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제주로 이주한 이유를 질문으로 받으면 명쾌하게 답을 줄 수가 없다. 아마 그동안 도시에서 살면서 받은 피로를 씻어 내리고 보상도 받고 싶은 이유 일 것이다. 어느덧 과거에 등한시했던 나무와 풀의 생명력을 예찬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가. 철이 조금 들었나보다.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집 근처의 조그만 동산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울퉁불퉁한 산길을 누가 빨리 오르는지 내려가는지 내기를 했다는 기억이 있다. 누가 말했던가, 산양좌는 험한 길일 때 더 힘이 난다고!
집 부근에 자리 잡은 동백동산은 어릴 적에 뛰어다니며 오르내리던 길과 많이 닮았다. 조금 걸어 들어가면 이 동산의 하이라이트인 연못이 나온다. 화산폭발 후에 흘러내린 용암이 쪼개지면서 만들어졌다는 먼물깍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곳이다. 주변에 걸터앉으면 자연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다. 두루미가 가끔 날아다니고 조그만 뱀도 지나다니고 잠시 말을 잃어버리는 고요함을 맛보게 된다.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가다가 중지 곧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는 시조를 되뇌며 좁고 낮은 언덕길로 들어선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평탄하다가 어느새 점점 험난해지고 양옆은 종잡을 수 없이 좁아졌다가 넓어지니 눈을 부릅뜨고 발을 딛지 않으면 사고가 날 여지를 안고 있는 길이다. 아무도 없으면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읊으며 어디까지 내 몸이 허락하는지 껑충껑충 뛰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야생노루나 꿩을 만나는 횡재도 있다.
여기 와서 처음 만난 노루의 눈이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는 가끔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버릇없는 나를 야단도 치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집 어른들이 하듯이 안아주지도 않고. 소위 양반집에서는 그런 신체접촉을 안한다고. 그 대신 물끄러미 바라보았던가. 그 눈이 함축하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 미안해요. 마음의 고향에서 만나요.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서울서 마지막으로 살기를 선택한 곳이 신축 고층아파트의 31층이다. 일터와 가깝기도 했지만 수입의 3할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고 유독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물질문명 우선적인 환경에 정을 떼고 싶어서라고 할까. 예감은 적중했다. 퇴직하자마자 짐을 싸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서울을 떠날 모든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도시에서는 마음이 편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탔던 첫 서울행 기차가 한강철교를 지날 때 심하게 뛰던 심장의 고동. 그 후에 그 고동을 부여안고 열등감과 불안을 승부욕으로 포장하고 앞만 보고 뛰어다녔나?
동백동산 다음으로 나를 유인한 곳이 제주돌문화공원이다. 이순열선생님이 극찬한 돌문화공원에서는 매년 5월 국제즉흥춤축제가 열린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축제의 단골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관객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를 실현할 수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황홀한 순간을 경험한다. 놀라운 안목을 가진 백운철관장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특별한 생태공원은 사실 춤이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여백이 잘 구성되어 있다. 나는 해마다 마음에 드는 새 장소를 택하여 내가 선택한 공간의 매력을 구경꾼과 함께 즐기고 싶을 뿐이다. 어느덧 십년이 되었다니. 화살같이 빠르게 날아가는 시간이여.
오랫동안 공원 한 쪽에서 공사 중이던 설문대할망전시관을 드디어 개관한다고 공식 초청을 받았다. 양복 입은 공무원들이 우글대는 소굴에 참여하는 게 싫어 초대받은 개관식을 무시하고 따로 날을 잡아 인류학자 조혜정 선생과 함께 방문하였다. 큰 공간에 넉넉하게 비치된 전시품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어. 좋았다는 말 대신 그런 인색한 표현을 하다니. 감수성이 예민할 때 프랑스 선생들에게서 배워서 그렇다는 변명을 하고 싶다. ‘Pas mal’[나쁘지 않음]이 큰 칭찬이었지. 그래서 미국 선생한테 ‘Great’[굉장함]를 들었을 때는 얼떨떨했지.
전시관 내부는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함이 있었지만 공간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플라스틱화초들을 보는 순간 잠재되어 있던 분노가 살아났다. 사실 얼마 전에 방문한 대전의 역사와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태미오래’라는 곳에서도 힐링의 장소로 만들은 공간 전체를 플라스틱 화초로 장식한 것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있다.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였다는 적산가옥. 이곳을 부수지 않고 역사의 한 장면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라구요?
오, 통재라. 어느 샌가 가짜가 진짜 노릇을 하는구나. 밖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살아있는 식물들이 자신을 본뜬 가짜를 보고 어리둥절할 거야 아니 박장대소하다가 화를 내다가 슬퍼하겠지. 그렇지. 지구상 어느 곳보다 성형수술로 만들은 가짜얼굴이 많은 곳이 이 땅이잖아. 있어 보이고 예뻐 보이잖아요. 흠, 그 말은 있지도 예쁘지도 않은 열등감을 전제로 하는 말이잖아.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링컨이 말했다는데. 그러니까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구나.
내 안에 있는 친구가 속삭인다. 이런 나이가 되어서도 까다롭게 굴면 모두가 떠나고 외로워 진다구요. 이제는 좀 너그러워져야지요. 그렇군요. 떠날 사람은 떠나겠지요. 그래도 나는 예전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며 살다 죽고 싶어요. 혼자 남아도 괜찮아요. 혼자 시간을 보내면 자연과 더욱 강렬하고 고요하고 의미있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엄청난 고독이 없다면 위대한 결과도 없다고 합디다.
안에 있는 친구가 다시 말한다. 너는 아직도 까다롭구나. 사물을 보면 좋은 점보다 모자란 점, 거슬리는 점, 어설픈 점들이 먼저 눈에 보이나 봐.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너 자신은 어떠니? 네가 하는 말은? 행동은? 부끄럽습니다. 쥐구멍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싶어요. 허지만 노력할게요. 그리고 분노를 남발하는 대신 <오만과 편견>을 다시 곱씹어 읽어보겠습니다. 그래도 설혹 훈련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우아한 위선보다 정직한 야만을 택하고 싶은데요.
섬마을 시골에서 심심하지 않냐고?
우리 마을 주변으로는 형식적인 것보다는 일상과 연결된 문화행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때로는 문 잠그고 숨어 있고 싶기도 할 정도야. 내 주위 분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온 이들. 거기에 간혹 제주 토박이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놀랄 만큼 자연과 함께 사는 비결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육지를 떠나 섬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동지애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우정과 환대가 구호가 아니더라. 외적으로는 평범하지만 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우리는 적어도 그곳보다는 이곳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안다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바뀌는 일, 따라서 세계가 완전히 달라져 보인단다. 설령 그것이 어제와 똑같은 세계일지라도… 사물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제까지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 그래. 하늘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내가 달라진 거지. 말하자면 이전까지의 나는 죽고 다시 태어났다고 할까.
눈뜨면 먹는 인생이다. 장날을 챙겨 시장가는 재미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는 함덕오일장이 있고 좀 멀지만 더 큰 규모인 세화오일장도 있다. 그리고 은행 볼일 보러 시내로 나가면 꼭 들리는 곳이 동문시장이다. 사지 않아도 돌아다니며 보는 재미가 있잖아요. 방금 땅에서 캔 야채, 그리고 재주껏 만든 반찬들 그중에서 역시 생선이 으뜸이다. 장이 끝나는 시간쯤 되면 많지 않은 돈으로 싱싱한 생선을 한 무더기 갖게도 된다. 호기롭게 사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이웃에는 손맛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 ‘선흘식탁’ 이라는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에코요리를 만드는 공동체가 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시각적으로도 멋지게 제공된다. 도시락이나 뷔페를 차리는데 가끔 먹게 되는 기회를 가지면 흐뭇하기 짝이 없다. 이실직고하면 3년 전에 이 사람들이 만든 칼국수 얻어 먹고 여기서 살 결심을 했지요.
나도 이제는 요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음식을 만든다. 아직은 남들이 금방 하는 걸 시간 걸려서 하는 수준인데 그 과정이 재미나기도 하고 성취감도 있다. 맛보고 싶다고? 기다려봐요. 아직은 어설프게 내가 나를 대접하는 수준입니다. (웃음)
가을이 되니 나무가 누래졌다. 곧 바람이 그 잎을 뜯어내어 나무를 벌거벗기고 다음 봄에 새싹이 돋기까지는 숨길 장식이 없는 빈 가지만 보일 것이다. 나는 그 쓸쓸하고 앙상한 모습이 정직하게 보여서 좋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해질 나의 삶을 예고해 준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면 기적같이 다시 싹이 돋을 것이다. 죽은 나무에 다시 생명이 오는 것이 경이롭지만 부럽지는 않다. 한 번의 생을 열심히 살았고 그리고 잘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다.
남정호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