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가 작업한 춤작품이 보는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연결된다는 것은 무용가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연결되는 것에 공감했던 일이 있다.
2000~2006년, 내 무용단이 상주해 있던 La Chapelle이라는 곳에서 나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생각하고 있던 여러 구상들을 직접 실습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당시 내 무용단은 그 장소의 상주단체여서 미리 예약을 해 놓으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2004년에 우연히 즉흥의 밤에서 만나 친구가 된 프랑스 첼로 음악가 한명과 ‘음악과 춤’이라는 일반적인 주제로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가지를 시도하면서 작업했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서 꼭 공연 날이 정해지지 않아도 미리 작업해두는 것을 좋아 했었다.
어떨 땐 내 즉흥 무용에 음악가도 즉흥으로 음악을 만들고, 그 즉흥 음악을 녹음하고, 어떨 땐 그녀의 음악에 춤을 추면서 음악의 선율이 나에게 어떤 움직임을 하도록 하는지 등 모든 작업들은 녹음과 비디오로 녹화했었고, 집으로 돌아가서 각자의 부분을 검토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 밀접하게 얘기도 하고 실습도 하면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다 2005년 몽펠리에무용페스티벌에서 몽펠리에에 있는 무용단들의 작품을 여러 편 선정한다는 공모 소식이 왔다. 난 그동안 준비해 왔던 그 첼로 음악가와의 작업으로 신청했는데, 선정되어 공연하게 되었다. 2004년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9개월간 준비한 춤과 음악, 철학, 정체성을 주제로 한 작품 제목은 〈영혼의 문〉이었다.
남영호 〈영혼의 문〉(2005) ⓒ남영호 |
그 당시 난 춤에 대한 정체성 섞인 물음들을 많이 품고 있었다.
‘난 누구인가?’에서부터 시작해, 몸의 언어로서의 춤이란 무엇인가? 그런 춤은 나에게 뭔가?,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 이어야 하는가? 나의 춤 세계는 무엇인가? 난 어떤 춤을 추고 싶은가? 춤 작품을 통해 난 관객들과 무엇을 나누려 하는가? 인기 있는 춤을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춤을 만들어야 하는가? 나만의 춤이란 어떤 것인가? 등 춤에 대한 끝없는 물음들로 잠 못 드는 밤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물음들은 ‘고민’ 이 아닌 ‘호기심’이었다. 내가 호기심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내가 했던 물음들이 만약 ‘고민’이었다면, 난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했을 것이다. 근데 나는 그 당시 충분히 잠도 못 자는데 전혀 피곤해하지 않으며 하루를 생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올리게 된 작품 〈영혼의 문〉은 오페라대극장에서 하게 되었다. 몽펠리에무용페스티벌에 초청되면 페스티벌이 가진 극장들 중 예술가들에게 먼저 어느 극장에서, 왜 하고 싶은지를 물어본다. 그후 시간표 조율을 통해 최종 극장이 선택된다, 난, 〈영혼의 문〉 작품은 어쩜 내가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강하게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라 역사가 있고, 긴 시간을 가진 오래된 극장에서 하고 싶었다. 오페라대극장은 오페라 성악가들도 힘들어 하지만, 춤추기가 엄청 어려운 극장이다. 왜냐면 이태리식 옛날 극장이라 관객들에게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무대가 평평하지 않고 4% 이상의 경사가 있다. 그래서 빠른 움직임을 할 때는 잘 못 느끼지만, 아주 느리게 하는 움직임, 그것도 몸 근육의 힘을 빼고 하는 느린 움직임을 할 때면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서 버텨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공연이 끝나고, 여러 무용 관계자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 페스티벌 디렉터가 나에게 그 다음 날 만나자고 했다. 그 디렉터는 프랑스 무용계에 그 당시 중요하게 영향을 주는 디렉터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난 기꺼이 다음 날 만남의 장소인 오페라극장 근처 카페로 갔다. 그 디렉터는 먼저 와 있었고 나에게 내 작품에 대한 얘기와 소감을 말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하지만 작업하면서 항상 생각했었던 나의 물음들,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선 내가 했던 공간구조들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마치 내 작품의 대변인인 것 같았다. 그 분은 나에게 많은 용기를 줬었다. 하마터면 나는 그 분과 사랑에 빠질 뻔 했다. 그 감격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아련하게 남아있다. 어떻게 나 혼자서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 이렇게 똑같이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다니!
남영호 〈한국 여자, 달 항아리〉 (2010) ⓒ남영호 |
그 이후도 나는 또 다른 나의 작품들 〈한국 여자, 달 항아리〉들의 작품에서도 내가 말로 하지 않았었고, 프로그램에도 적지 않았지만 작업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들에 대해 작품을 본 뒤에 관객들과 기자들에게서 얘기도 들었었다. 그 후로 난, 작품을 만들 때, 그 작품을 만들고 싶은 이유부터 시작하여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를 나 스스로에게 더욱 확실하게 한다. 그래서 작품의 동기부여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프랑스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 “(무대에서) 자신과 남(관객)에게 정직하라”. 나는 작업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특히 젊은 후배 안무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작업하면서 내가 하는 것에 대해 진심이고 정직하다면, 믿고 나가라고! 의심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고! 당신들이 진실로 하는 모든 행위와 작업들은 그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말하지 않더라도 다 보인다고! 그래서 “진실은 숨어 있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언젠가, 어디 선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날 때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보여 주라고!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