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예술을 통해 국가나 지역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문화정책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선진 외국일수록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같은 정책이 시도되었고, 보다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나라도 여럿 있다. 무용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의 춤 상품을 세계 춤 시장에 유통시키고, 무용예술을 통해 국가나 지역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은 대체로 축제나 콩쿠르를 개최하거나 국제 협업작업을 중심으로 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무용마켓이나 댄스플랫폼 개최도 빼놓을 수 없다.
무용 마켓의 경우 독일의 탄츠메세처럼 무용예술 장르만 개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미국의 APAP이나 캐나다의 CINAR처럼 무용 뿐 아니라 음악 연극 등 다른 예술 장르가 포함된 공연예술마켓 형태로 개최된다.
반면에 댄스플랫폼의 경우는 거의가 자국의 무용 작품만을 모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형태로 열리고, 이러다 보니 양질의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의 경우는 2년에 한 번씩 마련된다. 댄스플랫폼을 운용하는 사무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방문자들은 플랫폼에 내놓은 작품을 사가는 사람들이다. 곧 무용축제의 예술감독이나 프로그래머, 무용 공연 작품을 편성하는 극장의 프로그램 디렉터, 공연 작품을 유통시키는 프레젠터 등이 그들이다.
최근에는 더 많은 게스트들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의 댄스플랫폼들이 연합해 일정을 조율하거나 개최 지역을 더 다변화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2024년 2월에 열리는 북유럽 5개국(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이 연합한 ICE HOT과 독일의 탄츠플랫폼, 스위스의 댄스데이가 이틀 간격을 두고 이어 개최하는 시도 등이 그런 예이다.
SDP와 제휴한 국제 페스티벌 ⓒTerry Lin |
공연이 열린 국립전통예술센터 소극장 ⓒTerry Lin |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장광열 |
Beatriz Mira & Tiago Barreiros(포르투칼) 안무 〈Corrente〉 ⓒTerry Lin |
Lia Claudia & Giovanni Leonarduzzi (이탈리아) 안무 〈Simposio〉 ⓒTerry Lin |
Catarina Casqueiro & Tiago Coelho(포르투칼) 안무 〈Motomari No Nai〉 ⓒTerry Lin |
Cheng I –han(타이완) 안무 〈Miss Shape〉 ⓒTerry Lin |
제5회 타이완 Stray Birds Dance Platform
수년 전부터 타이완의 컨템포러리댄스가 급성장하고 있음은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용 마켓인 독일 탄츠 메세의 공식 쇼케이스에 등장한 타이완의 컨템포러리댄스는 그 수준이 매우 높았고, 타이완의 작품을 소개하는 지원기관이 마련한 ‘Dancing Taiwan’을 내세운 부스도 크고 넓었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스태프들의 적극적인 홍보도 단연 인상적이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스페인 MASDANZA 안무 경연대회의 본선에 진출한 타이완 안무가들의 입상 빈도도 날로 늘어났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 MASDAZA 축제는 2022년 ‘MASDANZA x KOREA’에 이어 2023년에는 국가 간 무용교류 프로그램으로 ‘MASDANZA x TAIWAN’을 개최했다. 대한민국 컨템포러리댄스의 질 적인 향상 못지않게 타이완 춤의 성장세를 감지한 예술감독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타이완은 수도인 타이페이 뿐 아니라 제2의 도시인 가오슝(Kaohsiung)과 제3의 도시인 타이중(Taichung)을 베이스로 한 무용단체들이 지역의 공공 극장 등과 연계해 활발한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용하고 있다. 수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춤과 달리 각 지역의 문화예술 지원 시스템과 긴밀한 협력 하에 가동되고 있었다.
12월 13일부터 17일까지 타이페이 시에서 열린 Stray Birds Dance Platform(SDP)은 올해로 5회 째인데 타이완의 무용 작품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무용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 여타 댄스플랫폼과 차별화 된다.
이와 함께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모아진 춤 작품들의 질이 평균점을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Showcase 섹션에 5개, Selection A B C 섹션에 14개 등 모두 19개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이들 중 타이완 안무가들의 작품은 7개에 불과했다. 타이완을 제외한 아시아의 출품작 세 편은 모두가 대한민국 안무가들의 작품이었다. 나머지 9개의 작품은 유럽 5개국(스페인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포르투칼)과 캐나다 안무가들의 작품이었다.
SDP는 2017년, 타이페이 시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타이완의 안무가 LAI Hung-chung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Stray Birds, 철새들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한 지역에서 짧은 시간 머무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SDP는 많은 지역 안무가들의 self–realization, 스스로 인식해서 창조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들의 집합체가 되길 희망한다“고 분명한 지향점을 밝혔다. 그는 올해의 경우 공모를 통해 접수된 작품만 100편이 훨씬 넘었다고 귀띔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제휴하는 국제 무용 축제를 통해, 또 전 세계의 안무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식적인 공모를 통해 우수 작품을 선별한다고 그 운용방법을 털어놓았다. 공연 마지막 프로그램인 Award Ceremony 때는 SDP와 제휴하고 있는 컴퍼니와 축제를 대표해 참가한 게스트들이 함께 작업할 안무가와 축제에서 공연할 작품을 선정해 발표했다. 가장 많은 콜을 받은 작품은 무려 네 군데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SDP의 예술감독인 LAI Hung-chung은 가오슝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은 타이페이국립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자신이 만든 컴퍼니 Hung Dance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SDP는 결국 댄스 컴퍼니가 운영 주체인 셈이다.
타이완이나 홍콩 무용계의 특징 중 하나는 국제적인 축제나 행사들을 댄스 컴퍼니의 안무가 개인이 주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7회 째 개최되고 있는 국제즉흥춤축제타이페이(idt)도 Ming-Shin Ku 라는 개인 컴퍼니를 운영하는 무용가가 주최하고 있다.
실제로 SDP 현장에서 축제를 운용하는 스태프들은 거의가 Hung Dance의 댄서들이었다. 그럼에도 홍보와 게스트들을 위한 안내와 프로그램 운용 등에서 안정된 행정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 2023 SDP 프로그램 북에는 2024년 제6회 SDP가 12월 6일부터 8일에 걸쳐 열린다는 것과 참가 작품 공모를 을 3월에 시작한다는 내용이, Hung Dance의 정기공연이 3월 23일부터 24일까지 열리고 티켓 예매는 2023년 12월 5일에 시작되었다는 광고가 게재되어 있었다.
타이완의 춤 단체와 안무가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평균점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이렇듯 잘 만들어진 시스템 운용에 힘입은 바 크다. 철저한 평가를 통해 축제나 컴퍼니의 성과와 지속 필요성을 진단하고, 효용성이 검증된 경우 이를 적극 지원하는 타이완의 예술정책 운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SDP는 댄스플랫폼을 운영하면서 단순히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게스트들과 초청 안무가들을 활용한 Talk 프로그램과 안무가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댄서들을 위한 워크숍을 함께 편성하고 있었다. 예산확보를 위한 영리한 프로그래밍과 함께 타이완 무용수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예술감독인 LAI Hung-chung이 2024년 4월 대구시립무용단의 객원 안무가로 참여하고, Hung Dance의 수석 무용수인 CHENG I-han이 2024년 1월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열리는 공연에 안무가로 참여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었다.
시작한지는 비록 5년 밖에 안 되었지만 향후 Stray Birds 댄스플랫폼은, 봄 시즌에 열리는 타이완 안무가들의 작품만이 출품되는 타이페이댄스플랫폼과는 달리 아시아에서 유럽 안무가들의 질 높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김민(한국) 안무 〈Are You Guilty?〉 ⓒTerry Lin |
Panna Pozsony(헝가리) 안무 〈Too weird to live, too rare to die〉 ⓒTerry Lin |
출연 무용수들과 International Guest들 ⓒTerry Lin |
ipap(한국)이 2024년 2025년 축제를 위해 선정한 안무가들 ⓒTerry Lin |
SDP에 참가한 유럽 무용수들 ⓒ장광열 |
제29회 Yokohama Dance Collection
올해로 29회째를 맞은 Yokohama Dance Collection (YDC)의 가장 큰 강점은 여타의 국제 무용 페스티벌과 달리 경연에 입상한 안무가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새 작업을 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꾸준히 유통할 기회를 함께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장 앞에 설치된 YDC 홍보물 ⓒ장광열 |
안무경연대회가 끝난 후 네트워킹 프로그램 ⓒ장광열 |
Ji Jie (중국) 안무 〈Nowhere to turn〉 ⓒYDC |
박수열(한국) 안무 〈Dating Abuse〉 ⓒYDC |
Nagano Yurico (일본) 안무 〈Drop〉 ⓒYDC |
Chuang Po-Hsiang(타이완) 안무 〈Non-Ordinary Services〉 ⓒYDC |
Movers #4에는 10명의 댄서들의 춤이 45분 동안 쉼 없이 이어졌다. ⓒYDC |
공연 전에 있었던 제휴기관 대표들의 Talk 프로그램. 마이크를 든 사람이 한국 Connected A의 장수혜 대표 ⓒ장광열 |
11월 30일부터 12월 17일까지 계속된 2023 YDC 프로그램은 안무 경연대회, 이전 수상자 초청공연, Dance Cross, 특별 기획공연, 전시 등으로 짜여졌다.
공모를 거쳐 선정된 25세 이하 일본 안무가들의 경연(11월 30일-12월 1일, Nigiwaiza Small Hall)과 메인 프로그램인 국제 안무가들의 경연(12월 2-3일, Red Brick Warehouse)은 통 털어 매우 뛰어난 작품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작품의 콘셉트나 움직임 구성에서나 작품을 풀어나가는 아이디어 면에서나 메시지 전달 등에서 독창적인 그 어떤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 안무가를 만나지는 못했다.
반면에 이전 수상자들의 초청 공연(12월 5일-6일, Red Brick Warehouse)에서 만난 한국 Choi X Kang Projcet(최강 프로젝트)의 〈A Complementary Set_Disappearing with an Impact〉와 타이완 Shimmering Production의 〈Beings〉는 왜 요코하마댄스콜렉션 안무경연대회가 유명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작품 모두 작품의 콘셉트를 포함, 예술적인 완성도에서 세계 컨템포러리댄스의 평균점을 상회하는 수작이었다. 최강프로젝트는 2018년 YDC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Shimmering Production의 안무가 Wang Yeu-Kwn은 2021년 YDC에 입상했다.
이와 함께 특별 기획으로 마련된 〈Movers Platform #4〉도 이주 인상적이었다. YDC가 외국 축제, 또는 기관과의 네트워킹을 축제의 프로그램밍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키고 어떻게 축제의 다양성을 살려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2월 2일과 4일 밤 Terrace Theater에서 두 차례 공연된 〈Movers Platform #4〉는 타이완의 Thinkers Studio, 홍콩의 West Kowloon, 한국의 Connected A 등이 협력기관으로 참여했고 협력기관 대표자들의 Talk 프로그램도 곁들였다.
2022년 처음 시작된 무버스플랫폼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기획된 일종의 국제교류 프로젝트로 다음세대 무용예술가들의 가치관과 관점을 소개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예술의 흐름 안에서 서로 다른 국적 혹은 배경을 가진 신진 무용예술가들이 움직임 큐레이터로 참여한 일본의 예술가 히로아키 우메다(Hiroaki Umeda)와 함께 대면 또는 비대면 리서치를 한 뒤, 한 자리에서 만나 서로의 독창적이며 다양한 에너지와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유해 오고 있다.
2022년 그리스에서 첫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어 한국에서 서울공연예술마켓이 열리는 기간에 두 번째 플랫폼이 이어졌다. 2023년 플랫폼은 일본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초청으로 성사되었고, 그동안 참여했던 5개국 10명의 무버(mover)들이 모두 모여 공연을 펼쳤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10명 댄서들의 춤은 에너지가 넘쳐났고 무엇보다 개성적이었다. 솔로 2인무 트리오 등으로 변주되면서 계속 이어지는 춤은 그 다른 질감과 에너지의 변환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시너지가 대단했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 젊은 아티스트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국제교류의 모델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무버스플랫폼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국측 협력기관으로 참여한 Connected A 대표 장수혜 프로듀서는 “그리스, 한국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에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의 성장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미래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위한 각국의 지원 사례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인큐베이팅과 함께 유통 기회를 동시에 부여해 레퍼토리 작업과 안무가로서의 경쟁력을 차근차근 축적하도록 하고 있는, 곧 경연을 통해 예술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안무가들에게 직접적으로 창작 지원금을 쥐어 주는 대신 작업할 공간과 극장, 홍보를 포함한 제작 전반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운영시스템은 분명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