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탄츠플랫폼 참관기(1)
무용의 형식을 실험하는 독일 탄츠플랫폼
손인영_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독일 현대무용의 현재를 가장 집약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인 탄츠플랫폼(Tanzplattform)은 2년마다 열리는 순회형 플랫폼으로, 특정 도시를 거점 삼아 그 시기 독일 무용계의 흐름과 문제의식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2년 전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 이어 올해는 드레스덴에서 열렸다. 이 플랫폼은 단순한 공연 축제가 아니다. 지난 2년간 독일 전역에서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동시대적 의미를 갖는 작업을 심사위원들이 심사숙고하여 선별해 올리고, 이를 국제적인 큐레이터, 평론가, 프로듀서들에게 소개한다. 따라서 심사위원들의 선택은 곧 현재 독일 무용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질문하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손인영



드레스덴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이루어진 13개의 본 공연과 더불어 네트워킹, 피칭, 토크, 담론 프로그램, 국제 프로페셔널을 위한 네트워킹 세션 등이 병행되었다. 프로듀서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들은 서로 현재 무용 환경을 둘러싼 이슈들을 공유하며 어려운 상황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연대의 움직임을 보였다. 대부분의 무용 관계자들은 유럽에서 공연예술 예산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이를 함께 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올해 선정된 작품들은 형식적 다양성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감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2년 전 이 플랫폼을 통해 확인했던 흐름과 비교해보면, 젠더 문제의 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했고, 흑인 인종차별과 관련한 주제는 사라졌으며, 가족을 다룬 작품과 장애인 무용의 성장이 눈에 띄었고, 작품의 예술성뿐 아니라 춤 형식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환대와 원초적 감각

탄츠플랫폼 첫 무대는 개회식 후인 3월 11일 슈타츠오페레테(Staatsoperette Dresden) 극장에서 열린 〈Until the Beginnings〉였다. 독일의 스테파니 디에르(Stephanie Thiersch)와 세네갈·벨기에 출신의 알레산드라 세우틴(Alesandra Seutin)이 공동 안무한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몸과 리듬이 만나는 이 작업은, 차이를 인식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태도를 ‘환대’로 사유하고 있었다



슈타츠오페레테(Staatsoperette Dresden) 극장 ⓒtanzplattform2026.de



Stephanie Thiersch & Alesandra Seutin 〈Until the Beginnings〉 ⓒtanzplattform2026.de



흑인 여성 가수의 영가(詠歌)가 흐르고, 꽃을 든 무용수들이 관객 사이를 가로질러 무대로 향하며 환대의 문을 열었다. 둥근 통형의 아프리카 현악기가 뿜어내는 낮은 울림은 무대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특히 앉아 있는 가수 앞에서 펼쳐진 키 큰 남성 무용수의 솔로는 압권이었다. 허리를 강하게 옆으로 던지고 팔꿈치를 툭 떨어뜨리며, 관절을 꺾어내는 즉흥적인 움직임은 거칠면서도 생동감이 있었다. 등을 보인 채 선 여섯 명의 무용수 사이로 두 남녀의 춤이 교차하고, 다리를 꺾으며 몸을 뒤로 밀어내는 집단의 움직임은 점차 거대한 리듬의 파동을 형성했다. 이내 무대 중앙, 객석을 향해 쏟아지는 두 무용수의 깊은 호흡은 파도 같은 웨이브로 이어졌다. 점차 커지는 숨소리와 함께 노를 젓듯 반복되는 군무의 일렁임은, 마침내 정면을 응시하는 무용수들의 시선과 맞닿으며 긴장감을 형성했다.





무대 위로 의식과도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한 여성이 커다란 바가지에 담긴 물을 무용수들에게 뿌리자, 이들은 주먹을 쥔 채 항쟁하듯 팔을 들어 올렸다. 한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무리를 이탈하자 다른 무용수들도 소리를 내며 흩어졌고, 이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팔을 벌리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을 향한 간절한 기도처럼 보였다. 한 남성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집단은 발을 구르고 고개를 흔들며 응답했고, 이어지는 개별 솔로는 집단의 정지와 교차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흑인 영가 속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여성의 몸짓은 남성 무용수의 춤으로 이어졌다. 이는 정교한 테크닉을 과시하기보다 몸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근원적인 감각에 가까웠다. 원시적 에너지와 감각의 극한이 무대를 가득 채운 가운데, 무용수들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서서 미세한 흔들림을 반복했다. 무리는 함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호흡의 소리를 점차 키워갔다. 이 호흡의 리듬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엇박자를 만들며 확장되다가, 이내 격렬한 발 구름으로 응결되었다. 집단적인 울림을 만들어내는 그 발 구름은 땅의 기억이자 인간 몸이 가진 원형적 감각 그 자체였다.

이 작품은 이번 탄츠플랫폼에서 가장 사유를 자극하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지점은 ‘테크닉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의 숙련도를 넘어서는 ‘감각의 생생한 현존’이었다. 우리는 종종 인간의 감각과 에너지를 과소평가하곤 한다. 의식의 과잉 속에서 억눌려온 몸의 물성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오늘날, 이 작업은 그 원초적 감각을 다시금 호출해냈다. 안무의 형식을 벗어나 무용수 각자의 몸에 위임된 움직임은, 그 존재론적 밀도를 오히려 더 강렬하게 드러냈다.

AI가 확장되는 시대일수록 이러한 몸의 감각은 더욱 소외될 위험에 놓인다. 그러나 서로 다른 존재들이 긍정적 에너지로 서로를 환대할 때, 몸은 다시 감각의 문을 열었다. 함께 호흡하는 순간, 땅은 울림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다음날 3월 12일 오전 10시, 심사위원들과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소개되었고, 심사 과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작품 선정에 있어 예술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심사위원들 간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손인영



또한 확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깊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단순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기보다 깊이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안무가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개념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다시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유럽은 컨셉보다 몸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아직 그러한 흐름이 충분히 실현되고 있지는 않은 듯 보였다.


관계의 노동과 소생하는 감각



Elsa Artmann ⓒtanzplattform2026.de, Cecilia Gläsker



오후 1시 엘사 아트만(Elsa Artmann)의 작품 〈긴 주말(Langes Wochenende)〉은 일과 관계가 뒤엉킨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쉬는 주말에도 정말 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계에서 오는 감정노동과 돌봄의 문제를 말, 춤, 노래가 뒤섞인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냈다. 댄스 뮤지컬 같기도 하고 연극 같기도 하지만, 분명히 춤이 포함된 형식이었다.

말은 소리처럼 처리되어 노래와 말의 분간이 어려웠고, 춤 역시 일상적인 동작과의 경계가 흐릿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요소는 선명하게 들리고 보이며 관객의 오감을 자극했다. 무용수들은 독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며, 마치 옆 사람과 대화하듯 소곤거리거나 부드럽게 터치하는 방식으로 관계의 다양한 층위를 이야기했다.

공연은 시작 전부터 이미 무대 위 4명의 무용수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중앙 의자에 두 명, 상수에 각각 한 명씩 앉아 입장하는 관객들을 향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윽한 시선을 던졌다.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중앙 의자에 앉은 A의 무릎 위로 B가 올라타 터치하며 움직임을 이어갔고, 둘은 마치 사랑을 나누는 듯한 친밀한 유대감을 보여주었다. B는 A의 양손을 잡아 움직임을 유도하며 매혹적인 시선과 접촉으로 관계의 서사를 만들어갔다.

이어 무용수들은 관객석으로 다가가 신체 접촉 가능 여부를 정중히 물었다. 수용한다면 무릎에 양팔을 올리게 하고, 거부한다면 양손으로 X표시를 하거나 고개를 흔들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A가 일어나 신디사이저를 연주하자 한 무용수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B는 관객에게 다가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낮게 소곤거렸다. 4명의 무용수와 연주자는 영어와 독어를 교차하며 대화를 주고받듯 움직임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된 말과 노래는 일반적인 가창이 아니라, 단선율로 읊조리는 독특한 화법으로 진행되었다.

작품의 내용은 모두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였다. 말과 노래는 낮고 가깝게 전달되었고, 춤은 소담하고 여성스러웠다. 말과 노래의 타이밍이 명확해 서로 대화하듯 자연스러웠고, 이는 연기보다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극 전체의 체감은 긴장감보다는 느슨하고 여유로웠다. 세 명의 무용수는 각자 작은 가방을 메고 있다가 루즈, 껌, 가글, 물티슈 등을 필요할 때 꺼내 사용했다. 이처럼 일상에 가까운 몸짓으로 다양한 관계 맺음의 상황을 설명하듯 극을 이끌어갔다. 특히 무용수들끼리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며 관객에게 다가가 접촉하는 장면에서는 모두가 집중했다. 소리가 작아 집중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극 중반, 관객 세 명을 무대 위 의자에 앉히고 말을 건네는 장면이 이어졌다. 비록 대화 내용이 명확히 들리지는 않았으나, 세 팀의 무용수들이 손가락으로 관객의 몸을 조심스럽게 터치하며 관계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각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마지막에는 무용수 한 명을 중심으로 관객과 무용수들이 둘러서서 손가락으로 그녀를 화음을 쌓아 올렸는데, 이때 형성된 신비로운(Mystic) 분위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완벽하게 연습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만큼 이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느슨해 보이는 소곤거림과 부드러운 터치 또한 치밀한 계산과 충분한 연습의 결과물로 읽혔다. 단어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주고받는 이 작품은 관객을 규정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지점으로 인도했다. 공연을 이해하려는 긴장이나 노력 없이도 편안하게 젖어 들게 하는 것은 안무가의 탁원한 능력이었다.

안무가에 대해 찾아보니 퍼포먼스, 연극, 무용이 결합된 공연학 출신으로 쾰른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독일에서 부상하는 안무가였다. 유럽은 춤의 스타일이나 내용보다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탄츠플랫폼의 심사 역시 결국 형식의 실험성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본 작품이다.


실험의 모호함

당일 오후 2시 30분, 찰스 A. 워싱턴(Charles A. Washington)의 〈The Children of Today〉는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작품은 바슬라프 니진스키, 클레오파트라 6세, 제롬 벨과 같은 인물들을 언급하고 1920년대 가족 이야기를 끌어오는 등 시간과 맥락이 뒤섞인 구성을 보였다. 영어로 진행되어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요소들이 반복되며 흐름을 잡기 힘들었다. 다만 프로그램을 통해 안무가가 전달하려는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Charles A. Washington 〈The Children of Today〉 pinkmetalpetalproductions.com



공연장 중앙에는 줄이 달린 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초록빛 조명이 천천히 올라가며 시계 초침 소리가 깔린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두 명의 남녀무용수는 손을 잡고 서로의 허리를 감싸며 사교춤을 추듯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조명이 무대 중앙에 멈추자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음악 속에서 이들은 앞뒤로 포개어 돌거나, 때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떨어져 회전하기도 했다. 팔만 움직이며 걷다가 전등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서 비슷한 움직임을 반복했다. 여자 무용수가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모두 내며 1920년대 가족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는 동안, 남자는 바닥에서 작은 움직임을 이어갔다. 전반적인 움직임은 단순하고 제한적이었으며, 걷거나 차를 마시는 동작, 도끼질을 하는 듯한 제스처 등이 등장했다.



사진



전체적으로 움직임보다 설명에 더 무게가 실린 작품이었다. 본인 나름대로 안무자의 의도를 따라가 보자면, 위에 언급한 세 인물 역시 각기 다른 시대에서 변화를 이끌었던 존재들이었고, 1920년대 또한 큰 전환의 시기였다. 안무가는 이를 현재와 겹쳐 놓으며 빠르게 재편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였다.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태양광 에너지와 재활용 재료의 사용 역시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읽혔다. 이는 기술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몸이 어떻게 적응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는 AI 시대를 맞아 가치관과 세계관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오늘날, 미래 세대의 몸이 어떻게 적응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보지는 않았다. 비록 새로운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둘 수 있지만, 그 실험이 춤 예술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계속)

2026. 4.
사진제공_손인영, tanzplattform, pinkmetalpetalproductions, Cecilia Gläsker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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