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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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하우스 바젤 공동설립자 코린 에켄슈타인과 손인영 ⓒ손인영 |
팬데믹이 던진 질문, 그리고 탄츠하우스 바젤의 시작
손인영: 오랜만입니다. 2024년에 독일 탄츠 플렛폼과 스위스 댄스 데이스에서 뵙고 2년 만에 다시 만나네요. 처음 뵈었을 때만 해도 댄스하우스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 동안 탄츠하우스 바젤(Tanzhaus Basel)을 만들었다고요! 너무 놀랍네요. 어떻게 2년 만에 그런 성과를 내게 되었는지요. 한국은 30여년 댄스하우스를 만들려고 노력중인데 아직도 요원한 상태인데 말입니다. 댄스하우스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코린 에켄슈타인(탄츠하우스 바젤 공동설립자): 이 아이디어는 사실 팬데믹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팬데믹은 인류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지만 동시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문화란 무엇인가,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그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예술, 특히 젊은 관객을 위한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비엔나의 청소년 극장인 드슝겔 빈(Dschungel Wien: 오스트리아 빈의 복합문화공간인 콰르티어 미술관(Museums Quartier) 안에 위치한 어린이·청소년 대상 공연예술기관)의 예술감독으로 8년 동안 일하면서 예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특히 무용은 사회적으로 과소평가된 예술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용가들은 그 가치를 알고 있지만 일반 관객이나 사회는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용은 예술과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죠. 그것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이나 완성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경험에 관한 것입니다.
무용은 신체성과 몸의 표현을 통해 매우 폭넓은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도의 전문성만을 추구하는 공연보다는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자신과 연결된다고 느낄 수 있는 무용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가 제가 댄스하우스를 만들게 된 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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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하우스 바젤 전경 ⓒtanzhausbasel.ch/de/ |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공간을 꿈꾸다
인영: 빈에서 일을 했다는데 바젤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코린: 저는 원래 바젤 출신입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연극과 무용의 첫 경험도 모두 바젤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세상 밖으로 나가 여러 곳에서 경험을 쌓았고, 오랜 기간 비엔나에서 생활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한곳에 정착해야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후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영: 23년까지 빈에 있었는데, 그럼 이후에 갑자기 바젤로 돌아온 이유가 댄스하우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나요?
코린: 네 사실, 저와 오빠는 민간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스위스에서는 많은 문화 프로젝트가 정부나 시가 아니라 재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오빠와 저는 ‘댄스 하우스’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을 통해 지역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운영하던 민간 재단을 활용하기로 했었죠. 오빠는 개발과 순환경제 분야에 있기에 자금 조달과 개발을 맡아서 하기로 했고, 저는 문화 쪽을 담당하기로 했죠.
먼저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바젤시 전체를 샅샅이 뒤지다 한 곳을 찾게 되었죠. 그러다 지금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치커리(chicory), 즉 커피 대용 원료를 생산하던 공장이었습니다. 11개의 대형 사일로와 다양한 공간이 남아 있었고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바젤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가 만나는 지점이고 이 공간은 도시 경계에 위치한 산업 지역이었어요. 이 지역에는 저소득층과 이주민도 많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과 연결되는 것도 중요했어요. 춤은 음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예술과 연결될 수 있는 매우 개방적인 예술입니다. 이 공장의 구조를 최대한 살려 댄스하우스로 바꾸었기 때문에 공간 자체도 매우 독특합니다. 천장이 12m에 이르는 공간도 있고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장소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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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하우스 바젤 극장 내부 ⓒtanzhausbasel.ch/de/ |
완벽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
인영: 그럼 장소를 발견하고 그 다음엔 어떻게 했나요? 그 과정도 직접 했나요?
코린: 공장이 있는 이 장소를 부동산 회사(부동산 법인)를 통해 구입했어요. 이후에는 이 지역 전체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투자자와 협력 파트너들을 찾기 시작했죠. 저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개발 분야는 잘 모릅니다. 그 부분은 주로 오빠가 담당했어요. 지금은 축제, 대학, 기업 등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개발하는 팀도 있고, 오래된 건물을 재생하는 전문가들도 있어요. 이들은 춤 전문가가 아니라 재사용과 개발 분야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점차 발전시켜 나갔죠.
우리는 벽을 허물어 큰 스튜디오를 만들었지만 일부러 모든 것을 새것처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공장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스위스는 너무 정돈되고 깔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감정을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 자체가 살아 있는 경험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많은 제작비를 줄 수는 없지만 창작할 수 있는 공간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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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하우스 바젤의 내부 준비중인 공간 ⓒtanzhausbasel.ch/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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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하우스 바젤 교육실, 리허설 스튜디오 ⓒtanzhausbasel.ch/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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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츠하우스 바젤 사일로 오픈스페이스, 바 ⓒtanzhausbasel.ch/de/ |
인영: 댄스하우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영하려면 결국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코린: 네 맞습니다. 비용 마련을 위해 우리는 그 의미를 생각했어요. 이 공간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늘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그 중심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가 있어요. 문화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지속가능성, 그리고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순환경제 역시 중요한 요소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생산하고 소비합니다. 그래서 공간의 활용 방식과 운영 철학까지 모두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이라는 하나의 개념 아래 연결되어 있어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었죠. 완벽하게 갖춰진 뒤에 공개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우리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사람들은 매우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바뀌었나?", "새로운 공간이 생겼네" 하며 계속 찾아왔죠. 이러한 지속적인 변화 자체가 우리의 프로그램 철학이 되었습니다.
춤은 공동체를 위한 예술이다
코린: "우리는 현대무용만 하는 곳이다"라는 식의 틀을 우리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열린 포럼에 가까웠죠. 다양한 배경과 문화, 사회적 경험을 가진 예술가와 안무가들을 초대했죠. 저는 무용이 공동체와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자기들만의 작은 세계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용계가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내부의 울타리에 갇히는 경우가 많죠.
저는 오랫동안 어린이, 청소년, 젊은 성인들과 작업해 왔기 때문에 늘 밖으로 손을 뻗어야 했습니다. 무용가, 안무가, 창작자, 예술감독으로 살아온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들, 그리고 전문 무용수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한 커뮤니티 댄스 경험까지 모두 이 공간 안에서 연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인영: 왜 새로운 댄스하우스를 만들고자 했나요? 다른 도시에도 댄스하우스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바젤에 또 하나를 만들 필요성을 느낀 이유가 무엇인지,
코린: 처음에는 사람들도 다소 회의적이었어요. "왜 또 하나의 무용 공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제 대답은 언제나 같았죠. 우리는 결코 무용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무용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감정에 연결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무용은 단순한 기술이나 완성도를 넘어 인간적인 연결과 취약함, 그리고 공감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것이 바로 탄츠하우스 바젤의 비전이자 철학입니다.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왜 ‘탄츠하우스’인가
인영: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댄스하우스를 운영하려면 결국 자금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공간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댄스하우스라기보다 코린과 형제, 그리고 개발자들이 함께 만든 개인적인 프로젝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을 ‘탄츠하우스(Tanzhaus)’라고 지었나요? 일부 무용인들은 “그건 당신 개인의 극장이지 바젤 무용계 전체의 집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코린: 댄스 하우스를 설립한 건 저희 재단에서 했지만, 이 공간은 무용가들과 지역주민들이 같이 만들어가고 있어요. ‘탄츠하우스’를 문자 그대로 ‘춤의 집(House of Dance)’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이름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했어요.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시작은 제가 했습니다. 오랫동안 무용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저였어요. 하지만 운영 방식은 매우 개방적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고, 저는 제 역할을 단순한 예술감독이나 큐레이터라기보다 조율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취향의 무용만 소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용에 대한 수많은 관점과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이곳은 하나의 방향만을 제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시선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를 연결하는 예술 플랫폼
인영: 함께 의논하거나 협력하는 그룹이 있나요? 협회 같은 단체나 안무가 그룹과도 함께하고 있습니까?
코린: 물론입니다. 많은 무용가들과 함께 하고 있고 점차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하니까요. 바젤은 원래 시각예술과 음악이 매우 강한 도시입니다. 인구 규모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보유하고 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 안에서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몸’입니다. 살아 있는 신체, 움직이는 인간의 존재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관, 음악 아카데미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 역시 우리의 활동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열린 태도로 시작했기 때문인 듯요.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예술가와 기관들을 연결하고, 함께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예술이 단순한 문화 소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계보다 공동체를 선택하다
인영: 현재 얼마나 많은 안무가들이 이 공간과 관계를 맺고 있나요?
코린: 정확한 숫자를 말하기는 어려워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상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미 유명하거나 충분한 기회를 가진 사람들보다 아직 자신의 공간을 찾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이곳은 위계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저는 유명세보다 공동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무용계 내부의 공동체는 물론이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이주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서로 다른 문화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도 연결되고 싶습니다. 결국 춤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예술이기 때문이죠.
경쟁보다 공존의 생태계
인영: 바젤에는 다른 무용 공간들도 있지 않나요? 이미 공연을 올리는 극장들도 많을 텐데요.
코린: 물론 있습니다. 춤을 소개하고 공연하는 공간들은 이미 존재합니다.
인영: 유럽에는 탄츠하우스도 많이 있지 않나요.
코린: 네, 맞습니다. 프랑스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고 여러 사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경쟁 관계로 보지 않아요. 오히려 각 공간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간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요. 어떤 곳은 창작 중심이고, 어떤 곳은 공연 중심이며, 또 어떤 곳은 교육과 커뮤니티 활동에 집중할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탄츠하우스 바젤 역시 기존 공간들과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젤이라는 도시 안에서 춤이 차지하는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저는 도시 안에 춤을 위한 공간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곧 더 많은 사람들이 몸과 움직임, 그리고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관객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
인영: 프랑스와 비교하면 스위스의 무용 환경은 어떤가요?
코린: 저는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느끼는 차이는 있습니다. 프랑스에 가서 무용 공연을 보면 우선 관객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연령층이나 사회적 배경도 매우 다양해요.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죠. 반면 스위스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용이 사회 안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관객의 관점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우리는 누구를 위해 공연을 만드는 걸까요? 만약 이것이 사람들과 공유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끼리만 즐기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안무가나 무용수들과 이야기할 때도 늘 묻습니다. “사람들이 왜 당신의 작품을 보러 와야 하는가?” “당신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탄츠하우스 바젤에서는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매주 월요일 커뮤니티 댄스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참가자들의 연령은 20대부터 70대 중반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결국 제가 바라는 것은 무용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삶의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문화예술 재정 구조
인영: 그렇다면 페스티벌이나 프로젝트를 할 때 자금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코린: 기본적으로는 펀딩을 받아야 합니다. 스위스에는 수많은 민간 재단이 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보통 30개에서 50개 정도의 재단 리스트를 만들고, 각각의 재단 목적에 맞춰 지원서를 제출합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와 가장 다른 점일 수도 있어요.
인영: 대부분 민간재단인가요?
코린: 네. 물론 정부나 주정부, 시의 지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위스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문화, 사회, 기술 분야의 많은 프로젝트가 민간 재단의 지원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규모가 큰 문화재단들도 상당히 많고요.
인영: 한국은 보통 시나 도,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중심입니다.
코린: 스위스에서는 시나 정부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공공기금도 존재하지만 정부 역시 예술가들이 민간재단에도 동시에 지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이미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죠. 그래서 여러 재단과 기관으로부터 조금씩 자금을 모아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합니다.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죠. 하지만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기반도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왜 가능한가? 협력의 구조
인영: 그렇다면 탄츠하우스 바젤이 많은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코린: 우리의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이 종종 묻습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다 운영하는 거냐?” 하지만 사실 그것은 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협력의 문제이기도 하죠. 어떤 프로젝트는 공간 대관료를 받고, 어떤 프로젝트는 수익을 나누고, 어떤 경우에는 공동 제작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팀은 단순히 작업 공간만 필요로 하기도 하죠.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방식들을 유연하게 조합하고 있습니다.
탄츠하우스 바젤의 많은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기관과 예술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구조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트너들과 관계를 구축하고,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서로의 자원을 어떻게 연결하고 공유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진 안무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짧은 작품을 발표하거나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형식이죠. 때로는 두 개의 작품을 묶어 선보이는 더블빌(Double Bill) 형태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목적은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것이 아니예요. 관객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새로운 창작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요. 저는 새로운 예술가들이 관객을 만나고 자신의 언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영: 스위스에는 댄스하우스가 몇 곳 정도 있나요?
코린: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춤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다루는 극장들은 많지만, 실제로 ‘탄츠하우스(Tanzhaus)’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독일어권 스위스에서는 취리히의 탄츠하우스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상황이 다릅니다. 프랑스에는 국립안무센터(CCN, Centre Chorégraphique National)가 전국에 약 18~20개 정도 있습니다. 이 기관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의 지원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훌륭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에 안무 창작의 거점이 존재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탄츠하우스 바젤의 조직 구조
인영: 현재 바젤 탄츠하우스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코린: 저는 예술적 비전과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도의 CEO가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문화예술계 출신이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녀는 정치와 재정, 조직 운영을 잘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법학을 전공했고 자금 구조와 행정 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녀를 소개받아 함께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서로의 역할을 분명히 나누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젤은 비교적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완벽한 댄스하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영: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불과 2년 만에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코린: 사실 2024년 10월에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바닥부터 시작했죠. 솔직히 말하면 완벽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준비한 뒤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지난 30년 동안 무용가와 안무가, 예술감독으로 살아오며 수많은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예술가는 늘 예기치 못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모든 준비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영: 처음 이 공간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코린: 사실 처음 공간을 봤을 때는 실망했습니다. “여기서는 안 되겠는데.” 그것이 첫 반응이었죠. 제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댄스하우스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폭 15m, 깊이 12m 이상의 무대, 최소 250석 규모의 객석, 그리고 전형적인 블랙박스 극장 말입니다. 당시에는 그런 조건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댄스하우스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다시 던지기 시작하면서 공간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죠.
사실 변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제 사고방식이었죠. 그전까지는 부족한 것들만 보였다면, 그때부터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불가능해 보였던 장소가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죠. 현재 탄츠하우스 바젤에는 다양한 규모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약 130석 규모의 공연장과 스튜디오형 공연장 등 두 개의 공연장이 있으며, 약 150㎡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 두 곳과 60~70㎡ 규모의 소형 스튜디오 두 곳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무실, 바(Bar), 약 100㎡ 규모의 다목적 공간이 있으며, 레지던시 예술가들을 위한 숙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숙소는 맞은편 건물의 파트너 시설을 활용하고 있으며, 호텔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설을 만들 수 있는 넓은 대지가 있으니 조금씩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큰 댄스하우스를 꿈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추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그다음 공간을 추가하고, 또 그다음 단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저는 완벽함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렸을 때 비로소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협력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인영: 현재, 국제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나요? 예를 들어 바젤의 예술가와 프랑스의 예술가가 함께 작업한다든지, 해외 무용가가 레지던시를 통해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 말입니다.
코린: 네, 이미 그런 작업들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지난 30년 동안 활동하면서 쌓아온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베냉(Benin) 출신의 한 예술가가 바젤에 머물게 되면서 레지던시를 할 수 있는지 문의해 왔습니다. 결국 그녀는 30분 분량의 작품을 만들었고, 마침 또 다른 예술가 역시 30분짜리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두 작품을 묶어 더블빌(Double Bill) 공연을 만들었죠. 우리는 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며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어떤 예술가들은 이미 제작비를 확보하고 있지만 공연장이 필요했어요.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에서 온 한 팀은 우리가 진행한 오픈콜(Open Call)에 지원했습니다. 참가자들은 10분간 자신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피칭을 진행했고, 그 결과 이 팀은 레지던시 기회를 얻게 되었죠. 이후 별도의 지원금까지 확보하게 되었고, 작품은 탄츠하우스 바젤에서 초연한 뒤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이 생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협력이 시작되죠. 우리에게는 공간과 인프라, 스튜디오와 공연장이 있고, 예술가들에게는 아이디어와 창작 역량이 있죠. 어쩌면 이것은 제 안에 있는 예술가적 본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늘 어떻게 하면 서로의 자원을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왔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예술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자원을 연결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문화예술 예산이 계속 삭감되고 있습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의 자원을 모으고 윈-윈(win-win) 구조를 만들어야 하죠. 그 과정에서 국제 협력도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그리고 바젤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인영: 국경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리적인 의미만은 아니겠군요.
코린: 맞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두 나라의 경계 위에 있습니다. 바젤은 오랫동안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온 도시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국경을 넘나들며 협력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국제 협력은 특별한 프로젝트라기보다 일상적인 환경에 가깝습니다.
한국 안무가들이 유럽에 진출하기 어려운 이유
인영: 이건 다른 얘기 인데요. 한국에는 훌륭한 안무가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해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성장한 나라고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왜 세계화되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럴까요?
코린: 그 부분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려면 이런 행정적인 문제들이 항상 따라옵니다. 그래서 유럽에 진출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대만 출신 예술가들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암스테르담이나 유럽의 특정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체류하며 관계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국제교류는 거창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자원의 공유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영: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을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관객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탄츠하우스 바젤은 관객을 어떻게 개발했나요?
코린: 좋은 질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 거지?”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는데 어떤 곳일까?” 사람들은 그런 궁금증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바젤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한 번 찾아온 사람들이 다시 오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죠. “여기 오면 기분이 좋다.”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다.” “다른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경험한 것이죠.
물론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의 노력을 들여야 찾아올 수 있는 위치입니다. 도심에서 20분 정도 거리죠. 원래는 사람들이 자주 찾던 지역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죠. 제가 특히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가 많은 관객들도 많이 온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공사가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닙니다. 바닥도 완벽하지 않고 공간 곳곳에는 공사 흔적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과연 사람들이 올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찾아왔고, 직접 경험한 뒤 다시 찾아왔어요. 좋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환대(hospitality)’가 관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영: 입소문도 한몫했겠군요.
코린: 맞습니다. 결국 입소문(word of mouth)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영: 그렇다면 지금은 공연장이 항상 꽉 차나요?
코린: 항상 만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죠. 하지만 관객은 꾸준히 오고 있습니다. 어떤 공연은 매진되기도 하고, 어떤 공연은 그렇지 않지만 전반적으로는 좋은 관객 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도 이 공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인영: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코린: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상황에 만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관객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객석이 텅 빈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사실 저는 처음의 호기심이 사라지고 나면 관객도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사람들이 “한 번 가봤으니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관객들이 다시 찾아왔어요.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홍보도 해야 하고 새로운 협력도 만들어야 하며 계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입소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단순합니다. 관객 개발의 비결은 거대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호기심, 환대, 재방문, 그리고 입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프로그램 때문에 오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인영: 긴 시간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바젤에 가면 탄츠하우스에 방문하고 싶네요.
손인영
전 국립무용단, 현 NOW무용단 예술감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및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무용교육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동양철학 박사)를 졸업했다. 대표작품으로는 〈안팎〉 〈아바타처용〉 〈삼일밤삼일낮〉 등이 있다. 현재 해외 댄스플랫폼을 다니며 공연리뷰를 게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