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뉴욕에서 기획자로 살은 경험에서 잊히지 않는 것이 현지 패션과 물가이다. 뉴욕에 공연하러 갔다가, 아님 유학하던 중에 혹시 인상적인 패션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단기간의 여행에서는 피부로 느끼기 힘든 뉴욕의 물가는 어느 정도 살인적이다. 당분간 더 그럴 것 같다. 뉴욕에서 살려면 자연히 물가와 싸워 이기는 요령도 터득하게 된다.
뉴욕 하면 많은 사람이 ‘패션’을 떠올린다. 패션의 유명세는 뉴욕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맨해튼 거리의 사람들이 마치 모델처럼 꾸미고 다닐 것이라 상상하게 만들지만, 실상 내가 오래 경험한 ‘뉴요커’들의 옷차림은 비교적 수수했다. 물론, 금요일 저녁 특별한 파티가 있다거나 갑자기 ‘여기서?’ 싶을 만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드레스업한 사람을 종종 마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뉴요커는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일상적인 옷차림인 경우가 더 많다. 특히 겨울이 되면 멋쟁이로 가득할 것만 같은 뉴욕시티(NYC)의 길에는 빌딩숲 사이로 불어오는 ‘골바람’을 이겨내려 검고 긴 아우터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물론 조금은 남다른 ‘패션센스’를 겸비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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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라 하면 흔히 ‘옷’을 떠올리지만, 패션의 어원은 라틴어 ‘팍티오(fáctĭo)’로서 만드는 일 혹은 활동, 유행을 의미한다. 뉴욕 패션 위크(NYFW)는 뉴욕 맨해튼에서 매년 2월에서 9월 사이에 열리는 패션 주간이다. 파리, 런던, 밀라노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위크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패션디자이너협의회(CFDA)는 1993년에 ‘뉴욕 패션 위크’라는 현대적 개념을 만들었는데 사실 런던과 같은 도시들은 이미 1980년대에 패션 위크라는 단어와 함께 그들의 도시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NYFW는 1943년에 설립된 ‘프레스 위크’라는 훨씬 오래된 행사를 기반으로 하기에 특별함이 있다. 세계적인 규모로 볼 때, 대부분의 비즈니스 및 판매 지향적인 쇼와 일부 오트쿠튀르 쇼가 뉴욕에서 열린다. 2016년에 조사된 바로는 뉴욕 패션 위크가 뉴욕시에 미치는 연간 경제적 영향은 8억 8700만 달러로 추산되었다.
Sex and the City ⓒwikipedia |
우리 대학 시절, 국내에서 선풍적인 유행을 몰고 왔던 미드(미국드라마의 줄임말)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Carrie Bradshaw)가 한껏 꾸며 입고 나와서는 맨해튼 한복판에서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발레화처럼 생긴 플랫슈즈를 꺼내 신던 모습이 참 의아해 보였었는데, 머지않아 미국살이를 경험하면서 그 이유가 고르지 않은 맨해튼 인도를 걷기 위해, 중구난방 자리하고 있는 맨홀 구멍에 구두 축이 끼어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피해서였구나 라고 공감하기도 했다. 그렇게 뉴요커들에게 패션은 환상적이기도 또, 현실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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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뉴욕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특히 주거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데, 뉴욕시티 안에서는 웬만큼 치안 좋은 곳에 자리한 스튜디오가 한 달 3~4000불을 웃돈다. 요즘 환율로는 우리나라 ‘원룸’(방이 없는 일체형) 정도의 규모 방 하나가 월에 500~600만 원인 셈이다. 그 때문에 많은 유학생과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와 더 넓은 생활공간을 위해 퀸즈, 브루클린, 뉴저지 등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근교라 해도 녹록하지 않다. 맨해튼 중심보다는 반값, 혹은 2/3 가격이라고는 해도 그마저 월 2~300만원 가까운 금액을 낸다고 생각하면 엄청나다.
뉴욕 물가 중에서 또 한 가지 살인적으로 느껴지는 것 하나는 외식비이다. BUNGALOW 2022년 2월 자료에 따르면 맨해튼 거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130% 이상 더 많은 외식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맨해튼에는 정말 많은 레스토랑이 있는데 맨해튼에서 한번 식사할 때 드는 비용은 주요리, 음료, 팁을 포함해서 한 사람당 대략 3~40불 정도가 든다. 물론,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7~80불도 우스운 가격이나 평범하고 대중적인 음식 한 끼를 먹는데도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유학생들과 예술가들이 외식 한번 하려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차이니스 푸드(Chinese food)와 같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포장 음식이 발달한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물가에도 한국보다 저렴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바로 식료품과 의류, 신발 등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을 오시는 분들, 조금 긴 여정을 머무르신다고 하는 분들에겐 단기 렌트의 일종인 서블렛(주인이 집을 비우는 때, 잠시 임대하는 것을 뜻함)이나 에어비앤비(AIRBNB) 같은 조리가 가능한 주방이 딸린 숙소를 찾아보라 권하곤 한다. 신선한 야채, 과일 그리고 육류 등과 같은 식재료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한국보다 좋은 품질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유독 많은 뉴욕 시내에서 그로서리 스토어(grocery store)에는 작은 양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식재료들도 많기 때문에 여행자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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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나 신발 또한 그렇다. 한국의 물가 대비 미국, 유럽 등의 중저가 의류 브랜드들이 국내에선 상당히 높은 편인 것을 고려하면 꽤 괜찮은 쇼핑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달러 환율이 치솟은 상황에서는 좀 다르겠지만, 예전에는 한국에서 공연차 오는 무용가 중에 텅빈 수트케이스를 가져와 저렴한 의류들을 구입해 잔뜩 채워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무용인들이 사랑하는 트레이닝 복이나 스포츠웨어들도 한국에서보다 훨씬 저렴해 뉴욕에선 쇼핑의 즐거움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가지 쇼핑 팁을 소개하자면 좀 더 저렴하게 의류 및 신발을 사고 싶다면 뉴저지로 가면 된다. 그 이유는 뉴저지가 의류와 신발에 한하여 면세지역이기 때문이다. 뉴저지는 뉴욕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대중교통이 많아 접근하기 쉽다. 또한, 뉴욕의 판매세는 8.875%지만 뉴저지의 판매세는 6.625% 이기 때문에 의류, 신발 이외의 다른 물품도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 달러 환율이 2008년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고공행진 중에 있다. 내달 뉴욕행을 앞둔 필자의 마음은 어느 때 보다 무겁다. 예전 같았으면 뉴욕은 쇼핑!이라며 방문하는 무용가들에게 이곳저곳 친절한 안내를 했겠지만, 이번 여정에선 쇼핑은 고사하고 지불해야 하는 숙소비용조차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인들이 말하는 최근 물가 상승 체감률은 실제로 매우 가파르다고 한다. 언제쯤이면 뉴욕방문이 다시 평온해질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번 여정에서 제발 더는 달러가 천장을 뚫고 올라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간무용단체의 해외진출을 돕는 비영리기관인 코리아댄스어브로드의 박신애 대표는 무용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프로듀서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뉴욕92Y 하크니스 댄스센터에서 아시아/코리아 릴레이티드 프로그램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국제 솔로 댄스페스티벌인 ‘모노탄츠서울’의 예술감독, 프랑스 파리 ‘S.O.U.M(Spectacle Of Unlimited Movements)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