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해변특정의 춤 · 춤을 좌우하는 손 · 영화 뒤집어보기 · 브레이킹과 젠더차별
김채현_춤비평가

[미국]
극장예술을 뒤바꾼 로버트 윌슨 타계

매체 혼합을 통해 춤과 연극, 퍼포먼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 연출로 극장예술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평판을 받아온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7월 하순 8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1976년 〈해변의 아인슈타인〉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끌은 극장예술가이다.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뉴욕타임스는 “윌슨의 스타일은 얼음장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아주 미미한 일이 아주 느리게 일어나곤 했다. 무대 장치는 간략했으나 배경은 푸른빛으로 빛났고 그 효과는 간결하되 풍성했다. 배우들의 얼굴은 종종 하얗게 분장되었다. 그들의 자세는 뻣뻣하였고, 움직임들은 형식적이고, 신중한 듯이 찬찬하며, 거의 의례 제의를 올리는 듯했다. 괴로운 스트레치 동안 딱딱한 몸짓들이 응결되곤 하였다”고 그의 작품 양식을 압축 소개하였다. 다음은 뉴욕타임스에서 인용한 로버트 윌슨의 작품 세계이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7/31/theater/robert-wilson-dead.html
https://www.nytimes.com/2025/08/01/arts/music/robert-wilson-theater.html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aug/20/lucinda-childs-robert-wilson-theatre-einstein-on-the-beach
 

 

Einstein on the Beach ⓒRobert Wilson



그는 뉴욕에서 회화와 건축을 공부했고, 장애와 뇌 손상을 입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연극 치유 실습을 하였다. 여기서 그는 비선형적이고 비텍스트적이며 기존 틀에 매이는 법 없이 초현실적인 방향을 지향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1976년 미니멀뮤직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함께 협업하여 공연예술계에 깊은 영향력을 발휘한 작품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 거의 5시간 동안 진행되었다)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9미터 길이의 빛줄기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점차 회전하다가 파리떼들 속으로 솟구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그는 무대 행위를 극히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무대에서 일어날 법한 일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켜 주었다.

윌슨은 무성영화에도 손을 대었고 특히 그 작품들을 길게 공연하여 특별한 효과를 가져왔다. 그는 무려 12시간 동안 밤새도록 〈스탈린〉을 공연한 후 글래스를 만나서 대화 끝에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오페라 스타일로 공동 제작하였다. 이 오페라에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통합을 향한 여러 세기의 실험이 집대성되었으며, 공연예술에서 플롯, 혹은 플롯의 부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을 제시하였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관한 직설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스토리도 등장인물도 없다. 오페라의 기본 요소인 음악과 드라마의 알맹이를 걸러내고 멈추지 않는 움직임, 돌발적인 성찰의 순간과 결합하여 참신하며 대담한 결과물로 빚어내었다. 작품 전체는 핵에 관한 묵시록,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들의 악몽 같은 종말에 관한 전망을 쫓아 전개되었다. 윌슨은 전통적으로 쓰이던 전기(傳記) 투의 흐름 대신에 기차, 법정 재판, 그리고 우주선이라는 아리송한 배경들을 설정하였다. 그는 4막 9장의 얼개에다 5개의 연결부를 덧붙여 은유가 그득한 이 장소들을 생소하고 잊히지 않으며 간간이 토속적이면서 재미난 그림들로 탐색하였다.

영국의 가디언 역시 윌슨의 부고를 전하는 기사를 올렸고, 〈해변의 아인슈타인〉에서 여성 주역을 맡은 무용가 루신다 차일즈는 이 기사에서 “윌슨은 정말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경우, 자기가 각 장면마다 그린 작은 그림들이 몇 페이지씩 있었고 그는 항상 시각적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루신다 차일즈는 포스트모던댄스 시기에 그 운동을 이끌던 주역의 일원이었다. “나는 무용수이자 안무가였고, (포스트모던댄스의 발상지-근거지인) 저드슨댄스시어터에서 작업하였다. 우리 무용인들은 대안 공간에서 음악 없이, 평범한 동작으로 공연하면서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윌슨은 작곡가와 조명이 있는 극장에 앉아 있었다. 당시로선 참 현대적인 감각이었고, 그런 작품은 처음 봤던 것이다.” 가디언의 기사에서 여실한 대로, 무용가들뿐 아니라 극장예술인들이 당시 윌슨에게서 받은 충격은 엄청난 체험이었고 영감의 원천으로 삼기도 하였다.


해변은 춤에 무엇인가?

강이나 바닷가 모래사장이 춤판으로 되는 것은 쉽게 상상되고, 우리 주위에서도 간혹 보는 일이다. 8월 하순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모래사장에서의 춤 이벤트 기사는 모래사장에서의 춤이 겉보기와는 달리 단순치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환기한다. 이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8/21/arts/dance/rockaway-beach-sessions-kim-brandt.html
https://www.beachsessionsdanceseries.com/

뉴욕 퀸스 지구 남쪽에 소재한 로커웨이해변에서 지난 10년 동안 8월이면 비치 세션스 행사가 열려왔다. 근래 몇 해 동안에는 하루 열렸고 그전에는 며칠씩 열렸다. 올해는 무용가 킴 브랜트가 〈Wayward〉(제멋대로)를 보여주었다. 2014년 뉴욕의 옥내 실험무대에서 〈무제〉를 공연한 이후 브랜트는 무대 공연을 더는 하지 않았고 묘지, 갤러리, MoMA PS1 등지로 진로를 틀어 장소특정 춤을 공연해왔다. 조각 분야 석사학위를 취득한 경력도 브랜트가 장소특정 춤을 추구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Wayward〉에는 무용수 18명과 아이들이 참여한다. 브랜트는 말한다. “해변은 야성적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널린 곳에서 나는 통제에는 관심도 없고, 다뤄야 할 요소들은 너무 많다. 로커웨이해변이 프로시니엄 무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수평선의 풍경이 아니라 해변의 수직성을 탐색하는 작업이어서 공연에서 모든 것은 물질적이고 진흙탕처럼 느껴진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움직이고 싶고 춤추고 싶었지만, 해변에 대한 쇼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댄서들이 모래 언덕에 다시 서 있는 걸 보면, 마치 도시를 보는 것 같고 로커웨이라는 곳을 바라보면서 저쪽 건너편의 스카이라인(지평선)을 상상할 수 있다. 댄서들은 포즈를 취하거나 몸매를 만들지 않는다. 해변은 도시 뉴욕이 된다.”

브랜트는 지금 뉴욕이라는 도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춤을 만들려고 애쓸 때 절감하는 이해할 수도 없는 조건들이 거칠게만 느껴져 공연에 제멋대로(wayward) 같은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공연은 변화무쌍한 모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를 꿰뚫어 보고 생각에 잠기는 정경도 일궈낸다. 특히 내면의 몰입이 외적 신체성과 어울려야 하는 부분에 대해 브랜트는 생각하는 무보(舞譜)라 지칭한다. 파도, 바람 소리와 감각 속에서 마음이 움직일 때, 순수한 감정과 하나되기보다는 출연자들은 지면에 집중하는 아주 고조된 영역으로 인도된다.

어느 출연자는 “브랜트의 작업에 대해 걸핏하면 단순성이나 미니멀리스트 같은 말들을 갖다대지만, 나는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다. 그런 단순성에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브랜트는 자신의 안무 착상에 맞춰 출연자들이 움직이되 각자 나름대로 움직이기를 원한다. 공연 전반에 걸쳐 집단 지성이 작동한다. “어떻게 함께 헤쳐나가며 이 세상을 움직일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우리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같은 점들에 서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작업은 수리(修理) 공사하는 일과 흡사하다. 그럼으로써,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제시할 수 있다면 분명 아주 보람찬 일이다.”


춤에서 손은 핵심인가, 아닌가?

머리와 몸통, 사지, 수족(手足)이 등장하는 춤에서 당신이 주시하는 것은 어느 쪽인가? 최근 뉴욕타임스는 춤에서 손의 역할을 살피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인도춤의 무드라처럼 손 교범도 있긴 하지만, 춤에서 당연시되는 손의 역할이어서 그 역할이 자칫 등한시될 수 있기도 하다. 손의 역할을 다양한 춤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보는 이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기사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8/14/arts/dance-hands-choreography-video.html

발레 안무가 조지 발란신은 손을 꽃에 비유하였다. 손에서 꽃이 만발하려면 아름답게 둥근 손바닥 위에 다섯 손가락이 떠 있고 다섯 손가락이 제각각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앨빈 에일리는 〈계시〉 도입부에서 감정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모양을 바꾸어나갈 때 손이 갖는 강인함과 슬픔을 보여준다. 간구하는 동시에 탄탄한 손은 전기가 흐르는 몸의 횃불처럼 다가온다. 발레의 미하일 바리쉬니코프는 춤이란 머리, 두 손, 두 발, 즉 몸의 다섯 지점에 관한 작업이고, 손이 무용수의 내면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춤에 대해서는 자기는 하등 관심도 없다고 한다. “손은 몸의 다른 종결부에서 시작하는 문장의 구두점과 같다.” 어느 무용가에게 손은 소품, 도구, 교묘하게 공격할 무기가 된다. 어느 플라멩코에서 춤은 댄서의 내면이 되고 손가락 움직임은 몸의 중심에서 시작한다.

마사 그레이엄의 오목하게 수축된 손은 심적 에너지가 주입된 행위이다. 그레이엄에게 힘은 골반에서 시작해서 팽팽하게 손으로 이어지고, 밀착된 손가락과 뻗치는 손바닥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튕겨나온다. 〈원초적 성찬〉에서 오므린 손은 공경의 형태이자 천국을 향한 영적인 선물로 쓰인다. 재즈 안무가 밥 포시의 〈매직 투 두〉에서 손가락을 벌리고 넓게 뻗은 손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싱어송라이터 FKA twigs의 춤은 음악 사운드와 리듬이 파도처럼 몸을 휘감고 어느 뮤직 비디오에서는 소용돌이치며 뻗치는 손가락과 꽉 쥔 주먹이 대조를 이루며 손은 공세와 후퇴를 되풀이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늦춘다. 그룹 밴드 정글의 비디오 "Back on 74"에서 죽 뻗은 손이 댄스 플로어를 가로지르며 에너지를 내뿜는 장면에서처럼 손은 섹시할 수도 있다.

이상의 손들에 비하여 발란신의 손은 보석에 해당한다. 발란신의 테크닉에 대해 저술한 수키 쇼러는 “손은 힘과 강인함을 주고 방향을 인도한다‘고 하였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수석을 역임한 어느 단원에게 팔가짐새(포르드브라)는 발레가 해당 무용수의 몸 안에 제대로 자리잡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된다. 춤 감상은 그림 감상과 다르다. 춤 감상 행위에서는 고정된 지점이 없다. 춤에서 볼 것이 너무 많아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범위를 좁혀 손에 시선을 집중해보라.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집중하면 초첨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닻을 얻을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가능성을 손에서 찾아내기. 손에서 시작해 보세요.


영화 〈블랙 스완〉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

영화 〈블랙 스완〉은 2010년 개봉하였다. 완벽을 향한 발레리나의 강박을 소재로 하여 발레의 이면을 터치한 영화로서 나름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올해 연초에는 뉴욕타임스의 21세기의 최고 영화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8월에 뉴욕타임스는 발레 현장의 무용수들은 〈블랙 스완〉에 열광하는 정도가 덜하다는 관측을 소개하였다. 그들은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가 광기에 빠져드는 모습들에서는 영화가 형편없는 발레 클리셰들을 섞어놓았다고 지적한다. 또 발레를 향한 무용수들의 헌신을 기쁨에서 연유하는 열정보다는 영화에서는 일종의 병리 현상으로 묘사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영화 <블랙 스완> ⓒScreen Rant



다음은 〈블랙 스완〉 개봉 15주년을 기회로 이 영화에 대한 발레 무용수들의 반응을 뉴욕타임스가 취재한 내용이다. 미국 최정상의 양대 발레단인 뉴욕시티발레와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유망주 단원 각 2명을 인터뷰한 기사이다. 그들은 20대로서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는 모두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들과의 인터뷰 답변 내용을 1인칭으로 서술하되 무기명으로 소개한다.

기사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8/11/arts/dance/black-swan-anniversary-ballerina-reactions.html

“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블랙 스완〉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발레 버전인 것 같다. 사실 〈블랙 스완〉은 여느 영화나 TV 프로그램들보다는 발레를 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발레를 농담거리로 만들지도 않았고, 무용수들을 농담처럼 취급하지도 않았다.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발레를 다루는 방식이 결코 진지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이면에 일종의 존중이 담긴 것도 사실이다. 춤계 사람들, 특히 젊은 무용인들이 이 영화가 발레의 실상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면서도, 완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그리고 정신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블랙 스완〉에는 시대 정신이 스며 있다.

주연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무용수처럼 보이기 위해 수개월 동안 발레 훈련을 받고, 그 세계에 온전히 몰입했다는 사실은 매력적이다. 나탈리의 연기는 훌륭하다. 물론 전신 연기 촬영에서는 춤 대역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인공 니나는 정말 외로워 보이는데, 실제 현실에서도 사실이다. 발레 무용수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 영화에서 니나가 외부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그런 부분이 완전히 와닿는 것은 아니다. 내 경험은 니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른 댄서들과 배역을 두고 경쟁할 필요도 없었고,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었고, 코치들도 많았고, 훈련과 연습 시간도 엄청 많았다. 스트레스도 있다. 〈백조의 호수〉가 발레리나의 경력에서 정점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고, 거기에는 압박감이 따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강박적이거나 모든 것을 소모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오딜을 영화에서 저속하고 성적으로 묘사하는 걸 봤다. 하지만 그건 내가 오딜 캐릭터에 공감하는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나는 오딜을 강하고 매혹적인 여성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어떻게 마무리될지도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인식에서 그녀의 자신감이 나온다. 오딜 내면의 자신감은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자신감이다. 영화에서처럼 노골적으로 섹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왕실의 무도회에서 일어나니까.

예전에는 발레가 지금보다 훨씬 강박적이었던 것 같다. 발레 무용수들은 학교에도 안 가고, 아이도 없고, 춤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해서 다른 평범한 일들도 하지 않고,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느껴졌을 듯하다. 어쩌면 2010년 당시의 발레 문화도 그런 분위기에 좀 더 가까웠을지도. 그러나 발레단을 포함한 세상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지만, 삶의 다른 부분들도 키워나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댄서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 감정적으로나 얼마나 끊임없이 자신들을 가꾸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춤을 아주 많이 추어야 하는데, 연약하거나 정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법이다.”


계속되는 트럼프의 미국 문화예술계 판갈기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8개월 째이다. 그는 미국 예술계를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취임 전부터 공공연히 피력하였다. 〈춤웹진〉은 트럼프가 취임 후 공연예술 메카로 권위있는 워싱턴 소재 케네디센터의 의장으로 자신을 스스로(셀프) 지명하고 부임한 건을 보도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8월에 케네디센터는 댄스 프로그램의 감독과 정규 무용 프로그래머 두 사람을 해임하고 새 감독을 전격 발탁하였다 한다. 새 감독으로 선임된 스티븐 나카가와는 30대 초반의 나이이며 직전까지 워싱턴발레단의 단원이었다. 그는 러시아고전발레아카데미를 수학한 후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를 재안무하고 아시아 태평양 섬주민 공동체를 다룬 〈떠오르는 태양〉을 안무한 경력이 있다.

기사링크
http://www.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200&board_name=from_abroad&page=3
https://www.nytimes.com/2025/08/25/arts/dance/kennedy-center-stephen-nakagawa.html
https://www.nytimes.com/2025/08/22/arts/dance/kennedy-center-dance-jane-raleigh.html
 

케네디센터, 포토맥강변 ⓒWikipedia



이 일이 있기 전에 나카가와는 케네디센터의 이사장에게 발레계의 급진 좌파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하였다. 비슷한 시점에 케네디센터는 댄스 프로그램의 감독 등을 해임하였다. 케네디센터 이사장은 댄스 프로그램 감독 및 프로그래머와 회의를 갖고 센터가 TV 쇼 "So You Think You Can Dance"(SYTYCD; 그래서 춤출 수 있다 생각하는 당신)처럼 대중들에게 더욱 폭넓게 어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감독 등은 이사장의 의중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제안을 준비하던 중에 이사장에게 불려가 해고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영국]
브레이킹 배후의 젠더·계층 차별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브레이킹이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되어 남자 부문에서는 캐나다가, 여자 부문에선 일본이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해마다 독일에서 열리는 브레이킹 경연대회 BOTY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던 한국이 정작 올림픽에서는 노메달이어서 의아스럽게 여겨짐 직하였다. 캐나다의 금메달리스트가 한국계여서 어떻게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파리올림픽 브레이킹 여자 부문에 출전한 호주 선수 레이건이 16강전에서 캥거루 홉을 섞은 춤으로 0점을 받아 탈락하는 이변이 있었다. 그러자 레이건이 수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다는 평가부터 그녀가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사기를 치고 흑인 문화(브레이킹)를 도용하였다는 투로 소셜 미디어에서 막말이 쏟아지는 등 파장이 컸다. 급기야는 이 사건의 주역인 레이건을 패러디하여 호주에서 뮤지컬 〈브레이킹: 더 뮤지컬〉(Breaking: the Musical)이 지난 봄에 올려졌고, 올해 8월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서 올려져 히트작이 되었다. 〈브레이킹: 더 뮤지컬〉은 어느 여성이 브레이크 댄서로서 조롱과 악명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가디언은 물론 뉴욕타임스도 이를 다루어 관심을 표하였다. 먼저 다룬 쪽은 뉴욕타임스였고 두 언론의 보도에서 〈브레이킹: 더 뮤지컬〉의 전말을 알아 본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aug/20/australian-breakdancer-raygun-is-lampooned-in-a-new-musical-but-the-olympics-fiasco-was-no-comedy
https://www.nytimes.com/2025/08/04/arts/dance/raygun-musical-edinburgh-fringe.html

호주에서 〈브레이킹: 더 뮤지컬〉의 공연 소식을 입수한 레이건 측이 강력히 항의한 후 뮤지컬 제작사와 레이건 양측은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합의를 이루었고 레이건도 제작에 참여하여 수정을 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프린지에서 공연할 때 이 뮤지컬이 레이건에 관한 것은 전혀 아니라고 강조하는 면책 조항이 무대 뒤쪽 화면에 떠오른다. 주역의 이름도 레이건에서 스프레이건으로 바꾸고 레이건이 올림픽에서 행한 동작의 순서도 바꾸었다.





이런 법적 조치에 이르는 과정도 공연에 반영한 뮤지컬은 실은 레이건의 이야기와 아주 흡사하다. 스프레이건은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부잣집 딸로 그려지고, 속임수를 써서 대표팀에 합류하고, 전세계인들 앞에서 호주의 자존감을 실추시키는 인물로 묘사된다. 뮤지컬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역할도 공연에 삽입되었다. 어느 부분에서 대본작가가 캥거루춤을 재연할 동안 내레이터는 “이제 크리스마스에 술 취한 이모처럼 춤추세요”라고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어느 부분에서 스프레이건은 “내 꿈을 모두 이루고 싶어” “아무도 안 보는 것처럼 춤추고 싶어”라고 노래한다. 관객들도 일어나 함께 춤추는 부분에서 내레이터가 하는 말은 이렇다. “너만 재밌게 놀고 있다면, 바로 스프레이건을 하고 있는 거지.”

〈브레이킹: 더 뮤지컬〉은 관객들 사이에서 단순 개그 이상으로 깊이 있게 전개되는 재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이 올림픽부터 뮤지컬 공연에서까지 조롱받는 데 대해 가디언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가디언은 이 뮤지컬이 참 우스꽝스럽되 재미없지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레이건의 남편이 브레이킹 호주 대표 선발 심사위원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호주에서 여성 브레이킹이 발전하지 않아서 레이건이 대표로 선발된 것은 행운이었다고 덧붙인다.(레이건은 36살로 다른 출전자들에 비해 고령인 편이었다.) 가디언은 그렇더라도 레이건의 올림픽 경기를 보면 그다지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고 자신의 유머와 개성에 바탕을 두고 라이브 즉흥으로 경기를 즐기며 끌어간 면을 강조한다. 브레이킹 댄스가 미국 흑인과 남미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이제는 세계 보편의 문화가 되었는데도 이번 뮤지컬이 레이건이 백인 중산층이어서 브레이킹을 하지 말라는 투로 전개되는 것은 문제라 한다. 또한 가디언은 이런 부정적인 태도를 레이건의 박사논문 주제가 힙합춤에서의 젠더 문제였다는 점과 연관시킨다. 가디언의 보도가 환기하는 점은 브레이킹 댄스를 둘러싸고 젠더 및 계층, 심지어 인종 차별 문제가 복합적으로 은밀히 작동하고 있고 레이건이 뮤지컬에서마저 조롱당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것이다.


트램플린, 춤과 결합하다

프랑스의 요안 부르주아(Yoann Bourgeois)가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앤도클랜즈국제축제에서 올리는 야외 공연을 가디언이 소개하였다. 드뷔시의 음악 〈달빛〉에 따라 전개되는 공연 영상이 널리 퍼져서 그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어느 중년 남자가 하얀 계단을 올라가다가 떨어지면 바닥의 보이지 않는 트램펄린에 튕겨져 솟구치는 장면이 반복되는 영상이다. 단순한 몸 동작이 아니라 시적인 정감이 돋보이는 영상이다. 그가 이번 그리니치축제에서 선보이는 공연은 〈흐름〉(Passage). 부르주아는 연극과 춤을 공부했고 서커스와 결합한 공연을 추구해왔다. 가디언에 의하면 온라인에서 자신의 동영상이 호기심을 끌면서 그는 팝스타들이나 명품 회사 등과 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흐름〉은 거울 회전문과 폴(pole)댄서가 균형을 잡으며 문턱을 넘는 행위를 보여주면서 덧없는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하여 삶, 죽음, 필멸의 운명, 투쟁, 소망 같은 큰 문제를 환기하는 작품이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jul/28/yoann-bourgeois-interview-viral-stair-climbing-trampoline-act




Yoann Bourgeois 〈Passage〉 ⓒYBourgeois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9.
사진제공_Robert Wilson, Screen Rant, Wikipedia, YBourgeois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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