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장 폴 몽타라니(Jean-Paul Montanari) 예술감독의 사망 이후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은 45년의 역사를 빠르게 정리 중이다. 아고라무용센터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페스티벌은 교육과의 연계를 더 강화하는 중이다. 프랑스 무용계에서는 4명의 예술감독 체재로 가면서 감독의 힘을 빼고 시(市)가 더 큰 목소리를 낼 거라는 우려로 걱정이 많다.(칸 댄스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Didier Deschamps와의 대화) 장 폴의 독립적이고 강한 리더십이 사라진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
6월 25일 8시, 캐나다의 세계적인 안무가 크리스털 파이트(Crystal Pite)의 안무로 27명의 네덜란드댄스씨어터(NDT) 무용수들이 공연한 〈멸종 중인 군상들〉(Figures in Extinction)이 코미디 극장에서 있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유명배우이며 연출가인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가 이끄는 콩플리시테(Complicité)와의 공동작업이며 연출과 내러티브 구성이 강했다. 다큐멘터리식의 3부작인 이 작품은 탄탄한 내러티브로 인해 마치 책을 몸으로 읽은 느낌을 주었다. 2시간에 걸쳐 공연된 이 서사극은 지구가 직면한 문제를 상세하게 고발하며 경각심을 준,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었다.
1장은 죽어가는 지구를, 2장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을, 3장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대서사시였다. 무용수들이 무대 중앙에 삼각형으로 서서 일제히 미세하게 고개를 살짝살짝 돌린다. 몇 가지 동작이 있고 사라지자 남자가 양손에 긴 뿔을 잡고 중앙에서 팔을 휘둘렀다. 이어 사자 같은 동물들이 상수에서 여러 명 기어 나와 움직이다 서서 양손을 머리에 가져가 손가락을 움칠거리니 새가 나는 듯했다. 파도가 치자 모두 파도에 쓸려나가고 5명이 남는다. 팝송에 맞춰 여자 한 명이 중앙에서 움직였고, 양쪽에서 4명이 움직였다. 남자가 슈트를 입고 나와 크리스털 파이트가 주로 하는 텍스트가 있는 움직임을 했다. 지구의 재난에 대한 메시지였다.
남녀가 한 손에 긴 손가락이 달린 장갑을 끼고 듀엣을 추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듀엣으로 나무 잎사귀들의 사랑이었다. 피쉬라는 글이 나오고 상수에 조명이 한 줄로 가늘게 비추자 무용수들의 팔과 손가락이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마치 생선들이 움직이듯. 이어 위에서 내려온 사각 조명 아래 남자가 반나체로 무대 중앙에서 양다리를 벌리고 앉아 개구리처럼 춤을 추었다. 토끼 가면을 쓴 여자가 양옆에서 귀엽게 몸짓을 했고, 슈트 입은 남자가 말을 하며 춤추었다. 공룡 뼈들이 바닥에 있었고, 다섯 무용수가 이 뼈들을 붙이자 공룡이 살아 움직였다. 원시림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걷던 공룡이 앉았다가 드러누웠다. 마치 죽은 것처럼. 다섯 무용수가 죽음을 지켜보았다. 상수에서 여러 무용수가 등장하고 인도음악 비슷한 아리아가 나왔다.
Nederlands Dans Theater 〈Figures in Extinction〉 ⓒNDT 공식홈페이지 |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2부는 인간에 관한 얘기였다. 무대 막이 천천히 올라가자 의자에 무용수들이 앉았다. 머리 위에서 무대 막이 멈췄다. 아이가 소곤거렸다. 현 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 안 움직여? 뭐 하는 거야” 등등. 한참 멈추어 있던 의자의 무용수들은 핸드폰을 보거나, 한 사람씩 일어나거나, 목을 움직이거나 두어 명이 춤을 추기도 하면서 다양한 구성의 춤을 추었다. 우주 같은 영상이 나오고 빛이 쏟아졌다. 심포지엄을 하듯 책상 하나에 한 사람이 누워있고 슈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둘러 서 있다. 와이셔츠 입은 사람이 인간의 뇌에 관해 얘기하면서 텍스트가 있는 춤을 췄다. 전체를 위에서 찍거나 옆에서 찍은 영상이 뒷막에 투사되었다.
3부에서 무용수들이 모두 무대 정면에 서서 한 사람씩 태생부터 개인의 역사를 말했다. 전체가 모여 각자 자기 스토리를 얘기한다. 흩어지거나 땅을 짚거나 서로 붙기도 하며 다양한 구성을 만들었다.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 삶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있다. 자연, 죽음과 삶에 대한 서사가 음성녹음으로 나왔다. 거대한 박스가 내려와 무대에 위치하다 박스가 사라지자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병원에서 힘겹게 숨을 쉰다. 병원에 모인 가족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나온다. 죽음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춤이 있었고, 박스가 내려오자 관으로 변했다.
Nederlands Dans Theater 〈Figures in Extinction〉 ⓒ손인영 |
의사가 나오고 무대는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것. 아이의 울음소리와 공룡의 뼈가 보인다. 앰블란스 소리와 슬퍼하는 사람들, 다급히 부르는 이름, 다시 레퀴엠이 나오며 작품은 끝났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드라마와 움직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거대한 서사극을 보고 나오니 여름밤의 선선함이 몸을 감았다. 작품이 주는 감동으로 먹먹한 상태에서 길을 걸었다. 여운이 오래 남아 잠들기 어려웠던 밤이었다.
다음 날, 윌리엄 포사이드와 친구들의 공연이 장클로드카리에르극장(Théâtre Jean-Claude Carrière)에서 있었다. 포사이드는 2015년 단체 해산 후 ‘윌리엄 포사이드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단체의 무용수들과 더불어 계속 협업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Friends of Forsythe〉로 특별히 의미나 서사가 있기보다 여러 스타일의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초점이 있었다.
창고극장에 입장하자 남자 둘이 꼬여있었다. 꼬임은 조금씩 변화되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둘은 더 적극적으로 꼬이고 풀리면서 다양한 조각을 만들었다. 무용수들의 몸짓이 발레나 현대춤이거나 힙합 또는 접촉 즉흥과도 유사했다. 어느 순간 손뼉을 치면 조명이 아웃 되고, 다시 춤이 시작되는 패턴이 여러 번 있었다. 남자 듀엣에 이어 4명의 남녀무용수 4인무가 벌어졌고 이어 다시 2인무가 있었다.
〈Friends of Forsythe〉 ⓒ손인영 |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춤으로 승부를 건 작업이며 포사이드의 명성을 관객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포사이드도 이제 세월을 먹었다. 움직임이 아주 독특하거나, 컨셉이 뛰어나거나, 무대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 흥미를 끌기는 쉽지 않았다. 무용수 중 로프 야시트(Rauf Yasit)의 움직임이 아주 독특해서 유심히 봤다. 힙합의 다리 꼬기를 다양한 기법으로 펼쳤는데 신기한 몸짓이었다. 트레이닝의 다름에서 비롯된 움직임으로 여타 5명의 무용수가 흉내낼 수는 있었지만,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는 어려웠다.
날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가끔 아고라 건물 중앙의 야외에서 파티가 있었다. 전세계의 델리게이트들이 모이는 곳이라 정보 교환은 중요했다. 지역의 유지나 예술가들, 유럽의 무용 관련 기자나 평론가들, 무용가들이 모여 늦은 밤까지 와인을 곁들여 간단한 스낵을 즐기며 늦은 밤의 고요를 깨고 왁자하게 대화했다. 인상 깊었던 건, 지역민들의 페스티벌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4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남부의 소도시에서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애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Mathilde Monnier 〈Territoires〉 ⓒ손인영 |
29일 6시 마틸다 모니에(Mathilde Monnier)의 작품 〈영역〉(Territoires)이 아고라 건물의 전체를 사용해 공연되었다. 아고라의 중앙에 있는 넓은 야외공간에서부터 시작된 공연은 관객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구경할 수 있는 오픈 형식이었다. 야외공간 한쪽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무용수들이 관객들 사이에서 움직였다. 이런 종류의 공연은 워낙 많이 했던 공연형식이라 새롭지는 않았다. 관객들은 무용수들을 위해 자리를 이동하거나 피하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이 구별되지 않아 무대 안팎에서 즉흥이 이어졌다.
마틸드 모니에가 장소특정형 공연이니 보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라고 방송하자 모두 여기저기 흩어졌다. 아고라의 크고 작은 연습실과 공연장 7곳 정도에서 동시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곳에 들어가니 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음악에 맞춰 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남자는 손 박자를 쳤다.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고, 즉흥에 가까운 몸짓으로 남자도 같이 움직였다. 극장으로 가자 한 여자가 앞뒤로 뛰면서 말을 했다. 일정한 박자의 음악에 말소리도 힙합처럼 음악에 맞춰 소리를 내었고, 움직임도 박자에 맞춰 탭댄스처럼 발을 움직였다. 이어 마틸다가 같이 앞뒤로 움직이며 말을 하거나 춤을 추었는데 발 움직임이 재빠르고 흥미롭게 교차했다.
이어 한 남자 무용수가 거대한 검은 고무 튜브 2개를 X로 엮어서 들고 움직였다. 들거나 기대다 튜브 사이에 들어가 넘어지거나 벽에 부딪혔다. 튜브에서 겨우 빠져나와 드러눕자 한 흑인 남자가 휘이~ 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무용수의 몸을 쓸며 긴장을 낮추고 둘은 춤을 추었다. 극장 로비의 작은 공간에서는 여자의 즉흥에 이어 흑인 남자가 모자를 쓰고 불규칙한 박자에 맞춰 고개를 숙이거나 옆으로 돌리며 느리게 움직였다. 아주 작은 공간에서는 한 남자가 물건이 즐비한 곳에 누워있고, 사이렌 소리 같은 음악이 들렸다. 줄, 배드민턴 채, 조화, 알록달록한 헝겊, 플라스틱 해골 등이 바닥에 있었다. 천천히 줄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선 앞을 주시하더니 줄을 잡고 당겼다. 그 외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즉흥이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갈반과 마이클 레온하트(Israel Galván & Michael Leonhart)의 작품인 〈A new Sketches of Spain〉이 6월 29일 밤 10시 아고라 야외극장에서 있었다. 음악회처럼 세팅된 무대에 6명의 연주자와 무용수 한 명이 등장했다. 연주자들이 착석하고 트럼펫 연주자가 지휘하자 음악이 시작되었다. 피아노와 드럼, 현악기와 금관악기 등을 연주했는데, 악기들의 음향을 세심하게 정리한 듯하여 소리가 아주 좋았다. 한 남자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노란 바지를 입고 플라멩코를 추었다. 신으로 바닥을 치며 소리를 내고, 손에는 맑은 나무들을 부딪치거나 흔들었다. 연주는 영화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메들리로 했는데, 편곡한 듯했다. 그 소리가 섬세하고 듣기 좋았다. 잘게 바닥을 다지거나 강하게 내려치는 움직임 자체는 훈련된 무용수의 것이었으나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연약한 음악과 플라멩코의 강하고 열정적인 발소리와는 서로 맞지 않았다. 각각은 그 자체로 뛰어났다. 플라멩코 무용수의 쇼맨십과 춤 선이 훌륭했다.
Israel Galván & Michael Leonhart 〈A new Sketches of Spain〉 ⓒ손인영 |
무용수의 열정적인 춤과 잘게 부수는 발소리를 따로 듣고 싶었으나, 연주에 묻힌 춤의 진미가 아쉬웠다. 간혹 아름다운 음악에 무용수가 소리를 죽여 움직이기도 하고, 여러 작은 악기들, 나무 방울이나 종을 흔들며 음악과의 조화를 만들기도 했다. 지휘자의 전자 트럼펫 연주는 밤의 적막을 깨고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마지막에 지휘자와 무용수가 앉아 양손으로 플라멩코 춤의 손 박수를 아주 빠른 속도로 쳤는데 둘의 박수 소리가 음악과 어울려 듣기 좋았다.
6월 30일 6시 데이비드 웜패치(David Wampach) 안무의 작품 〈미치광이 짓〉(Du Folie)이 행거극장에서 공연되었다. 3개의 붉고 긴 의자가 놓여있고, 그 앞에서 3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다리를 뻗고 앞을 보며 바닥에 앉아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반반의 레오타드를 입은 그들은 아주 작고 미세하게 움직이며 객석을 뚫어지게 봤다. 이어 앉아서 다리를 꼬거나, 옆으로 넘어지면서 다른 무용수를 밀치기도 하고, 히프를 들었다 놓기도 했다. 손을 이용하지 않고 다리로 바닥을 밀어서 붉은 의자 위로 꼬면서 올라갔다.
David Wampach 〈Du Folie〉 ⓒ손인영 |
고개가 의자 뒤로 넘어가자 여러 방법으로 꼬는 다리만 한동안 보였다. 의자에 앉아서 시선은 계속 앞을 향하고 아주 불편한 표정을 하며 형태를 만들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서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는 등 몇 가지 행위를 하다 셋이 삼각형으로 발을 붙이고 다리만 움직였다. 음악이 강해지고, 조명도 어두워지자, 끽끽 소리를 한 명씩 내더니, 천에 풍선이 여러 개 달린 옷을 입고 나타나 움직이다 끝났다. 춤은 없고 아이디어만 있었던 공연으로 유럽에서 자주 보이는 작품 스타일이다. 비록 춤이 없어도 감동을 주는 많은 작품에 비해 이해하기 어려운 작업이었다.
6월 30일 8시에 비네트 극장에서 레니오 카클레아(Lenio Kaklea) 안무의 〈새들〉(Les Oiseaux)이 공연되었다. 새벽 여명 같은 조명이 밤에서 낮으로 흘렀다. 무용수 한 명이 초록색 의상을 입고 뒤를 보며 숨쉬기를 한다. 조용하고 편안한 음악. 등에 손을 올려 손가락만 움직인다. 상체만 움직이다 발레에서처럼 양다리를 교차로 벌리고 뛰면서 무대를 활보했다. 한 여자 무용수가 날개를 한쪽 팔에 달고 나와 상체를 숙이거나 입을 벌려 하늘을 본다. 새의 흉내였다. 새가 날 듯 위로 뛰자, 3명의 무용수가 합류했다.
Lenio Kaklea 〈Les Oiseaux)〉 ⓒ손인영 |
다리 움직임만을 이용하여 7명의 무용수는 3:2:2, 3:4 등으로 무리를 지어 뛰었다. 마치 새가 무리 지어 하늘을 날 듯. 4가지 정도의 움직임을 반복했다. 무용수들은 분장을 과하게 했고 팔 사용이 거의 없었다. 그네가 내려와 한 명이 그 위에서 동작한 후, 리모컨을 조작하자 카메라를 장착한 작은 드론이 무대를 날았다. 카메라가 무용수를 한 명씩 비추자 뒤 막에 그들의 영상이 나왔다. 이 작품은 움직임이 경직됐고, 마치 아마추어의 작업처럼 창의력이 전혀 없었다. 장 풀이 왜 이 작품을 올렸는지 궁금했으나 작고한 그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7월 2일 8시 코름극장에서는 몽펠리에댄스페스티벌에 단골로 공연했던 무라드 메르주키(Mourad Merzouki)의 작품 〈만화경〉(Kaléidoscope)이 선보였다. 그는 프랑스 국립안무센터의 예술감독을 11년 동안 했다.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서 공연한 그의 작품들의 하이라이트를 엮어서 올렸다고 한다. 힙합을 처음으로 현대무용화한 그는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프랑스의 대표적인 안무가다. 그는 미디어 아트, 서커스, 무술, 시각예술 등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안무가로 알려져 있다.
무대 위에는 4조각의 나무판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그 사이로 무용수들이 움직였다. 나무판이 열을 지으니 담처럼 되었고, 상수에서 앞뒤 일렬로 선 무용수들이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천천히 왔다 갔다 했다. 일어나 앞으로 걷거나 뒤로 돌아 걷기도 하고 줄자를 꺼냈다 집어넣기도 하면서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한 줄로 서서 춤을 같이 추다 상수로 빠지자, 하수에서 여자는 긴 의자를 밀고, 남자는 천천히 걸어 나온다. 무음에서 여자는 의자에 앉고 남자가 부드럽게 춤을 추자 기타 음악이 나왔다.
나무 벽에서 손들이 나오고, 나무문이 열리자 무용수들이 나와 벽 앞의 긴 의자에 앉아서 남자의 춤을 구경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고, 앉은 무용수들은 얼굴을 숙이고 손만 움직이거나 고개를 들기도 했다. 코러스처럼 앉았던 이들은 여러 번 다 같이 중앙으로 왔다 되돌아가서 앉고, 한두 명이 남아 춤을 추었다. 춤은 무릎을 많이 구부렸고 연체동물처럼 유연했으나 움직임이 다양하지는 않았다. 바닥에 빨간 조명이 들어오고, 빨간 컵들이 무대 바닥 전체에 놓였으며, 하수에서 무용수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춤을 추자 컵들이 뒤집히고 흩어졌다.
전체적으로 음악의 변화에 따라 춤의 상황이 달라졌다. 13개의 부문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건 스모그가 무대를 덮자 대형 선풍기가 양옆에서 돌고 중앙에 대형 흰 천이 공중에서 날릴 때, 그 밑에서 춤을 추는데 마치 안개 속에서 움직이듯 환상적이었다. 마지막에 키 큰 흑인 남자가 수피춤을 추거나, 클래식 노래에 춤을 추는 장면에서 소프라노의 음색이 너무 좋아 기억에 남았다. 전체적으로 상업적이며 화려하고 무대장치와 조명 사용이 독특했으나 움직임은 평이했고 안무보다 프랑스의 서커스처럼 환상적인 무대가 좋았던 작품이었다.
7월 3일 6시 행거극장에서 아미트 노이(Amit Noy)의 작품 〈Good Luck〉이 공연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하고 현재 마르세유에서 작업하는 노이는 뉴질랜드의 민속무용을 해체하고, 전통춤에 내재한 신체적 훈육이나 가해와 같은 몸짓이 어떻게 기억으로 남아 집단 심리를 형성하는지에 대해 솔로 작업을 했다. 무대는 미치광이의 광적인 도발이 벌어졌다. 아이처럼 기저귀를 찬 노이는 소리를 지르고, 젖가슴을 만지고, 양팔을 벌리고, 무대를 뛰었다. 호일로 쌓였던 고깃덩어리를 꺼내 아이를 품은 듯 안고 만졌다. 우유를 고기에 뿌리고 무대에 떨어뜨리고 고함을 치는 등 춤은 없고 행위만 있었던 전형적인 유럽식의 강한 작품이었다.
8시 바구에극장에서 공연한 실뱅 헉과 마틸드 올리바레스(Sylvain Huc & Mathilde Olivares)의 작품 〈새로운 삶〉(La Vie nouvelle)을 봤다. 스피커 4대가 내려와 무대 중앙에 걸려 있었다. 피아노 음악이 나오고 남녀가 상수에서 무대에 있던 막대기를 들고 하수로 갔다. 막대기를 둘이 주고받으며 춤을 추었고 음악은 어쩌다 한 번씩 통하며 들렸다. 춤은 어떤 패턴이 있었다. 남자는 앉고 봉을 여자가 들고 양팔을 옆, 앞, 사선으로 돌리며 움직였다. 다시 남녀의 듀엣이 시작되고 남녀 위치가 바뀌며 둘이 떨어졌다 붙고 하면서 같이 움직이다 몸의 박자가 살짝 어긋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봉 2개를 가지고 팔을 왔다 갔다 하거나 몸을 왔다 갔다 하다 봉을 서로 주고받는 동작 위주로 움직였는데, 패턴이 순차적으로 서서히 바뀌다가 어느새 새로운 패턴으로 변해있는 다든지 같은 동작을 원으로 마주 보고하다 반대로 움직이다 전체 무대를 다니며 움직이는 등 단순할 듯한데 구조적으로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자가 눕고 여자는 움직임을 지속하다 남자와 나란히 누워서 돌았다. 도는 동작이 일반적이지만, 감정을 넣은 그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묘하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패턴이 있었고, 그 패턴이 변형되었던 독특한 작품이었다. 설명으로 이해하기는 상당히 어려우며 느껴야만 하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작품이다.
Sylvain Huc & Mathilde Olivares 〈La Vie nouvelle〉 ⓒ몽펠리에댄스페스티벌 공식홈페이지 |
10시 아고라 야외극장서 살리아 사누(Salia Sanou)의 작품 〈푸가... 연속...〉(De Fugues… en Suites…)을 봤다. 검은 옷을 입고 단순하게 시작한 이 작품은 푸가의 음악에 따라 화려하게 변신했다. 6명의 무용수는 바흐의 푸가 음악의 구조적 변형을 그대로 몸으로 보여주었다. 하나의 움직임을 여섯 명의 무용수가 움직이다 누군가 변형을 하고 변형은 새로운 움직임으로 가는 전조가 되어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시 되돌아오거나 제3의 구성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쉽고 편하면서도 보기 좋았던 공연으로 춤만으로 그렇게 재미있고 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Salia Sanou 〈De Fugues… en Suites…〉ⓒ몽펠리에댄스페스티벌 공식홈페이지 |
어려운 테크닉을 쓰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한 몸짓이었으나 빠르기의 다름과 공간적 변이, 그리고 멈춤과 움직임의 자연적인 연결이 지속해서 집중하게 했고 쉼 없는 변형이 창의력의 발현으로 보였다. 단순함 속에서 보석 같은 형식이 보였던 작품으로 안무자의 구성적 창의력이 눈부셨다. 끝나자 이미 여러 번 몽펠리에 페스티벌에 초대되었는지 관객의 환호가 대단했다.
45년 동안 지속한 몽펠리에댄스페스티벌에 아직 한국 작품이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기에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한국에서 연락도 없었고 접촉이 없었다고 했다. 한국 무용가들이 좀 더 공격적으로 해외 페스티벌의 문을 두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원한다 해도 페스티벌 관계자들이 세계 모든 곳에서 오는 영상을 다 보지 못하기에 선택되는 것이 숩지 않겠지만, 지원을 시도해야 선택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날 나는 아비뇽 페스티벌 관람을 위해 몽펠리에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