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파리]
라이브와 디지털의 경계를 허문 실시간 무대
3월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올린 공연 〈인상〉(Empreintes, 영문: Impressions)은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에서 동시에 보도되었다.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곳에서 공연된 작품이 두 권위지에 동시에 소개되는 경우는 간혹 있고 이런 경우 그 공연의 의의는 일단 인정되는 편이다. 〈인상〉은 〈아레나〉(Arena)와 다른 한 작품이과 함께 진행된 더블빌 공연이다. 이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집중 조명한 것은 〈아레나〉이다. 〈아레나〉를 뉴욕타임스는 단적으로 ‘실시간 영상, 사전 녹화 영상, 라이브 공연을 결합하여 라이브 공연과 디지털의 경계를 허무는 기발하고도 환상적인 작품’이라 소개한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3/16/arts/dance/jess-and-morgs-paris-opera-ballet-arena.html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mar/16/empreintes-review-palais-garnier-paris
〈아레나〉는 40대 초반의 두 여성 안무자, 제시카 라이트(Jessica Wright) 모건 라너커-템플(Morgann Runacre-Temple)이 공동 안무하였다. 두 사람은 2022년에도 영국 버밍엄로열발레단을 위해 영상과 결합한 발레 〈호텔〉을 제작한 바 있다. 라이브 공연과 촬영된 영상이 어우러지는 〈아레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먼저 뉴욕타임스를 보자.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들은 자기들 위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린 속에서 한 남자가 몸을 빙빙 돌리고 숙이는 동안 하얀 천이 그의 몸 주위에서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그러다 천이 사라지고 조명이 깜빡이더니 그는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리허설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가 무대 위 무용수들과 합류할 동안 카메라맨이 촬영했고, 무용수들은 이제 역동적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디언의 소개는 이렇다. “이 작품은 절제된 타악기적 리듬과 〈코러스 라인〉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시작된다. 운동선수 집단이 개인적이며 집단적인 자신감을 갖고 몸을 풀기 시작한다. ‘다음!’이라는 내레이션이 울려 퍼지고, 줄지어 선 무용수들을 카메라맨이 뒤따라 움직이면서 번뜩이는 눈빛, 뛰는 가슴, 맺힌 땀방울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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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Paris Opera Ballet ⓒYonnathan Kellerman |
각인 티저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pzi2XiM0lt4&t=76s
아레나 리허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7XhpJZ9ASVk
호텔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RquRsySV6qM
두 사람은 2022년 스코틀랜드발레단을 위해 만든 〈코펠리아〉를 영리하고 날카롭게 손질한 재해석본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장난감 제작자 코펠리우스 박사를 일론 머스크와 같은 발명가로 묘사하였는데 여기서 머스크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코펠리아(인형이 아닌 아바타)를 완벽한 인간으로 변신시킨다”고 소개한다. 파리오페라발레단 감독은 두 사람이 2016년 아크람 칸의 〈지젤〉의 오프닝으로 잉글리시내셔널발레를 위해 제작한 단편영화 〈알브레히트 치료하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오래된 수영장을 깜짝 놀랍게 처리한 배경에서 영화와 춤을 활용하여 원작 발레 〈지젤〉을 요령껏 다룬 발레였다. 매우 영화적인 영상 이미지를 담으면서 안무를 최우선으로 견지한 작품이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코펠리아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nqC5C8oY-Q
영화와 춤을 무대에서 결합한 사례는 제시카와 모건 이전에도 있었다. 머스 커닝햄, 루신다 차일즈, 윌리엄 포사이드, 벵자멩 밀피에 등이 무대에 영화를 활용한 바 있고, 한스 반 마넨은 1979년의 〈라이브〉에서 무용수와 실시간 촬영된 모습을 병치시켰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비디오 프로젝션과 가상 및 실제 표현의 결합이 일반적인 연극이나 오페라 무대와는 달리, 춤에서는 영화를 창의성을 갖고 실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발레 무대 스크린에 작품이 선보이긴 하나 늘 장식적 용도거나 무대 공연 실황을 보여주는 정도였다. 두 사람은 기존의 작업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하였다.
제시카와 모건은 10대 시절 런던의 센트럴발레스쿨에서 만나 절친이 되었고 2005년 실업자 처지에서 당시 카메라 성능이 좋았던 노키아폰을 갖고 놀기 시작하였다. 컴퓨터에 당근을 으깨는 소리를 삽입하여 음향효과를 낸 영화 〈Out of Hand〉로fh 단편 영화 공모전에서 수상하게 된다. 이후 무용수로 활동하는 동시에 단편영화 작업을 지속해왔다. 두 사람은 “카메라가 극장 프레이밍을 제공하는 장치일 뿐 아니라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라이브 댄스에서는 항상 넓은 화면으로 촬영하였다. 우리는 편집에 관심을 기울였고, 아주 정교하게 구현된 일루젼을 만들어내면서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 탐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을 쌓은 것은 물론이다.
〈아레나〉(결투장)의 출발점은 무대 위 무용수와 카메라 사이의 관계이다. 무용수와 카메라맨이 조작하는 두 대의 카메라가 공연작에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카메라 앞에서 공연하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 자신들을 보는 무용수들을 관객은 본다. 공연 출연자는 “오디션, 경쟁, 단 한 사람이 선택되며 선택된 그는 명성, 부, 지위를 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고전적 요소와 컨템퍼러리 요소가 모두 빠르고 정확한 음악에 맞춰 펼쳐진다. 카메라가 가까이서 촬영하고 클로즈업하니까 감정 표현도 필요하고, 시선과 몸짓 각도도 정확해야 한다. 게다가 관객은 무대 위 또는 화면 속의 나 어느 쪽을 볼지 선택할 수 있다. 생각해야 할 게 참 많다.” “우승자 역은 거의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가끔은 ‘헝거 게임’에 갇힌 느낌이다.” 공연에서 출연자가 이미지를 통제할 수 없는 만큼 이미지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공연에서는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같은 문제도 제기되었다.
[미국]
드래그 문화, 독자적 장르를 이룰 것 같아
일반적으로 남장 여자, 여장 남자의 문화인 드래그(drag) 행위는 오늘날 드래그 아티스트로 넓혀지는 추세이다. 국내에서도 퀴어문화축제나 2019년에 시작한 서울드래그퍼레이드처럼 적극적인 드래그 활동이 수면 위에 떠올랐고 그 전부터 클럽과 언더그라운드 등지에서의 활동이 누적된 결과, 2010년대 중반부터 드래그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뚜렷이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와서 드래그 행위를 무조건 백안시하는 것은 웃음을 사기 마련이다. 드래그 행위에서 성 정체성의 변경이 핵심적 요소로 보이지만, 드래그는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넘어 소수자의 자기표현으로 재인식되는 추세이다. 한 마디로 드래그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뛰쳐나올 기세로 소수자를 위한 감성의 해방구로 도드라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의 드래그 문화 명소들을 탐방기 형태로 소개하는 장문의 기사를 이번 3월에 게재하였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정상의 권위지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기사가 약간 의아하게 비칠지 모르겠으나 언론은 사회 현상의 거울인 만큼 음지의 것이라도 현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그 의의를 환기하는 것은 오히려 뉴욕타임스답다 하겠다. 뉴욕에서 드래그 문화가 표면화된 것은 100년 전의 일이다.
1920년대 뉴욕 맨해튼에서 흑인들의 문화 정체성을 찾는 할렘 르네상스가 진행될 당시에 열린 사교춤 경연대회에서 드래그 행위가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흑인과 여러 인종들이 혼재하는 판이 벌어졌다. 인종차별이 아주 극심했던 당대 현실에 비추어 이는 이례적이었고, 이후 그런 부류의 사교춤 행사가 단속을 받고 지하로 몸을 숨기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뉴욕의 드래그 문화는 그 시대에 뿌리를 둔다. 1969년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의 춤출 수 있는 게이바인 스톤월(인)을 경찰이 급습하자 동성애 고객들이 대대적으로 저항하고 저항의 주역은 드래그퀸과 사교춤 활동가들이었다. 1960년대에 미국은 동성애자들을 범죄자로 간주하였고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정신장애로 등재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스톤월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저항은 동성애 단속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표면화시켰고, 결국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물론 드래그 문화를 획기적으로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3/12/theater/drag-shows-ny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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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월 항쟁 당시 모습 ⓒPBS |
뉴욕에는 드래그 클럽이 수십 개 넘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클럽들을 투어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 가운데 맨해튼 중간의 브로드웨이 인근 헬스키친(Hell's Kitchen) 일대(맨해튼 마드타운 서쪽, 식당들이 많은 지역)가 유명하며, 브루클린에도 드래그 클럽이 많다. 이번 기사를 작성한 에릭 피펜버그(Erik Piepenburg)는 뉴욕의 문화를 하위 문화를 중심으로 소수자 문화까지 다루는 저널리스트이며 뉴욕타임스에 매우 자주 기고하는 편이다. 지난 3월초 주말 꼬박 하루 동안 그는 뉴욕의 드래그 클럽들을 순례하여 기사로 소개하였다. 그에 따르면 헬스키친은 직장 동료나 멋쟁이 할머니도 편하게 느낄 곳인 반면, 브루클린 쪽은 미혼 여성 관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보다 불쾌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가 답사한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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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s Kitchen Area in Manhattan, New York ⓒWikiCommons |
헬스키친 행사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드래그 브런치(주말 오후 드래그퀸이 주도하는 놀이 식의 식사 프로그램)이다. 오후 3시 도착한 클럽에서 드래그퀸이 립싱크를 하면서 얼굴이 빨개진 청년에게 추파를 던지고 왕관을 쓴 생일 주인공 여성에게 샷을 건넸다. 오후 6시 넘어 다른 클럽으로 가니 미래 우주 탐사선이 미지의 우주를 탐사하고 문명과 교류하는 것을 다룬 시리즈물을 소재로 퀴즈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명 드래그퀸이 그 우주 시리즈의 통신 장교 복장을 하고선 댄스 플로어 곡에 맞춰 립싱크를 한다. 퀴어 SF 팬 단체를 위한 기금 마련 자리도 마련되었다. 아주 내밀한 대중문화 취향이라 해도 드래그 쇼가 쉽게 소화해내는 멋진 사례다. 저녁 9시 드래그가 초보인 사람들에게 적합한 클럽 순례 프로그램에 잠시 들렀다. 15명 가량 인원이 2시간 동안 2~3곳의 바에서 관람하는 프로그램(21세 이상, 관람료 49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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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ollar Bill 홍보 사진 ⓒ3 Dollar Bill |
밤 10시, 30년 된 드래그 클럽에 갔다. 한쪽 다리를 뒤로 뻗고서 바닥에 빠르게 등을 눕히는 동작, 오리걸음, 의상 갈아입기, 쏟아지는 달러 지폐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디바 같은 호스티스는 “술을 많이 마실수록 예뻐질 것”이라고 외쳤다. 생일 주인공들, 예비 신부들을 무대로 맞이해서 셀카를 찍도록 했다. 한 관람객은 소감을 말하길 “이렇게 많은 사랑, 응원을 받으니 기분이 좋네요.”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간 새벽 1시, 한 클럽에서는 맨해튼의 헬스키친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관객은 대부분 Z세대였고, 드래그 퀸과 킹이 함께 나온 공연으로는 여기가 유일했다.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K팝 퍼포먼스 집단이 펼친 에너지 넘치는 댄스 공연이었다. 여기서 드래그퀸은 브루클린의 문화가 맨해튼보다 의도가 더 강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헬스키친 관객들은 스턴트와 춤을 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고, 브루클린은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고 특정 취향을 겨냥할 수 있다.” 그날 무대에서 드래그퀸이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고 외치자 관객들은 우렁차게 화답했다. 새벽 3시, 다시 열차를 타고 헬스키친에서 24시간 영업하는 클럽으로 갔다가 곯아떨어졌다.
몇 시간 자고 난 다음날 정오, 지난 5년 동안 떨득썩하게 드래그 브런치를 열어온 멕시칸 퓨전 레스토랑으로 갔다. 진행자들이 관객에게 “당신은 탑이에요, 바텀이에요?” 같은 무례한 질문들을 쏘아댔고 낙태와 대명사에 관해 농담들을 던졌다. 이 쇼는 거침없는 입담, 재기 넘치는 유머가 그득했고 그날 드래그 파티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오후 4시 반, 마지막으로 들른 클럽에서는 여러 세대의 남녀들이 빙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드래그킹이 외치면 흘러간 뮤지컬 곡들을 불렀고, 어느 관객은 소속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드래그 클럽에서 춤, 춤과 유사한 몸짓은 핵심이다. 과장된 연기와 풍자 동작은 표현을 강화해서 전달을 용이하게 한다.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은 분위기를 돋우는 1차적인 목적은 물론이고 캐릭터를 부각시켜 전달과 직결된다. 해방감이나 연대 의식 그리고 심지어는 치유의 장을 지향하는 드래그 쇼에서 전달되어 공유되는 의미가 없다면 관객과의 교감은 단순하고 빈약해지기 마련이다. 대중문화 가운데 하위문화로 분류되는 드래그 쇼는 의미 표출을 위해 나름의 어법을 개발해왔고, 보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늘날 드래그 쇼가 갖는 의의는 다면적이며, 점차 소수자와는 동떨어진 대중에게도 어필하는 장으로서 드래그 문화는 미구에는 춤의 한 장르로 떠오를 것 같고, 뉴욕타임스 기사가 이를 예고하고 있다.
디지털 영상도 쓰기 나름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자는 프랑스 출신의 벤자민 밀피어드(벵자멩 밀피에)였다. 그는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수상하고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를 역임했으며 여러 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후 2011년 자신의 무용단으로 LA댄스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번 3월에 그는 뉴욕에서 자신의 안무작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을 공연하였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해체한 이 공연에서는 적대적 가문, 줄리엣이 거절하는 구혼자 파리스, 로렌스 신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공연은 맨해튼의 대형 극장(옛 병기창 훈련장을 리모델링한 넓은 극장)에서 실시간 라이브 공연 영상을 투사하고 특히 오늘 이 시대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이성애 커플, 두 명의 남성 커플, 그리고 두 명의 여성 커플 식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보였다. 2022년 초연될 적과 같은 포맷이다. 공연 일정에 따라 두 주역의 성별 구성이 달라지는 방식이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3/03/arts/dance/romeo-and-juliet-suite-armory-review.html
https://www.nytimes.com/2022/09/23/arts/dance/love-and-death-in-paris-with-an-assist-from-star-crossed-verona.html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티저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p1hTxd98x8&t=5s
20일 동안의 뉴욕 공연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단적으로 “고전을 조각내어 발레로 조합하는 탁상 머리의 구상은 좋았으나 그것들을 합쳐내는 작업이 문제였다”고 평하였다. 우선 영상의 효과 면에서 80분 동안의 공연은 병기창 훈련장 곳곳에서 안무가 펼쳐지고 카메라는 계단, 복도를 따라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무대 객석 아래에서 강철 파이프가 촘촘히 박힌 공간에서 이뤄지는 검투 장면은 인상적이었고, 스크린에서 복도를 뛰어다니던 두 주역이 무대 난간에 작은 점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순간은 커플의 첫 키스 장면과 함께 진실된 사랑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영상은 전반적으로 병기창의 웅장한 건물 곳곳을 보여주는 데 비하여 진행은 빠르지 않았다. 발코니 장면에서 커플을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친밀감을 약화시켜 평범한 커플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클럽 무도회는 브로드웨이 디스코 같았고 스크린에 비춰진 무대 위 군무진은 촬영 앵글의 영화적 효과가는 떨어져 산만한 개미떼처럼 보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공연에서 “애원하는 듯한 팔동작, 쉴 새 없이 회전하는 동작들이 섬세함과 깊이를 결여하였다.” 그리고 “번뜩이고 답답한 무대는 매우 소잡한 스케이트장 같았다. 회전과 점프가 무대 표면을 맴돌았지만 변주는 없었고 동작의 맛깔 또한 제한적이었다. 풋풋한 사랑이든 다가오는 비극이든, 밀피에의 안무는 마치 장황한 문장처럼 단조로운 경향이 있었다. 멈춤은 어색한 연기를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의 평자는 여성 커플의 공연에 대해서만 기고하였는데, 이 커플의 움직임을 이렇게 평하였다. “로미오 역의 펀버거는 사랑스러운 무용수였지만, 그녀의 로미오는 한두 음만 반복했다. 시작 부분에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애틋한 미소를 지으며 발을 디디고 상체를 살짝 비틀었다. 부드러운 옆걸음은 그녀의 민첩성을 보여주었지만, 자꾸만 손으로 눈을 가리는 모습은 다소 과했다. 뉴욕시티발레단 출신으로 줄리엣 역의 헛셀 역시 신선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재빠른 발놀림과 높이 솟는 도약으로 활기를 더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제자리에서 맴도는 양상을 반복했다.”
2022년 공연에 대해서도 뉴욕타임스는 비평을 게재하였으며, 그때는 다른 필자였다. 이 필자는 “무대 위 영상은 이미지가 증폭되고 흐릿해지면서 기억, 환각, 위협을 다양하게 암시하며, 일대일 결투 장면과 그 여파를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티볼트가 로미오에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도 그렇다. 카메라는 작품 전반에 걸쳐 춤을 지배하기보다는 춤을 뒷받침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밀피에의 안무는 기본적으로 발레적이고, 탄탄하고 유연한 움직임과 생동감 넘치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결합하였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의 서사적 추상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법하더라도, 이 공연에서는 움직임, 그리고 무용단의 한결같이 훌륭한 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한 바 있다.
몸의 진실과 공명한 셰이커교 영화
기독교 분파 중 셰이커교는 18세기 이래 미국에서 독신주의와 검박한 생활방식으로 독실한 신앙을 추구해왔다. 춤과 노래로 성령을 체험하고 죄를 털어낸다는 믿음에서 예배에서 격하게 춤추는(shake) 관습이 있었다. 마사 그레이엄과 더불어 초창기 모던댄스의 탑2였던 도리스 험프리는 그 종교의식을 주제로 한 명작 〈셰이커교도들〉을 1931년에 발표한 바 있다. 오늘날 셰이커교는 신도 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예배는 춤보다는 조용한 명상 위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이커교의 창시자 앤 리의 삶과 신념을 다룬 뮤지컬 드라마 영화 〈앤 리의 유언〉이 지난해 개봉했는데, 이번 3월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에서 동시에 소개되었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3/09/arts/dance/testament-of-ann-lee-dance.html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feb/26/celia-rowlson-hall-the-testament-of-ann-lee-choreographer
어느 종교철학자는 셰이커 교도들의 예배에는 자발적이고 황홀한 움직임과 고도로 구조화된 춤이 있으며, 육체는 신성과의 연결 통로여서 그들에게 춤 추기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라 소개한다. 뉴욕타임스는 이 영화가 열정적인 확신을 담아 춤과 신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력하게 제시하였고 영화의 안무는 그 정신을 제대로 포착했다고 평한다. “영화에서 안무는 셰이커교도들의 실제 움직임보다 훨씬 기교적이다. 빙글빙글 도는 동작, 날카롭게 휘두르는 팔, 머리 위로 뻗는 다리 등이 등장한다.” 가디언은 “영화에서 신과 죄악의 춤, 기도의 리듬과 섹스의 리듬이 얼마나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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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리의 유언 포스터 |
미국에서도 소수의 개신교는 지금도 춤과 신앙을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기독교적 이원론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에서는 춤을 공연한다. 이런 배경에서 지금부터 근 100년 전에 도리스 험프리의 〈셰이커교도들〉이 발표되었다. 뉴욕타임스도 지적하듯 이 작품은 20세기 전반 기독교의 담론에 대한 선구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외 레지 윌슨, 트와일러 사프 등 셰이커교도들의 공동체에서 영감을 받은 무용가들도 있다. “셰이커 교도들은 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즉 표현 매체로서 춤이 지닌 강력한 힘에 대한 믿음에서 무용가들과 뜻을 같이하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안무가 롤슨 홀은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하여 학생 시절에는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 매료되었고, 영국 무용단 DV8의 영화를 접했을 때는 "나도 이걸 하고 싶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뉴욕의 무용단에서 춤 경력을 시작했지만, 곧 자신의 뮤직비디오, TV 프로그램, 광고 안무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레나 던햄의 드라마 시리즈 〈걸스〉와 샬롯 웰스의 영화 〈애프터선〉(Aftersun, 여기서 성인이 된 소피 역을 맡았다)에서는 안무를 맡았고, MGMT, 콜드플레이, 알리샤 키스의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했고, 미국 남서부를 횡단하는 성모 마리아의 순례 여정을 그린 춤 영화 〈Ma〉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시〉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다. 그녀의 스타일은 팝, 상업, 기괴함, 풍자, 컨템퍼러리, 탭댄스, 사교댄스, 발레 등 모든 것을 아우른다. 〈앤 리의 유언〉과 관련하여 안무가는 이렇게 말한다. “몸은 직관, 내면의 진실, 그리고 깨달음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영국]
첨단 공학과 춤의 접속, 만족스럽지 않은 공연 사례
영국의 탑3 발레단에 속하는 잉글리시내셔벌발레단은 컨템퍼러리 발레를 거의 해마다 제작하는 줄로 안다. 이번 3월에도 AI 로봇 군단을 등장시킨 발레 〈적절한 행위〉(Proper Conduct)를 공연하였다. 지금 핫한 소재를 택한 것도 그렇고 또 특이한 점으로서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백댄서였던 카메론 샌더스가 그 안무를 맡았다. 손더스는 이전에 조프리발레단에서 안무한 전력이 있긴 하나 경력이 짧은 편이다. 가디언은 이 공연의 리뷰에서 방대한 아이디어를 고도의 개념을 수반하는 춤에 담아내려 하였는데 의문을 남겼다고 평하였다. 가디언은 〈적절한 행위〉의 첫 부분이 다채로운 색감과 햇살이 그득한 상쾌한 발레였다가 곧 내레이터가 사회의 부패를 이야기하고선 무용수들이 몸을 밀착해가며 인상적인 대형으로 서로 육감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였고 다시 듀오 록밴드 다프트펑크의 로봇 헬멧을 쓴 AI 로봇 군단이 등장한다고 묘사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mar/20/english-national-ballet-body-soul-review-sadlers-wells-london-kameron-n-saunders-proper-conduct-crystal-p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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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행위 ⓒEnglish Nat'l Ballet |
또 다른 매체의 리뷰는 밑에서부터 썩어가는 이 세상을 드러내는 것이 손더스의 의도로 읽혀지며 끝 부분에서 내레이터가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독이다’고 선언한다고 소개한다. 하얀 벽과 바닥으로 둘러싸인 악몽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동인형처럼 변해서 춤은 기계처럼 반복적이고 개성은 말살된다. 가디언은 이런 상황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훔쳐가면서 삶의 길을 말해주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거대 기술 기업들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실제로는 당신의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지적한다. 가디언은 〈적절한 행위〉는 안무자의 야심에 비해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유감을 표하였다.
춤에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동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색해온 휘틀리무용단은 특히 모션캡쳐, 가상현실 등 디지털 기술을 춤과 접목해왔다. 3월에 발표한 공연작 〈거울〉(Mirror)은 2인무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공연은 모션 캡쳐 마커가 박힌 흑백 레오타드를 입은 남녀가 가까워졌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겼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함께 나선형, 대칭형을 이어가는 식으로 움직인다. 함께 만들어내는 역동성을 익명의 빛줄기가 중단시키며 빛줄기는 투명 셰도우 스크린에 직사각형들을 만들어낸다. 직사각형들은 두 무용수의 디지털 복제인간들이 출현하는 통로가 되고, 복제인간들은 두 무용수를 따라하다가 그들을 압도해버린다. 두 무용수는 서로 주목하기를 멈추고 유령 같은 아바타들로 시선을 돌린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mar/19/mirror-the-rite-of-spring-review-alexander-whitley-sadlers-wells-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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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Alexander Whitley |
이후 여자 무용수가 떠나고 남자 무용수는 불안하며 소외된 상태가 되고 다시 여자가 돌아오는 식의 인간 드라마가 부분적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가디언은 “인간 드라마가 우주적 사운드스케이프 속을 떠다니며 부지불식간의 효과로 길게 연속되는 장면들의 부수적인 요소로 전락한 듯하다”면서 몸들이 복제 증식하고 움직임은 수상돌기처럼 어른거리는 깜박임으로 변형되고, 그림자들은 우주 먼지로 사라진다고 묘사한다. 가디언은 “단적으로 말해 테크놀로지가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승리한 공연”이라 단언한다.
가디언의 냉담한 반응에서 보듯, 이들 두 공연은 디지털이나 첨단 공학을 춤과 접목하고 그 인간적, 비인간적 결과를 탐색하면서 만족할 만한 선에 이르지 못한 사례들이다. 두 편의 리뷰는 디지털, AI를 동원하는 열의에 못지 않게 인간적 시선 내지 판단이 공연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상식을 환기한다.
평발 극복기
평발로는 춤은 불가능한가. 최근 가디언은 평발인 조건을 발레에서 극복한 사례를 보도하였다. 평발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발레 전문가들이 있다는 기사는 참조할 만하다. 평발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발레에서는 발바닥의 높은 아치(arch)를 선호해왔고 심지어 발이 유연해 보이도록 가짜 아치까지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기사는 평발인데도 발레에 적응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소개한다. “발레를 좌우하는 것은 아치만이 아니다. 발의 유연성과 근력, 발복의 유연성과 근력, 코어 근력이 모두 중요하다.” 평발 무용수들은 발뒤꿈치로 착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체중을 적절히 분산시켜 부상을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평발이라고 토슈즈를 신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토슈즈가 발 아치에 잘 맞도록 깔창-밑창 사이의 딱딱한 섕크를 잘라내면 좋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mar/17/body-and-sole-ballet-must-hold-on-to-flat-footed-dancers-not-stigmatise-them
레즈비언의 삶을 그린 아주 드문, 고품질 발레
화가 프리다 칼로를 그려낸 로페즈 오초아(Annabelle Lopez Ochoa)는 언제 멈출까. 멈추지 않을 듯. 1973년생이어서 언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30살 때부터 안무를 시작하여 70개 넘는 발레단에서 만든 자기 발레가 100편이 넘는다. 드라마가 강한 서사 발레를 컨템퍼러리 스타일로 전개하는 경향이 강해서 대중성도 누구 못지않다. 3월에 오초아는 어느 레즈비언 이야기를 그린 〈젠틀맨 잭〉을 영국 리즈에서 발표하였다. 핀란드국립발레단과 영국 노던발레단이 공동 제작하였다. 이 작품을 갖고 9월 5일까지 순회 공연할 것이라 한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mar/11/gentleman-jack-review-northern-ballet-leeds-grand-theatre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SUdalypey4&t=4s
여기서 젠틀맨 잭은,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초 영국 요크셔 출신의 여성 지주로서 최초의 현대적 레즈비언이라 불리는 앤 리스터의 별칭이다. 그녀가 암호로 남긴 방대한 일기는 당시 여성 동성애자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로 관심을 끌어왔다. 공연은 두 여성 주역과 남녀 조연 및 군무진으로 구성된다. 가디언은 리뷰에서 이 공연작을 “레즈비언 러브 스토리를 단룬 최초 사례로서 고전 발레의 아라베스크와 유려한 움직임을 최대한 활용한” 수작으로 꼽았다. 가디언은 평하길 “리스터 역을 맡은 주역 무용수는 톱햇, 프록 코트, 플랫 발레 슈즈를 신었고 강렬하고 솔직했으며 자신감 넘치는 몸짓, 엉덩이와 다리를 슬쩍 움직이는 모습은 매력을 한껏 드러내었다. 남자들이 그녀에게 매료되고 리스터가 여성 연인과 식탁 위에서 펼치는 관능적 파드되에서는 로맨틱한 면모가 도드라지고 진정한 열정, 애틋함과 욕망이 느껴진다. 잭이 하인들을 부릴 때 쓰는 벨을 연인의 몸 주변으로 흔들자 연인은 몸을 떨었고 잭의 벨이 연인의 척추를 스쳐간다. 최근 본 가장 섹시한 안무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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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leman Jack 포스터 ⓒNorthernballet |
앤 리스터는 상속녀로서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살며 광산을 운영하고 철도 인프라에 투자하는 등 사업 활동도 능동적으로 수행하였다 한다. 연인과 헤어진 후 다른 여성과 정식 혼례를 올리고 레즈비언 커플로 살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잭의 첫 연인이 관습에 굴해 남자와 결혼하는 부분에서 잭의 숨죽인 슬픔과 그 순간의 음악처럼 별로 와닿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으나 리드미컬한 음악은 명료한 안무, 추진력 그리고 극적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그리고 첫 연인과 헤어지고 결국 잭이 다른 여성과 만날 때 그 상대 여성을 연기한 무용수는 놀라움, 기쁨, 흥분과 불안감을 생생하게 포착해내었고, 잭의 암호 일기는 잭의 신비스런 필치로 장식된 의상을 착용한 무용수들의 회전 움직임으로 구현되었다. 리스터의 일기와 일화는 1990년대 이후 BBC 방송에서 드라마와 다큐로 제작된 바 있다.
노령 은퇴자들을 위한 춤 프로그램
영국에서는 노령자들을 위한 춤이 매우 활발하다. 영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영국에서 노령자들을 위한 춤 프로그램은 매우 정책적이어서 더 주목할 만하다. 관련하여, 영국에는 아마도 세계 최대 춤단체인 커뮤니티댄스재단이 이제는 50년 역사를 헤아린다. 영국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을 받는 공공무용단과 예술단체는 지역 커뮤니티, 교육기관, 일반인을 위한 참여형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영국이 공공 춤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이유는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는 물론 개별적으로는 건강 증진을 통해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실용적 목적까지 다양하다. 국내에서도 공공무용단에서 공공 춤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들은 단원들의 지도로 단시일에 나름의 공연을 완성한다든가 지속성이 덜하다는 등 여론도 있고 개선되는 바도 없지 않겠으나 전문가 양성을 비롯한 적극적인 정책과 함께 다각적인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가디언은 일반인과 비전공 학생을 겨냥하여 춤 프로그램을 환기하는 기사들을 종종 보도한다. 최근에는 은퇴자들이 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이야기들을 보도하였다. 그 기사를 발췌 소개한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mar/03/stimulating-dance-retirees-angela-rippon-lets-dance-campaign
어느 전직 변호사는 71살에 지역 커뮤니티에서 발레, 모던댄스 수업을 들었을 때 무서웠으나 강사들이 인내심을 갖고 대해 주었다고 회상한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나는 동안 시니어 모던댄스를 수강하고 독일 탄츠테아터 강의도 들었다. 창작 웍숍과 공연 그룹, 세대 간 교류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였다. 최근에 이르러 런던의 대형 공연장에서 열린 대형 공연들에도 더러 출연하였다. 어느 장면에서는 산업용 청소차를 몰았다. 그녀는 “춤을 하는 목표가 우아하게 나이들고 바람에 흔들리듯 움직이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전직 투자은행가는 72살에 댄스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제 10년이 흘렀고 자기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젊은 시절 춤 수업을 듣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남성과 춤에 대한 편견에 맞서야 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10년 전 발레, 플로어워크를 시도하였고 모던댄스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워크숍과 공연 단체에 참여하던 중 독일 부퍼탈탄츠테아터의 〈빅토르〉 공연에 출연하기에 이르렀다. 런던과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그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섰고 “엄청나게 자극적인 경험”을 갖게 되었다. 춤을 통해 “신체 활동뿐 아니라 창의성과 탐험에 관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던 것이다. 10년 전 남편을 잃고 4년 전 지역 춤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직 교육 공무원은 말한다. “남편 사후 죄책감에 빠졌고 노래를 불러도 웃어도 마찬가지였다. 첫 댄스 수업 전까지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춤을 추자 근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놀라웠다.” 이제 그녀는 사회적 처방사로 자원봉사하고 있다 “춤은 최고의 약이다.”
춤추기는 폭넓은 활동을 제공한다. 신간 〈예술치유〉(ArtCure)는 춤과 예술을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로 바라보며, 단순히 경험적인 측면뿐 아니라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춤출 때, 뇌의 보상(reward) 신경 센터가 활성화되고, 행복감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 증가하며,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 이는 사람들이 걱정에서 벗어나거나 감정을 해소하고 표현하는 카타르시스적인 방법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춤은 운동의 이점도 많이 제공한다. 그리고 지역 사회 내 예술과 춤에 투자하는 것은 건강과 경제에 직접적인 이점을 가져다주는 투자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