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춤이 아니라, 새로운 얘기입니다.
여러분 각자 가지고 있는 얘기가 무엇인지, 여기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떤 동의를 얻고 있는지, 어떤 공감을 얻고 있는지, 그것을 실험하는 무대이지요.
오늘 여러분의 작품들 대부분이 일상생활 동작에서 비추어내 출발한 것으로, 참 신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얘기를 던지기에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구하고 있기에 그렇거든요.
여러분의 일상은 젊고 푸르고 일상에 대한 생각도 젊고 푸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고심참담한 역경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경에 빠져있을지라도, 그것은 역시 젊고 푸른 고뇌의 일상일 따름입니다.
많은 춤꾼들은 이미 기존에 쓰인 단어들, 어휘들, 문장구성법들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 작품도 아마 그런 대목이 적지 않으리라 봅니다. 마는, 내용과 형식이 스스로 일상적이기 위해서는 자기가 눈여겨보고 스스로 익힌 일상적인 동작언어를 토대로 해서 자신의 표현 언어로 나아가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그리고선 이미 배운 춤언어와 상부상조하여 병행하는 것이 순조롭겠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상동작 언어가 표현 언어로 곧 춤화된 언어로 진전되는 과정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춤의 정의는 가장 간명하기로는 일상동작의 율동화라고 하지요. 일상동작에 리듬을 타게 하는 것, 그것이 춤이라고 하겠는데, 그때 장단을 태울 때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일상동작이 가지고 있던 의미입니다.
요즘 흔하게 TV프로 제목에 쓰여지는 말이 하나 있는데, 문해성(文解性), 문해력 이런 말 쓰고 있지요? 일상용어가 아닌, 자못 어려운 말인데, 문자언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비문자언어인 춤이나 연기, 음악언어, 조형언어, 영상언어 등에서도 참 중요한 말입니다.
문학 작품 같은 경우에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나 글들이 의미가 없으면 문학이 아예 안 되듯이, 춤도 의미있는 동작들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너무 춤화하다보니까 리듬만이 강하게 부각되거나 어떤 추상적인 언표로 넘어가 원래 지녔던 의미를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동작의 의미찾기로부터 출발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의미있는 춤을 추게 될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동작하고 있는 것의 그 의미를 잘 살려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그에 가장 알맞은 리듬 속에서 율동을 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가 작품을 짤 때 가장 핵심적인 지점입니다. 과연 그러고 있는가, 그래서 과연 그 잃어버린 문해성을 회복하고 있는가, 잘 춘 춤, 멋있게 보이는 춤 중에는 감성적인 유형의 의미에서는 이미 의미를 떠난 춤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게 어떤 면에서는 현대춤이 지향해온바, 자유운동이고 자연운동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 편 ‘춤도 배워서 추는가’ ‘흥에 즉한, 즉하여 흥한 즉흥춤이 춤의 본래 영토다’라는 말은 보편적이고도 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춤이 이에 머무르거나 이에 지나치게 빠지면 춤이 지닌 삶의 의미라든가 일상의 지향성을 잃거나 놓치는 경우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했을 때, 그 이야기가 정말 나에게 절실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일 먼저지요. 그때 자신의 표현언어가 잘 구사가 안 되거나 부족하게 되면 이미 쓰이고 있는 언어를 쓸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나로서는 구축하지 못한, 그런 이미 쓰여온 좋은 언어에서 찾아내 익숙하게 쓰는 것, 그것 또한 참 중요한 일이고, 대부분 힘에 부칠 때 그렇게 하기 마련인 거죠. 그러나 내가 분명하게 나의 춤답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기차게도 자신의 일상언어부터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리듬화할 것인가? 운율화할 것인가?
산문이기보다는 운문에 가까운, 그래서 일종의 시적 표현이라고도 할 춤에서 움직임의 문해성을 잃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율동화할 것인가? 거기에 여러분의 예술적 명제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찾아내고 역사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 나의 춤인 것입니다.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