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로벌 언더스코어, 컨택트 임프로비제이션 페스티벌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탱해 낸 런던의 독립 무용씬
이진아_무용이론/드라마투르기

7월 22일 오후 1시 30분 런던 시간으로 줌(zoom) 미팅이 시작되고 나는 처음 들어와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패트릭(Patrick Crowley)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글로벌 언더스코어1)(이하 GUS)를 알게 되었느냐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제 더 이상 원래라는 말은 안하지만, 원래 춤을 추던 사람은 아니었어. 주변 전문 무용수들을 보면 걷자마자 4살 때 부터 춤을 배웠다는 사람들이 있거나, 아무리 늦어도 십대 때에는 춤을 진지하게 배우는 게 대부분인데, 나의 경우는 그런 것과 아주 거리가 멀어. 원래 미술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서 내가 보는 눈이 남다르다던가, 본 것에 대한 표현이 조금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게 몸으로도 표현된다는 것은 전혀 알 수 없었어. 한참 후 창작과라는 곳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거기 교수님이던 중견 안무가들의 드라마터그를 하면서 또, 직접 학생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지. 춤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그러는 중, 한국에서는 좀 좋은 기회들이 있었는데, 2000년대 무렵에 즉흥 붐이 일었던 거야. 그래서 서울에서 케이티 덕(Katie Duck)의 워크샾을 트러스트 무용단에서 개최해서 들을 수 있었다거나 메리 오도넬(Mary O’Donnell, 인터뷰 2008년 9월호 춤지 391호)을 만날 수 있었지.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처음 접한 춤은 접촉 즉흥 (이하 CI) 였던 거야. 이후 베를린에 드라마터그 직업을 구하러 갔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도시 자체가 가난한 곳에서 그런 자리는 외국인에게는 어려웠고, 왜 그랬는지 춤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런던으로 가게 되었지. 당시 이론이 가장 유명했던 로햄튼(Roehampton) 대학에서 다시 마스터를 했는데, 보수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론이 발달해서인지 엄청나게 리버럴한 면이 없지 않아서 모든 대학원생들이 학부 실기 수업을 들을 수 있었지. 당시 무용학 이외에 안무 2년 과정 중 1년 코스를 같이 듣게 되면서 모든 기초 실기 기초 과목을 이수했었어야 했는데, 거기서 접촉 즉흥은 라리타라자(Lalitaraja Joachim Chandler)에게 배웠어. 그가 게스트로 초대했던 선생님들에게도. 졸업후에도 다팅턴(Dartington) 유토피아 시절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던 첫 CI페스티벌에 갔었고, 이후 로햄튼에서 CI 페스티벌 할 때도, 그리고 올해 골드스미스에서 있었던 CI 페스티벌에도 참여했었어. 올해 강사 중에서 나는 메리 프리스티지(Mary Prestidge)의 인텐시브를 했는데 그녀가 바로 스티브 팩스톤과 메리 오도넬이 처음 다팅턴(Dartington College of Arts)에 와서 접촉즉흥을 가르칠 때 학생이었다고 하면서, 이건 스티브에게서 왔고 또 다른 건 메리에게서 왔다면서 수업 때 그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좋던지. 이건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언어의 알파벳을 습득하는 것 같이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일로 인식되더라. 매일 누워 잠을 자지만, 인텐시브에서는 눕는 방법도 다리를 접는 법도 모두 신선했어. 한국에서는 20년전 CI를 배우려면 네덜란드의 EDDC에 가야 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긴 했는데, 훨씬 이전에 1973년 메리가 다팅턴에 오면서 부터 팩스톤이 특강에 오게 되면서 영국에서 한번 번영했다는 것은 잘 몰라. 이후 메리가 1987년에 SNDO를 설립하고 이후 EDDC로 확장했을 때 이후 만을 알지. CI의 경로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확장 되었다는 것은 메리에게 오래 전 직접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해.

하지만 이런 것과는 별개로 GUS는 조금 다른 경로로 인지되었어. 내 춤의 시작이 그렇다보니, 알게 모르게 즉흥에 대해 다른 무용 테크닉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지인들이 내게 접촉 즉흥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모아둔 아티클들을 단순히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몇몇 중요한 글들은 한국어로 번역을 해두었어. 리사 넬슨(Lisa Nelson)과 아직 연락 중이라 정식으로 출판은 안했지만 그게 내 컴퓨터 하드 디스크 폴더 하나 가득 있어. 스티브 팩스턴(Steve Paxton)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단연 그의 글이 제일 많아서였지. 물론 같이 참여했어도 글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그 글이 그의 관점이라 다른 참여자들의 관점에 대해 짐작하여 헤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그로부터 역시 배우는 것이 있다면 누군가는 기록을 해주어야 한다는 거였어. 여튼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게 그의 1967년 안무인 ‘작은 춤(Small Dance)’2)야. 이걸 너무나 좋아하는 이유는 그래 5분간 정말 겉에서 보기에는 아무일도 안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모든 게 다 있었어. 내 몸을 정렬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몸의 오케스트라, 중력을 느끼는 감각, 서있는 것에서 어떻게 걸어야하는지.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신체 내부 감각을 경청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결국에는 우리가 하는 춤이 되는지, 서로를 듣게 되는지. 그의 거의 모든 메소드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야. 첨엔 그걸 혼자서 해봤고, 나중에는 내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강이나 그런 거에 초대 될 때 아주 작은 청중이라도 같이 할 수 있으면 강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강의 중간 쉬는 시간 전이나 끝에 같이 ‘작은 춤’을 같이 해보았어. 그런데 GUS에서는 이 ‘작은 춤’을 행사의 처음과 맨 마지막에 두 번이나 하잖아. 그것도 서 있는 방향을 정해서.

물론 언더스코어는 이전에 알고 있었지. 낸시와 리사 등의 워크샾은 그래도 잘 알려진 편이었으니. 하지만 GUS가 가장 흥미로운 이유는 몇가지 더 있는데, 그게 일년에 한번 하지에만 한다는 점, 그리고 전지구적인 행사라는 점이야. 근사하지 않아, 같은 시간에 사람들이 지구 어딘가에서 나와 같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 자체 말이야. 이런 아날로그적인 연결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이걸 이렇게 큰 스케일로 해 볼 수 있는 경험은 없었어.그런데 GUS에서는 이걸 하는 거야. 그리고 한국에서는 동지는 확실히 팥죽을 먹는 등 무언가를 하지만, 하지에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농경 생활을 했던 민족에게 절기 달력이 당연히 있지만,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일까, 여름은 그렇게 기념하는 분위기는 아니야. 하지만 북유럽에 가까워질 수록, 이 여름 전화점을 기념하는 전통이 강해져. 그도 그럴 것이 해가 정말로 지지 않게 되니까. 나는 사람들이 그 자연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어.



 

 

 

언더스코어 글리프 도표 / ‘작은 춤’ 방향 ⓒ이진아



또한 상당수의 무용가3)들이 즉흥 춤은 추고, 나름의 메소드를 개발하고 하지만 사실 그 뿌리에 대해 잘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 게 아닌가 싶어. 한국에는 좋은 무용수들이 있고, 많은 즉흥 실천자들이 있고, 아주 오래 된 즉흥 페스티벌도 있지만 지금은 누구도 GUS를 하고 있지는 않아. 중국, 싱가포르, 대만, 일본,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와 도시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걸 한국에서는 안해. 좋은 무용학교가 있고, 프로페셔널한 작업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인데도 말이야. 아주 한두 명 그래도 계보를 따라 실천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각자의 메소드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더라고. 그래서 작년에 내가 페트릭에게 편지를 쓴 거야. 올해 서울 사이트도 등록할 수 있는지. 하지만 올해 하지 직전까지 나는 핀란드에 있던 IETM 회의에 있었어야 했고, 그래서 바로 런던으로 와서 여기서 GUS를 다시 한번 더 했어. 그 전에 GUS는 판데믹 때 Zoom으로 같이 했기도 했지만.

이것을 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런 ‘작은 춤’이나 언더스코어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자신이 지금 추고 있는 춤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야. 예를 들면 즉흥에 가면 사람들이 팔을 이렇게 벌리고, 다리를 어떤 식으로 서는데, 그게 몸의 반경을 인지해야 해서 팔을 벌리는 것이고, 접촉이 그 밖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것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알고 했으면 해서.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테크닉을 구사한다고 해도, 그것을 그냥 하던대로, 해왔으니까 하는 것은 조금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 또한 즉흥 잼에서 가끔 일어나게 되는 위험한 상황들을 줄일 수도 있고.

퍼실리테이터는 GUS 기존 참여자여야 하기에, 내가 시작은 하게 될 것이긴 하지만 운영이나 이런 것을 사유화 하거나 독점하고 싶지는 않아. 가능한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많이 초대해서 그 사람들이 매해 한번씩 돌아가면서 퍼실리테이터를 하면 좋을 것 같아.”

언제나 새로 온 사람이, 또 모르는 사람이 말을 더 많이 하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CQ (Contact Quarterly) 편집인이기도 했던, 런던의 GUS 진행자인 콜린 바틀리(Colleen Bartley)의 초대로 같이 하게 된 정기 회의에서 사라, 니콜, 패트릭(Sarah Young, Nicole Touzien, Patrick Crowley)은 차분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들 중 대부분은 오랜 기간 동안 GUS를 조직하고 운영해 온 사람들이다. 접촉즉흥은 사람들이 실천해도, GUS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들은 이미 전세계의 많은 사이트 운영자와 퍼실리테이터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GUS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 했다. 전지구적인 연대가 가장 중요한 중심에 놓여 있는 만큼 GUS에 참여하는 동기,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진행하고자 하는 지 등의 생각의 공유는 기본이 된다.

7월 10일 저녁 8시, 테이트 모던 터빈 홀 (Turbine Hall)에서 이본느 레이너의(Yvonne Rainer) 트리오 에이(Trio A) 재현 공연을 몇 시간 동안 보고 나서 역시나 거의 하루 종일을 테이트 모던에 있었던 콜린은 같이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을 지나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해준다. 언더스코어는 낸시 스탁 스미스의 메소드이지만, GUS를 하자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클레어 필몽(Claire Filmon)이 실제로 GUS를 제안한 사람이라고 아마 본인이 직접 클레어와 진행한 인터뷰 비메오 링크를 보내 줄테니 그걸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고, 22일에 있을 정기 모임에도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해준다. 올해는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많은 것이 생략되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원래 사용하기로 했던 곳은 남런던 람베스에서 오랫동안 독립 무용가들에게 좋은 장소와 수업들을 제공하던 쉬본 데이비스 스튜디오(Siobhan Davies Studios)였는데, 공사로 인해 적절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그곳에는 인터넷도 되지 않기에 원래 스크린을 띄우고 시간대를 공유하는 근접 도시와 실시간 멀티 스크린을 띄워서 연결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시작 때 소개도 최소한으로 했고, 끝나고 나서도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 정해진 관계로 수확물을 공유하는 하베스트 시간이 극히 짧게 안배되었으며, 마지막 ‘작은 춤’은 그나마 학교 문을 떠나서나 가능했다는 것. 물론 나는 가슴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왜 그랬었는지 설명을 들으니 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참여했던 이외의 해 매해가 달랐고, 어쩔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했고, 참여자에 따라 흥미로운 해프닝도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GUS 2026년 서클링 ⓒ이진아



6월 20일, 오후 2:30분 북런던의 한 조그마한 학교 애클랜드 버글리 스쿨(Acland Burghley School)에 도착한다. 올해의 GUS 런던 개최지다. 여느 중고등학교나 다름 없는 이 작은 장소는 오랫동안 런던에서 접촉 즉흥을 가르쳐왔던 릭 노딘(Rick Nodine)의 배려로 가능했다. 그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런던의 GUS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오랜 CI 참여자들이기도 했고, 릭처럼 전일로 무용 및 무용 교육만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직업이 있다. 참여자를 관리한 조세핀은(Josephine)는 불어 선생님이다. 콜린과 함께 진행한 로버트(Robert)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도 때때로 자신의 수업을 열고, 펠덴크라이스를 접촉즉흥에 적극적으로 접목해 온 실천가다. 올해 CI 페스티벌의 진행자 가운데 한 명인 토마스 캄페(Thomas Kampe)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워크숍을 진행한 경험도 있는 숙련된 무용가이기도 하다. 물론 CI 페스티벌의 참가자 모두가 GUS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버트처럼 두 현장을 오가며 양쪽 모두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시작은 간단했다. 언더스코어에 대해 소개한 다음, 원으로 둘러앉아 모든 참석자가 왜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4시간 후의 수확(harvest)을 위해 씨를 뿌리는(seed) 것이다. 참가자는 대부분 어디선가 마주쳤던 얼굴들이다. 2001년부터 무빙 이스트(Moving East)와 캑스턴 하우스(Caxton House)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LCI 정규 참석자들이 반 이상이었다. 이후 거의 말을 하지 않기로 되어 있기에,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작은 사인을 정한 뒤 '작은 춤'을 수행하고 그라운딩에 들어간다. 바닥에 눕는 것부터다. 이후로는 여느 잼 세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두세 시간이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하베스트 — 심어둔 씨앗이 무엇으로 자랐는지, 글이든 그림이든 몸짓이든 남기고, 서로 무엇을 겪었는지 짧게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작은 춤'. 학교문을 닫기 때문에 이것은 시간에 쫓겨 학교 문밖에서 수행했다. 하지만 어디를 향해야 할지, 그 방향은 잊지 않았다.



스튜디오 외부에서 실행한 ‘작은 춤’ ⓒ이진아



돌이켜보면 이 반복 자체가 족보를 찾아 원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에 제사를 지내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스티브도, 낸시도 이제는 모두 고인이 아니던가. 그들이 춤을 통해 타인을 배려한 또,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부분들을 상상해 보다보면, 다소 원시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즐겁다. 화려한 테크닉이나 세련됨을 굳이 구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 즉흥은 편안하다. 처음 그 그림들 — 스코어라 불리는 글리프들 — 을 마주했을 때는 뭔가 대단한 규율처럼 느껴져 긴장했지만, 막상 겪어보면 그것은 어느 즉흥 세션에서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름 붙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미리 알고 들어가면, 낯선 그룹 안에서도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게 되고, 흐름이 한결 정돈된다는 차이는 분명히 있다. 이것은 거창하거나 위대한 행사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다고 믿는 '진짜 즉흥'이 애초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몸으로 다시 물어보는 자리일 뿐이다. 지난 20일은 공교롭게도 세계 난민의 날(Refugee Day)이기도 했다.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도 함께 했다. 국경을 넘어 함께 서 있다는 것, 낯선 이의 존재를 향해 방향을 튼다는 것 — 그날 하루, 그 의미들을 하나씩 몸으로 겪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즉흥이 좋다면 왜 굳이, 현존하는 유명한 강사 한 명을 초청해 인텐시브를 여는 대신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려 하느냐고 누군가는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애클랜드 버글리 스쿨에 모인 사람들을 떠올리면 답은 의외로 단순해진다. 불어를 가르치는 조세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로버트, 자신의 정규 수업 공간을 섭외해준 릭, 열정으로 CI의 뿌리를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해왔던 콜린 — 이들 중 누구도 무용을 완전 전업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퍼실리테이터가 되고 공간을 내주며 매해 돌아가며 책임을 나누어 짐으로써 이 자리를 지켜왔다. 오래된 지식과 공간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이들이 각자의 몫을 조금씩 보태어 만든 구조. 그것은 누군가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없는, 몸으로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풀뿌리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매년 조금씩 다시 조직되는 자리 말이다.

두 주 후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진행되었던, 다소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던 런던 CI 페스티벌도 속내를 들어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사를 주도한, 20년 넘게 런던에서 즉흥 강사 생활을 했던 시모네타(Simonetta Alessandri)는 말한다. 판데믹 이후 런던 즉흥 단체 LCI는 해체되고, 각자 개별 수행자들의 수업만이 남았지만, 정말 이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런던에 즉흥 페스티벌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의로 2023년에 CI 50주년을 계기로 삼아 페스티벌을 처음 시행했다고. 이후 매해 대학교 공간을 대여하여 자체적으로 참여자들의 참가비로 페스티벌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 증언한다.

한국에서 GUS 사이트를 다시 — 7월 22일 줌 미팅 말미에 패트릭이 한국에서도 2019년에 GUS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후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단발성 행사에 그쳤고 현재까지 지속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기서 출발한다. 그것은 ‘진짜 즉흥’의 유일한 정답을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추는 춤이 어떤 질문과 실천에서 출발했는지 함께 알아보고, 그것을 서로 나누며, 서울의 춤추는 몸들이 세계 곳곳의 몸들과 같은 계절과 시간을 춤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거창한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어쩌면 전지구적 연대는 한 사람이 조용히 두 발로 서서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가장 작은 흔들림을 경청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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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벌 언더스코어 (Global Underscore): 시공간을 넘어 지구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춤
글로벌 언더스코어(Global Underscore, GUS)는 낸시 스타크 스미스가 고안한 개인적·집단적 즉흥 구조인 '언더스코어'를 전 세계 무용수들이 지구적 차원에서 동시에 수행하는 연례 무용 행사이자 초국적 연대의 실천이다. 언더스코어가 한 공간에 모인 몸들 사이의 관계와 전환을 다루는 ‘로컬의 지도’라면, 글로벌 언더스코어는 그 지도를 지구 전체로 확장해 시차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동시성을 실험하는 거대한 예술적 이벤트다.
글로벌 언더스코어의 구상은 2000년경 프랑스의 무용가이자 언더스코어 퍼실리테이터인 클레어 필몽(Claire Filmon)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프랑스에서 언더스코어를 경험하던 필몽은 전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구조를 실천하고 있는 무용수들이 특정 순간에 서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했다. 그녀는 북반구에서 낮이 가장 긴 하지(Summer Solstice) 무렵, 전 세계의 무용 커뮤니티가 각자의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같은 시간대에 언더스코어를 시작하고 지구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거대한 스파이럴(고리)을 만들자는 제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제안은 곧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의 컨택 즉흥 커뮤니티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오늘날까지 매년 여름 수십 개 도시와 수백 명의 무용수가 참여하는 글로벌 연례 행사가 되었다. (올해 참여 도시는 98개로 그 중에 한국은 없다.)
언더스코어와 글로벌 언더스코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실행되는 시공간의 차원과 그 목적의 확장성에 있다.

규모와 동시성: 일반적인 언더스코어가 특정한 방이나 스튜디오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밀도와 관계를 다룬다면, 글로벌 언더스코어는 지구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무대로 삼는다. 런던, 서울, 오슬로, 도쿄 등 각기 다른 시차와 문화 속에 흩어진 참여자들이 지구의 자전에 발맞춰 정해진 시각에 동시에 몸을 움직인다.

페이싱(Facings)이라는 지구적 의식: 글로벌 언더스코어에는 로컬 언더스코어에는 없는 독특한 의식이 포함된다. 행사의 시작과 끝 무렵, 참여자들은 지구상에서 다음으로 언더스코어를 이어받거나 진행하고 있는 다른 도시가 위치한 방향을 향해 서서 ‘스탠드(The Stand)’, 즉 ‘작은 춤(The Small Dance)’을 춘다. 이 과정을 '페이싱(Facings)'이라 부른다. 물리적으로는 서로를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무용수들은 이 정렬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숨 쉬고 움직이는 다른 몸들의 존재를 감각한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언더스코어는 언더스코어가 품고 있던 관계의 잠재력을 행성의 규모로 밀어 올린다. 락다운 시기에 고립된 개인들이 작은 춤을 통해 물리적 접촉 없이도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했듯, 글로벌 언더스코어는 지구라는 경계 위에서 몸들이 어떻게 시차를 넘어 동시성을 공유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언더스코어라는 정교한 안무적 장치가 개별 스튜디오를 넘어, 전 세계를 잇는 거대한 감각적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실천이다.

2) 작은 춤(The Small Dance): 멈춤 속에서 계속되는 춤
스티브 팩스턴의 ‘작은 춤(The Small Dance)’은 두 발로 가만히 서서, 몸이 중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안무적 실천이다. 팩스턴은 이를 ‘스탠드(The Stand)’라고도 불렀다.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지만, 몸은 실제로 완전히 정지하지 않는다. 발바닥의 압력은 계속 이동하고, 발목과 무릎, 골반과 척추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미세하게 조정되며, 호흡과 시선 역시 무게중심을 변화시킨다. 팩스턴은 이 작고 무의식적인 자세 반사 전체를 하나의 ‘춤’으로 보았다.

작은 춤은 1967년부터 팩스턴이 학생들에게 행하도록 했던 ‘서 있기’의 연구에서 출발한다. 이는 걷기, 서기, 앉기 같은 일상 행위를 무대 위의 안무로 제시했던 그의 1960년대 작업과 맞닿아 있다. 움직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대신, 몸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움직임을 발견하려는 시도였다. 작은 춤에서 춤의 주체는 “내가 몸을 움직인다”는 의식적인 자아만이 아니다. 중력에 반응하고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며, 의지보다 먼저 자신을 조절하는 몸 자체가 춤을 시작한다.

1972년 오벌린 칼리지에서 팩스턴은 새벽 수업을 통해 작은 춤을 가르쳤고, 같은 레지던시에서 초기 접촉즉흥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마그네슘(Magnesium)》을 만들었다. 무용수들이 낙하하고 구르고 충돌하며 방향감각을 잃어가는 《마그네슘》은 마지막에 모두가 서서 작은 춤을 추는 장면으로 끝났다. 격렬한 낙하와 거의 보이지 않는 흔들림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었다. 고요하게 서 있는 동안 몸의 미세한 무게 이동을 감지하는 능력은, 이후 다른 몸과 무게와 운동량을 교환하는 접촉즉흥의 지각적 토대가 되었다. 팩스턴은 작은 춤을 “우리를 똑바로 서 있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조절하는 반사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작은 춤은 단순한 준비운동이나 이완법이 아니다. 그 목적은 몸을 완전히 느슨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몸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긴장과 습관적으로 굳어 있는 긴장을 구별하는 데 있다. 또한 정지를 움직임의 부재로 이해하는 관습을 뒤집는다. 정지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수없이 작은 낙하와 회복이 균형을 이루며 지속되는 사건이다. 춤 역시 외부에서 뚜렷하게 식별되는 큰 동작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보이지 않더라도 몸 안에서 감각되고 지속되는 움직임은 이미 춤일 수 있다.

작은 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락다운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났다. 2020년 4월 《Contact Quarterly》는 팩스턴이 직접 낭독한 〈The Small Dance / Stand〉 음성 자료를 온라인에 공개했고, 무용가와 교육자들은 각자의 집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작은 춤을 함께 실천했다. 서로 만지거나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없었던 시기에 이 춤은 특별한 장소도, 넓은 이동도, 파트너와의 신체 접촉도 요구하지 않았다. 각자 고립된 장소에 서 있으면서도 같은 시간과 주의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은 춤은 락다운에 맞서는 조용한 안무가 되었다. 그것은 방역을 거부하거나 이동 제한을 위반하는 저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봉쇄가 몸을 고립되고 정지된 개체로 만들 때, 몸은 결코 완전히 멈추지 않으며 관계 또한 반드시 물리적 접촉으로만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동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만질 수 없었지만 중력과 바닥, 호흡과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작은 춤은 가장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움직임을 금지당한 자리에서조차 몸은 이미 춤추고 있었다.

3) 언더스코어(The Underscore): 자유로운 즉흥 아래에서 작동하는 공동의 지도
낸시 스타크 스미스(Nancy Stark Smith)의 ‘언더스코어(The Underscore)’는 접촉즉흥을 포함하는 장시간의 집단 즉흥무용 구조다. 미리 정해진 동작을 재현하는 안무도 아니고, 아무런 틀 없이 자유롭게 춤추는 잼도 아니다. 참여자들은 하나의 공통된 흐름과 언어를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움직임을 만들고 누구와 관계를 맺을지, 언제 접촉하고 언제 물러날지는 각자가 결정한다. 언더스코어는 춤의 내용을 지시하는 규칙이라기보다, 개인의 감각에서 타인과의 관계, 접촉즉흥, 집단 구성과 성찰로 즉흥이 확장될 수 있도록 마련한 공동의 지도다.

언더스코어는 낸시 스타크 스미스가 1970~80년대에 15년 이상 접촉즉흥을 가르친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점차 자신이 구성해 놓은 수업 커리큘럼에 제약을 느끼며, 별도의 연습이나 과제를 제시하지 않는 열린 시간을 수업 안에서 길게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구조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한 상태와 전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스타크 스미스는 자신이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의 아래에서 이미 일관된 스코어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1990년 무렵부터 발전한 이 구조가 바로 ‘언더스코어’, 즉 표면의 자유로운 즉흥 아래에서 작동하는 스코어가 됐다.

언더스코어에는 각각 이름과 그림 기호인 글리프(glyph)를 지닌 20개 이상의 국면이 있다. 실천은 대체로 자신의 몸과 감각에 도착하는 데서 시작해, 공간을 걷고 관찰하며 다른 참여자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후 혼자 움직이는 탐구는 시선, 거리, 리듬과 방향을 통한 관계로 열리고, 신체 접촉과 무게 교환, 접촉즉흥 듀엣과 집단 즉흥으로 확장된다. 에너지가 높아지고 여러 관계가 동시에 생성되는 시간을 거친 뒤에는 관계를 해소하고 휴식과 정지로 돌아가며, 마지막에는 경험을 되돌아보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 조용하고 내밀한 움직임에서 높은 에너지의 집단적 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실천 안에서 매우 넓은 신체적·정서적 스펙트럼이 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들은 철도 노선처럼 고정된 순서로 한 번씩 지나가는 단계가 아니다. 스타크 스미스는 “언더스코어는 철도 선로가 아니라 홀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상태 안에 다른 상태가 함께 존재할 수 있고, 이미 지나온 국면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혼자 춤추면서도 집단 전체를 지각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동안에도 자기 몸 안의 미세한 감각에 머물 수 있다. 글리프와 국면의 이름은 참여자를 통제하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경험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언어다.

언더스코어와 접촉즉흥은 동일하지 않다. 접촉즉흥이 주로 몸과 몸의 접촉, 무게 교환, 운동량, 낙하와 지지를 탐구한다면, 언더스코어는 접촉이 일어나기 전과 접촉이 끝난 뒤의 시간까지 포함한다. 혼자 감각에 머무르는 일,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일, 공간 전체의 밀도와 방향을 읽는 일, 춤을 멈추고 관찰하는 일도 언더스코어의 중요한 부분이다. 접촉즉흥은 그 안에서 사용되는 핵심적인 실천이지만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언더스코어는 접촉즉흥을 더 넓은 즉흥무용과 실시간 구성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때 참여자는 자신의 몸을 느끼는 무용수인 동시에, 전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구성을 감지하는 안무가가 된다. 누구와 춤출 것인가뿐 아니라 언제 관계를 시작하고 끝낼 것인지, 비어 있는 공간을 남길 것인지, 이미 형성된 흐름에 들어갈 것인지 다른 방향을 제안할 것인지도 모두 구성적 선택이 된다. 언더스코어는 운동감각적 관심과 안무적 관심을 분리하지 않는다. ‘내 몸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함께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언더스코어가 시작된 뒤에는 일반적인 무용수업처럼 진행자가 계속 언어로 다음 동작이나 단계를 지시하지 않는다. 참여자들은 실천에 앞서 보통 한 시간가량의 ‘토크스루(talk-through)’를 통해 전체 구조와 글리프, 주요 원칙을 익힌다. 스타크 스미스는 토크스루를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구술 전통을 통한 체화된 전승으로 이해했으며, 사람들이 이미 스코어를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모여 함께 실천하기를 바랐다. 일반적으로 참여자는 시작 시간에 함께 들어와 3~4시간 동안 전체 여정에 머문다.

따라서 언더스코어의 구조는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즉흥에서 흔히 자유라고 불리는 것이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드러낸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선택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무용수는 익숙한 움직임과 관계를 반복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선택을 따를 수 있다. 언더스코어의 지도는 이러한 습관을 의식하게 하고, 머무름과 변화, 참여와 관찰, 접촉과 분리 사이에서 더 섬세하게 선택하도록 돕는다. 구조는 답을 주는 대신 주의를 일깨운다.

언더스코어에서 집단은 하나의 지휘에 따라 동일하게 움직이는 단체가 아니다. 각자는 자신의 감각과 선택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과 공간 전체의 변화에 응답한다. 누군가의 작은 움직임이 다른 사람의 방향을 바꾸고, 한쪽에 생긴 정지가 방 전체의 시간감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집단은 미리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몸들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제안하고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면서 순간마다 새롭게 구성하는 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언더스코어는 춤의 형식인 동시에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실천이다. 몸들은 접촉할 수 있지만 접촉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관계를 시작할 자유만큼 관계에서 빠져나올 자유도 갖는다. 혼자 있음은 집단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고, 관찰은 춤을 추지 않는 수동적 상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율성과 집단적 구성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끊임없이 조정된다.

스타크 스미스는 언더스코어를 완성된 법칙이 아니라 놀이와 연구를 위한 형식으로 이해했다. 언더스코어의 핵심은 정해진 순서를 정확히 수행하는 데 있지 않다. 몸과 공간, 타인과 환경 사이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이 춤과 관계와 구성으로 출현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 언더스코어는 무엇을 춰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안무가 아니라, 함께 춤추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보고 듣고 선택하며 관계 맺는지를 드러내는 안무적 장치다.

4) 참고 및 링크 자료
글로벌 언더스코어 GUS 웹사이트: globalunderscore.com
낸시 스탁 스미스의 아카이브 및 언더스코어: nancystarksmith.com/underscore/
GUS 하베스트가 저장된 구글 공유 문서 및 페이스북: Facebook Group/Global Underscore Harvest
북유럽의 하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사: 2026년 7월 《몸》지 379호, 〈하루가 끝났는데도 끝나지 않는 빛, 알렉산더 에크만의 <한여름 밤의 꿈> 현장 스케치〉/메리 오도넬(Mary O’Donnell) 인터뷰: 2008년 9월호 《춤》지 391호, 〈춤은 마치 내 몸에 맞는 옷과 같다 - 유럽 '릴리즈댄스'의 대모 메리 오도넬과〉/콜린 바틀러 제공, 클레어 필몽(Claire Filmon)과의 인터뷰 영상 및 CI 간략 연대기

 

이진아
공연예술 연구자이자 무용 드라마투르그로서 동시대 공연예술을 미학적 차원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제도적·국제적 맥락 속에서 탐구해 왔다. 2004년부터 현장 실천을 통해 한국 무용의 드라마투르기를 정립해 왔다.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의 수학을 바탕으로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 로햄튼 대학교, 바우하우스 데사우 등) 움직임이 어떻게 사고를 확장하고 사회적·철학적 상상력을 촉진하는지를 연구와 수행을 병행하며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또한 런던 장기 체류기간 동안, 즉흥춤 메인 커뮤니티 LCI에 재정 위기로 해체한 2023년까지 정기 참여자로 활동했으며, 당시 만난 사람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GUS 한국 사이트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GUS가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되도록 장소 제공하거나 참여할 사람들, 향후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함께 나눌 동료들을 찾고 있다.​
2026. 8.
사진제공_이진아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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