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홍콩 현지취재_ 제1회 동아시아무용플랫폼 HOTPOT
두 번째 플랫폼은 내년 10월 서울에서 개최
김인아_<춤웹진> 기자
 한국, 중국, 일본이 공동주최하는 제1회 동아시아무용플랫폼 HOTPOT(핫팟, East Asia Dance Platform)이 11월 21-26일 홍콩 일대에서 개최되었다.
 각국의 무용교류에 중추적 역할을 맡아온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의 서울세계무용축제(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SIDance), 시티컨템포러리댄스컴퍼니(City Contemporary Dance Company, CCDC)의 홍콩 시티컨템포러리댄스페스티벌(City Contemporary Dance Festival, CCDF), 일본의 요코하마댄스컬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가 힘을 모은 아시아 3국의 무용교류 플랫폼으로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뎠다.
 핫팟은 2014년부터 지난 2년간 북유럽무용플랫폼 ICE HOT(아이스핫: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5개국으로 구성) 주요 관계자들과 한·중·일 관계자들이 모여 북유럽과 동아시아 간, 흥미롭고 안정적인 교류의 기회를 갖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서울, 중국의 베이징과 광동, 일본 요코하마, 핀란드 헬싱키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논의하는 한편 한국, 일본, 중국 각 공연 구성을 고려해 작품을 선정했다. 나아가 동아시아 3국간 교류를 넘어 북유럽권 무용네트워크인 아이스핫(ICE HOT)과의 협력을 발판으로 유럽-북미지역 전반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략적인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홍콩에서의 첫 번째 핫팟을 시작으로 제2회는 2018년 10월 서울에서 서울세계무용축제 기간에, 제3회는 2020년 2월 일본 요코하마댄스컬렉션 기간에 각각 개최될 예정이다. 

 


 홍콩 시티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CCDF) 기간에 동시 개최된 핫팟은 큰 주목을 받으며 막을 올렸다. 핫팟 프로그램에 한국 5개팀, 일본 3개팀, 중국 6개팀(상하이 1개팀, 주강삼각주 5개팀), 대만 4개팀 등 총 18개팀이 참여했고, CCDF의 공식초청프로그램 5편과 홍콩포커스 6편을 합해 자그마치 33편의 동아시아 무용작품이 6일간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처음 개최되는 핫팟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3국의 공연 관계자는 독일 탄츠메세, 프랑스 샤이오극장, 스페인 그렉축제 등 유럽을 중심으로 북미, 아시아 등 각지에서 찾아온 무용 프로그래머 및 극장 관계자 1백여 명이 홍콩에 모여 들었다. 이들은 핫팟과 CCDF의 프로그램을 구분 짓지 않고 열정적으로 관람하며 동아시아 무용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핫팟의 개최지 홍콩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Lai Tak-Wai의 〈So Low〉는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자아와 만나려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진중한 독무로 풀어내 관심을 받았다. 길다란 나무기둥을 이겨내는 인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가 하면 네 개의 판넬에 투사된 영상이미지와 실재 움직임을 마주하게 하는 등 인상적인 연출로 1시간을 밀도 높게 이어갔다.
 일본의 Kaori Seki가 보여준 〈WO CO〉은 특별한 테크닉 없이 자연스럽고 매우 느린 움직임을 1시간 내내 꾸준히 지속한다. 점차 조도를 높여가면서 제스쳐와 표현이 다양해지지만, 작품 전체에 스며들어있는 고요와 적막은 끈질기게 놓지 않고 전체 분위기에 무게를 실었다. 검은 모래바닥과 피부톤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대비, 자연 그대로의 원시성과 미니멀이 응집된 현대성을 교차시켜 묘한 울림을 갖게 했다. 

 


 25일 홍콩 아트센터와 리샤우키 창의성학교 극장에서 있었던 ‘핫팟: 코리아’ 프로그램에서는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선발한 리케이댄스(대표 이경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대표 김보람), 노네임 소수(대표 최영현), 아트프로젝트보라(대표 김보라),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대표 정철인) 등 5개 단체의 다양한 작품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노네임 소수의 최영현이 최신작 〈침묵(SILENTIUM)〉을 무대에 올렸다. 토르소(torso)를 비춘 조명의 점멸 아래 세부근육의 움직임이 낯설고도 흥미로운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극대화된 신체성, 그 너머의 증폭되는 감정마저 연결 짓는 인상적인 콘셉트를 보여주었다.
 리케이댄스의 이경은은 한국의 도깨비굿을 소재로 자신의 내면을 읽어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 〈마음도깨비〉로 카리스마 넘치는 30분의 독무를 선보였다. 그녀가 그녀의 안으로 서서히 침잠해 들어가는 몰입력, 움직임으로 발산되는 표현력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오랜 여운을 남겼다.
 남성 듀엣의 압도적인 에너지와 강도 높은 테크닉이 돋보이는 정철인의 〈비행〉은 한국 무용수들의 엄청난 연습량을 가늠하게 한다. 오랜 시간 맞춰 서로에게 익숙한 그들은 따로 또 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호흡, 다이내믹한 접촉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트프로젝트보라의 〈꼬리언어학〉은 동물들의 꼬리 언어와 제스처의 상징체계를 움직임의 모티브로 삼아 독창적인 움직임 어법을 선보였다. 두루마기와 비슷해 보이는 의상이 중의적인 오브제가 되어 움직임에 다양한 분위기를 배가시킬 뿐만 아니라 여성 안무가의 섬세한 감성, 여백이 돋보이는 무대구성 등이 객석에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는 대중에게 친숙한 10가지 음악에 스트릿댄스부터 현대무용에 이르는 다채로운 움직임을 녹여낸 콘서트 형식의 작품으로 국내에서 여러 차례 공연되며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핫팟의 객석에서도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았는데 매 장면마다 많은 관객들이 유쾌하게 웃고 즐기는 모습이 여섯 무용수들의 열정적인 무대 못지않은 큰 볼거리였다.




 한국팀 공연 이후 홍콩 공연예술아카데미(The Hong Kong Academy for Performing Arts) 1층 라운지에서 ‘한국 무용 프로모션 세션’이 열려 한국무용의 전반적인 소개와 국제 네트워킹을 위한 리셉션을 가졌다. 자리에 모인 각국의 델리게이터들은 ‘5개 단체 모두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는 프로그램 구성이 탁월했다’, ‘한국 현대무용은 춤과 안무 모두 놀라운 수준이다’, ‘이렇게 훌륭한 한국무용이 왜 아직 구미지역에 충분히 보여지지 못했나’,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싶다’는 등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몇몇 감독은 즉각적으로 초청 의사를 전했다. 헝가리 시겟 축제 총감독 요셉 카르도스는 최영현, 정철인, 김보람의 작품으로 한국 특집을 구성하겠다는 구체적 의사를 밝혔고, 이탈리아 오페라 데스타테 축제의 무용감독 로베르토 카자로토는 김보라와 김보람의 작품을 초청하겠다며 서울세계무용축제 측에 진행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영국 스코틀랜드의 국립무용센터 격인 댄스베이스의 예술감독 모라그 데예스는 내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에 정철인과 김보람을 초청, 한국의 밤 프로그램을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독일의 탄츠임아우구스트 페스티벌에서 김보람을, 베를린 파프릭 포츠담에서 김보라를 초청할 예정이다.
 아울러 프라하 무용 축제와 이탈리아 마르케 축제 감독들도 이미 프로그램이 셋업된 내년을 넘어 2019년 정철인의 작품을 초청하기로 했다. 인도 방갈로르 아따깔라리 댄스 비엔날레의 자야찬드란 팔라지 예술감독은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한국인 안무가 가운데 1명을 자신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추천, 파견을 요청했으며 다수의 다른 무용 프로그래머들도 가까운 장래에 한국작품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공연예술 분야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껏 컨템포러리 예술의 세계적 중심은 유럽이었다. 수많은 프로덕션 및 공연 단체가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국경을 초월한 협업 및 네트워크를 생성하고 발전시켜 왔으나 경제적, 재정적 위기를 맞아 유럽 각국의 지원이 약화되는 실정이다.
 반면 아시아의 경우는 다르다. 국내에서는 광주를 아시아 문화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 시키고자 아시아문화의전당이 건립되었고, 홍콩에서도 문화중심정책에 주력하여 세계 문화예술계의 중심 지형도를 새롭게 개편하고자 하는 포부를 보이고 있다.
 핫팟을 위해 홍콩에 모인 각국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주최측이 편성한 스케줄에 따라 2018년 개관예정인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를 돌아보았다. 문화복합단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홍콩 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의 결과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마찬가지로 홍콩시의 문화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은 이번 CCDF와 핫팟에 투입되어 약 34,000 홍콩달러, 한화로 약 4억 7천만원에 달하는 재정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막대한 지원 덕분에 주최측은 아시아 3국의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성했고, 행사 진행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웰컴·클로징 파티를 비롯해 각종 리셉션을 여러 차례 개최해 행사에 참석한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했고, 각종 편의를 돕기 위해 많은 인력을 배치했다. 특히 홍콩 공연장의 높은 대관료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를 위해 각기 다른 규모의 4개 극장을 매일같이 열어 두었는데, 여러 공연장에서의 관람은 처음 방문한 델리게이터들에게도 홍콩의 공연예술을 가까이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홍콩시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지원은 제2회 핫팟을 주최하게 될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동아시아 3개국의 공동협력 모델은 이미 오래전부터 빈번하게 있어왔지만 최근 몇 년간 공통적으로 주로 유럽 무용계와의 교류에 주력, 아시아 간 교류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본의 경우 최근 몇몇의 예술가들이 단발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 외에 한국과의 접촉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찾기 어렵고, 그 사이 중국 현대무용과 한 동안 주춤했던 홍콩 무용계는 폭넓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태동한 핫팟은 한·중·일 무용가들이 서로 알고 교류하며 이들 사이의 합작과 협력을 증대하는 발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무용을 비롯한 공연예술 플랫폼이 각각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통합해 보다 진화된 국제적 무용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것은 세계 무용계로부터 아시아 무용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3개국 각각 서울세계무용축제와 후즈넥스트 프로그램, 광동댄스페스티벌과 DanceX 플랫폼 그리고 요코하마댄스컬렉션 등의 운영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이들이 공동협력한 핫팟과 향후 방향성에 대한 세계 무용계의 기대치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3국 공동주최측은 핫팟 개최에 대한 소감과 향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제1회 핫팟을 프로그래밍한 홍콩 시티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의 카렌 정(Karen CHEUNG) 프로그램 디렉터는 “동아시아 무용인들, 국제적인 큐레이터, 프로그래머와 함께 처음 열리는 핫팟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이 행사는 동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조명, 다양한 안무 작업을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앞으로 아시아 간 교류와 협력, 무용인들의 세계진출을 촉진하는 데 더욱 힘을 쏟고 싶다. 우리는 방금 첫 단계를 밟았다. 2018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열리는 다음번 핫팟을 위해 공동주최 파트너들과 다시 만나 충실히 준비할 것이다. 덧붙여 우리에게 멋진 공연을 선사해준 한국의 무용가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그들이 이번 축제를 즐겼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한국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차기 핫팟 개최지인 한국의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은 “홍콩에서 이번 행사를 성대하게 진행했다. 2회 개최국으로서 우리도 행사로서의 외형과 내실이 잘 갖춰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첫 번째 동아시아무용플랫폼으로서 한·중·일 3개국의 작품에 한정했는데 장기적으로는 범아시아플랫폼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사 기간 중에 아시아권의 참여 요청이 들어왔고 개인적으로도 확대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공동주최 파트너의 동의를 얻어야한다는 전제 하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4-5편 정도를 더 초청하고 싶다. 또 이번 델리게이트는 무용 네트워킹이 활발한 유럽권의 인사가 대부분이었는데 내년 행사에서는 중남미와 북미(캐나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지역의 게스트도 반드시 초대하려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노 신지(Ono Shinji) 요코하마댄스컬렉션 예술감독은 “처음 개최된 핫팟에서 참여 작품이 흥미롭다는 등의 예술적 평가를 넘어 아시아의 여러 단체들, 다양한 작품 경향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2월에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서 1주일 동안 30개 이상의 단체가 국제적인 델리게이터 앞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미의식이나 문화배경, 관점의 차이 등이 나타날 것이다. 동아시아 컨템포러리 댄스의 각기 다른 창작 시선에 기대를 갖고 보러와 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주최측의 초청으로 핫팟에 참가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장광열 대표는 “그동안 꾸준히 축적된 한국 홍콩 일본 무용관계자들의 춤 국제 네트워킹이 성공적인 행사 개최로 이어진 원동력이다”라며 “동아시아댄스플랫폼의 출범은 아시아의 무용이 이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본격적으로 진군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비록 3개국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지만, 향후 아시아 전역의 춤들이 국제 춤 시장에서 비중있게 교류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년 서울에서의 두 번째 행사에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과 범 무용계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7. 12.
사진제공_춤웹진, 홍콩시티컨템포러리댄스페스티벌(CCDF)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