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유럽은 연합으로 젊은 안무가들의 신작을 스프링포워드를 통해 발견한다. 2025년 스프링포워드에는 802명의 안무가들이 영상을 보냈고, 53명의 무용 전문가가 참여하여 최종 21편의 작품을 선정했다. 이 신작들은 유럽을 비롯 전 세계의 극장에서 유통이 가능하도록 플랫폼을 통해 효과적으로 홍보한다. 동양도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 점점 발전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으나 아직은 여력이 쉽지는 않다. 정치적 상황이 복잡한 한중일은 문화에서도 쉽게 연합하기가 어려운 듯하다.
스프링포워드는 사전 행사를 통해 유럽 외의 나라에서 온 안무가들의 작품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들 행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작은 선심”을 쓰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화를 홍보하는 일도 비즈니스와 다를 바가 없다. 유통이 원활할 때, 작품은 소비자인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다. 한국의 문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통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스프링포워드 플랫폼은 5월 23일 사전 행사를 시작으로 3일간 벌어졌고, 사전 행사 2개 작품과 21개의 유럽작품을 더해 23개 작품이 공연되었다. 매일 점심과 저녁 식사는 본부가 있는 유니온 체육관에서 부폐 식으로 나왔고 옮겨 다니며 대화를 할 수 있게 서서 먹도록 했다. 플랫폼의 목적은 극장과 프로듀서들이 대화를 통해 작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연대해서 작품을 다양한 곳에서 올릴 수 있도록 유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Janet Novás 〈Mercedes máis eu〉 ⓒAero Wave |
점심 식사 후, 스페인 안무가인 재닛 노바스(Janet Novás)와 작곡가 메르세데스 페온(Mercedes Peón)의 콜라보인 〈메르세데스 매 으〉(Mercedes máis eu)〉가 공연되었다. 두 여성의 연대가 잘 드러났던 공연이나 예술적 방향은 완전히 달랐기에 잘 어우러졌다고 느낄 수도 있고 좀 어긋났다고 느낄 수도 있는 작품이었다.
페온의 음악은 아주 강하고 구조적으로 잘 정리된 듯했다. 그녀는 드럼, 노래, 백파이프 등 다양한 악기와 소리를 연주했고, 노바스는 즉흥성이 뛰어나며 온몸을 뒤흔드는 열정적인 춤을 추었다. 마치 논리적인 머리와 육체적인 몸이 만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나 할까? 시종일관 엉덩이나 머리를 뒤흔드는 노바스의 춤에서는 열정과 힘이 느껴졌으나 한 시간 동안 같은 움직임의 반복이라 집중이 떨어질 수 있는 빈 공간을 구조적인 음악이 채워 지루하지 않았다.
Paxton Ricketts 〈Live! Not To Be Missed. Touring Regionally〉 ⓒAero Wave |
이어 같은 장소에서 덴마크계 캐나다인인 팩스턴 리켓(Paxton Ricketts)의 안무로 NDT 출신의 무용수 케렌 레이먼(Keren Leiman)에 의해 공연된 작품, 〈라이브 놓치지 마세요. 지역 투어중〉(Live! Not To Be Missed. Touring Regionally)을 봤다. 이 작품은 춤을 추면서 마이크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안무도 좋았지만 무용수의 역할이 거의 정점을 찍었다. 마이크도 움직이고 무용수도 움직였으며 둘의 대화는 에피소드들의 연결이었다. 마이크의 농담에 레이먼이 흉내를 내거나 답을 하는 형식인데, 내용은 일상의 일들이거나 시시콜콜한 것이었다.
춤과 대화가 적절하게 어우러졌으며 대화는 어떤 뚜렷한 목적 없이 흐르듯 했다. 마이크는 오르내리거나, 레이먼에 의해 원을 그리며 돌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레이먼은 드러누워 마이크와 대화를 하면서 움직였다. 그녀는 크리스탈 파이터에게 배운 유려한 무용수다. 빠르고 깔끔하며, 선명하고 매혹적인 무용수라 춤만 봐도 황홀할 정도로 좋았던 작품이었다. 낮고 조용하게 깔리는 두 사람의 대화와 긴장 없이 물 흐르듯 움직이는 몸짓은 마치 시를 읊듯 편안하고, 조용하며, 사려 깊고, 유연했다.
Solène Weinachter 〈After all〉 ⓒAero Wave |
25일 오전에는 로마 캐나다 퀘벡의 지원으로 아침 식사가 나왔고 이어 이탈리아 문화부의 스피치 후에 프랑스와 영국에서 활동하는 솔렌 바이나흐터(Solène Weinachter)의 작품인 〈결국〉(After all)을 봤다. 춤, 연극,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였고, 코믹과 다큐가 공존했던 감정적인 작품이었다. 긴 금발 머리 여성이 꽃을 들고 18년 전 런던에서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커튼이 열리며 ‘My way’ 음악이 나왔고 그녀는 당시의 상황을 언급했는데, 삼촌의 장례식에서 아무도 할 말을 준비 못해 춤을 추라는 요청을 받은 그녀는 춤을 추었다고 한다. 80년대 디스코 풍의 음악이 나오자 은색 반짝이 의상을 입고 그녀는 당시의 춤을 추었다. 기어다니거나, 발레를 하기도 하고, 주먹으로 바닥을 치기도 하며 희극적인 춤을 추었다. 그녀는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주로 블랙코메디로 관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관객들이 입구에서 받았던 꽃을 무대로 던지자 그걸 재미있는 방법으로 주우면서 노래를 부르다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 코메디로 시작한 작품은 점점 애가로 변했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소리를 지르다 잠이 든다. 부분 조명이 누워있는 그녀를 길게 보이게 했다. 그녀는 ‘이별은 싫어요’라며 의미 있는 결말을 만들었다.
처음의 코메디로부터 애가로 넘어가는 부분의 감정 격차가 커서 관객이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의 시각으로 보게 되는 공감의 고립이 있긴 했으나, 그녀의 재치있고, 발랄하며, 유머러스한 공연자로서의 능력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Camelia Neagoe 〈Work in Progress〉 ⓒAero Wave |
같은 장소에서 〈진행 중인 작업〉(Work in Progress)이 연이어 올랐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출신의 안무가 카멜리아 네아고에(Camelia Neagoe)의 작품으로 무용수인 에바 단시우와 마리아나 가브리치우크(Eva Danciu and Mariana Gavriciuc)에 의해 공연되었다.
무용수들은 일터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춤과 말이 번갈아 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 점심시간, 그리고 승진에 대한 꿈 등 몇 가지 이야기를 하며 춤을 추었는데, 주로 접촉 듀엣을 했다. 중간에 스스로를 바나나로 비유하면서 뒷 배경에 만화 속 원숭이가 된 상사가 투사 되었는데 직접적인 표현으로 다소 불편했다. 발칸의 작품들은 아직 유럽의 문화 수준과 발맞추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유럽연합에 들어있고 함께 가야 하는 상황이라 선정되지 않았나라는 추측을 해본다.
Jaro Viňarský 〈IHopeIWill〉 ⓒAero Wave |
슬로바키아 작품인 〈IHopeIWill〉은 야로 비나르스키(Jaro Viňarský)가 안무하고 소나 페리엔치코바(Soňa Ferienčíková)가 춤을 추었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가족관계에 대한 메타포였다. 누에고치처럼 온몸을 흰 천으로 칭칭 감은 소나는 천을 조금씩 풀면서 무대를 가로질러가서 팽팽하게 당겨 각 모서리에 세워진 기둥에 천을 고정하면서 움직였다. 프로그램 내용과 연결하면, 아마도 실은 삶의 역사고, 기억의 고리인 듯했다. 각 기둥에 고리를 걸기 위해 이미 걸쳐진 천을 피해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려 낮게 바닥을 기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덫에 걸린 듯 천에 기대어 몸을 제어하기도 했다.
기둥에 가서 고리를 걸면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음악은 현장의 소리로 아마도 몸에 녹음기를 장착한 듯했다. 가끔 내레이션이 들리기도 했다. 춤이라기보다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천을 기둥에 걸면 걸수록 소나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더 줄어들었다. 반면에 몸은 가벼워졌다. 천이 몸에서 떨어질 때, 관객에게 천의 끝을 잡게 하고 수많은 줄들 속에서 움직였다. 움직임이 춤이라기보다 동작의 연결이었다.
지그재그의 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 소나는 줄 위에 걸치거나 아래로 기어들면서 움직였다.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같은 세상에서 이리저리 잘 피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상을 시적으로 푼 것 같았다.
이 작품은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과정 하나하나에 초점이 가 있었다. 작품은 느렸고 천천히 시간이 흐르게 하여 하나하나 주의 깊게 보게 만들고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무용수인 소나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섬세하고 차분하며 그윽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관객들의 마음을 열게 했고 공연에 빠지게 했다.
Charlie Khalil Prince 〈the body symphonic〉 ⓒAero Wave |
레바논 출신의 안무가며 음악가인 찰리 칼릴 프린스(Charlie Khalil Prince)의 〈신체교향곡〉(the body symphonic)이 이어서 네덜란드 작품으로 공연되었다. 무대 하수에 음악 관련 각종 기계들이 무대 바닥에 있었다. 첫 장면에서 프린스가 마이크 줄을 손에 쥐고 머리 위에서 돌렸다. 줄을 느슨하게 풀면서 돌리자 소리가 휙휙 들렸다. 프린스와 퍼쿠션 연주자인 조지 텀블(Joss Turnbull)의 음악은 일상적이라기보다 파편화된 음향효과의 극대화처럼 느껴졌다.
프린스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이자 중동지역의 아리아가 들렸다. 바람 소리 위에 얹힌 아리아는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중심에서 계속 돌았다. 일어나 기계 있는 쪽으로 가서 바닥의 기타 줄 하나를 튕기자 전자음이 증폭되었다. 또 다른 음을 첨가하자 두 소리가 섞였고, 그는 음을 계속 섞었다. 섞인 음악이 나오도록 두고 그는 천천히 춤을 추었다.
키 큰 프린스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조심스러웠다. 기타를 찢듯이 튀기니 소리가 왜곡되어 들렸다. 다시 소리를 추가하자 텀블이 드럼을 연주했다. 드럼을 치자 프린스는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고 강하게 발로 바닥을 치거나, 급하게 회전하며 움직였다. 마치 플라멩고를 추듯 양손으로 박수를 치거나 헛헛하면서 소리를 내며 발로 바닥을 강하게 쳤다.
프린스는 기타, 바이올린 활, 마이크 등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었고 그걸 증폭시키거나 음색을 변화시키고, 그 위에 아랍의 멜로디를 입혀 관객을 생경한 환경으로 안내했다. 그는 조명을 끌고 와서 조명 앞에 꿇어앉자, 무음이던 무대에서 기도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고요하면서도 집중감이 있었다. 입은 옷을 반쯤 벗어 머리에 뒤집어쓰고 얼굴을 숨겼다. 팔들은 꼬이고, 등 뒤에서 움직이거나, 바닥을 쓸었다.
고뇌하는 한 인간의 아픔과 처절함이 느껴졌다. 프린스가 기타를 연주했는데 이슬람 음악 같았다. 매력적인 음이었다. 마지막에는 발로 바닥을 치면서 팔 위주로 움직이다 조명이 꺼졌는데 헉헉거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진하게 계속 들렸다. 예술작품으로서 공감이 가는 작품이었고, 매력적인 안무가의 몸짓과 음악이 압권이었다.
Artūrs Nīgalis 〈Silhouette Letters〉 ⓒAero Wave |
이어 라트비아 안무가 아르투르스 니갈리스(Artūrs Nīgalis)의 작품 〈실루엣 글자〉(Silhouette Letters)가 공연되었다. 무대 중앙에 굵은 밧줄이 내려졌고, 흰색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바닥을 비추었다. 낮고 굵은 음악 소리가 들리니 엄숙한 느낌이 났다. 하수에서 한 남자가 뱀처럼 바닥에서 줄을 바라보며 기었다.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남자는 기어와 줄을 얼굴과 목에 칭칭 감고 상체를 움직였다. 줄이 흔들렸다. 눈을 가린 그는 손을 내밀고 앞을 더듬거렸다. 얼굴의 줄을 잡고 원으로 돌기 시작했다.
무용수 마리테 수페(Mārīte Supe)가 뛰어나와 남자 위의 줄에 올라탄다. 굵고 묵직한 음악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한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뛰어오르고, 돌려지거나 서로를 들어 올리는 등 줄을 잡고 공중곡예를 했다. 남자가 하수에서 줄을 잡고 있고, 여자는 중앙에서 잡은 줄로 바닥을 치자 줄이 파도처럼 움직여 남자 쪽으로 갔다. 서로 상대를 향해 바닥을 치며 줄의 파도를 주고받는다. 점점 강하게 치자 몸이 뒤로 내동댕이쳐진다.
마지막에 둘이 같이 넘어져 하수에 앉았다. 음악이 저음으로 내려앉는다. 둘이 줄을 입에 물고 살짝살짝 움직인다. 한 줄에 둘이 묶여 있어 도망도 못 간다. 여자는 벗어나려 하고 남자는 그녀를 제어한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줄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 작품의 내용은 아버지의 부제와 그리움 그리고 어린 시절 갈등의 기억이라 했으나 오히려 남녀 간의 갈등처럼 느껴졌다.
비록 내용은 안무자의 의도와 다르게 드러났지만, 안무적인 면에서 아주 구성이 잘되어 있었고, 음악도 다양했다. 마치 르네상스 회화를 떠올리듯 향수가 있었고, 따뜻한 분위기며,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차분하게 또는 격렬하게 서로를 향해 끝없이 싸우다가 서로를 알아가는 감정적 역동성이 가슴을 아련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았던 작품이다.
Oulouy 〈Black〉 ⓒAero Wave |
스트리트 댄스인 울루이(Oulouy)의 〈Black〉은 스페인 작품으로 제목처럼 흑인의 인권에 관한 내용이다. 전반부는 현시대의 다양한 흑인 인권유린 내용이 영상으로 나왔고, 총을 든 적에게 겁에 질려 방어하듯 두 손을 치켜들 울루이의 구체화된 행위 등이 표현되었다. 후반부는 프리 스타일 춤 위주의 움직임과 즐거운 미소가 이어졌는데 그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근육질의 유려한 몸짓을 구사하는 울루이의 열정적인 춤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Lisa Colette Bysheim & Katrine Patry 〈Blue Carousel〉 ⓒAero Wave |
25일 마지막 작품으로 노르웨이 안무가 리사 콜렛 바이샤임(Lisa Colette Bysheim)과 카트린 패트리(Katrine Patry)의 공동안무인 〈파란 회전목마〉(Blue Carousel)가 공연되었다. 2명의 DJ와 2명의 무용수가 출연한 이 작품은 여성성의 크로테스크함을 실험하는 듯했다. 새들의 짝짓기 의식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프로그램 내용처럼 날카롭고 리드미컬하며 반복적인 움직임과 서로를 물고, 핥고, 만지며 장난기 넘치는 유기적인 친밀감으로 여성 해방을 소리 질러 말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과함으로 이해 부담스러웠던 공연이다.
Gergő d. Farkas 〈babes〉 ⓒAero Wave |
마지막 날인 26일 첫 작품으로는 헝가리와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게르고 디 파르카스(Gergő d. Farkas)의 작품 〈아가씨들〉(babes)이었다. 공연장은 스모그가 가득했다.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가 무대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졌다. 조용한 음악이 멀리서 들렸다. 처음 남자가 고개를 드니 검은 물이 입에서 흘렀다. 하늘을 향해 양손을 들고 흔들며 일어났는데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보였다. 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의 신디사이즈 음악이 낮게 깔렸다.
한 동작을 반복하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움직였다. 몇 가지 동작이 지속되다 무대를 비우자 한동안 음악만 들렸다. 그가 다시 나와 벽에 머리를 붙였다가 엎드려 움직였다. 배를 움켜잡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들기를 반복하며 몸을 꿈틀거렸다. 자신을 더듬다가 갑자기 나가버렸다. 음악이 찍찍거리는 동안 녹색 조명은 붉은 조명으로 바뀌고 이내 사라졌다. 괴기스러우면서 신비한 작품이었으며 입에 검은 물을 머금은 안무가의 독특한 표정과 움직임은 스릴러 느낌이 나기까지 했다. 특별한 감흥을 주지는 않았지만, 우주여행을 하는 고독한 수행자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몸에서 풍기는 독특한 인상이 뇌리에 남았던 작품이다.
Aristide Rontini 〈Lampyris Noctiluca〉 ⓒAero Wave |
이어서 이탈리아 안무가 아리스티드 론티니(Aristide Rontini)의 작품 램피리스 야행성?(번역 어려움: Lampyris Noctiluca)이 공연되었다. 무대 하수에는 은색의 반짝거리는 사각의 천이 달렸다. 상의를 탈의한 론티니가 상수에서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가 왼손으로만 움직이며 춤을 추었다. 왼팔을 앞다리에 붙이며 아래로 내리고 뒤돌아서서 상체를 천천히 움직였다. 등을 보이며 왼손이 등에서 움직이다 옆으로 돌아 앞으로 향했다. 처음에 왼손으로 움직일 때는 그가 장애인인 줄 몰랐다. 두 팔을 움직이니 하나가 약간 짧은 팔이었다.
장애를 인정하고 그 장애를 움직임의 독특성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계속 한곳에서 팔만으로 움직였는데, 그 움직임의 변화는 양팔이 온전한 사람은 절대 만들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앉아서 움직이다 일어나, 앞으로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바지가 반쯤 벗겨졌다. 상체를 웨이브하며 바지를 벗고, 나체로 무대 뒤를 보며 춤을 추었다. 길 조명이 들어오고 힙을 흔들며 좌우로 다니다 사라졌다.
그가 다시 무대로 기어 나올 때 붉은 천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가 일어나니 남자의 중요 부위가 가려졌고, 이어 천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자 여성이 되었다. 천을 펼쳐 무대에 두고 다시 남자가 되어 사라졌다. 콘셉트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인지 프로그램에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다. 장애인이지만 정상인과 다름없는 몸짓과 독특성으로 생경한 감성을 주었다.
Matea Bilosnić 〈Never ALLone〉 ⓒAero Wave |
크로아티아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마테아 빌로스니치(Matea Bilosnić)의 작품 〈Never ALLone〉은 투명한 로봇 같은 상자가 움직이고 마테아는 1일차, 2일차 등 날짜를 얘기하면서 로봇과의 대화를 하거나 춤을 추었다. 자기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거나 연약한 인간과 기계와의 충돌이 표현되기도 했다. 기계를 없애려 하나 기계는 계속 되살아났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재조명한다고 프로그램에 썼으나 그런 연결고리를 읽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Armin Hokmi 〈SHIRAZ〉 ⓒAero Wave |
독일과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아르민 호크미(Armin Hokmi)의 작품 〈시라즈〉(SHIRAZ)가 이어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미세하게 온몸이 흔들리며 방향과 공간이 변화하는 춤으로 굉장히 독특했다. 움직임은 마치 최면을 건듯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시종일관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 무용수들은 한 발은 단단히 땅에 대고 다른 발은 90도 각도로 안쪽과 바깥쪽으로 움직이며 방향을 조절했다.
이란의 페르시아 음악에서 들리는 타블라의 리듬과 그 아래 낮게 깔리는 선율, 무용수들은 작은 동작이지만 정확한 카운트에 따라 왼쪽 팔이 앞뒤로 움직이거나 시종일관 아래를 보다 위를 향하기도 하고, 한 손이 두 손으로 되어 얼굴을 가리기도 하는 등 패턴은 지속해서 조금씩 변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비슷한 동작으로 서서히 변화하던 패턴은 무한한 가능성의 열림처럼 느껴졌다.
안무가가 차용한 대표적인 몸짓 동작이 얼굴을 가리는 손이라는 것은 이란의 가려진 사회의 메타포로 강하게 작동했다. 프로그램을 읽지 않고 호크미의 의도를 알 길은 없었다. 의도를 몰라도 작품은 지루하지 않고 집중이 잘 되었으며 심지어 재미있었다. 작은 반복 속에 보이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은 최면상태로 나를 조심스럽게 이끌었고, 나는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Megan Kennedy & Jessica Kennedy 〈Dances Like A Bomb〉 ⓒAero Wave |
아일랜드 출신의 자매 안무자인 제시카 케네디와 메건 케네디(Megan Kennedy and Jessica Kennedy)의 작품 〈폭탄처럼 춤을 춘다〉(Dances Like A Bomb)는 노령의 무용수들이 출연했다. 이 작품은 피나 바우쉬 무용단 출신의 피놀라 크로닌와 미켈 무르피(Finola Cronin and Mikel Murfi)가 안무자들과 협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노부부 삶의 해학과 관계의 진솔함을 통해 늙음을 찬양하는 작품이었다.
축 늘어진 속옷만 입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 두 사람과 대조되는 푸릇한 녹색 벽이 노부부의 처진 주름을 펴주는 듯했다. 두 사람은 다양한 움직임과 표현을 했는데, 서로 살과 얼굴을 잡아당기거나, 팔뚝 밑의 살을 흔들기도 하고, 손을 서로 맞대어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며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여자가 춤을 추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면서 병원 링거 걸이에 의존해서 걷자, 남자가 재털이를 가져왔다. 그녀는 재를 털었다.
중간에 남녀가 옷을 서로 바꿔 입고 남녀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남자가 움직일 때는 여자 음성이 나오고 또 그 반대이기도 했다. 여장 남자가 남장 여자를 업거나 들고 다니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흥겨운 음악이 나왔다. 여자의 움직임을 남자가 따라 하는데, 똑같지 않고 비슷하게 했다.음악 소리는 점점 커졌고 움직임은 난장으로 변하다 갑자기 조명이 아웃되고 끝났다.
작품의 내용은 단순했다. 그러나 서로 원하기도 또 밀치기도 하는 다양한 구성이 아주 흥미로웠다. 댄스 씨어터에 가까웠으며, 늙음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파스텔풍의 색칠을 한듯 아기자기했다. 작품은 늙음을 얘기하기보다 젊음을 얘기하는 듯했다. 젊은 무용수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무대에서 다른 느낌의 작품이라 예술성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성이란 면에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몇 관람자들은 그들이 가식적이고 진실이 없다고 혹평했으나 나는 늙음을 아름답게 치환하려는 안무자들과 무용수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Production Xx 〈Gush is Great〉 ⓒAero Wave |
프랑스 작품 〈구시는 훌륭해〉(Gush is Great)는 개별적인 안무자 5명이 모여 만든 작품으로 “Production Xx”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남녀 5명이 입을 막고 무대에 서 있었다. 무대는 가림막 없이 열려있고 형광등 조명이었다. 얼굴은 시종일관 앞을 보고 무대 상하수를 왔다 갔다 하며 아주 천천히 옆으로 걸었다. 다섯 무용수는 와인 잔, 옷, 당근, 검은 비닐, 물통, 생선, 가면, 아이들 장난감, 강아지 인형 등을 그들의 주머니, 소매, 가슴, 옷 사이 또는 등 뒤에서 아주 천천히 꺼냈다. 이것들을 꺼내서 바로 바닥에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건네줘서 버리거나 했다. 버린 물건들은 열을 지어 바닥에 널려 있었다.
풍선을 불어서 날려 보내거나, 우산을 펼쳐서 들기도 하고, 물을 마시면 입에서 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음악은 음향이 많았는데, 시끄러운 차 소리, 파도 소리, 팝송, 전쟁터 같은 소리 등 다양하게 나왔다. 걸어가는 방향 쪽의 두 사람이 넘어지면 아랑곳하지 않고 나머지 셋은 그들을 건너서 갔고, 넘어진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다시 열에 합류했다. 비누 방울을 불어서 만들고, 5명이 다양한 칼을 꺼내서 들었다가 뒤쪽으로 버린다. 전체가 상수를 보자 자전거를 타고 담배를 문 한 남자가 앞으로 지나가자 그를 바라봤다.
5명이 무대 뒤쪽 하수에서 시작해서 좌우로 다니다 상수 앞에 오자 무대는 파도 소리에 천둥 번개가 치고 스모그가 자욱했다. 5명은 위기로 온몸을 조아리며 거의 세상의 종말이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한꺼번에 상수 쪽 무대 앞에서 몸을 던져버리는 순간 조명과 음악이 아웃되고 끝났다. 이 작품은 23개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단순함에도 지루하지 않고, 내용은 너무 명료한데 유치하지 않았다. 임팩트 있는 결말과 무표정으로 시종일관 앞을 보며 연기한 무용수들은 나에게 긴 인상을 남겼다.
Ouinch ouinch 〈Happy Hype〉 ⓒAero Wave |
스프링포워드의 마지막 작품은 거리형 공연으로 무용가 여럿이 공동으로 만든 단체인 아운치 아운치(Ouinch ouinch)의 〈해피 하이프〉(Happy Hype)였다. 형형색색의 의상과 박진감 넘치는 클럽음악에 맞춰 벌이는 난장이었다. 관객과 공연자 간의 거리가 없어지고 더불어 춤추는 무대를 끝으로 4일간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스프링포워드는 신진 안무가들의 등용 무대라 작품의 규모가 작으며 유럽 각 나라의 경제적/문화적 격차가 있음에도 집단 토론 형식으로 이끌고 있다. 다수에 의해 선정되는 작품들이고 나라 간의 격차로 인해 작품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았다. 실험적인 것에 포커스를 두거나, 예술성에 핵심을 두거나, 춤 자체에 집중하는 등 어떤 방향성이 설정되지 않아 작품들이 다양했다. 아주 대중적인 작품이 있는 반면, 아주 깊은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등, 작품의 진폭이 넓었다. 그러나 젊은 안무가라는 중요한 핵심은 실험성이 아닌가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본다. 실험성에 집중한다면 스프링 포워드는 좀 더 열려 있어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