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13
프랑스 사람 눈에 비친 한국, 한국 사람
남영호_재불무용가

그동안 30년 이상을 프랑스에 있으면서 프랑스인들에게서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인상적인 관찰들을 듣게 된다. 그 말들을 새겨 듣고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없지 않았으나, 가급적 그대로 소개해본다. 그들의 우정어린 충고를 대하면서 어느새 애국자가 되는 나 자신을 느낀다,

자키 타파넬 안무가가 오래 전에 한국에 왔을 때 나에게 말했다. “한국에는 테크닉이 훌륭한 무용수들이 많다. 그런데, 자유로운 무용수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 물었다. “그들은 진정 무용하면서 행복한가?”라고. “얼굴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난 당시에 그녀의 말에 아무 답도 못한 것 같다. 이 질문에는 지금도 쉽게 답을 못할 것 같다.

몽펠리에무용페스티벌 부예술감독이랑 2005년 10월 서울에 왔을 때 그녀가 한 말. “나는 12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프랑스, 유럽에서도 볼 수 있는 무용가들, 작품들을 초청하고 싶지는 않다. 꼭 전통무용이 아니더라도 한국 안무가들 그들만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한국 안무가들은 돈이 많은가 보다. 작품에 안무(작업, 연습) 보다는 무대장치와 의상 같은 것에 예산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테크닉이 좋은 무용수들은 많은데, 오리지널한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 “너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몽펠리에무용페스티벌에서 제작 지원을 받으면서 초청받은 유일한 안무가니까”라고.

또 다른 안무가가 물었다. “한국의 무용가들은 종종 저녁에 무용작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인가?” “저녁은 하루를 보내고 오히려 쉬는 시간인데 그때 작업하면 밀도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까? 한국에는 한 사람이 많은 일(무용교수, 안무가, 무용가)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한 가지만 하기도 결코 쉽지 않은데 아주 놀라우면서도, 과연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들을 다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고. “한국의 무용가들이 벤츠, BMW 자동차 등 비싼 외제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 그런 비싼 자동차를 가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한국의 무용가들은 돈을 많이 버는가, 어떻게 돈을 많이 버는가?”라고 물었다. 난 아무 답을 못했다.

수잔 버지 안무가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서울의 박물관과 극장들을 보면서, 그리고 한국 식당을 다녀보면서 몇 가지를 관찰하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네 나라 사람들은 너네 나라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난 그 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랑하는 것을 팔불출로 여긴다. 자랑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 줘야지 스스로 자랑하는 걸 부끄러워한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그 나라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도가 있어야 한다. 잘 되는 것의 시도뿐 아니라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고.

프랑스의 어느 페스티벌 기획자가 당황해하면서 나에게 물어왔다. “저번에 만났던 SPAF 페스티벌의 디렉터 이름이 미스터 김이었는데, 지금은 미스터 최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내가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 하는 페스티벌의 디렉터들은 2-3년 만에 바뀐다”고 말했더니 그가 “프랑스는 한 페스티벌의 디렉터를 거의 10년, 20년은 보통이고, 40년 이상을 하는 디렉터도 많은데, 그럼 한국은 그렇게 짧은 기간에만 페스티벌 디렉터를 하게 되면, 시간이 걸리는 국제 협업 프로젝트나 외국 단체 프로젝트는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어처구니없다며 지은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어느 지인이 한 말. “대한민국은 문화가 있는 나라라는 걸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비싼 음식이 아니라도 여러 반찬이 더불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푸짐한 음식, 반찬을 보면서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음식 문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은 특히 한국의 지방에 가면 더 풍부한 음식 문화를 느낄 수 있다”고. 또 “한국의 지방들도 프랑스의 지방들처럼 아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지방들이 많은데, 그 가치를 잘 개발해서 한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도시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또 어떤 프랑스 지인은 “한국은 아주 다이내믹한 나라다. 그리고 식당을 가더라도 아주 친절한 종업원들이 많은데 그들이 월급과 세금을 어떻게 충당하는지 알고 싶다”고. 또 어떤 프랑스 지인은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닌데 왜 아직도 외국으로 입양을 시키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어느 프랑스 음악 페스티벌 디렉터는 “한국의 음악성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했다”고 하면서, 자기는 비행기 타는 것을 안 좋아해서 멀리 안 가는데, 영국에 가서 한국 음악가의 연주 들을 종종 듣는데, 그 들의 섬세한 음악성은 아주 놀랍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으로서 일본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서 10년 이상 지낸 사람이 한 말. “나는 일본에서 10년을 일했는데, 10년을 일본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한국이 옆에 있어서였다. 나는 주말 휴가를 서울로 아주 자주 갔었다. 일본에서 일하면서 갖는 스트레스를 서울에 와서 많이 풀었었다. 한국 사람, 일본 사람들, 둘 다 모두 거칠다. 일본인들은 정겹지 않으면서 거칠고, 한국인들은 정겨우면서 거칠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즉흥적이고 자기 표현을 한다”고 했다.

다시 밝히지만, 프랑스에 오래 머물다 보니 어느새 애국자가 되어가는 나 자신을 느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애국자가 되게 했는지 정확히 말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한국에서 생기는 조그마한 사건에도 기뻐하고 슬퍼하게 되는 예민한 자신을 느낀다, 특히 프랑스는 사회 전체 분위기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더 강화하는 것 같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많은 외국 나라의 문화행사들을 한다. 그리고, 한국 문화행사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프랑스에 있으면서 이들의 사고방식을 많이도 관찰하고 분석해보았다.

오래전 있었던 에피소드. 프랑스 지중해 남부 몽펠리에 여름의 그 더운 42도의 날씨에 차 안의 에어컨을 안 켜는 걸 보면서 내가 물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차 에어컨을 왜 안 트느냐?” 그에게서 나온 답, “에어컨이 주는 당장의 편안함이 가져올 그 후유증에 대해 생각해 봤느냐? 에너지 소비에다 얼마나 몸에도 안 좋고, 환경보호에도 안 좋은 걸 알지 않느냐? 에어컨은 정말 필요할 때 조금 쓸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해! 만약 너무 힘들면 얘기해. 그때 켤게! 여름은 원래 더운 거야! 창문을 열고 달리면 바람이 불 거야….”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2. 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