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무대 슬럼프 극복기 · 움직임 감독의 절대성 · 깊은 카타르시스를 던진 A. 칸
김채현_춤비평가

[미국]

무대 슬럼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무용단 차원의 과제


무용인들이라면 겪(었)을 무대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들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무용 단체가 풀어야 할 과제로 보는 흐름이 대두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무용수들의 정서적 건강을 소홀히 해오다가 일부 발레단과 학교에서는 무용수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전신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일부에서나마 인식 전환이 이뤄지는 현상을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11/17/arts/dance/dancers-ballet-mental-health-therapy.html

뉴욕시티발레단(NYCB)의 수석 발레리나 사라 미어스는 수년 전 슬럼프에 빠졌었다. 발란신 작품 순서를 틀리기 시작해서 그 공연이 끝날 적마다 울었고 보완하기 위해 과도한 리허설을 거듭하다보니 온몸이 망가져 심지어 남몰래 절뚝거리며 무대에 오르는 악순환을 겪었다. 숨어서 흐느끼기를 반복하던 중에 슬럼프가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떨치고 NYCB의 건강-웰빙 코디네이터를 찾아 어린 시절 이후의 관계를 비롯하여 자신의 경력과 부상으로 인한 트라우마 등등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는 과정을 개시하였다. 그런 결과 슬럼프가 그런 모든 경험과 얼마나 얽혀 있는지 깨닫게 되고 치료를 진행하였다. 미어스는 폭넓은 치료를 경유한 요즈음 “자유로움을 느끼고,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고 치료 덕분에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한다.

모든 스포츠에는 심리 코치가 있으나 발레는 물론 춤에는 그런 코치가 아예 없는 편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댄서들은 개인 치료를 독자적으로 받을 재정 여력이 없다. 즉 치료사를 고용해서 고통을 극복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세계 최대 최고의 춤 단체인 NYCB에서조차 1984년부터 2014년까지는 슬럼프에 빠진 단원은 무용단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멘토를 찾아야 하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경우 많은 무용단들이 정신 건강을 아우르는 웰니스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 부예술감독이 1년에 적어도 두어 번 단원 무용수들과 만나서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상담을 진행한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는 정신 건강 문제의 해결이 여타 문제를 예방하는 데 당연히 도움이 되므로 선행 조치들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단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NYCB의 부속 학교 아메리칸발레스쿨은 지난 9월 420만 달러(60억원)를 들여 새로운 예술 건강 및 웰니스 학생 센터를 개관하였다. 여기서 학생들은 기밀이 보장되는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해서 정신 건강 상담사 및 영양사와의 상담을 예약 진행할 수 있다.

NYCB는 팬데믹 이전에 공연코칭·스포츠심리학 전문가를 영입하기 전까지는 정신 건강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NYCB는 댄서들에게 그룹·개별 상담을 통해 발레 이외의 모든 면에서 건강을 돌보는 방법에 관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발레단 내의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 아직 완전히 구축된 것은 아니지만, 관련 논의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발레단은 밝혔다. 무대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있어 신체적 웰빙과 정신적 웰빙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라는 인식이 새 돌파구를 열고 있다. 단원들이 제 홀로 이를 악물고 악전고투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정신 건강을 개인 소관으로 방치하지 않는 적극적 인식이 무용단에서 필수적이라는 것을 말하며, 국내에서도 특히 공공무용단이라면 그런 인식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가수·배우를 춤추도록 고무하는 안무가

수백년 동안의 미술, 연극, 영화 역사를 표현해낸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화제이다. 유튜브 업로드 1개월만에 1억 3천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뮤직비디오를 춤사위들로서 매끄럽게 엮어낸 안무가 맨디 무어(Mandy Moore)를 뉴욕타임스가 인터뷰로 집중 조명하였다. 무어는 19세기 영국의 라파엘전파 회화, 20세기 전반기 러스비 버클리 감독의 영화 뮤지컬, 1960년 전후 여성 보컬 그룹들을 아우르며 〈The Fate of Ophelia〉(오필리아의 운명) 홍보 뮤직비디오로 매끈하게 엮어내었다. 디지털 인터넷 매체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하는 시대에 이 분야 안무 활동은 춤의 확장 측면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필리아의 운명〉은 지난 10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출반한 음반의 수록곡이다. 오필리어는 햄릿의 연인으로 햄릿이 재상 폴로니어스를 죽인 뒤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에 빠지고 결국 죽음에 이른 인물이다. 〈오필리아의 운명〉 가사는 테일러가 약혼자인 미식 축구 선수가 자신을 오필리아의 운명에서 구해줬다는 내용으로서 오필리아의 비극적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뒤바꾸어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느낌을 담았다. 2024 미국 대선에서 카말라 해리스를 지지하여 트럼프가 싫다고 불만을 표했으면서도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그 곡을 쓰고 말은 테일러 스위프트. 뉴욕타임스가 소개하는 무어의 세계에서 무어의 춤 이력과 유명인들이 춤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무어가 구사하는 방법을 들여다 본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10/26/arts/dance/mandy-moore-taylor-swift-ophelia.html
Taylor Swift 〈The Fate of Ophelia〉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ko70cExuzZM



오필리아의 운명 ⓒ테일러 스위프트 뮤직비디오 유튜브 캡쳐



맨디 무어는 어릴 적에 발레와 브레이킹을 모두 배웠다. 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깔끔하고 형체에 이끌리는 발레부터 음악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자유로운 운동 스타일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을 일찌감치 익혔다. 지난 30년 동안 무어는 영화 〈La La Land〉 〈Silver Linings Playbook〉, TV쇼 〈So You Think You Can Dance〉 〈Dancing With the Stars〉에서 매력적인 루틴들을 창작해냈고 그래미상, 에미상,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에 댄서 넘버들을 안무 제공하였다. 최근엔 뮤지컬 〈돌리〉, 오페라 〈캐발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에서 안무하였다. 단적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무어가 안무를 해낼 수 없는 춤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평이 자자하다.

무어는 유명인들과 소곤대며 작업하는 안무가로 유명세를 얻어왔다. 그렇게 소곤대는 이유를 무어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명인들을 접촉하면서 그들이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그들도 춤에서 취약한데, 유명할수록 취약하다는 느낌은 더 커진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춤 때문에 트라우마 같은 것을 겪는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일종의 춤 치료사로서 나서게 되었다. 그냥 어느 방으로 가서 나는 이걸 좋아하는데, 당신도 좋아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가르친 후에 스텝을 가르친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작업할 때도 테일러가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를 원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어깨나 무릎 부위의 동작을 미세하게 조정하였다.


움직임 감독이라는 직업, 그 절대적인 역할

패션 모델의 동작이 훈련받은 것이라는 상식은 흔하지만, 그에 움직임 감독이 개입하는 경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움직임 감독은 광고, 패션쇼, 영화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무용수가 아닌 사람들을 위하여 동작을 만드는 움직임 감독의 활약상을 뉴욕타임스는 몇 가지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였다. 무용인의 고부가 활동 내지 직업으로서 동작 감독의 영역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11/10/arts/dance/creative-movement-directors-fashion-movies.html

댄서로 숙련된 팻 보거슬랍스키는 패션 모델로 활동하던 중 디자이너가 모델들에게 공연하는 듯이 보이는 워킹 지도를 부탁받고 무브먼트 디렉션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한다. 이제 패션계의 인기 있는 동작 감독이 된 팻은 “댄서, 배우, 모델 중에서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했고, 이제는 자유롭다”고 밝혔다.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훈련받은 폴리 베넷은 영화, TV, 연극에서 그 나름의 신체 언어로 일가견을 이루고 있다. 영화 〈엘비스〉에서 배우가 생전의 실제 엘비스를 연기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폴리는 “전기가 통하는 듯한 엘비스의 몸 움직임은 엉덩이가 아니라 개다리 무릎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동작을 지도하는 폴리 베넷 ⓒ폴리 베넷 유튜브 캡쳐



15년 전에 폴리는 초콜릿 바 광고 촬영장에서 조연출로 일하는 동안 어느 모델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고, 폴리의 운명이 된 동작 감독은 거기서 발단하였다. “수영장 위 유리 플랫폼을 일정한 박자에 맞춰 걸어가면서 초콜릿 바를 깨무는 연기를 모델이 제대로 연결하지 못해 두 번이나 수영장에 빠졌다. 나는 모델에게 자기 호흡의 리듬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또 승마를 즐기는 그녀에게 말의 걸음걸이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모델은 완벽하게 소화해내었다. 이후 사람들이 나를 찾았고 그들은 나를 마녀라 불렀다.” 폴리와 동작 감독 활동에 대해 대화하는 중에 마녀와 마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심리와 춤을 연금술적으로 혼합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모델이 런웨이를 쿵쾅대며 걷는 방식이나 배우가 카메라 렌즈에 자기 얼굴을 비추는 각도를 조절하는 방식처럼 동작 감독들의 미묘한 작업은 훈련받지 않은 안목으로는 알아채기 어려울 수 있다. 훈련된 무용수들을 위해 일련의 동작을 만드는 안무가와는 달리, 동작 감독들은 대개 무용수가 아닌 사람들과 작업한다. 그들은 춤 테크닉에 의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하여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때로는 색다른 방식의 호흡과 말타기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들은 선택될 것으로서 눈앞에 주어지지 않으며 베넷의 경우에서처럼 전문 작업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디오 지향의 소셜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동작 감독들의 활동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이제 동작 감독 활동은 무대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키우는 무용가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고 있다. 무대 감독이라는 직함은 영국 연극계에서 수십년간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패션, 음악, 광고 분야에서 동작 감독 용어의 역사는 짧다. 샤넬 브랜드의 광고 담당자가 동작 감독은 신체뿐 아니라 모델의 치마와 대사, 머리와 모자의 움직임, 조명, 분장, 음악 등 모든 부류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듯이 이제 영화나 광고 촬영장에서 동작 감독은 어디에나 함께 있는 존재가 되고 있다. 영상과 사진 제작의 아주 많은 측면과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동작 감독은 필수적인 존재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종종 움직임 수행자(퍼포머), ​​감독, 그리고 다른 제작팀원들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눈을 뗄 수 없는 동작은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는 우리의 눈을 휴대폰 화면에 고정시키는 탁월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화면에만 얽매이는 것에 지쳤기 때문에, 좋은 동작 감독 작업의 탄력과 역동성도 갈망한다. 폴리 베넷은 말한다. “우리가 휴대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우리 몸이 무감각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관객들이 신체로 구현되는 것에 더 많이 반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듯한 것들에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조이스극장에 1,500만 달러(2백억원) 기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이 한국의 춤예술에서 행하는 역할과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아르코예술극장을 춤 전용극장으로 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곳이 뉴욕의 조이스시어터(첼시지구 소재, 1982년 개장)이다. 아마 지금도 뉴욕을 방문할라치면 무용인들이 가장 먼저 주목할 곳이 조이스시어터일 것이고, 그 다음엔 링컨센터가 아닌가 한다. 브로드웨이는 무용인의 우선 순위로서는 뒤에 놓일 것이다. 특히 조이스시어터는 뉴욕과 미국 현대무용 및 컨템퍼러리댄스의 위세에 힘입어 사실상 세계 무용인들이 선망하는 극장이 아닐까 한다. 그런 조이스극장이 최근 2백억원의 기부금을 확보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11/04/arts/dance/joyce-theater-15-million-gift.html

인도 고전무용 바라타나티얌과 오디시를 전공한 무용가 라지카 푸리는 남편이자 기업인인 아누팜 푸리와 함께 이 거액을 기부하였다. 부부는 남편이 지난 7월 세상을 뜨기 직전에 기부에 합의하였고 최근에 이 사실이 공표되었다. 조이스극장 사상 최대 기부액이다. 부부는 1992년부터 조이스에 기부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극장 내 공연장 이름도 부부의 이름으로 개명될 예정이다.


[영국]

아크람 칸, 깊은 카타르시스를 던지다


아크람 칸(1974~ )은 국내에서도 공연을 가진 적이 있고 컨템퍼러리 계열에서는 잘 알려진 안무가다. 그는 방글라데시 이민 후손으로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을 근거지로 활동한다. 어릴 적부터 인도 고전춤 카탁춤을 수련하였으며, 영국의 대학에서 컨템퍼러리댄스를 공부한 후 20대부터 자신의 솔로 공연을 하기 시작해서 20대 중반에 자기 무용단을 결성해서 춤과 안무를 지속해왔다. 지난 10월 칸이 공연한 〈Thikra: Night of Remembering〉(기억)에 대해 가디언 춤 비평란에서 별점 4(5점 만점)를 부여하였다. 별점 4는 가디언에서 드문 편이므로 그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기억〉은 사우디아라비아 고대 도시의 신화-문화유산에서 조상 여인과 그를 기리는 의례에서 착상해서 인도 고전춤 바라타나티얌과 컨템퍼러리댄스로 풀어나간 작품으로 알려진다. 올해 연초 사우디아라비아 축제에서 사막의 바위 무대에서 먼저 공연된 바 있다. 가디언의 리뷰를 요약 소개한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oct/29/akram-khan-company-thikra-night-of-remembering-review-sadlers-wells-london
〈Thikra: Night of Remembering〉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3iY9Rx6Wy9g

“12명의 여자 무용수들이 동시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단절과 연결을 되풀이하는 대형을 충족시키면서 일제히 굵직한 서체 모양의 춤을 산뜻하게 펼치도록 해서 칸은 강인한 그래픽 감각을 보여주었다. 이 기억의 밤에 어느 여성 무리는 과거를 치유하는 의례 즉 부활을 위하여 조상 여인을 불러들였다. 의례는 부드러운 몽환의 영적 여정이 아니라 분노와 암중모색의 장소가 된다.” 공연에서는 강렬한 리듬감의 아랍 음악, 폭발적인 선율의 불가리아 합창곡, 조금 가미된 퍼셀의 곡, 음량과 밀도 면에서 머리를 가득 채우는 현대곡이 쓰였다. 가디언의 리뷰는 〈기억〉에서 칸의 안무가 생각하는 투의 방식을 건너뛰고서 색채와 정서, 삶과 죽음, 동물의 영혼, 주술과 마법의 묵직하되 형체가 없는 세계로 바로 뛰어들기 때문에 세세한 서사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기억〉은 강렬하며 그 분위기에 빠져 카타르시스를 만날 수밖에 없다.” 〈기억〉은 2026년초에 유럽 여러 나라를 순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시대, 담대한 작업들

지난달 프롬어브로드 란은 가디언에 게재된 웨인 맥그리거의 외디푸스 일가 비극 발레 리뷰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한 달 후 가디언은 웨인 맥그리거의 대규모 전시를 소개하는 기사를 올렸다. 앞의 리뷰와 전시회 소개 기사는 성격이 다르며, 전시회 자체도 의미심장해 보여 간략히 소개하려고 한다. 이 전시회는 웨인 맥그리거의 회고전이 아니라 “맥그리거와 기술-디자인 분야 협업자들이 제작한 일련의 설치 작품들을 전시한다. 그중 일부는 관람객이 신체를 움직여야 작동된다.” 맥그리거는 컨템퍼러리 안무와 병행해서 움직임을 과학-테크놀로지-디지털과 접속시켜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도 줄기차게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는 후자 쪽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작업들이 계속 진척되고 있고 어떤 결말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의 실적을 낳았고 춤 현장에서 응용될 잠재력도 있어 보인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oct/30/wayne-mcgregor-infinite-bodies-on-the-other-earth-review-somerset-house-and-stone-nest-london



AISoma로 동작을 구현해내는 과정을 소개한 자료 ⓒ웨인 맥그리거 유튜브 캡쳐



가디언의 기사는 전시 가운데 맨 먼저 AISoma(인공지능의 몸) 아카이브를 소개한다. 맥그리거가 구글과 협업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AISoma는 맥그리거의 25년간에 걸친 안무 영상을 학습한 AI가 확보한 4백만 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관람자-상담자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움직임을 제시하는 일테면 안무 도구이다. 그다음에 소개되는 것은 〈Future Self〉(미래의 자아). 10만개의 LED 조명 알전구를 매단 육면체의 설치물이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 패턴이 달라진다. 별도의 공간에서 원통형의 3D 스크린 속에서 글래스를 착용하고 관람하는 〈On The Other Earth〉(다른 지구)는 초실재적인 무용수들의 가상 공연이다.(한번에 20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 한다.) 하이퍼리얼한 이미지의 무용수들에게 다가가서 발이나 호흡과 근육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느끼는 이머시브 공연이다. 〈다른 지구〉는 2025년도 작품으로 가디언은 이 작품에 맥그리거의 모든 개념적 착상이 집약되었다고 한다. ‘Infinite Bodies’(무한대의 몸)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 대해 가디언은 “진정 혁신적이며 질문으로 가득 차 있고 대담한 아이디어들이 그득한 창작자의 작업”이라 평한다.


[파리]

파리오페라발레단의 흑인 안무가


음투투젤리 노벰버(Mthuthuzeli November)는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15살이 되어서야 발레를 시작하였고 올해 32살로 이번 가을에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안무를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남아프리카 국제발레경연에서 2회 수상한 후 남아프리카에서 무용단 생활과 안무 작업을 병행하다 영국과 미국에서 안무 활동을 지속하고 영국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이번에 발란신, 크리스토퍼 휠든의 안무작과 함께 그의 안무작으로 트리플빌에서 〈랩소디〉(Rhapsodies)를 올렸다. 말하자면 세계 최정상 단체에서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를 가진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성공하는 안무가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성에 관한 대화들이 지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도 중요하다”는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를 소개하였다. 〈랩소디〉는 2024년에 노벰버가 취리히발레단을 위해 제작하였고, 이번에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위해 크게 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연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한 서술은 없이 그의 춤 이력을 소개하는 기사여서 아쉽긴 하지만, 오늘날 점차 잦아지는 춤 현상으로 유능한 흑인 안무가에게서도 영감을 찾아 눈길을 돌리는 열린 기사여서 기사를 링크한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11/03/arts/dance/mthuthuzeli-november-rhapsodies-paris-opera-ballet.html



랩소디, M. 노벰버 ⓒ파리오페라발레단 유튜브 캡쳐



[노르웨이]

소수 민족 역사적 봉기의 형상화, 소수 민족도 공감하다


1852년 노르웨이 북부 카우토케이노에서 큰 봉기가 일어났다. 그곳 원주민인 사미족 농민들이 노르웨이 국교회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으로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고 지도자들은 참수당하였다. 사미족은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 넓은 지대에 거주하는 원주민이다(이전에 랩족이라 칭하였으나 이제는 금기시되는 명칭이다). 이 사건은 영화 〈코토키노 반란〉(2008)으로 재조명되었다.

당시 사미족들은 영적으로 경건한 생활 방식과 금주를 추구하였고 그들은 선행으로 신의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자신들의 영혼이 신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한다. 또한 사미족들은 부(富)를 화폐가 아닌 순록 같은 가축으로 계산했으며 경제적으로 북쪽의 노르웨이 정주민들보다 가난했다고 한다. 그들은 주류 판매를 반대하였으나 노르웨이 국교회와 가까운 주류 판매상이 사미족 고객들을 속이고 착취해서 알콜 중독이 만연하도록 하여 사미족과 그 문화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반발하여 발생한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노르웨이 정부의 강압적인 소수 민족 동화 정책이 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가을에 노르웨이국립발레단은 사미족의 1852년 봉기를 소재로 한 〈상실〉(Lahppon/Lost)을 공연하였고, 뉴욕타임스는 이를 기사화하였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오페라하우스에서 먼저 올려진 다음 사미족의 문화 중심지 카우토케이노에서 공연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오슬로에서 공연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거두었다. 안무자 엘레 소페 사라(Elle Sofe Sara)는 카우토케이노봉기의 후손이다. 1970년대 이후 사미족의 정치적·문화적 각성은 재평가받기 시작하였고, 사미족 안무가의 공연으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것은 이번 〈상실〉이 최초이다.

사미족의 전통 의상을 변형한 의상이 주를 이룬 공연의 세부 양상을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묘사한다. “춤은 아주 육체적이며, 아이슬란드 협력 안무가인 흘린 얄마르스도티르가 많은 부분을 고안해냈다. 무용수들은 땅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고문과 황홀경 사이를 오가는 에너지로 몸을 비틀어낸다. 무용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영상과 눈길을 사로잡는 의상이 어우러져, 근육질의 움직임은 공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다. 작품은 ​​철저히 사미풍이다. 이러한 특징은 사미족의 목구멍에서 부르는 노래인 조이킹(joiking)에서 기인하는데, 이 노래는 공연의 알맹이를 생생하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은 참수된 남자 중 한 명을 그려내는 조이크(joik)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연에서 사미족들은 기립박수를 두 번 보냈다고 한다. 어느 사미족 극장감독은 “사미족이 아닌 무용수들과 사미족의 이야기 사이에 거리가 느껴지곤 했는데, 이번 공연 무용수들은 사미족의 이야기를 몸으로 구현하고 우리 땅에 움직임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는 소감을 전하였다. 이번 공연을 위해 안무자는 일부 무용수들로 하여금 여름에 2주간 카우토케이노에서 순록에게 올가미 던지기와 썰매타기 같은 지역 토착 문화와 전통을 배우게 하였고 공연하는 날 아침까지 이런 몰입은 지속되었다고 한다. 토착민은 아니지만 토착민 이상의 공연을 해낼 수 있을지 많은 관심과 긴장 속에 올려진 〈상실〉에 대해 안무자는 “이 정도 수준의 무용수들은 사미족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낼 수 있고,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몸으로 전달하면서 형체로 구현해낸다”고 밝혔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11/18/arts/dance/lahppon-lost-sami-norwegian-national-ballet.html



Lappon-lost-2025 ⓒ노르웨이국립발레단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12.
사진제공_youtube.com, 노르웨이국립발레단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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