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오스트리아 2024 임펄스탄츠(Impuls Tanz) 참관기 2
손인영_안무가.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맑은 햇살이 온종일 빈시를 강타하는 7월의 땡볕. 많은 남녀노소가 ‘ImPulsTanz’ 라고 적힌 광고판이 붙어 있는 담장으로 둘러쳐진 광장에서 오른발 왼발을 옮기고 회전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햇빛이 없는 쪽으로만 다니는 나와는 대조되는 그들의 7월은 따가운 햇살과 함께 춤으로 뜨거웠다.





대중을 위한 춤 워크숍(Public movers)



내가 머물렀던 동네인 빈시 19가 시청 앞 공터에서는 연일 배움의 열기가 가득했다. 임펄스탄츠가 시행하는 대중을 위한 춤 워크숍(Public movers)이 하루걸러 한 번 정도 낮에 열렸는데, 이 행사로 인해 밖은 늘 시끄러웠다. 참가자들은 다들 환한 미소로 강사의 쉬운 움직임을 따라 하며 춤을 즐겼다.

대중들을 위한 이 같은 워크숍은 빈 시내 가장 번화한 일곱 장소와 근처 3개 도시에서 진행되었다. 대중들에게 춤을 알리려는 축제 측의 새로운 기획으로 3년째하고 있단다. 임펄스탄츠의 기획 프로그램 외에도 빈 시내 대중이 모이는 광장 곳곳에서 다양한 춤판이 벌어졌다. 그만큼 춤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원래부터 춤은 대중적이었으나 시대마다 춤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이제 춤이 밖으로 나와 누구나 출수 있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도 이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가져본다.



Chris Haring 〈In Medeas Res〉



7월 19일 5시 예술가의 집 팩토리(Künstlerhaus Factory)에서 크리스 헤링(Chris Haring)의 작품 〈In Medeas Res〉가 공연자들인 김동욱과 하나 팀브렐(Hannah Timbrell)의 공동 안무로 열렸다. 크리스 헤링의 조명디자인이 독특했던 이 작품의 내용은 마리아 칼라스의 이중성과 정신의 문제를 다루었다. 무용수들은 남녀로 이중성을 나타내었고, 무대는 뇌의 모습을 의미했다. ​

무대 위에는 다양한 세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긴 봉 위에 크고 작은 조명, 카메라, 왕관, 찢어진 천 조각들이 무대를 가득 메울 정도로 설치되었다. 무용수들이 나와 설치된 조명과 카메라들의 방향을 조절했다. 여자 무용수가 위에서 내려온 용수철을 잡아당기니 소리가 났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음악은 없었고 바람 소리나 용수철 흔들리는 소리 또는 작게 속삭이는 말소리 등이었다. 남자 무용수가 계속 조명을 끄거나 켜서 방향 조절을 하는 동안 여자 무용수는 용수철이 아래위로 흔들릴 때, 용수철과 반대로 움직였다. 김동욱이 카메라를 맞추자 하나 팀브렐의 몸이 벽에 비쳤다. 팀브렐은 입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움직였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철로 된 긴 여러 개의 더듬이가 왕관 위에 붙어 있었는데, 이것을 김동욱이 손으로 밀자 소리가 크게 났다. 천처럼 생긴 구멍 난 고무줄을 두 무용수가 잡아당겨 늘렸다 놓고 웃으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이동 없이 몸의 형태만 변화시킨 춤이었다. 말하는 소리가 음악으로 들렸으나 또렷하지는 않았다. 둘의 춤이 조명으로 인해 벽에 스쳐 지나가듯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조명이 밝아지며 여자가 엎드려서 소리 없이 입을 크게 벌리며 화를 내는 듯했다. 두 무용수는 손으로 몸을 두드리거나, 천 같은 고무를 잡았다 놓기도 했다. 음악은 처절한 표정과는 다르게 무음이나 바람 소리 정도였다. 이어 두 무용수가 다시 조명과 카메라 등을 세팅했다. 남자 솔로가 시작되자 반대로 여자가 조명과 카메라를 조절했다. ​여자가 바닥에 놓여 있던 막대들에서 뭘 꺼내니 용수철이 나왔다. 그걸 차례로 잡아당겼다가 놓으니 그 길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났다. 남자가 긴 조명을 들고 자기 몸을 비추며 마치 노래를 부르듯 움직였다. 이어 두 무용수가 앉았다 일어서기를 서로 반대로 했다. 카메라들을 다시 조절하고 위에 달린 용수철 하나를 잡아당기니 벽의 그림자에는 용수철이 4개로 보였다. 두 개의 용수철이 움직이니 8개의 그림자가 벽에 보였다. 마치 용수철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마지막에 한참 무대 세트를 이리저리 옮기거나 세팅을 새로 하고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입을 크게 벌린 상태에서 공연은 끝났다. ​

무대는 무용작품이라기보다 설치 예술에 가까웠다. 조명의 방향이나 조도에 따라 무대가 다양하게 변화되었기에 호기심 있게 봤다. 지나치게 계산된 작품이라 볼거리는 많았으나 작품을 즐기기에는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마리아 칼라스의 이중성을 표현하려고 지나치게 이미지에 치중한 느낌이 들었다. 집중하고 공연을 봐서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아이디어나 내용 면에서는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라 의미는 있었다. 한국인이 나와서 더 관심이 갔던 작품으로 크리스 헤링은 리커 로프트(Liquid Loft)라는 컴퍼니를 이끌며 2002년부터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었던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19일 7시 무목에서 데이비 폰테스 & 월리스 페레이라(Davi Pontes & Wallace Ferreira)의 작품 〈레퍼토리 2 (Repertorio N2)〉을 봤다. 두 흑인 무용수는 젠더와 인종 문제에 있어 신체적, 인식론적, 상상적 폭력에 대한 자기방어를 중심으로 3부작을 제작했다고 프로그램에 쓰여 있었다. 폭력에 도전하고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저항과 전략을 제시하려는 시도의 작품이라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2022년 임펄스탄츠에서 젊은 안무가 상을 받았다.

흑인 남자 둘이 나체로 나와 객석을 여기저기 뚫어지게 쳐다봤다. 둘이 오른발로 바닥을 꽝꽝 치며 걸었다. 두 바퀴를 돌고 오른쪽 왼쪽으로 리듬을 만들며 돌았다. 유니슨으로 움직이다 각자 다른 리듬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멈추고 서로 바라보며 한참을 있었다. 처음처럼 한 발로 꽝꽝거리며 반복하여 걷다가 한 사람이 오른손을 허리 뒤에 얹으면 다른 사람이 따라 했다. 반복적으로 움직이다 양옆으로 벌어져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 멈추었다 다시 움직였는데 거의 반복이지만 가끔 다른 움직임들이 파고들었다. 오른손을 머리 위에서 돌리거나 둘이 걸으면서 교차하며 원을 만들기도 했다. 오른발로 바닥을 치면서 걷는 것이 기본 리듬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하거나 한 발을 길게 밀면서 팔을 사용하는 몇 가지 동작이 이어졌다. ​

반복하면서 조금씩 변형되는 발과 팔 동작 사이에 멈춤이 있었는데, 멈출 때는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예를 들어 무용수 A가 객석의 아름다운 여자 앞으로 가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무용수 B는 A를 바라본다든지, 멈출 때 몸을 대리석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난 뒤, 조각처럼 있기도 했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기본 리듬으로 걷다가 조금씩 리듬을 변형시키기도 했다. 한 사람이 허리에 손을 얹으면 따라 하기도 하고,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거의 동시에 멈추는 걸 수차례 반복했다. 멈춤의 포즈는 매번 달랐다. 객석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의자 사이에 앉거나 무대에 조각처럼 서거나 앉아 있거나 했다. 음악 없이 1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행위 자체는 흥미롭지만, 작품의 컨셉트와 어떻게 춤이 연결되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무엇이 관객을 흥미롭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약간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Aymeric Hainaux & Francois Chaignaud 〈Mirlitons〉



19일 9시 에이메릭 하이노(Aymeric Hainaux)와 프랑수아 샤이노(Francois Chaignaud)가 안무하고 출연한 맨돌 프로덕션(Mandorle)의 작품 〈미를리톤〉(Mirlitons: 갈대로 만든 어린이용 피리)을 오덴극장에서 관람했다. 이 작품은 내용 없이 기발한 방식과 기이한 리듬으로 괴성과 소리가 난무하며 무대를 예측할 수 없이 변화무쌍한 놀이터로 바꾼다고 했다.

무대를 객석으로 만들었고 그 중앙에 한 평 남짓한 낮은 무대가 있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키가 작은 여장 남성인 프랑수아가 무대 아래 누워있던 키 큰 에이메릭을 포대기에 싸서 무대 옆으로 질질 끌고 다녔다. ​남자를 일으키려 애쓰던 프랑수아는 남자를 허리춤에 돌려 매고 무대 밖 여기저기를 걷더니 무대 위로 올렸다. 무대에 올려 진 에이메릭은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대고 비트박스를 했다. 여장 남성인 프랑수아가 자기 상의를 막대기에 걸고 나오더니 남자의 비트박스 음악에 맞춰 탭댄스를 췄는데 예술적으로 탭댄스를 했다기보다 무조건 소리를 크게 발로 꽝꽝 치면서 소음을 만들었다. 술병처럼 생긴 물을 벌컥 벌컥 들이 마시다 머리 위에 물을 붓기도 했다.

​프랑수아는 발레로 다져진 몸을 갖고 있었다. 탭댄스를 잘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몇 가지 리듬을 반복했다. 비트박스도 같은 리듬이었다. 그 중간마다 괴상한 짓거리를 했는데, 관객들은 그 짓거리를 즐겼다. 갑자기 프랑수아가 사라졌고 비트박스는 계속되었다. 다시 돌아온 프랑수아는 반짝이 옷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똑같은 리듬의 탭댄스를 한 평 남짓의 무대에서 추거나 무대 옆 바닥에서 췄다. 마지막에는 에이메릭이 프랑수아를 물구나무 세워 껴안고 반짝이 상의를 벗기며 넘어지거나 의도되지 않은 듯한 즉흥적인 행위를 펼쳤다.

내용도 의미도 없는 공연이라 중간에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나가기가 쉽지 않아 할 수 없이 참고 봤는데, 공연은 거의 80분간 이어졌다.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끊임없이 보냈다. 다양한 장르의 복합된 공연들을 많이 봐왔고, 또 좋은 작품은 의미가 있거나 내용이 있기에 춤이 비록 없다 하더라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프로그램에서도 특별한 내용이 없었고, 작품을 보면서도 별 내용이 없이 시끄럽게 탭댄스랍시고 꽝꽝 무대를 내리치는 등의 행위만 난무했다.

똑같은 것의 반복과 강한 비트박스 소리와 발소리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입구에서 이어폰을 주지 않았다면 손으로 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로움은 느낄 수 있었다. 탭댄스 수준도 뛰어나지 않았고, 비트박스는 나름 괜찮았으나 비슷한 리듬의 반복이었고, 행위가 예술적으로 우수하다고 느끼기도 어려웠는데, 손뼉을 치는 관객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박수를 치는 것인지. 좋은 ​작품은 나에게 어떤 의미와 느낌과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예술에 대한 판단 자체를 달리 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상식의 선을 넘는 작품을 즐길 줄 안다는 의미인지. 나는 이 작품을 페스티벌이 왜 올렸는지 무척 궁금했다. 추의 멋을 추구한 것인지, 또는 예술적 열정의 에너지(예를 들어 굉음을 만들거나 쉼 없이 비트박스를 마이크에 토해내는 등)를 과감하게 보여주려 했는지, 난장을 치거나 온갖 짓거리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짓거리로 보였지만, 모든 종류의 공연에 열려있는 빈의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끊임없이 보냈다. 나로선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이었으나 잊히지 않을 공연이란 것은 확실했다. ​

20일 6시 무목에서 데이비 폰테스 & 월리스 페레이라의 〈레퍼토리 3〉을 N2에 이어 봤다. 3부작의 마지막이다. 주제나 내용은 전작과 같았다. 무대에는 테이블이 설치되었고 관객이 그 테이블 위에도 앉아 있었다.

N2와 마찬가지로 나체의 흑인 남자 둘이 걷는 것을 강조한 걸음걸이로 같이 반 바퀴 돈다. 오른팔을 머리 위에서 돌리며 걷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다시 걷는다. 둘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원형으로 발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걸었다. 뒤로 걷다가 옆으로 걸으며 무대 전체를 다녔다. ​발로 큰 소리를 내며 다시 앞으로 걷는다. 오른손을 머리 위에서 털듯이 하며 걷다가 멈추고 서로 바라본다. 오른손을 가슴에 두고 왼손을 뻗어 주먹을 쥐고 가만히 조각처럼 서 있었다. 물구나무를 섰다 내려와 앉아서 둘은 손가락으로 하트 사인을 만들었다. 다시 처음처럼 걷다가 양손으로 가위표를 만들고 리드미컬하게 뒤로 걸으며 발에 힘을 주고 움직이다 멈추었다. A가 앉아서 손가락으로 지시하자 B는 여자 관객 앞으로 가서 쳐다보고 물구나무를 서자 나체의 중요한 부위가 여성 앞에 노출되었다. 민망한 상황이었으나 모두 예술공연으로 여기기에 킥킥거리지도 않았다. 물구나무를 서 있다 내려와 앉아 하트 표시를 손으로 하고 다시 움직였다. 관객 속으로 파고들어 남자 관객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무용수들이 앉았다. 한쪽 눈을 가리고 중간의 관객 쪽으로 향했다가 손을 내리고 앞으로 한참보다 다시 걸었다.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이어졌으나 N2와 거의 대동소이했다.

젊은 안무가 시리즈는 실험적인 공연이 많다. 예술감독인 칼은 관객이 원하는 공연도 올리지만, 실패하더라도 여태 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춤을 올리기도 한단다. 비록, 관객이 원하지 않는 공연이고, 작품 스타일이 상식의 선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관객이 다양한 경험을 하길 원하기 때문에 아주 실험적인 공연도 올린단다. 열려있는 예술감독의 이 같은 시도는 결국 관객의 시야를 넓히고 실험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으로 변화시켰다.



Astrid Boons 〈Khora〉



20일 7시 반 젊은 안무가 시리즈로 아스트리드 분스(Astrid Boons)의 작품 〈코라(Khora)〉가 뮤지엄 홀 G에서 열렸다. 기술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인간성을 찾으려는 내용이다. 무대는 부토처럼 흰색이다. 5명의 무용수가 흰색 돌들 사이에 엎어지거나 누워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뒤에 조명기기 하나만 밝게 비췄고 무용수들이 작게 움직였다. 고개를 살짝 들거나 다리를 움직이거나 팔을 조금 비트는 정도였다. 음악은 뭘 긁는 듯 작은 소리가 났다. 조금씩 움직이던 무용수들이 거미처럼 기어 다녔다. 비둘기 색 리어타드를 입고 같은 색으로 복면을 했다. 무용수들은 곤충이나 벌레처럼 기어 다녔다. 한 무용수가 큰 돌 위에 처음으로 서서 복면을 벗고 움직였다. 키가 크고 마른 무용수였다. 그녀는 서서, 마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의 비비 꼬이거나 발이 뒤틀린 형상으로 움직였다.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듯 소리를 가끔 냈다. 그 아래로 한 무용수가 기어서 상수로 갔다. 서서 움직이는 여자와 여러 명의 기는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긁는 소리가 강하게 들리더니 한순간 조명이 완전히 다르게 변하자 서 있던 여자가 다시 바닥에 있던 복면을 쓰고 바닥에서 움직였다. 소리가 커지자 5명이 모여 바닥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했다. 소리가 사라지자 복면을 벗은 임신한 여자가 몸을 뒤집거나 구부리며 네 발로 걸었다. 다른 무용수들은 천천히 거의 미동 없이 움직였다. 남녀 듀엣이 펼쳐졌다. 남자는 도망가려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달라붙으려 했는데 마치 네발 달린 곤충이 사람에 붙어 있는 것처럼 독특했고 움직임도 좋았다. ​

전체적으로 거의 무음 속에서 뭔가를 긁거나 툭툭 두드리다 소리가 커지면 움직임이 빨라지고 조명이 바뀌었다. 반복적으로 같은 상황이 되고, 무용수들이 돌아가며 솔로나 듀엣 또는 그룹 춤을 췄다. 무용수들의 기량도 좋고 작품의 느낌도 좋았는데 왠지 지루했다. 중간에 관객들이 나갔다. ​춤이 많았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였으나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면서 흥미를 떨어뜨린 공연이라 아쉬웠다. 움직임으로만 표현하는 작품이 이젠 빈의 관객들에게는 시들해졌다. 또한, 주제도 고루했다. 안무자의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Gorges Labbat 〈Self/Unnamed〉



20일 11시 욱(Wuk)극장에서 조지스 래빗(Gorges Labbat)의 작품 〈Self/Unnamed〉가 젊은 안무가 시리즈로 올려졌다. 이 작품은 자아와 대면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자기이면서 타인인 두 몸은 경계가 없으면서도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가 옷을 거의 벗고 서 있고, 그 옆에 누운 인형이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남자는 작은 조명을 줄의 끝에 달고 줄을 돌렸다. 줄에 달린 조명이 사라지고 전체조명이 켜지자 사람만큼 큰 투명한 흰색 인형과 함께 남자가 서 있고 소리가 크게 났다. 인형을 잡자 소리가 멈췄다. 이를 두 번 반복했다. 무용수는 누워있는 인형 허리를 잡고 천천히 돌리면서 일어났다. 인형을 잡고 마주 본 상태에서 마치 듀엣을 하듯 남자가 돌았다. 무대 전체를 느리고 조심스럽게 한 바퀴 돌고 손을 떼자 다시 소리가 강하게 났다. 댄서들은 다시 인형을 잡고 돌려 인형을 등지게 하고 위로 아래로 들었다 놨다 하며 돌았다.

상수 뒤쪽에 인형을 놓고 인형과 멀어지자 시끄러운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한참 인형과 떨어져 있다 가서 인형의 입을 막자 소리가 사라졌다. 인형의 입을 막고 돌리자 마치 인형이 사람의 입을 막은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인형을 내려놓자 팝송이 흘렀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애정이 절절한 노래였다. 어둠 속에서 조명이 깜박거리며 켜지자 인형만 보이다 다시 깜박거리자 사람이 보였다. 여러 번 조명이 깜박거리며 인/아웃 되자 인형과 사람이 번갈아 보이거나 인형도 사람도 없어진 상태가 되었다. 나중에는 인형 발에 줄을 연결하여 인형을 돌렸다.

​늦은 밤 공연인데 무음이거나 시끄러운 불협화음의 소리가 난무했던 작품. 지루하고 짜증났던 공연이나 관객들은 집중하며 봤다. 자아와 대면한 인간이라는 철학적 컨셉트의 깊이만큼이나 관객도 깊게 관찰하며 봤다. 개인적으로 지루했던 공연이지만 다양한 생각과 시도를 보여 준 젊은 안무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2025. 4.
사진제공_손인영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