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오스트리아 2024 임펄스탄츠(Impuls Tanz) 참관기 3
손인영_안무가.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빈의 임플스탄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시민들의 힘 때문이다. 빈 시민들은 축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여름에 열리는 이 행사는 세계의 무용가들, 강사와 수강생들이 대거 모이기에 주최 측에서 지불해야 하는 숙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시민들이 휴가를 떠나면서 그들의 집을 행사를 위해 쓸 수 있도록 주최 측에 맡긴다고 한다.

매일 공연이 2~3개가 열리는데, 관객은 늘 만석이다. 칼 예술감독은 지원금 외에 티켓 판매 액이 축제의 큰 자금원이라고 했다. 무용공연을 보기 위해 빈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시민들의 힘이 축제의 성공을 견인하고 있다. 축제는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일반인을 위한 전문 강의와 시민들을 위해 열린 공간에서 워크숍을 열고 있다.

축제가 무용가들만의 리그가 되면 발전하기 어렵다. 특히 무용은 더 그렇다. 춤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접해보지 않았거나 보러 가지 않아서 멀다고 느낄 뿐이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무용공연에 일반인들 발길이 조금씩 늘고 있다. 무용가들은 더 노력하여 일반인들이 춤을 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한다.

축제 기간 동안 빈 시내는 온통 임펄스탄츠 홍보물로 가득하다. 빌딩 전면에 걸린 거대한 홍보물을 비롯, 수많은 언론인들을 유치하여 공연을 보고 글을 쓰게 하고 있다. 펄럭거리는 홍보물을 보며, 7월 ​22일 9시 시내 중심가의 폴크스극장(Volkstheater)으로 향했다.

시디 라르비 체르카우이(Sidi Larbi Cherkaoui)의 〈3S〉 공연이었다. 모르코계 벨기에 안무가인 시디는 일본, 콜롬비아, 호주에서 온 무용수들과 그들 나라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춤으로 엮었다. 탈출구가 없는 세상에서의 고독을 춤으로 표현한 일종의 다큐멘터리식 공연이기에 강렬했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충격과 그 결과, 콜롬비아는 게릴라들의 참사와 거래, 그리고 호주는 원시림의 착취를 바탕으로 그 상황을 영상과 더불어 공연했다.





Sidi Larbi Cherkaoui 〈3S〉



첫 장면은 책상이 있고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서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며 춤을 춘다. 독특하게 생긴 만돌린 비슷한 현악기와 양금 비슷한 것으로 연주를 했는데, 일본이나 인도 음악처럼 느껴졌다. 일본의 핵관련 영상이 나온다. 남자가 죽으려 하는데 잘 안 된다. 입에 볼펜을 물고 책상에서 멀어지면서 옷을 벗으며 춤을 춘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남자가 있다.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바람이 불어 종이가 흩날릴 때, 종이와 벗었던 자기 옷을 줍기 시작한다. 흑인 여자의 노래가 독특하다. 블루스 음악 같기도 하다. 말하면서 자기 옷과 종이를 캐비넷 속에 넣고 흰옷인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춤을 출 때, 일본 노래가 들렸다.

이어 ​콜롬비아인이 춤을 추면서 총을 자기 쪽으로 또는 남에게 겨누었다. 영상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이민자들이 철장을 사이에 두고 미국 군인들과 대치하는 장면과 반군들의 사진 등이 보였다. 무용수는 작은 총과 긴 총 두 개를 가지고 움직였다. 몇 가지 움직임을 했는데 유연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총을 내리고 미국의 국회의사당 영상 앞에 가서 두 손을 올리고 꿇어앉는다.

마지막은 호주의 자연 착취에 관한 내용으로 춤 위주에 시종일관 호주의 자연이 영상으로 보여졌는데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유연함이 부족한 춤은 관객을 불편하게 했다. 일본 관련 내용이 가장 안무적으로 탄탄했다. 예술은 정치적 현실과 환경문제에 대해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춤은 영화와 달리 추상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예술이기에 직접적인 표현은 자칫 몸 언어의 공허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안무가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인해 춤이라기보다 다큐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다.





당일 늦은 밤 11시에 제니아 코힐라키(Xenia Koghilaki)의 〈Slamming〉이 공연되었다. 베를린과 아테네에서 주로 작업하는 안무가는 “놓아주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붙잡아야” 한다고 프로그램에 명시했다. 공연장 입구에서는 소리가 클 수 있다며 귀마개를 줬다. 무대에는 심벌즈 2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스모그가 자욱했다.

여자 세 명이 각 통로에서 나와 서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재빠르게 중앙에 모여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부딪치는 게 컨셉트였다. 몸을 부딪치면서 형태는 조금씩 변화되었다. 셋이 부딪치다 한 명이 밑으로 내려가면 둘이 부딪히기도 하고, 전체가 바닥으로 가기도 하고, 상수에서 하수로 가기도 했다.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팔을 잡기도 했다. 옷을 벗어서 심벌즈를 치기도 하는 등의 작은 변화도 있었으나 시종일관 한 가지 컨셉트를 고수했다. 컨셉트의 과잉으로 특별히 흥미롭지는 않았으나 점진적인 변화는 느낄 수 있었다.



Xenia Koghilaki 〈Slamming〉



​23일 밤에는 디디 도빌리에(DD Dorvillier)의 〈Dance is the archeologist, or an idol in the bone〉(춤은 고고학자이거나 뼈의 우상이다)을 보았다. 뉴욕에서 활동하다 현재 파리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감각적인 신체에 대한 탐구와 소리와 장소와의 관계에 대한 개념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도빌리에가 무대 하수에 서서 한참 객석을 보더니 주먹을 쥐고 손목을 돌린다. 다양한 방향으로 양손을 돌리더니, ‘What if’라고 하면서 장소를 옮겨 다니며 계속 돌렸다. 윙하는 전자음이 한 음씩 들렸다. 주먹 쥔 두 팔로 동작을 크게 하다 손을 펼쳐 자기 손을 바라보면서 관찰했다. 무대는 조명이 없이 훤히 불을 밝히고, 음악도 거의 없이 공연했다. ​그는 다시 ‘what if’를 말하며 무대 옆의 발레 바를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소리를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 그는 낚시하는 시늉을 곁들이며 낚싯대를 들고 발로 큰소리를 내며 무대를 원으로 돌았다. 움직임은 거의 즉흥인 듯 보였으나 구조는 명확했다.



DD Dorvillier 〈Dance is the archeologist, or an idol in the bone〉



그는 처음의 자리로 가서 다시 주먹을 쥐고 처음과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What can’이라고 내 뱉으며 ‘물’이라 하더니 양손을 물길이 가듯 크게 움직였다. 처음과 같은 동작이지만 ‘물’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물길 같아 보였다. 사실 처음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단어로 규정지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비교적 컨셉트가 분명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하나의 움직임이 발전하고 되돌아와서 다른 상황에서 다르게 발전되어 가는 것을 표현했는데, 조명, 의상, 음악, 동작 등 거의 모든 예술적 표현의 도움 없이 ‘움직임’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풀었는데 나름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Trajal Harrell 〈(M)imosa〉



23일 9시 오덴극장에서는 트라할 하렐(Trajal Harrell), 세실리아 벵골레아, 프랑수아 샤이노, 마를렌 몬테이루, 프레이타스가 공동 안무한 작품 〈(M)imosa〉 공연이 있었다. 하렐은 미국 출신의 안무가로 유럽에서 활동을 광범위하게 하고 있다. 일반적인 춤의 범위에서 벗어나 독특하게 작업하는 안무가다.

상의를 벗은 여자가 객석을 보며 팔을 흔들면서 무대를 좌우로 걸었다. 입을 삐죽거리며 긴 머리를 흔들고 팔과 히프를 건들거리면서 양손을 위로 올리거나 머리를 턱밑에서 묶기도 했다. 불협화음의 요란한 음악이 나오자 여자는 입을 크게 벌리거나 가슴을 출렁거리며 뛰거나 걷기도 하고, 가슴을 양손으로 비틀어 모으기도 했다. 춤은 없고 행위만 하다 퇴장했다.

흑인 남자가 나와서 자기 이름을 얘기하며 몸을 비비 꼬면서 노래를 불렀다. 하의는 팬티만 입고 상의는 모피를 걸치고 머리에는 긴 깃털이 있는 모자를 쓴 여장 남성이 무대 뒤에서 소프라노로 노래했다. 발레로 다져진 몸을 가진 그(녀)는 무대 중앙에서 발레리나처럼 업을 하고 팝음악에 맞춰 디스코를 추었다.

​여장 남성이 껌을 씹으며 조각처럼 움직이거나, 양다리를 벌리며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팝 음악에 맞춰 립 싱크를 하는 등 다양한 행위가 벌어졌다. 무대는 나이트클럽으로 변했고, 공연을 하는 건지 끝난 건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여장 남성이 객석에서 옷을 입거나 관객들과 대화를 하는 등 춤은 거의 없고 아이디어들의 집합체 같은 공연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관객들은 열광했다. 유럽에서 춤 공연에 춤이 없는 경우는 허다하지만, 행위만으로도 관객의 집중을 도모할 수 있고 아이디어들이 출중하다면 그 안무자의 창의력이 대단한 게 아닌가 싶다. 공연자들의 과감성과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게 제작한 창의적 연출은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내고도 남았다. 개인적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되는 연출에 넋을 놓고 구경했다.



정금형 〈Find, Select, Copy and Paste〉



24일 낮 무목(Mumok)뮤지엄에서 한국인 정금형의 작품 〈Find, Select, Copy and Paste〉가 공연되었다. 미술관의 찬 대리석 바닥에 나체로 양팔과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정금형이 음악, 조명, 의상, 동작도 없이 작품을 풀어내었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지점을 찾아서 선택하고 복사해서 붙인다는 의미였다.

대자로 누워있던 몸을 원형으로 방향만 옮겼다. 가끔 옆으로 몸을 틀거나, 엎어지기도 하는 등 아주 작은 변화는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제목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공연이다. 나체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기본자세가 나중에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너무 단순했으나 바닥에 앉은 관객들은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는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Alexander Vantournhout 〈Foreshadow〉



당일 9시에 알렉산더 반투른하우트(Alexander Vantournhout)의 작품 〈Foreshadow〉(예시하다) 공연을 봤다. 기능적으로 뛰어난 반투른하우트는 브뤼셀에서 서커스와 춤을 공부하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투어를 다니는 무용단의 안무자다. 8명의 무용수들은 무대 뒤의 벽을 상대로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에 기반,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신체적 실험을 했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어깨, 발, 무릎에 의지하여 벽을 가로지르며 도마뱀처럼 민첩하게 움직이거나 공처럼 던져졌다. 무용수들은 서로 연결되어 중력의 힘을 이용하여 당기거나 돌리거나 위로 솟구치면서 하늘을 날았고 다른 무용수들이 그를 잡았다.

중력의 힘은 신체를 깃털처럼 가볍게 보이게 했고, 정밀한 시계처럼 몸과 몸은 연결되어 수많은 방법으로 움직임이 이루어졌다. 한 번도 같은 구성의 조합이 없었다. 춤은 삼인무, 사인무 등 다양한 경우의 수들이 나열되었고, 상하좌우로 무한 변화되는 몸들의 충돌에 혼을 잃고 구경했다. 그러나 비록 수없이 변화되는 패턴이지만, 몸들의 충돌과 부딪힘이라는 컨셉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변화의 놀라움보다 변화의 과잉으로 인해 후반부는 지루했다.





브라질 출신인 비니 벤타니아와 비토리아 요벰(Viní Ventania, Vitória Jovem)의 작품 〈Eunuchs〉(거세된 자들)이 오덴에서 25일 밤 11시에 열렸다. 늦은 밤인데 나이 많은 관객도 제법 있었다. 실험적인 춤에 맞게 무대에 객석을 만들어 공연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 작품은 트랜스 예술가의 이중성을 작품으로 끌어왔다. 가부장제와 규범의 틀을 희극적으로 파괴하는 이 작업은 서구 예술 관습이나 관객과 공연자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했다.

"이상한 신체의 이중 존재"라고 자칭하는 이들은 여자의 몸을 가졌으나 생식기는 남자였다. 찢어진 거대하고 낡은 비닐이 무대 뒤쪽에 걸려있고, 옐로우 조명으로 인해 오래된 분위기가 풍겼다. 아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관객들은 소리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3번 울린 뒤 거의 3~4분 정도 조용히 기다리자 또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을 히프까지 늘어뜨린 금발의 트랜스 젠더가 나체로 무대를 뛰어다녔다. 화장을 과하게 하고 온몸에 반짝이를 칠했다. 나머지 한 명도 뛰어나와 둘이 비닐을 치거나 들추면서 즉흥적으로 뛰다가 사라졌다. 한참 무대가 비워졌다 두 여자는 비닐 뒤 양옆에서 비닐을 들추며 아주 천천히 걸어서 앞으로 왔다. 이후 그들은 바닥 위를 기어 다니거나 긴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양손을 들고 돌다가 넘어지거나 하는 다양한 행위를 했다.



Viní Ventania, Vitória Jovem 〈Eunuchs〉



관객들에게 다가가 모자를 뺐거나 목에 걸린 손수건을 가져가는 등 지나친 행위들을 시도하자 나이 들어 보이는 몇몇 관객들은 일어나서 나갔다. 대다수의 젊은 관객들은 그들의 행위를 유희로 받으며 웃고 즐겼다. 무대 중앙에서 둘이 껴안고 소리를 내다 다시 비닐 뒤에서 걸어 나오자 처음으로 음악이 들렸다.

무대 중앙에서 여자는 자기의 생식기를 다리 사이에 넣고 뒤로 숨기자 마치 여성의 생식기처럼 보였다. 나머지 한 여자는 비닐을 찢고 양손을 벌려 비닐을 잡고 예수 같은 형상으로 고함을 치듯 입을 벌리고 비닐을 흔들었다. 중앙의 여자는 객석 의자 밑을 뒤지더니 와인 잔과 붉은색 루즈를 가져왔다. 와인 잔에 오줌을 싸서 관객들에게 돌리자 관객은 냄새를 맡기도 했다. 객석의 한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면서 나가자 몇 어르신들도 따라 나갔다. 공연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했다.

비닐을 잡고 절규하는 몸에 루즈로 그림을 그리자 예수 형상의 여자가 온몸을 뒤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여러 행위가 벌어졌으나 거의 계획되었다기보다 충동적인 부분도 많았다. 임플스탄츠에서 본 공연 중 가장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예술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예술가니까 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즐겼다면, 예술가의 자기표현을 막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불쾌감을 주는 예술이지만, 재미있으면 보고 재미없으면 나가면 된다.



Luca Bonamore 〈Silent Lovers〉



젊은 안무자 시리즈로 루카 보나모레(Luca Bonamore)의 신작 〈Silent Lovers〉(침묵의 연인들)이 샤우슈필하우스에서 8월 6일 11시에 열렸다. 스모그가 자욱한 무대에서 하의를 입지 않고 검은 양복 상의만 입은 머리 긴 남자가 팝송을 흥얼거리며 피아노를 상수에서 하수로 끌고 와 하수에 배치했다. 피아노 뒤에 숨었던 남자 한 명이 무대에 구부리고 앉았다. 긴 머리의 남성들이 엉덩이가 보이는 바지를 입고 상체를 바닥에 숙여 팔을 늘어뜨리고 머리카락을 질질 끌면서 술에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걷거나 넘어졌다.

흥얼거리며 피아노 앞에 앉았던 남성은 노래를 멈추고 무대를 구경했다. 무대에 2명의 남성만 남아 춤을 출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엎드렸던 남성들이 일어나니 입에 개 목줄 같은 것을 달고 있었다. 그들은 성행위를 하듯 끌어안고 팔들을 교차하며 움직였는데, 발레로 다져진 몸으로 근육질의 건강한 남성이라 아름다웠다. 바지를 아래로 내려 다리에 걸치고 종종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양팔을 옆으로 벌려 나비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피아노를 치던 남성이 연주를 멈추고 관객을 향해 퀴어인의 여성적 제스츄어를 하자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으나 희극적 성향인지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했다. 남성 한 명이 무대에 나와 피아노를 치던 남성을 바라보다 무대에서 춤추던 두 사람과 합류했다. 셋은 성행위를 하듯 다양한 몸짓으로 움직이다 점점 마치 레슬링 동작으로 변형시켰다. 건강한 근육질의 세 남성은 엉겨 붙거나 떨어지며 춤을 췄다. 한 남자가 피아노 앞에 가서 히프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도 했다.

상수에서 갑자기 스모그가 가득하고 거기에 핀 조명을 비추자 마치 천사처럼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와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남자 4명이 다가와 여성 주위를 돌거나 엮이며 춤을 추었다. 마치 마리아를 찬양하듯 따라다니거나 여성이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 넘어지자 남자들이 받아서 상하로 움직이게 했다. 여자를 피아노 위에 올려 자유의 여신상처럼 동작을 하자 남자들이 피아노를 끌었다.

여성이 뭔가를 들고 남성을 지목하자 나머지 남자들이 놀라기도 했다. 갑자기 나이트클럽으로 변하며 모두 즐겁게 춤을 추며 끝났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다. 근육질 남성들의 멋진 몸매가 주는 매력 때문이기도 했고 마치 로마 조각상을 보듯 엉겨 붙은 몸에서 느껴지는 미감이 좋았다.



Andrew Tay & Stephen Thompson 〈Make Banana Cry〉



8월 4일 9시 반에 앤드류 테이 & 스티븐 톰슨(Andrew Tay & Stephen Thompson)의 〈Make Banana Cry〉(바나나를 울려라)가 뮤지엄 Hall G에서 열렸다.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고 인형에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무대에 런웨이 같은 길 2개를 만들고 그 사이에 관객을 앉혔다. 두꺼운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아주 느리게 런웨이를 걸었다. 마스크, 모자 등 의상 컨셉트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런웨이를 하는 동안 다양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중국, 일본 음악을 비롯, 세계의 모든 음악이 나오는 듯했고 그 음악들이 다 너무 좋았다. 아리아, 오케스트라부터 실험적인 음악 또 대중적인 음악까지 다양했다. 옷이 가벼워지면서 걸음도 조금씩 빨랐는데, 걸음의 형태가 다 달랐다. 옆으로 치면서 걷거나 다리를 붙이고 걷는 등등. 겨울옷을 입고 몸 움직임이 느리고 답답하다 점점 걸음이 빨라지며 여름옷으로 바뀌면서 동작도 조금씩 커졌다.

다리, 허리, 어깨 동작 등 점점 움직임이 커지고 빨라졌다. 이후 소품을 들고 등장했는데 파리채, 갓처럼 생긴 모자 등등 다양했다. 의상 컨셉트도 아주 재미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인데 멋진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가방이나 가발 등의 소품이 등장할 때도 마치 겨울에서 봄으로 가듯 변화되었다. 신, 모자, 가방, 선글라스, 또는 천을 휘두르기도 하고 비닐을 둘러쓰기도 했다. 비치웨어를 입고 추는 춤은 여름을 상징했다. 해변에 앉거나 누워있는 듯 한 장면이 연출되고, 조명이 점점 밝아지고, 마지막에는 모든 조명을 다 밝힌듯하다 갑자기 조명이 꺼지며 공연이 끝났다.

트라할 하렐의 작품을 오마주한 듯했으나 컨셉트는 더 명확했다. 예술은 따로 떨어질 수 없고 감각에서부터 창조되기에 이건 춤이고 이건 연극이고 이건 음악이라는 장르의 구별을 하는 순간 우리는 관객을 차단하게 된다. 예술은 감각이고 그 감각이 남다를 때, 그것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즐기는 관객은 그와 비슷한 패션 감각과 춤 스타일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 ‘감각’이라는 우리의 취향 속에 어우러져 있다. 대중은 전문가가 아니고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다원적 접근을 통해 대중을 대중성 속에 묶어두지 않고 더 예술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예술 행위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Lucy Guerin 〈Split & How To Be Us〉



루시 게린(Lucy Guerin)의 작품 〈Split & How To Be Us〉(분리 & 우리가 되는 방법)이 8일 8시 반에 오덴극장에서 있었다. 이 작품은 두 무용수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의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다루었다. 붉은 원피스를 입은 두 여자가 상하에서 서로를 향해 나오면서 빠른 속도와 명확한 각도의 다소 딱딱하고 강한 춤을 췄다.

둘이 중앙에서 만나 앞으로 향하면서 같은 동작을 반대로 했다. 계속 둘이 마주 보거나 앞으로 보며 같은 움직임을 같이 추거나 반대로 추거나 또는 서로 다른 동작을 시도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동작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맞추었는데, 기계보다 더 빠른 듯했다. 팔과 다리를 한 번씩 움직이는 게 아니라 팔의 다양한 각들이 구사되는 동안 여러 번 다리가 움직였으며 맞추기가 쉽지 않은 고난도의 테크닉을 정확하게 맞추어 구사했다.

같은 프레이즈를 시간차와 방향차로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기법을 쓰기도 했다. 춤을 춰보지 않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완전히 다른 동작을 지속적으로 추는 듯이 보일 수도 있었다. 프레이즈들의 시간과 공간적 기법을 활용하여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완전히 다른 움직임처럼 보이게 했다. 무엇보다 둘의 친밀감이 관객을 편하게 했고, 빠른 속도감과 정확함 때문에 탄성을 자아냈다.

임플스탄츠에 올리는 작품들은 모두 달랐다. 움직임 위주의 서커스나 아크로바틱 한 작품부터 춤이 아닌 다원적 접근까지 모두 열려있었다. 루시의 작품은 일반적인 움직임 위주의 작품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을 정도로 동작의 정확성과 유연성, 그리고 댄서들의 기량이 놀라웠다. 테크닉 위주의 작품이더라도 뭔가가 달라야 한다는 축제 측의 선택의 기준을 엿볼 수 있었다.



Saskia Hölbling 〈fragments of desire〉



사스키아 횔블링(Saskia Hölbling)의 작품 〈fragments of desire〉(욕망의 조각들)이 오프극장에서 7일 밤 7시 열렸는데 처음 간 극장이었다. 빈 출신의 안무가인 사스키아는 춤과 음악, 텍스트와 영상을 통해 정상적인 것 같으나 우리의 감정적, 이성적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들을 추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예술적 시도를 통해 공포심을 상쇄하고자 한다고 했다.

무대 뒤에는 넓고 긴 종이가 걸려있었다. 하수에는 종이가 바닥에 있었고, 상수에는 남녀가 관객 쪽에 머리를 두고 누워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여자가 머리를 남자 머리 위에 올리더니 어느새 여자의 머리가 남자의 옷 속으로 들어가 두 머리가 한 옷 속에 있고 여자의 한쪽 팔이 남자 옷의 팔에 들어간 상태로 천천히 움직였다. 사진의 컷처럼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도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일어나며 각자의 옷을 입고 남자의 솔로가 벌어졌는데 춤을 아주 잘 추었다. 여자가 중앙의 길 조명에 서서 다양한 의성어로 말했다. “시, 샤, 슈, 쇼” 등의 ‘ㅅ’로 시작하는 모든 소리를 냈다. 또 다른 여자가 나와 둘이 듀엣을 추었는데 독특한 춤사위를 구사했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업었고 업힌 여자가 단어를 말하면 업은 여자가 문장으로 답했다.

무대 뒤 긴 마분지에 영상이 비추어졌는데, 전쟁과 폐허의 장면이 나왔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자 하수의 큰 종이에 남자가 글을 휘갈기며 썼다. 이어 남녀가 흥분된 상태로 서로를 마주 보며 마치 섹스를 할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각자 옷을 벗기 시작하더니 여자가 펜으로 남자 몸에 글을 쓰자 흘러간 팝송이 흘러 나왔다. 이후 남녀는 껴안고 아주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몸을 어루만지며 춤을 추자, 나머지 여자가 나와 두 사람이 잘 보이게 조명을 가져와 설치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에 여성 솔로 춤이 추어졌고, 남자가 나오고 여자는 물구나무를 선 상태로 둘이 움직였다. 남여가 뒤에 걸려있던 1미터 넓이의 마분지를 몸에 감자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조명이 마분지를 비추니 바위 같은 느낌이었다. 둘이 바위를 뚫고 나와서 무대에 있는 소품들을 치웠는데 마치 전쟁 후의 재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움직임도 좋았고, 구성도 좋았으며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일상의 다양한 스트레스를 예술을 통해 극복하는 듯 이 작품은 무게도 있었고 철학적이었다.

임플스탄츠의 공연이 모두 좋지는 않았다. 아주 감명을 주는 공연부터 지루하고 시간 낭비인 공연도 있었으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불쾌감을 유도할 정도로 과격한 공연도 불사하지 않는 실험적 과감성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움직임 구사까지 스팩트럼이 넓었다.



Saint Genet 〈A Madness Opera〉



언급하지 않은 공연 중 실크 그래빙거(Silke Grabinger)의 작품 〈SPOTSHOTBEUYS〉은 인간과 로봇간의 감정적 교감을 다루었으나 아직은 유연하지 않은 로봇을 춤과 접목하기에는 이른듯했고, 480시간 술도 마시고 쉬기도 하면서 공연하는 세인트 제네(Saint Genet)의 작품 〈A Madness Opera〉는 다 보지 못했지만, 신기했다. TRY Collaborative의 〈TRY〉는 일반인이 출연해도 될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으나 다양한 아이디어의 발현이 재미있었다. 온갖 반짝이 천들로 무대를 장식하고, 번쩍거리는 조명이 마치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했으나 키치적 아트로서 재미있게 구성되어 관객들이 환호했다.







〈expressions ’24〉



임플스탄츠 마지막 즈음에 아스날 스튜디오에서 강의를 배운 일반인들의 공연인 〈expressions ’24〉가 열였다. 워크숍 공연의 출연진을 비롯해 온 가족이 모여 구경하고 즐겼다. 예술은 예술가들만을 위해 창작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즐기기 위해 예술가들은 노력하고 창작한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춤 출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노래할 수도 있다. 대중이 즐기면서도 공연의 질을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임무다. 가르치고 참여시키며 예술가와 대중이 함께 만들어 갈 때, 대중성의 수준도 점점 높아진다. 여름의 빈은 이렇게 춤으로 빛났다.

2025. 5.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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