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퍼포먼스 스페이스가 격년으로 주최하는 라이브웍스 페스티벌(Liveworks Festival)이 호주 시드니 캐리지웍스(Carriageworks) 공간에서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한국에 잘 알려진 축제는 아니나, 전통적인 극장형식 보다는 실험적인 장르 결합과 폭넓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퍼포먼스 기반 축제로 2015년에 시작됐다. 호주팀을 주축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예술가들이 주로 소개되었고, 가장 관심있게 본 작업으로 퀴어 스펙터클 〈The Queer Woodchop〉과 퀴어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Breathing Archive〉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축제는 다양한 서사를 다루며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시대 경향을 반영하는 현장이었다. 신체담론에 대한 예술가 각자의 발언이나 여러 매체를 융합해 다양한 주체(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축제의 열린 태도도 감지할 수 있었다.

|
Carriageworks ⓒ김혜라 |
캐리지웍스 로비에서는 공공프로그램이 무료로 5일간 진행되었고, 4개로 구성된 극장과 전시공간에서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대만, 홍콩 작품이 소개되었다. 국가적 협업으로 호주와 한국의 공동작인 〈두물머리〉(Where two rivers meet), 호주와 대만의 〈I Remember What the Machine Remembers What I Remember〉, 일본과 대만의 〈Sticky Hands, Stitched Mountains〉, 호주와 홍콩의 〈Ground on Ground〉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교류와 커뮤니티 결속의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호주 안무가인 제이미 제임스(Jamie James)의 〈Breathing Archive〉, 토미 미사(Tommy Misa)의 〈Working Class Clown〉, 리아논 뉴턴(Rhiannon Newton)의 〈Long Sentences〉, 코리 마일즈(Kori Miles)의 〈WHO CARES!?〉 그리고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의 〈The Queer Woodchop〉을 관심있게 관람했다.
이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퀴어 정체성을 탐구하고, 기술과 인간의 인식을 안무로 결합하고, 사운드와 말 그리고 신체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고 극적 요소에 자신들의 전통을 투영하여 공동의 경험으로 환원하는 작업도 인상적이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말은 필수 요소가 되었기에 외국인 입장에서 은유적인 표현을 알아듣기 어려워 함께 웃을 수 없었고, 전통기반의 해석도 배경을 모르니 그들만큼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라이브웍스에서 한국(정하늘, 김초슬)과 호주(Alisdair Macindoe, Michelle Heaven) 안무가들이 선보인 솔로 씬은 올 해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공연한 동일한 작품이고, 이번 초청 참관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4개의 작품이 뚜렷한 연관성이 있기보다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표현되는 감각적 교감으로 연결되는 두물머리의 의미를 실천한 것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 김초슬의 〈다이버〉는 놀라운 집중력이 요구되는 움직임으로 현지 관객들까지 입을 모아 관심을 보였다. 깊은 물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수행자처럼 몸과 정신이 하나가 되는 과정 묘사가 심오하고 탁월했다. 현재 대구시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인 김초슬의 행보가 기대된다. 정하늘의 〈만일〉은 몸에 연결된 줄이 중요한 메타포로 생명줄이기도 하고, 온전한 자아를 찾기 위해 벗어나야 할 무엇으로 춤과 연결시켰다. 고른 기량과 표현으로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춤이었다.
제이미 제임스(Jamie James)의 〈Breathing Archive〉는 1990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시드니에서 활동한 퀴어(queer) 사진과 킹크(kink) 공연문화를 아카이브한 작업이다. 퀴어 커뮤니티 기억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자이기도 한 제이미 제임스 자신의 작업물을 엮어 퀴어 정체성 계보를 조명한 것이다. 프로젝트로 투사되는 과거의 사진과 공연영상이 전시되며 동시에 두 명의 퍼포머가 기억을 재현하고 재맥락화한다. 성행위를 비롯하여 실제로 민감한 부위에 바디 피어싱을 하는 행위나 이로 인한 출혈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영상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퀴어 공연의 역사적 보존으론 유의미하며 그들 정체성을 위한 투쟁과 실천을 표명하는 작품이나 여전히 쉽지 않은 관람이었다.

|
〈The Queer Woodchop〉 ⓒ김혜라 |
제이미 제임스의 퀴어 조명이 직접적인 반면, 포니 익스프레스의 〈The Queer Woodchop〉은 스포츠 경기와 쇼를 관람하듯 유머러스 하게 구성했다. 주최 측(퍼포먼스 스페이스)이 진행하는 퀴어 워크숍을 통해 완성된 작업으로 스릴, 경쟁, 유머, 통쾌함 같은 감정을 공연 방법론으로 환원해 내었다. 호주의 전통적인 스포츠 대회(Woodchop competition)를 무대화하고 나무를 자르는 행위에 남녀구분 없이 참여시키며(원래는 남자만 참여)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무겁지 않게 젠더이슈를 생각하게 하며 관객과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스포츠 경기형식에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퀴어 커뮤니티와 자본주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비판(pink capitalism)하는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많은 공연을 봐왔지만 이러한 조합은 처음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
〈I Remember What the Machine Remembers What I Remember〉 ⓒ김혜라 |
데이터와 신체의 유기적 연결성을 고민한 〈I Remember What the Machine Remembers What I Remember〉( Lee Ming-Chieh, Nasim Patel, Roslyn Orlando, Tian Zi-Ping 안무)는 몸이 기억하는 것과 기계가 기억하는 것을 짚어보며 몸은 사라져도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기계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이다. 디지털 기술이 침투한 현실에서 데이터는 신체를 조작하기도 할 터이고, 기억의 오류나 불완전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들은 생동하는 몸과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프로젝션으로 연결시켜 몸과 기술의 경계와 정체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리아논 뉴턴(Rhiannon Newton)의 〈 Long Sentences〉는 현상학을 기반으로 한 개념무용에 가깝다. 퍼포머는 “아이 센텐스 커넥팅 섬팅”(I sentence connecting something)을 무한 반복하며 말과 말, 말과 움직임, 말과 공간사이에 생성되고 누적되는 현상을 탐구한다. 감정과 사물의 현전을 직시하며 교감하려는 시도는 매우 반복적인 행위를 기반으로 점층되고 증폭되며 문장과 공간을 채워 나간다. 비가시적인 시공간성을 가시화하려 돌 오브제와 접촉하고 회전하기도 하며 그 무게를 감당하려 한다. 퍼포머의 내적 사유와 물질의 생명성이 맞닿아 가려는 일련의 행위로 문장 간의 틈새와 누적된 시간성을 감지하게 안무한 작업이었다.

|
〈WHO CARES!?〉 ⓒ김혜라 |
코리 마일즈( Kori Miles)의 〈WHO CARES!?〉는 시위 퍼포먼스 성격으로 과거 원주민의 의례에 기반하며 오늘날의 전쟁과 폭력에 저항해야 함을 독려한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저항 장치인 유물을 전시하고 현장의 소리를 녹음해서 다시 과거와 연결짓는다. 여전히 비민주적인 세상에 맞서 공동체가 저항해야 한다는 정치적 당위성을 설파한 퍼포먼스였다. 토미 미사(Tommy Misa)의 〈Working Class Clown〉는 사모아계 작가이자 퍼포머로 1인 연극 퍼포먼스를 매끄럽게 이끌었다. 사모아의 코미디 전통을 토대로 공동체의 문화와 역사를 풍자하는 듯했다. 사실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사보아 원주민의 가족간 특히 아버지의 죽음과 관계를 상기하는 듯했다. 어린시절 추억, 집에 대한 의미, 그리고 과거 그 집을 빼앗은 백인들의 행태를 꼬집은 작업이었다.

|
〈Working Class Clown〉 ⓒ김혜라 |
축제를 주관하는 퍼포먼스 스페이스는 아태지역 국제 교류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으며, 촉각투어를 공연전에 실시해서 시각장애인이 무대를 만져보게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신진예술가 센터(Centre for Emerging Artists)가 주최하는 퀴어 개발 프로그램(QDP)은 호주와 아오테아로아 출신 퀴어 예술가들을 위한 2주간의 전문 프로그램으로 그 결과물을 축제에서 발표하고 있다. 더불어 실험 안무 레지던시와 안무 랩으로 구성된 안무 프로그램(ECP)을 운영하며 학제적인 접근으로 안무가를 키워내는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다. 라이브웍스 축제는 사회정치적 주제, 성적다양성, 트랜스 휴머니즘, 멀티미디어 아트, 사운드와 극적 요소의 결합 등 실험적인 작업들이 대다수였기에 기존의 춤축제와는 상당히 다른 공연문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지평이 넓어진 현장이었다.
이 글은 〈더프리뷰〉에서 전재되었음. - 편집자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