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뉴욕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찾은 극장 중 하나는 흔히 ‘더 조이스’라 불리는 조이스 시어터(The Joyce Theater)였을 것이다. 물론 뉴욕에는 링컨센터, BAM, 뉴욕시티센터, 에일리시티그룹시어터, 뉴욕라이브아츠 등 무용을 제공하는 다양한 극장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조이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유일하게 무용가들에 의해, 무용가를 위해 지어진 ‘춤전용극장’이라는 점이다. 조이스 시어터는 맨해튼 첼시(Chelsea) 지역에 있는데 첼시는 수백 개의 미술관이 즐비한 현대 미술의 현장이자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변 분위기는 조이스 극장이 예술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큰 몫을 한다. 첼시는 게이 문화의 오랜 중심지이기도 하고 활기찬 나이트 라이프의 풍경을 가진 지역으로서 뉴욕 관광에서도 빠질 수 없는 지역이다.
조이스는 472석 규모 극장으로, 그 전신은 1941년에 지어진 엘긴극장(Elgin Theatre)이었다. 엘긴극장은 포르노 상영이 발각되어 커뮤니티에 의해 폐관되었는데 이후 1977년 앨리엇 펠드발레단(Eliot Feld Ballet)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인 앨리엇(Eliot Feld)과 이사인 코라(Cora Cahan)가 뉴욕시에서 더욱 저렴한 방법으로 ‘연례 공연 시즌’을 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무용전용극장’을 지어 무용단들에게서 대관료를 받고 춤계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할 방법을 고안해내면서 시작되었다. Publishers Clearing House의 공동 설립자이자 자선가인 머츠(LuEsther Mertz)가 극장 구매 비용 225,000달러 전액을 부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81년 6월 25일 착공식에서 머츠의 딸 이름을 따서 ‘Joyce Theater’로 건물 이름을 변경했다 한다. 조이스 극장은 1982년 6월 2일 갈라 공연을 시작으로 개관하여 이후 현재까지 40년 동안 뉴욕시와 전 미국 무용계의 선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운영 기관인 조이스 재단(Joyce Theater Foundation)은 연간 ‘1달러’의 명목의 임대료로 35년간 극장을 유지해오다가, 2016년 임대 계약 기간이 다가오면서 펠드 조직으로부터 극장을 2000만 달러에 매입했다고 한다. ‘명목상 연간 단돈 1달러의 임대료를 내고 35년을 사용했다!’는 지점에서 뉴욕 사회가 얼마나 예술계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지를 시사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이 그 소유권을 갖고 있다.
조이스는 뉴욕의 많은 극장과 문화 아이콘들을 되살리는 것으로 유명했던 뉴욕시 건축가인 휴 하디(Hugh Hardy)가 맡아 보수공사를 하였는데, 원래의 엘긴극장에서 남아 있는 것은 벽, 천장, 프로젝션 부스이다. 경사진 좌석 공간을 좀 더 가파르게 만들기 위해 원래의 영화관 발코니 구성을 제거하였고, 벽돌 옆벽을 따라 움직이는 의자를 배치하여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절할 수 있게 해 관객과 무용수 사이에 친밀감을 주었다. 조이스 극장의 뒷벽은 베이스 보드에 라디에이터가 있는 붉은 벽돌로 되어 있으며 벨벳으로 덮힌 단단한 다리와 제거할 수 없는 테두리가 있다. 또한, 추가 백스테이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건물 뒤쪽에 새로 건축을 했다.
보수공사를 하면서 춤에 특화된 요소로는 탄력적인 무대 바닥(50x36피트)이 있으며, 두 세트의 교환 가능한 댄스플로어가 있는데, 하나는 발레용이고 다른 하나는 맨발의 현대 무용수들을 위한 것이다. 외부 보수 작업에는 색칠된 벽돌과 주석 메달의 독창적이고 복잡한 패턴이 포함되었다. 주 출입구는 두 개의 수직 유리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란색과 흰색 네온 튜브가 있고, 굴절된 밝기가 보도와 로비 안에서 빛난다. 완성된 극장의 좌석은 472석으로 입석은 10석이 가능하다. 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전체 비용은 360만 달러였다고 한다. 보수공사를 맡았던 휴 하디는 심지어 그가 죽은 날 밤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다고 하는데 2017년 3월 17일, 조이스 길 건너편 택시에서 떨어져 뇌출혈을 일으켰다고 한다.
The Joyce Theater @joyce.org/Eric Vitale |
춤전용극장으로서 조이스는 매 시즌 뉴욕 춤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3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첫번째는 ‘댄스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Dance Presentation Program)으로 프로그래밍 디렉터가 그 시즌에 부합하는 무용단과 작품을 선택하고 마케팅, 홍보, 박스오피스, 스태프 및 기타 공연에 필요한 지원과 합의된 공연 비용을 제공한다. 두번째 프로그램은 일종의 ‘계약 지원 프로그램’(Engagement Assistance Program)으로 이 프로그램에서는 프로덕션, 마케팅, 박스오피스 및 기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전문 무용단이 조이스에서 자신들의 공연을 발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지막으로는 ‘이벤트 대관 프로그램’(Event Rental Space)’으로 흔히 말하는 대관 형태로서 TV 및 영화 촬영, TV 광고, 뮤직 비디오, 라이브 또는 녹화된 스트리밍 프로덕션 및 기타 이벤트를 위해 이 장소를 대관하는 형식이다.
또한, 조이스재단은 ‘교육 및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Dance Education & Family Programs)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학교를 위한 댄스 교육 프로그램으로 뉴욕시 교육청과 함께 개발하였다. 매년 수천 명의 뉴욕시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무용 예술을 소개하며, 특히 코로나 대유행 이후인 2021-22년에는 ‘학교를 위한 조이스 댄스 교육 프로그램’에서 스마트보드, 랩탑 및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라이브, 라이브 스트림 그리고 댄스필름 등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Family Matinees’는 어린이를 위해 할인된 가격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가족 중심 프로그램이다. 이 시리즈는 가족 청중을 구축하고 차세대 댄스 애호가를 개발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미래의 무용관객개발까지 생각한 프로그램 구성에 깊은 인상을 준다. 또한, 조이스시어터와 파슨스무용단(Parsons Dance)은 장애 학생과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학생을 위한 감각 친화적인 공연을 위해 매년 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이스에는 240시간의 연구와 창의적 개발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조이스 재단 창작 레지던시(Joyce Theatre Foundation Creative Residency) 프로그램이 있다. 이 레지던시에서는 공간뿐만 아니라 레지던시 기간 동안 작품 제작을 위해 $25,000의 커미션도 제공하니 물가가 높은 뉴욕을 생각하면 아티스트들에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이스에서는 공식적인 관리나 기반 시설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댄스 아티스트에게 최고 수준의 창작 환경을 제공하여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기회를 주고, 이 작품이 조이스의 무대와 세계투어로 연결 될 수 있도록 하는 ‘Joyce Theater Productions’ 프로그램도 있다. 주요 극장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만든 파격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것으로 침 신선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조이스는 첼시에 있는 공연장뿐만 아니라 무용 커뮤니티의 활성을 돕고자 지난 40년간 다양한 연계사업 또한 진행했는데, 그중 각인 될 수 있는 행보는 단연 ‘조이스 소호’(Joyce Soho)와 ‘DANY 스튜디오’ 운영 등이 있었다.
1996년, 조이스극장은 수백 명의 춤예술인들에게 리허설과 공연 공간을 제공하는 댄스센터인 ‘Joyce SoHo’를 만들었고, 엄선된 안무가들의 새로운 작품의 창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특별한 레지던스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조이스 소호는 2012년까지 75석 규모의 극장에서 리허설 공간 임대 및 공연 프로그램을 지속했다. 조이스 소호는 원래 3층짜리 소방서였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공간인데 Dia Art 재단이 소유하던 것을, 조직의 오랜 후원자인 머츠(LuEsther T. Mertz)가 사망했을 때 그의 자선 단체의 신탁 지원으로 150만 달러에 샀다가 2012년 매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첫 뉴욕 생활에서 많은 공연을 보러 방문했던 조이스 소호가 사라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갈림무용단(Gallim Dance)의 밀러(Andrea Miller)나 시드라벨무용단(Sidra Bell Dance)의 공연을 75석 소극장에서 가까이 호흡하며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던 것 같다.
Joyce Soho @wikimedia.org |
2009년, 조이스극장은 ‘Dance Art New York (DANY) Studios’(일명 대니스튜디오)를 오픈하여 리허설, 오디션, 수업 및 워크샵을 위한 저렴한 스튜디오를 독립 안무가, 비영리 댄스 컴퍼니 및 댄스/극장 커뮤니티에 제공하였다. 이 시설에는 11개의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2016년 임대가 종료되고 갱신하지 못하면서 폐쇄되었다. 당시, 많은 춤 예술가들이 만남의 장소 겸 무용인의 집으로 사용하던 스튜디오가 사라져 큰 아쉬움을 남겼다. 나 역시도 많은 무용가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공연차 뉴욕에 왔던 아티스트들의 소중한 연습공간이자 현지의 무용가들을 현장에서 소개할 수 있던 장소였기에 ‘DANY’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마음이 아팠다.
DANY 스튜디오에서 Tiffany Mills Company와 윤푸름의 콜라보레이션 리허설 장면 ⓒ박신애 |
최근 조이스는 첼시 팩토리(Chelsea Factory)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547W 26번가에 위치한 이 기념비적인 공간은 팬데믹에 처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첼시에 설립된 문화 센터(Cultural Center)이다. 1914년에 지어져 처음에는 자동차 차고지였고 택시들의 집이었다가 그후 1990년대에 패션 사진작가 애니 레이보비츠의 집이 되었다. 2005년 시더레이크컨템퍼러리발레단이 인수해 2015년 폐관 때까지 사용하였다. 첼시 팩토리는 팬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예술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5년간의 ‘팝업 이니셔티브’로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으로 음악, 무용, 연극 및 영화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레지던시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조이스와는 파트너십으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첼시 팩토리의 탄생 배경에서도 느낀 부분이지만 시대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뉴욕시와 뉴욕 시민들이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예술 커뮤니티를 지속하기 위해 내놓는 상징적인 움직임은 실로 부럽고 놀라운 행보가 아닐까 한다. 사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지고 경기가 어려워지면 예술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2001년 9.11테러 사건, 허리캐인 샌디, 그리고 이번 COVID-19 팬데믹 등 시대적으로 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예술계를 위해 내놓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기획을 보면, 과연 뉴욕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낀다.
뉴욕 무용계에서 춤전용극장으로서 아티스트와 관객에 대한 조이스의 헌신은 실로 엄청나다. 조이스는 예술 형식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고 그 영속적인 힘을 수용하는 강력하고 교육받은 관객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춤을 지속하는 데 있어 더 많은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조이스를 예로 볼 때 춤전용극장 또는 춤전용공간이 춤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꽤 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허브로서 춤커뮤니티에서 다양한 기획과 이슈들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도 오랫동안 화두가 되어왔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던…. 무용가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 마련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박신애
민간무용단체의 해외진출을 돕는 비영리기관인 코리아댄스어브로드의 박신애 대표는 무용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프로듀서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뉴욕92Y 하크니스 댄스센터에서 아시아/코리아 릴레이티드 프로그램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국제 솔로 댄스페스티벌인 ‘모노탄츠서울’의 예술감독, 프랑스 파리 ‘S.O.U.M(Spectacle Of Unlimited Movements)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