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아이 댄스 페스티벌(idt)은 타이완의 수도 타이페이에서 2011년에 ‘Ku & Dancers’의 주최로 시작된 국제 즉흥춤 축제이다. 격년제로 열리고 올해는 7회째(2023. 11. 11~19). 축제는 쇼케이스, 워크숍, 오픈 잼, 라운드테이블 토론 그리고 옥내외 공연들로 구성된다. 축제 목표는 타이완 지역과 국제무대를 연결하여 즉흥춤을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공연자와 관객이 즉흥춤을 향유하도록 하면서 즉흥춤이 예술적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변화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축제타이틀의 ‘i’는 improvisation(즉흥), independent(독립적), interconnected(상호연결) 그리고 international(국제적)을 의미한다고 한다.
작년 7월에 2023년 11월의 이 축제에 초빙 예술가로 초청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추천자는 하와이 대학의 Pei-Ling Kao교수. 2002년에 ‘한인 하와이 이민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한, 이제는 퇴임한 Judy van Zile 교수의 후임이다. 초청자인 Ming-Shin Ku(古名伸)가 가르쳤던 대만국립예술대학의 학생이었고 ‘Ku & Dancers’의 멤버였다고. 세상은 좁고 무용계는 더 좁고 즉흥무용계는 더욱 더 조그맣다! 그러니까 2002년 5월 IPAP 국제즉흥춤축제에 초대된 Kao교수가 그 축제에서 춤추는 나를 본 모양이다. 그해 3월에 있은 발목 수술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기분만으로 춤추었다는 기억이 있는데 불가사의하다. 나도 그해에 그녀가 컨택임프로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전체를 보며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을 감지하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프랑스 유학 시절에 즉흥춤을 피해 다녔다. 준비 안 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편하였다. 아니 두렵거나 자신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다. 즉흥의 메소드가 교육과 창작의 도구로 아주 유용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시기부터야 말로 내가 철든 어른 무용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여년 학교에서 즉흥을 가르치면서 자격지심에 눌려 수많은 즉흥춤 강습을 찾아다녔다. 주로 영어, 불어권을 통하여 학습한 것을 나의 언어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즉흥은 나에게 겸손과 용기라는 화두를 던졌다. 덕분에 애초에 내가 춤을 택하였을 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게 나를 구원하였고 또한 나의 미적 가치관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의 전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Homo educus(교육하는 인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는 존재, 그래서 즉흥의 효능을 아는 이들은 즉흥전도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 초청된 해외 예술가들은 오스트리아에서 온 Sebastian Plant, 프랑스에서 온 중국출신무용가 Dai Jian, 홍콩의 Daniel Yeung. 매번 예산상의 문제로 4명밖에 초청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2번의 강습, 2번의 공연과 라운드테이블 토론과 그리고 매 공연 후 Mix라는 각자 솔로 공연 후에 함께하는 무대, 게다가 음악가와의 연습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1주일이나 머물렀어도 그 유명한 고궁박물관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도 즉흥을 하는, 즉흥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으니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었다.
강습은 3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역시 즉흥을 아는 디렉션이다. 설명과 이해와 실행의 단계를 거치는 즉흥워크샾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강생은 두 번 다 약 25명 정도 참여하였는데 프로와 아마추어가 섞였고 연령층도 다양하다. 내가 영어로 설명하면 옆에서 바로 중국어로 통역하는데 반 정도는 영어를 알아듣는 것 같다. 장소가 넓지 않아-아마 내가 서울의 한예종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연습실 사이즈에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으나–주로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35년간 가르치는 일을 해 온 연륜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비전문가들의 집중도와 열의가 아주 높아서 나의 얕은 수준의 영어 구사력에도 제법 진행된다.
영어로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즉흥을 가르치는 것은 즐거운 도전이다. UCLA, CNSMD Paris와 Lyon, Costarica 대학 그리고 일본 대학에서 가르칠 때가 그랬고 여기에 idance Taipei가 추가된다. 바이올린과 전자음악 연주자인 음악가들이 수업을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매 순간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유연성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이 축제에서 가장 놀랍고 부러운 존재들이다.
공연은 15분 소요되는 솔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난 가을 SiDance에서 했던 솔로작품 〈달에게 물어 봐〉를 하려 했으나 막상 공연장 도면을 보고 즉흥으로 바꾸었는데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공직을 떠나고 나니 춤이 더 잘 춰지는 것은 사실이다. 생각도 몸도 자유로워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외국에서 춤을 추면서 이제나마 이 경지를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비올라주자 Zih-Ning Tai의 놀라운 재능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3번의 연습계획을 잡았지만 첫 연습에서 우리는 더 이상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온순한 소녀 같았는데 무대에 오르니 무당이 된다. 3살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고. 지금은 즉흥음악이 좋아 매번 이 축제에 참여한다고 한다. Tai는 나의 변화무쌍한 변덕에 잘 적응해주었고 우리는 함께 무대를 흔들었다^^.
라운드테이블 토론의 제목은 차이(difference)와 거리(distance). 나는 이 자리서 contact improvisation에 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주최 측은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추켜 세우지만 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워크숍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영어 실력이 떨어진다.
즉흥 중에서도 접촉즉흥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주최 측의 생각에 관심이 있다. 옥스퍼드사전에 접촉즉흥은 머스 커닝험 무용수였던 스티브 팩스톤이 합기도를 훈련하면서 1972년도에 무용으로 발전시킨 기법이라고 기재되어있다. 움직이는 두 신체가 gravity(무게), momentum(가속도), friction(마찰), intertia(관성)의 법칙을 가진 결합 관계를 유지하며 소통(교류, communication)하는 것이다. 여기서 신체는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즉 감정이 배제된 상태의 신체가 만나는 것이다. 인간이 타인의 신체와 만날 때는 두 가지 경우-사랑할 때와 싸울 때라고 말한 영국의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접촉즉흥을 레슬링, 재즈, 섹스라고 비유한 학자도 있다. 사실 타인의 신체와 이런 중립성을 가지며 대화하는 성숙한 경험을 하고 나면 여태까지 가졌던 신체의 중력에서 해방된 상태의 몸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인 춤바람이 스며든 것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타인의 신체뿐 아니라 바닥 그리고 오브제와 접촉할 때도, 아니 공기나 바람을 만날 때도 다른 감각을 갖게 한다. 신체가 해방되면?... 정신도 자유로와진다!
‘우리는 즉흥춤에 대해 마치 안에 입고 있는 속옷처럼 언급을 많이 하지 않는다. 우연히 그 낱말이 혀로 미끄러져 나오게 내버려 둔다. 십여 년 동안 이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야 제대로 말할 수 있고 이제는 축제를 통해 큰 소리를 내려고 한다. 그래서 idance Taipei가 태어난 것이다. 2023년도에 궤도에 올랐다. 올해가 7번째고 격년제로 13년이 지났다. 이제는 경험뿐만이 아니라 즉흥춤 인구도 축적하게 되었다’.(주최자 Ming-Shin Ku) 세상에는 무수한 춤축제가 있지만 같은 한자권의 옆 나라에서 나와 같은 무용 여정을 걷고 있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 운명이 감사하다.
남정호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