화 스틸사진과 주연급 여배우의 초상 사진을 모조리 도맡아 찍다시피 한 김한용 선생에게 몇 달 사진을 배웠었다. 애주가인 선생과 술자리에서도 많은 얘기를 들었다. 선생이 하셨던 말씀 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다. 사진의 철학과 미학은 각자의 몫이고 “사진이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화면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프로라면 초점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의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초점이 빗나가지 않으려면 셔터 시간을 가능한 짧게 주거나, 감도 높은 필름을 사용한다든가, 아예 삼각대를 쓴다든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도 무거운 삼각대를 들고 다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서 내 사진들을 고르던 후배는 소위 핀트가 나간(늘 사용하는 말이나 출처가 분명치 않은 말임) 두 장의 사진도 골랐다. 나는 “이것들은 핀트가 나갔는데” 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평생 사진의 길을 걸어온 후배는 “핀은 나갔지만, 이 ‘거리의 인형극’ 사진은 그래서 오히려 더 유화 같다, ‘바디 페인팅’ 사진은 핀트가 조금 안 맞았지만 전체적인 조화와 색감이 기가 막혀. 이런 세 명이 벌거벗고 바디 페인팅을 하는 사진은 아무나 쉽게 찍는 게 아니야, 핀트가 나갔으면 어때” 한다. 나는 후배의 말에서 뒤늦게 무언가를 느꼈다. 예술이란 결과적으로 좋은 느낌을 주면 괜찮은 작품이다”라는 것을 생각했다.

한국 소나무숲 사진으로 유명한 전 서울예대 사진학과 B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진학과 대학생들의 졸업사진전 평가사정 때 보면, 같은 작품을 놓고 한 교수는 분명 A를 주었는데 다른 교수는 D를 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서 친소관계, 서로 간의 감정 등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의해 정직하게 사정하는데도 평가의 편차가 크게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예술 아니겠는가? 라는 얘기를 했다.

예술 작품의 평가란 그렇게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니 상(賞)에서 밀렸거나 공모 심사에서 뽑히지 않았을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으레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위해 용맹정진하는 일을 멈추지 말 일이다.

이만주

춤비평가. 시인. 사진작가.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국영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적인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과 「삼겹살 애가」, 「괴물의 초상」을 출간했다.​​​​​

2023.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