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불과 8년 사이에 대통령 탄핵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 탄핵은 한 세기에 한 번도 과할 것이다. 그런 막중한 사건이 겨우 8년 만에 또 벌어졌다. 탄핵당해 마땅한 대통령은 응당 탄핵되어야 한다. 계엄을 획책한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기에 망정이지, 대한민국은 하마터면 바나나공화국으로 추락할 뻔했다. 내 나라에서 계엄을 여러 차례 겪은 사람들은 이번에 계엄 선포 소식을 듣는 그 순간 가슴이 텅비고 온몸이 얼어붙었다고 했다. 계엄이 조장했던 거대한 트라우마를 직감적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서, 짧게는 수십일 길게는 수백일 동안 계엄 하에서 헌법과 주요 법률은 물론이고 국회도 정지되며 재판 절차도 영장도 없는 일방적 체포와 고문, 언론 검열, 집회 통제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계엄 기간이 끝나면 이전 사회는 간데없고 별의별 인간들이 여기저기서 행세하는 사회가 되었다. 너무 거창한 일들이라 이렇게 말해서 계엄 트라우마가 얼마나 실감이 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좀 구체적인 사례로서, 계엄 상황에서 공연을 하려면 계엄사 산하 기관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제는 인터넷 소통과 SNS도 허가와 검열 대상에 처해지고 말 것이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통령 탄핵 절차가 겨울철에 진행되는 것도 닮은꼴이다. 추운 날 따스한 곳을 찾는 사람들을 시새움하자고 그러는 것인가. 8년 전에도 그랬지만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민심에게 추위는 큰일도 아니다. 반면에 8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현장은 크게 변하였다. 한 마디로, 상당한 엄숙주의에서 상당한 놀이주의로. 그 변화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인가 혹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인가.
2024년 12월 21일 윤석열탄핵촉구 시위, 서울 경복궁앞 ⓒ김채현 |
12·3 계엄 선포로 헌정 질서를 문란시키고 내란을 도모한 우두머리의 탄핵을 요구하는 현장, 적어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거기서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손에 무엇을 들었다. 손에서 돌맹이나 화염병 같은 공세적 도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장은 비폭력 평화 집회로 진행된다. 자기들의 집단을 알리는 깃발을 높이 치켜 들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탄핵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든 사람들은 흔하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이 야광(夜光)으로 빛을 내는 막대기를 흔든다. 손피켓과 야광 막대기를 함께 든 사람들도 있다. 그 현장에서 손피켓보다 야광 막대기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 막대기는 발광체라는 것을 스스로 뽐내고 야밤의 탄핵 현장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야광 막대기는 형광봉, 야광봉이라 하고 탄핵 촉구 현장에서는 응원봉이라고들 불렀다. 형광봉, 야광봉이 무덤덤한 물리적인 명칭인 데 비하여 응원봉은 그 무엇을 향한 응원(應援)이라는 나름의 굳은 의지를 내포한다. 그렇듯, 야광봉과 응원봉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크다. 응원봉은 원래 팝콘서트나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각자의 의지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는 응원봉의 갖가지 형형색색으로 발현되어왔다. 그러던 응원봉이 이번에 탄핵 촉구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선을 넘어 존재 가치를 울긋불긋하게 떨치면서부터 사회정치적 의지의 발광체(發光體)로 자리잡았다. 응원봉이 이렇게 진화하는 계기를 촉발한 것은 허술한 12·3 계엄일 터이고, 만에 하나 그 계엄이 성공하고 말았더라면 응원봉이 이렇게까지 진화하진 못했을 것 같은 짐작이 든다. 엉뚱하고 아찔한 계엄이 부른 아이러니이다.
무슨 응원봉이든 발광 회로가 내장되어 있다. 각자의 취향과 의지를 반영한 때문에 그 형체와 색조가 다채로운 와중에 촛불이나 횃불 비슷한 모양도 간혹 눈에 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운동 현장에서 절대 주류를 이루어 당시의 범국민적 거사를 촛불혁명, 촛불운동, 촛불집회라 명명하도록 이끈 촛불의 위상이 이제는 전과 같지 않다. 촛불로서는 내심 서운해할 현상일지 모르겠다. 이보다는 오히려 세상 만물이 변한다는 순리에 따라 촛불은 응원봉으로 진화하였다. 당시의 촛불에는 종이컵으로 받쳐들은 게 많았다. 아무튼 응원봉은 촛불의 변형물이다. 오래오래 기억할 것은 이런 점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정치적 의지의 발광체 원조는 촛불이었으며 그 당대 역할은 구도자의 촛불처럼 숭고한 바가 있었다.
2016년 12월 10일 박근혜퇴진운동, 서울 광화문 ⓒ김채현 |
2017년 2월 18일 박근혜퇴진운동, 서울 광화문 ⓒ김채현 |
8년 전에 보기 어려웠던 일로서 이번에는 아이돌댄스가 두드러져 보였다. 응원봉이 말해 주듯이 아이돌 문화가 일상화된 1030세대의 참여로 일어난 변화이다. 현장에서 아이돌댄스는 막춤을 불러들이고 아이돌댄스가 있으면 막춤이 뒤섞이는 일은 예사가 되었다. 아이돌댄스 세대와 막춤 세대의 즐거운 공존!^^ 8년 전 현장에서도 앉은춤, 팔춤, 선춤, 걷는춤 등 춤이라 부를 움직임들이 완연하였다. 앉아서 몸을 좌우로 일렁이는 것, 팔을 좌우상하로 흔드는 것, 제자리에 서서 양팔과 전신을 움직이거나 굴리는 것, 이동 중에 걸으며 양팔과 양다리로 리듬을 맞추는 것. 수십만 명의 인산인해 속에서 춤 공간을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은 와중에서도 그런 춤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훨씬 적극적인 춤으로서 아이돌댄스가 솟아오르자 막춤까지 되살아나고 댄스 파티의 순간들도 펼쳐진다. 아주 결정적으로, 응원봉 불빛의 물결은 그 자체로 춤이다. 8년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불빛은 단조로움을 벗어나서 훨씬 다채로워졌으며 그런 울긋불긋한 불빛으로 구현된 응원봉의 환한 빛춤 역시 마찬가지였다. 촛불의 후예 응원봉이 가져다준 참신한 변화이다. 춤은 8년 전에 비하여 장시간의 집회에서 재충전과 임팩트를 위해 더욱 빠질 수 없는 장치가 되었다. 현장에서 영감을 받은 이런저런 춤으로 현장의 의지는 더 굳세어질 것이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탄핵 촉구 현장은 특수한 공동체를 이룬다. 8년 전에 비해 탄핵 촉구 현장에서 포용력과 놀이성이 더 짙어졌고, 이는 응원봉으로 상징된다. 비단 응원봉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지난 8년 동안 양극화 극복, 소수자 보호, 차별과 폭력 철폐와 같은 우리 시민사회의 노력이 쌓여왔었다. 특히 놀이성의 측면에서 응원봉이 수행하는 역할은 지대해 보인다. 응원봉이 팝콘서트, 스타디움, 탄핵 촉구 현장, 어디에 있든 응원봉의 본성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의지를 담는다는 것, 개개인의 공감을 표출한다는 것, 일률적 규정이 없다는 것, 차이가 이해되는 속에서 어떤 의지를 공유한다는 것 등이다. 탄핵 촉구 현장에 가세하면서 응원봉은 놀이의 기운을 더 주입하였다.
2024년 12월 21일 윤석열탄핵촉구 시위, 서울 안국동 ⓒ 김채현 |
이 세상의 무수한 것이 놀이로 분류되지 않는가. 아이들의 놀이부터 성스러운 의례까지, 요한 하위징아도 말했듯이 규칙을 정하고 함께 행하는 모든 것은 놀이에 속할 것이다. 놀이에 따라 재미와 진지함, 무사심(無邪心) 가운데 강조하는 요소가 다를 뿐이지 놀이는 일상의 직접적인 필요(邪心, 예: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 식후 디저트,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 급여를 받기 위한 업무, 수입을 올리기 위한 투자)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있다. 가만 생각해 보자.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돌, 재판, 공공 집회, 예술 행위에서 놀이의 요소가 적지 않고, 신성(神聖)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축제와 의례(儀禮, ritual)는 본격적이자 제대로 된 놀이이다. 넓게 보면, 서로 뜻이 통하는(마음이 맞는) 집단(공동체) 속에서 저마다 주장하며 즐기는 세계가 놀이의 세계이다. 탄핵 촉구 현장은 탄핵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한 의지의 공동체로서 그 과정을 함께 나누다 보면 축제와 놀이의 세상이 된다. 놀이는 공동의 의지로 동참하는 사람들(의 소통과 공감)을 더욱 다지는 힘이자 끈이다.
의례를 포함 축제는 일상 커뮤니티와 다른 시공간을 갖는다. 축제 이전의 일상과 축제 이후의 일상 사이에 축제는 위치한다. 그러므로 축제는 일시적이며 제한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축제 이전의 일상과 축제 이후의 일상은 같지 않(아야 한)다. 말하자면, 축제 이후 일상의 커뮤니티는 업그레이드되는 바가 있을수록 좋다. 축제의 효용은 그러하다. 축제로 조성되는 이 한정된 특수한 공동체는 일상의 커뮤니티와 구분해서 코뮤니타스(communitas)로 분류되며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코뮤니타스가 강렬할수록 기억도 그럴 것이다. 코뮤니타스, 그것은 개개인의 소망과 꿈이 자발적 의지로 표출되는 한시적 공동체이다.
일단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을 때까지 활발히 전개될 탄핵 촉구 코뮤니타스에서 분노와 저항과 꿈의 온갖 외침이 미래지향적으로 분출된다. “...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탄핵 촉구 코뮤니타스 현장에서 수시로 들려온 노랫말은 이 외에도 많았다. 조만간 탄핵 정국이 종식되면 탄핵 촉구 코뮤니타스는 이 시대 당면한 소망과 꿈의 현장으로서 기억될 것이 확실하다. 탄핵 촉구 코뮤니타스의 실제 파급력에 비추어 그것은 더욱 대한민국 커뮤니티의 새 지표로서 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축제 그리고 놀이의 생산적 의의는 신박하다. 팬덤에서 유래한 응원봉은 새 코뮤니타스를 끌어당기는 횃불이 되었다. 청년 세대의 놀이로 다듬어져 온 팬덤 문화가 예상치도 않게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키기에 활기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오래 이어질 일이다. 청년이 서야 나라가 선다 하였다. 청년이 나서는 나라는 앞날이 창창할 것이다. 그러려면 분노와 저항과 꿈의 온갖 외침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모든 세대 남녀노소가 어울리고 꿈꾸며 외치는 그 대화엄(大華嚴)의 코뮤니타스에서 은연중 춤의 기운 또한 세상과 더불어 발현되고 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