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공식 초청 무용프로그램으로 스페인-이스라엘 갈반(Israel Galvan), 뉴질랜드-레미 포니파지오(Lemi Ponifasio), 이탈리아- 암브라 세나토(Ambra Senatore), 그리스-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Dimitris Papaioannou) 등 국제적인 안무가들이 소개됐다.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신작 〈위대한 조련사(The Great Tamer)〉였다.
몇 년 전 파리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에서 그의 작품 〈Still Life〉를 본 적이 있다. 이 안무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갔다가, 작품 하나에 완전히 매료됐었다. 그 뒤로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Still Life〉 관람 후 운 좋게도 안무가와 그의 무용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통 세련된 옷차림으로 리셉션에 나타나는 다른 무용수들과 달리, 디미트리스의 무용수들은 회색빛이 감도는 검소한 옷차림에 수수한 인상이었다.
무용을 전공했는지 어떤 트레이닝을 하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봉쥬(Bonjjour)” 하며 말을 걸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눈 2-3명의 무용수들은 모두 무용 전공이 아니라고 했다. 트레이닝으로는 요가를 했다며, 덧붙여 안무가에 대해 얘기했다. “저쪽에 있는 저 사람 보이죠? 저 사람이 안무가인데, 저 사람은 그림 공부 했어요.” 사람들은 내게 디미트리스가 예술감독을 맡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 영상을 꼭 봐야한다고 추천했다. 집에 돌아와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은 물론, 그의 옛날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그가 오랫동안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품의 출발은 그리스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됐다. 그리스의 한 젊은 청년이 페이스북을 통해 메시지로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누군가 이 청년의 뒤를 쫓아오자, 청년은 공포에 휩싸인 채 달리다 넘어지고는 결국 죽음에까지 이른다. 이 청년은 발견 당시, 흙더미 속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극장을 들어서면 이미 디미트리스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공연 시작 전부터 경사진 무대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바닥은 짙은 회색의 나무 판넬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져 있다. 이 작품은 이 나무 판넬 조각들 안에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무용수가 옷을 벗고, 신발을 벗는다. 나체의 몸으로 누워있는 무용수 몸 위로 새하얀 천이 덮힌다. 사람이 죽었을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 천이 바람에 날려 다시 몸이 드러날 때는 새 생명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이 작품은 땅속으로부터 사람을 구하고 다시 땅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의 연속이다. 우주인이 땅 속 깊은 곳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인간이 지구본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바둥바둥 댄다. 위태롭게 매달려 있거나,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땅속으로 몸을 피한다.
또는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쫓겨 벼랑 끝에 몰려 추락한다. 곧 이 남자는 온몸에 깁스를 하고 나타난다. 이때 누군가가 그의 몸에 붙은 깁스 조각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떼어준다. 그리고는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용수들은 여러 차례 나체의 모습을 하고 나온다. 그리스 조각상을 보듯 아름답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춤이라고 생각할만한 춤은 몇 번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잠깐 나오는 춤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아비뇽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 디미트리스는 자신의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제 작업은 이미지로부터 출발합니다. 항상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기록합니다. 일종의 비쥬얼 맵(visual map), 스토리보드를 그립니다. 이야기나 드라마트루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주로 느낌이 끌리는 대로 갑니다. 예산에 맞춰 몇 명의 무용수와 작업할지를 결정하고,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들을 선택합니다. 무용수들이 가진 개성과 색깔에 맞춰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들을 무대 위에 채워나갑니다.”
디미트리스의 작품은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팔 다리가 기묘하게 얽히거나, 상상으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미지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웃기려고 했는지 안무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가끔 객석 이곳저곳에서 어이없어 빵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한번 보여준 이미지들은 형태 또는 속도 변화를 주면서 여러 번 반복되는데, 이 이미지들은 공연 후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된다. 눈을 감고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플 만큼 그의 작품은 너무 아름답다.
마임축제 미모스에서 만난 조셉 나주의 〈펜줌(Penzum)〉
미모스(Mimos) 축제는 영국의 런던 마임 페스티벌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대표적 마임 축제다. 올해로 35회를 맞은 미모스는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6일간(월-토) 열린다.
마임 전문 축제라 하지만 그곳에 가면무용, 신체극, 클라운, 서커스, 인형극 등 다양한 공연이 극장을 비롯해 거리, 광장, 정원 그리고 성당 근처 곳곳에서 펼쳐진다. 공연 프로그램은 극장 측의 공식 초청을 받는 미모스 인(MIMOS IN)과 예술가가 직접 지원서를 제출하고 선정되는 미모스 오프(MIMOS OFF)로 나뉜다.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아침 11시 오디세(ODYSSÉE) 극장 마당에서는 컨퍼런스가 진행된다. 그날 보게 될 작품의 안무가를 초대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전날 있었던 공연에 대해 출연자와 관객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미모스 축제가 열리는 지역 페리그(Périgueux)는 프랑스 전통음식 푸아그라(Foie gras), 송로버섯 등 특산물로 유명한 것 외에는 관광으로 찾을 만큼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미모스 축제를 보기위해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은 매년 늘고 있다. 축제가 시작될 즈음이면 레스토랑들은 물론 동네 주민들 모두 축제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작은 도시 하나가 축제를 통해 매년 여름마다 활기를 띄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축제의 매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큰 키에 작은 얼굴, 검은 정장 차림에 유난히도 넓은 어깨 그리고 한 손에 쥔 담배꽁초. 죠셉 나쥬(Josef Nadj)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는 무용가 외에도 비주얼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재능 많은 예술가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헝가리에서 마친 그는 1980년 마르셀 마르소(Marcel Marceau)에게 마임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건너간다. 그 후 현대무용을 접하기 시작했고, 1995년, 프랑스 도시 오를레앙(Orléans)에서 죠셉 나쥬를 위한 국립안무센터를 설립했다. 그는 1995년부터 2016년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을 오를레앙 국립안무센터에서 상임 안무가로 보냈다.
올해 초 안무센터를 나온 죠셉은 자신의 단체 ‘아틀리에3+1’을 만들면서, 프리랜서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이번 미모스에서 발표한 작품 〈펜줌(Penzum)〉은 그가 ‘아틀리에 3+1’이라는 단체로 발표하는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은 헝가리에서 초연을 올렸고, 프랑스에서는 미모스 축제가 초연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 중 한명이라, 무대에 서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설레고 좋았다.
〈펜줌〉은 죠셉 나쥬와 음악가 죠엘 레앙드르(Joëlle Léandre)와의 공동작업이다. 음악가 죠엘은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마틸드 모니에 등과 함께 작업한 명성 높은 음악가다. 작품 펜줌은 헝가리 시인 죠세프 아틸라(Jozsef Attila_1905-1937)에게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무대 가운데 하얀 종이 벽이 세워져있다. 종이 벽 앞으로 부챗살을 손에 쥔 팔이 보인다. 손목을 좌우로 흔들자 부챗살이 하얀 벽과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한편, 무대 왼쪽에서는 가면 쓴 사람이 나와 검은 테이블 위에 구슬들을 놓고 손으로 굴리고, 콘트라베이스 활로 소리를 만들어 낸다. 벽 뒤에서 한참 동안이나 부챗살 부딪히는 소리를 내던 팔이 모습을 드러낸다. 죠셉 나쥬다. 검은 긴 드레스에 아프리칸 마스크를 쓰고 괴상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죠셉은 긴 활을 꺼내 들고는 머리 위로 올려 들고,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그 활 끝에 달린 검은색 크레용으로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비, 곤충, 나무 등의 이미지들이다. 그림을 그리다 춤을 추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반복된다. 그는 뒷모습을 보인채 등을 움직이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고, 팔 관절을 꺾는 움직임들을 자주 사용했다. 주로 양복을 입고, 팔다리를 시원시원하게 움직이던 이전의 죠셉의 움직임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크레용을 내려놓고 손을 펼치자 그의 손이 검다. 뮤지션은 노래를 부르고, 죠셉은 검은 손을 활짝 펼쳐 보이며 춤을 춘다. 그리고 바닥에 주먹을 쥐고 엎드린 채 기어 다니면서 헝가리어로 말을 한다. 신경질적이고 화가 난 말투와 모습이다.
벽 뒤로 사라진 그는 사슴뿔 가면을 쓰고 벽 위로 나타난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사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 옆 연주자는 콘트라베이스 즉흥 연주와 노래 등 추상적인 소리들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 벽 위에서 내려온 죠셉이 연주자를 바라보다 조용히 연주자의 팔 위에 손을 얹는다. 연주가 멎고, 조명이 꺼진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 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 “사이”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 또는 주문을 외치는 듯 하더니 사슴 머리를 하고는 평온한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토록 원하던 이상 세계에 도달한 듯한 기묘한 느낌이다.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와 죠셉 나쥬, 나는 이 두 안무가에게서 닮은 무엇을 느낀다. 그 무엇이란, 무용과 비주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들의 작업방식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두 안무가의 신작을 볼 수 있어 행복한 여름이었다. 지금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디미트리스와 20년 몸담고 있던 안무센터를 나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죠셉 나쥬. 팬심의 마음으로 이 두 안무가의 행보에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과 <몸>지를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