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12
진실은 숨어있다
남영호_재불무용가

프랑스에서 느낀 프랑스 문화예술의 철학을 이론적이지 않은, 30년간 이곳 프랑스 프로계에서 직접 활동하면서 나 나름대로 분석한 개인적 의견을 공유하고 싶다. 내 자신도 이 프로세계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이들을 관찰하고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우리 분야가 특수분야이기 때문에 더 특수한 것들을 감안해야 했다.

프랑스 프로무용수로 있으면서 이 프랑스 무용수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점들이 있었다, 가령, 어떤 상황이 처음 오렌지로 시작 했었는데, 어느새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바꿨다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모든 무용수들은 다 노란색으로 가 있는데 나 혼자 처음 의 오렌지를 주장하고 있었다. 안무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항변했다. 왜 한 마디 말 도 없이 그렇게 바뀌었냐고! 거기에 대한 프랑스 무용수의 설명 및 조언, “시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때그때를 후퇴하지 않고 어떻게 잘 적응할 수 있는 게 현명한 것이다.”

내가 프랑스 특수분야 프로로 활동하면서 프랑스의 문화, 예술에서 느낀 것을 세 단어로 말 한다면, 1. 개성, 2. 방향성 그리고 3. 디테일이다.

먼저, 1. 개성에 대해서 말하면, 남들과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하는 도전 의식들, 지식을 생산하는 그런 것이 각각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도 프랑스에서 오래 활동하니 내 정체성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몇해 전 오빠가 9년간 파리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들어간 지 3개월쯤 후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호야, 사람들은 이상하지? 내가 9년간 파리에서 살았다고 내가 프랑스 사람이 되어 온 줄 아는데, 나는 더욱 더 한국 사람이 되어 왔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나?”….

그리고 또 한 가지. 프랑스인의 미적 감각과 기준의 다른 점. 예를 들면, 한국 여자들 중 한국에서 이쁘다는 소리 한번 도 못 들어 본 사람들이 프랑스에서는 ‘이쁘다, 매력적이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꼭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한 것만이 미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아름다움을 보는 시선과 감각의 다양성이 놀라웠다. 내가 제일 우선,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프랑스 춤꾼들의 안무가 선택을 보면, 좋은 무용단에 가려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안무가를 선택해서 가는 것을 선호한다. 유럽에서도 프랑스는 특수하다. 왜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랑스의 문화예술의 철학인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 자기만의 특색(색깔)을 존중하는 때문이 아닐까?

2. 방향성. 물음, 질문,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세미나들은 어찌나 많은지, 이렇게 하면 이건 좋지만 또 이런 문제점이 있고, 그렇다고 저것을 선택하면 또 저런 문제가 있고, 확실한 답이 없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한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 그 후 무엇을 선택하느냐? 난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특히, 우리 분야는 특수 분야라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은 모두 이 분야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걱정하는 식의 여러 토론들! 여러 세미나, 토론들을 통해 깊이 성찰하고, 고민하면 그것을 하기 위한 모든 프로세스들이 저절로 나올 수 있을까?

가령, 예술성을 우선할 것인가? 실용성을 우선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지?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지? 관객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프랑스의 작가와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공연을 통해서, 공연 후 관객들과 공유한다.

3. 디테일.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까다롭다, 복잡하다“고 흔히 표현한다.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일상복과 외출복, 낮에 입는 옷과 저녁에 입는 옷, 장식 들이 다 다르다. 지난 달에 얘기했던 프랑스인의 된장에 대한 생각, 냄새 얘기, 냄새는 나지만 맛은 있다. 이 곳 치즈도 맛은 있지만 냄새가 난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다르다고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모른다는 말도 많이 한다. “난 너의 작업을 볼 기회가 적어서 너의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사람에 대해 말할 때도, 너는 인간적으로는 아주 성격이 좋긴 한데, 예술적 재능은 너무 평범하다는 말을 한다. 사람이 좋은 것과 재능이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거다.

조직(체제) 속의 디테일이란, 특수 분야의 특수한 사정들을 고려, 더 디테일하고 치밀하게 진행한다. 예로서, 국시립 단체의 계약직은 특수하다. 일반 공무원들과 또 다르다. 나이도 제한 되어 있다. 음악: 58 세, 연극: 58세, 무용: 55세. 계약직은 3년. 오디션이나 평가로 계속 유지하거나 아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하고, 이 나이가 되기 전 5년 전부터 이 사람들이 나와서 개별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조직을 나와서 가르치는 것을 하려는 사람, 개인 활동하려는 사람, 그들이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점점 향상되고 순환되며 안일해지지 않고, 한번 들어가면 퇴직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안정적이지만 아주 안일해지지 않으려 하는, 그리고 중간중간에 특별한 연수나 특강 등으로 자극받으며 자신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시스템.

모든 단체가 다 법적인 협회라는 것을 나는 내가 무용수일 때는 몰랐다. 무용단에서는 내 월급 말고도 내 월급의 100%가 또 세금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내가 무용단을 만들고 나서 무용수들과 작업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세금들이 후에 무용수 퇴직금, 의료보험, 연수비, 교육비 등에 들어간다. 그래서 모든 무용수 및 예술가들의 데이터가 나온다. 그리고 정부는 어느 수준을 정해 어디까지가 프로이며, 그들에게는 예술가 실업 수당을 준다. 모두 체계적이고 치밀하며 디테일하다.

어떤 때는 그런 디테일함이 잘 안 보이는 수도 있다. 디테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심히 봐야하는…. 파리에서 제일 멋쟁이는 전혀 튀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입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사람들을 구경할 때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지켜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생각을 하면서 맞춰 입은 것이 느껴진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말 들을 한다. “귀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진실은 숨어있다”고.

내 분야가 예술이다보니 이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내가 들어간 첫 무용단의 동료 무용가는 무용가가 아닌 철학자였다. 그가 말한 몇 가지는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메아리친다.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자리도 남겨둬야 한다.”

나는 묻는다. 프랑스에서 패션쇼를 인터넷이나 잡지로 보면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그렇게 패션으로 유행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디자이너가 얼마나 있는가? 자기만의 개성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

혹시 출발의 시도와 접근법이 다른 것은 아닐까? 내가 현대무용을 하니 공연예술계를 말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공연들이 다 온다. 그 좋은 공연들을 보면서 한국의 예술가, 작가들은 힘이 든다. 자신도 아주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표절도 하게 되고, 작가로서 부끄러운 행동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좋은 공연들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좋지만, 그 좋은 공연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결코 아닌, 몇 십년간의 꾸준한 작업과 신념들, 자기만의 개성이 있었다는 그 뒷면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금방 좋은 작품은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도 세계와 겨룰 재능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언론을 보면 이런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이다. 당장 결과가 안 나올지라도, 이제는 멀리 보며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가 해야 할 진정한 투자란 무엇일까? 전문성을 키워내는 전문가와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5~10년을 두고 키워나가야 한다. 모든 것이 정상적인, 체계적으로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2. 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