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춤웹진, 그 내력 1
뜻밖에도, PDF로 태어나다
김채현_춤비평가

춤웹진 205호

〈춤웹진〉은 2010년 2월 20일에 창간되었다. 춤웹진의 올해 나이, 16살. 춤웹진이 매달 발간된 줄로들 알지만, 초창기에 3번 발간되지 못했다. 춤웹진이 PDF 버전에서 인터넷 HTML 버전으로 바뀌는 작업이 진행된 2011년 3월, 그리고 창간 직후인 2010년 3, 4월에 발간되지 않았다. 2010년 6월, 8~12월에는 월 2회가 발간되었다. 2026년 9월까지 춤웹진은 모두 205호가 발간되었다.

나는 춤웹진 편집장을 창간호 준비 시기부터 2013년 11월까지, 그리고 2018년 3월부터 2026년 2월까지 맡아 일하였다. 그 기간을 통산하면 모두 11년 10개월이다. 이렇게 장기간 편집장 일을 하리라곤 창간 때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나 주변 상황에 맞추는 동안 세월이 흘렀다.


춤비협 창립과 기관지 구축

춤웹진은 한국춤비평가협회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한국춤비평가협회(춤비협)는 2010년 1월 11일 창립되었고, 그날 까페 장(서울 대학로)에서 발족 기념 행사를 가졌다. 그 한 달 후에 춤비협의 기관지로서 춤웹진이 창간되었던 것이다. 춤웹진은 춤비협의 필요에 따라 창간되었고 춤웹진과 당시의 춤계 상황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춤비협은 한국춤평론가회의 일부 회원들이 한국춤평론가회를 승계해서 재발족하는 취지로 만든 단체이다. 1987년 7월 결성된 한국춤평론가회를 재발족하는 차원에서 춤비협이 만들어졌으므로 춤비협 차원의 독자적인 기관지를 가져야 할 필요성이 컸던 것이다. 한국춤평론가회를 쇄신하려는 의지가 춤비협의 춤웹진 창간에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사실로서 기억하고 싶다.

이러한 의지를 실현할 만한 통로는 당시에 몇 가지 있었다. 먼저 동인지 창간. 구텐베르크 종이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로 문화예술 동호인 내에서 수백년 이어져온 관행이다. 다음에 정규 종이 잡지 창간. 19세기 중엽부터 구축된 탄탄한 제도. 끝으로 당시에 등장하던 인터넷 사이트 방식 창간. 국내에선 2000년대 전반기(지금으로부터 근 25년 전)에 PDF가 등장하여 인쇄 매체를 대체하고 있었다. 갓 발족한 춤비협의 재정 형편, 기관지를 서둘러 갖춰야 할 사정, 점차 종이 매체와 거리를 두는 세태, 제작의 수월성 등을 고려하여 인터넷 사이트 방식 창간 건이 춤비협 내에서 이견 없이 채택되었다. 춤비협에서 그런 결정을 확정한 날이 2009년 12월 26일이었다.

그날 춤비협 발족 7인의 준비위원들은 발족과 관련 중대 결정을 내리고, 그 내용을 이메일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공유하였다.

“한국춤평론가회의 정통성을 이어갈 새로운 대안기구로 한국춤비평가협회를 2010년 1월 11일 발족하기로 결정함. 새로운 대안기구는 한국춤평론가회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친목단체에 머물고 있는 회의 성격을 변화하는 춤 환경에 맞는, 생산적인 단체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취지에서 발족하는 것임. 따라서 새로운 대안기구는 한국춤평론가회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잇는 단체로 그 성격을 갖게 되며, 한국춤평론가회가 시행해온 모든 사업(기관지 춤저널 발간, 춤비평가상 시상, 춤 포럼 개최 등)들을 그대로 시행하게 됨.”

이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서 창립일 준비 절차, 춤비협 정관 제정, 회원 영입 등 방안을 논의하고 이와 함께 향후 추진 사업으로 홈페이지 및 웹진 마련 등 세 가지를 정하였던 것이다.


도메인과 창간호 발간

춤웹진 창간 수년 전에 나는 개인적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다. 춤 및 축제에 관한 정보를 담는 문화 포털. 그래서 춤웹진 창간에 따른 실무 과제가 춤비협 내에서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춤웹진도 창간하려면 미리 꼭 갖춰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웹사이트 도메인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도메인은 한국, 춤, 비평 등의 태그를 담되 기억에 남을 간명한 이름을 가져야 할 터이다. 막상 그런 태그를 갖춘 영문 이름들을 검색하니 적당한 이름들이 이미 선점되어 다시 찾고 찾아 헤매기 일쑤였다. 그러다 koreadance에 생각이 미쳐 검색해보니 koreadance.kr이 마치 저 멀리 등대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도메인을 확보한 날은 2010년 1월 5일, 그 즉시 준비위원들과 이 소식을 천리안 이메일로 공유하였다. “한국춤비평가협회 출발이 순탄하네요” 소감의 답신도 받았다. 지금 춤웹진 도메인 주소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10년 2월 20일, 춤웹진은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내었다



춤웹진 창간호 표지



춤웹진 창간 실무책으로서 내가 춤비협 회원들께 창간호 배포 직전에 드린 천리안 이메일이 있다. 지금은 네이버나 지메일, 카카오, 다음, 아웃룩이 이메일 서비스의 강자들이겠지만, 당시 한국에선 천리안(千里眼·ID@chol.com)이 이메일 판에서 아주 강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2024년에 천리안은 모든 서비스를 종료하는 비운을 만나게 되는데, 2010년대에 득세한 모바일 환경에 발빠른 대응을 하지 못한 결과라 한다. 나는 당시 몇해 동안의 천리안 이메일 자료를 모두 보존하고 있다. 다행이다. 다음은 2010년 2월 16일 저녁 춤비협 회원들께 보낸 그 메일의 내용과 전송 내역이다.



“한국춤비평가협회 웹진 제1호 발간. 발간분을 보내드립니다. 지금으로서는 혼선을 빚지 않는 것이 중요할 듯하여 가장 단순하며 명료한 편집 체제를 택했습니다. 춤계에 전송하기 전에 전체 회원들께 우선 전송해서 소감을 전해 듣고 크게 손볼 것이 없다면 17일 오후 경에 춤계에 전송하였으면 합니다.”


PDF 열풍

춤웹진은 첫 발간부터 제17호(2011년 2월)까지 PDF로 발행되었다. 모바일 시대에 HTML 버전 같은 유동성이 일상적이어서 PDF가 퇴조한 지금 그 당시 춤웹진들에서 혹시 구닥다리 같은 인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PDF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PDF(Portable Document Format·전자문서)는 말 그대로 어디서나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문서 틀이다. 종이 인쇄로 보든 컴퓨터나 모바일로 불러들이든 시각적으로 변형 없이 문서 원본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1980년대말, 지금부터 40년 전에 컴퓨터와는 별도로 워드프로세서라는 문서작성기가 출현했고, 국내에서도 외국산 워드프로세서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워드프로세서에서는 이전(移轉)된 파일을 원본 작성자의 의도대로 화면이나 인쇄물에 구현하지 못하는 문제가 빈발하였다. 급기야 1993년 어도비(Adobe) 회사가 프린터나 컴퓨터 등 워드프로세서에서 문자가 깨지거나 줄바꿈이 헝클어지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PDF를 개발했고, 2008년에 PDF는 어도비의 독점을 벗어나 마침내 개방형 국제 표준으로 공식화되었다.

기존 종이 매체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PDF는 주목을 받았다. 먼저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과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PDF의 바탕이 마련되고 있었다.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PDF를 활용한 초창기 사례로 〈미술과 담론〉이 대표적으로 들어진다. 1996년의 일이다. 대안의 미술비평 공론장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도 비평문-텍스트-문자, 미술품-시각이미지를 동시에 전파하는 수단으로서 PDF를 택한 것은 당연하였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전국적으로 보급되던 고속 인터넷을 발판으로 PDF를 응용하는 등의 문화예술 웹진들이 가히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각 장르들에서 인디 문화가 소리높여 나타나고 소개되었으며 실험적인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 웹을 활용한 문학 등을 발빠르게 조명하고 현장을 자극하였다. 굳이 인디와 대안이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 쪽에서도 PDF는 대세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자료를 정리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학 웹진 〈문장(Webzine 문장)〉, 미술 및 공연예술 전문지들이 도입한 PDF/E-Book은 물론 〈국립극장 소식〉 〈예술의전당 매거진 Beautiful Life〉 등도 공연 일정, 무대 사진, 예술가 인터뷰, 평론 등을 정교한 잡지 편집 디자인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웹페이지 게시글과 함께 원문 PDF 다운로드 서비스를 병행 제공했다. 또한 영화 매거진 〈씨네21〉을 비롯 종이 잡지들도 온라인 웹사이트 운영과 함께 지난 호들을 PDF 기반의 e-Book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잡지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흔해졌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개별 웹진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예술 잡지를 모아 PDF 기반의 플립북(페이지 넘김 효과) 방식으로 보여주는 ‘디지털 매거진 통합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도서관 및 공공기관에 공급되기도 하였다. 가히 PDF 열풍이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춤비협이 웹사이트 구축을 결정할 당시에는 PDF 발간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춤비협의 웹사이트 구성안에서 회원의 비평, 연구 자료는 그 일부 메뉴로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웹사이트를 HTML 버전으로 만들고 수시로 올릴 글들도 그 버전으로 처리할 것을 염두에 두고 견적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 춤비협의 재정 사정, 원고 확보, 취재진 구성 등에서 일정한 한계가 제기되어 웹사이트 구축과 HTML 버전 발행을 기약 없이 유보하고 당분간은 모두 PDF에 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파피루스가 준 선물

이제부터 과제는 이용할 PDF를 선정하고 거기에 내용을 담는 작업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PDF 시장이 형성되었고 몇몇 벤처기업들이 있었다. 춤웹진을 만들어야 하는 2010년 경에는 PPT와 더불어 일반화된 터였다. HWP 문서를 작성해서 변환할 수 있는 PDF 툴은 이미 무료로 사용할 소프트웨어들이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그 가운데 이파피루스(ePapyrus)가 개발한 PDF였다. 회사 이름도 감각 있고 멋졌다. 비록 PDF 툴을 무료로 사용하기가 어렵지 않은 시기의 일이었어도, 이파피루스도 모르는 인연이 춤웹진과 춤비협에는 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서, 춤웹진을 펼칠 적마다 나는 이파피루스 회사를 상상하곤 한다. 회사는 2004년 벤처기업으로 설립되어 몇 해 전에는 미국의 PDF 엔진과 개발사를 합병해들일 정도로 성장했다 한다. 그 도약을 언제나 성원하겠다.



PDF 버전으로 마지막 발간된 춤웹진 제17호 제호 부분



역사는 흐른다. 조금만 들여다 봐도 역사가 구르는 경우는 허다하다. 어떻게 구르느냐에 따라 예기치 않은 변수와 일들이 등장할 확률은 달라진다. 한국춤평론가회를 승계 쇄신하려는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나타날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는 이파피루스와 이런 인연을 맺을 줄 누가 알았을까. 춤비협은 2010년 1월 11일 발족 선언문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지난해 하반기 우리는 한국춤평론가회 일각의 경악스런 처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비평가의 양식에 어긋나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이 처사를 계기로, 우리는 한국춤평론가회의 앞날과 근본을 자문하면서 한국춤평론가회 안팎의 여론을 경청하고 내부 숙의를 거듭하여 한국춤평론가회를 부득이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혹시 그 같은 경악스런 처사가 없었더라면 웹진이라 하는 인터넷 잡지가 한국 춤계에서는 아마도 훨씬 늦게 출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춤웹진이 발간된 지 1년 만에 춤웹진을 HTML 버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역시 실제로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 다음 호 계속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6. 9.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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