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멕시코 현지취재_ KAMS 한국 - 멕시코 커넥션
공연과 클래스, 리서치 그리고 인적 교류
정다슬_ 안무가. <춤웹진> 유럽 통신원
호수 위의 도시 메히코 데 헤페(현지인들이 멕시코시티를 부르는 말), 잔뜩 긴장한 채 도착한 일주일 전의 멕시코시티는 꽤나 서늘하고 낯설었지만 어느새 도시의 날씨는 후끈해졌고 울퉁불퉁한 거리의 바닥도 익숙해져 이내 나는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거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예술경영지원센터와 멕시코의 국립예술원(NBA)이 공동주관하여 진행된 ‘2017 KAMS 한국-멕시코 커넥션‘ 사업에는 나를 포함 이준욱, 장혜진, 정지혜, 조재혁까지 모두 5명의 예술가가 선발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커넥션 사업은 공연 예술 전문가들의 리서치와 사후 프로젝트 개발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0년부터 다양한 국가와 커넥션을 마련하여 진행되어오고 있다. 올해는 각 주제별로 월드뮤직 부문에는 캐나다 커넥션, 아동극에는 노르딕 커넥션 그리고 무용부문으로 멕시코 커넥션 사업이 진행되었다.
한국의 예술경영지원센터와 멕시코의 국립예술원(NBA)이 공동주관하여 진행된 ‘2017 KAMS 한국-멕시코 커넥션‘ 사업에는 나를 포함 이준욱, 장혜진, 정지혜, 조재혁까지 모두 5명의 예술가가 선발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커넥션 사업은 공연 예술 전문가들의 리서치와 사후 프로젝트 개발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0년부터 다양한 국가와 커넥션을 마련하여 진행되어오고 있다. 올해는 각 주제별로 월드뮤직 부문에는 캐나다 커넥션, 아동극에는 노르딕 커넥션 그리고 무용부문으로 멕시코 커넥션 사업이 진행되었다.
멕시코 현대무용 페스티벌 END
그 중 멕시코 커넥션 사업의 공식 일정은 7월 9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되는 멕시코 내 최대 규모의 현대무용 페스티벌인 Encountero Nacional De Danza 2017(이하 END)의 참가와 멕시코 국립현대무용단 격인 Ceprodac(Centro De Producción De Danza Contemporánea) 과의 교류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대무용 페스티벌 END의 프로그램은 크게 공연과 아카데믹 액티비티,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로 CCB라는 대규모 공연장 및 컨퍼런스 룸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졌고, 그 외 멕시코시티 시내의 여러 공연장에서 산발적으로 공연이 열렸다. 매일 오전에 시작되는 아카데믹 프로그램에서는 발레, 현대무용, 멕시칸부토, 재즈 등을 포함한 워크샵 프로그램들과 다양한 강연과 프레젠테이션, 인터뷰, 댄스필름 전시 등을 볼 수 있었고, 저녁에는 각 국가에서 모인 프로그래머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이루어졌다.
멕시코로 떠나기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현지 코디네이터는 END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END의 프로그램 자체가 알차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도시나 외부 프로그램은 방문하기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END는 멕시코 전역에서 온 무용 관계자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로, 40여개의 멕시코 내 페스티벌 중 가장 큰 규모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수의 국제 프로그래머들의 참가에도 불구, 대부분의 컨퍼런스와 강연이 별도의 통역 없이 스페인어로만 진행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사실 관중(Spectator)으로서 바라보아야 했던 페스티벌에서 프로그램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멕시코로 떠나기 전 미리 약속을 잡아두었던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멕시코 아티스트의 추천을 받아 Jaciel Nari, Sahnti Vera, Stephani 등 몇몇 안무가와 미리 약속을 잡아두었었는데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멕시코의 무용 시장이 우리에게 익숙한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uatro pro Cuatro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는 다이렉터 Shanti Vera의 이야기는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Cuatro pro Cuatro는 젊은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단체로 베이스가 멕시코의 여러 도시에 위치하고 있고, 각 예술가들의 베이스 역시 각기 다른 나라와 도시에 있다. 그렇다고 모든 도시들에 Cuatro pro Cuatro 스튜디오나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살고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각자 활동을 하다가 Cuatro pro Cuatro의 일정이 있을 때 그 장소로 멤버들이 모이는 콜렉티브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각 멤버들이 활동하는 나라와 도시로도 모이기도 한다니 말 그대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듯 보여 놀랍기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Cuatro pro Cuatro가 목표하는 바가 안무부터 드라마트루기, 스피치, 철학, 실험, 건축, 컬러, 사운드, 사진까지 몸과 관련된 창의적 활동이 생산되는 모든 분야들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지리적으로 이미 많은 도시들을 흡수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그 목표에 근접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END에는 매일같이 공연들이 넘쳐났다. 도시의 골목 속에 숨겨진 창문조차 없는 무용단 연습실의 쇼케이스부터 대형극장의 갈라공연, 공연자가 손에 닿을 것만 같은 소극장의 실험적 공연까지.
멕시코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테크니컬하고 피지컬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개의 안무들이 에너지를 200%로 뿜어내는 격정적인 움직임과 장면을 중심으로 아크로바틱한 동작 위주로 구성되는 등 특히 시각적인 요소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얼굴이나 제스처의 표현 방식도 극도로 과장된 표현법을 주로 사용하고, 많은 작품들이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내러티브를 담고 있어서인지 작품의 내용이 빠르고 쉽게 이해되는 편이었다.
반면에 단순명료한 내러티브는 작가의 진지한 고찰과 깊이가 결여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A에서 시작해서 B로 종결되는 이야기는 실험적인 시도 없이 단순히 사건이나 행위를 일차원적으로 모방하고 표현하는 데에 그쳐버린 듯했고- 예를 들어 새(鳥) 역할의 무용수가 부리로 남자를 쪼아 죽이면 조명이 빨간색으로 변화한다거나, 멕시코의 극심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성범죄를 성행위 장면으로 묘사하는 등- 주제 역시 심도 있는 문제의식을 반영하지 않은 듯 단순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멕시코 국립 무용단 Ceprodac
한편 한국 참가자들의 또 다른 주요 일과는 멕시코시티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현대무용단 Ceprodac과의 교류였다. 나를 포함한 총 5명의 한국 참가자들은 매일 오전 10시 무용단에서 번갈아가며 클래스를 열게 되었는데, 나와 이준욱은 공간과 에너지의 조율을 활용한 즉흥수업, 장혜진은 생역학 이론을 베이스로 ‘건막을 통한 관성(Inertia)’을 이용한 움직임 수업, 한국무용을 전공한 정지혜와 조재혁은 동래학춤 레퍼토리 수업을 각각 진행했다.
Ceprodac의 무용수들은 평소 발레클라스로 워밍업을 할 만큼, 레퍼토리 역시 발레를 베이스로 한 네오클래식이나 모던댄스 테크닉을 기반으로 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무용수들은 탄탄한 몸과 테크닉을 자랑했고 함께 진행한 워크샵에서 빠른 흡수력을 보여주었다.
나는 에너지의 분배와 조율, 활용에 중점을 둔 즉흥 워크샵을 진행하였다. 워크샵 전 관람한 공연들에서 관찰한 것이 대부분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에너지를 확장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 효율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에너지 사용이 배제되어있다는 측면을 발견한 탓에서였다. 때문에 몸이 지닌 에너지의 흐름, 그것의 확장과 축소, 완급의 조절을 인지한 후, 움직임에 대입시키는 연습을 하였다. 동시에 에너지의 세기에 따른 움직임의 가능성과 변화, 작용에 대해 관찰해보는 즉흥 수업을 진행하였다.
마지막 날 이루어진 동래학춤 워크샵은 현지 무용수들에게 가장 새로웠던 수업이 아닐까 싶다. 학의 맑음과 고고함, 커다란 갓과 휘날리는 도포자락의 움직임을 언어로 전달하는 데에서부터 문화의 차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학이 지닌 우아함과 의상이 지닌 특이성이 움직임에 그대로 적용된 춤인 만큼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그저 움직임을 모방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 터라, 동래학춤의 배경을 소개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굴신이나 호흡, 정중동 같은 개념들 역시 설명하기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학춤이란 결국 새의 춤이었다. 그만큼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내재되어 있었고 즉흥을 하는 4장단 동안 멕시코의 무용수들은 어느새 하얗고 우아한 학의 걸음걸이와 자세를 표현하며 우리와 함께 교감하고 있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역할
한국-멕시코 커넥션 기간 동안에는 멕시코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한국 참가자들 사이에도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담론이 오고갔다. 그 중 가장 열기를 띄었던 주제는 우리가 참가하고 있는 커넥션 사업의 포맷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Positioning)할 것인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였다. 이제와 돌아보면,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이런 물음을 떠올리고 답하려고 했던 것은 아마도 우리가 놓인 위치와 역할의 흐릿함과 더불어 예술가가 가진 순수한 욕심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멕시코의 END 페스티벌에서 한국 참가자들은 아티스트가 아닌 관중(Spectator)으로 남겨져있었다. 관중(Spectator)으로서 참가 중이라면 분명 관찰하고 리서치를 할 명확한 부분들이 필요했으나, 첫째로 END는 국내 페스티벌로 모든 것이 스페인어로 진행되고 있어 한계점이 분명했고, 둘째로는 공연에서 제시되는 담론과 기법, 실연 등이 크게 진보되지 않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더불어 이러한 페스티벌의 포맷에서 참가하는 예술가가 지향하는 바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첫째일 것이다. 아티스트로서의 명확한 정체성을 소개하는 것이 향후 프로젝트를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커넥션 사업의 목표가 향후 프로젝트의 기회를 탐색하는 데에 있는 만큼 기획자나 홍보담당 등이 동행하거나, 적어도 아티스트가 직접 비지니스 활동을 할 수 있는 공식적 자리가 마련되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은 향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커넥션 사업에서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커넥션 사업 대상 국가와 이벤트의 정확하고 심도 깊은 성향 파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한국인 기획자 혹은 아티스트가 커넥션 사업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 된다면 예술경영센터에서도 더 좋은 커넥션 사업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호수 위의 도시, 메히코 데 헤페
개인적으로는 페스티벌 END와 Ceprodac 과의 교류 못지않게 흥미로웠던 것이 공연장과 연습실 밖에서 이루어진 멕시코의 ‘문화리서치’였다. 멕시코에는 사실인지 신화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주한 ‘신들의 자리’라는 이름의 테오티우아칸에는 오랜 옛날 번성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고대 문명의 유산인 피라미드들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신에게 제물로 바쳐질 인간이 걸어가는 의례가 행해졌던 ‘죽은 자의 길’이 뚫려 있다. 인구만 20만 명에 달했다는 고대 도시의 그야말로 신기루 같은 흔적이다. 그 도시가 붕괴된 이후 사람들은 나무와 갈대, 흙으로 호수를 메우고 땅을 넓혀 2,240m의 고원을 만들었고 그 위에 세워진 것이 지금의 멕시코시티이다. 지반이 약해 오래된 건축물들은 지금도 기울어지고 있다는데 이방인인 나에게는 그 사실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한 눈에 보아도 기울어진 과달루페 성당에는 갈색 피부를 가진 성모마리아의 성소가 있다. 중남미의 원주민인 인디오와 스페인계, 백인의 혼혈 인종인 메스티조가 멕시코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그 메스티조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리아라니. 그 외에도 울메카, 툴테가, 마야와 아스텍으로 이어진 복합적인 문명과 가톨릭, 기독교, 토착신앙이 뒤섞인 종교까지. 혼합되지 않은 것이 없는 멕시코는 어느 나라와 도시보다도 다채로운 문화를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어느 날 공연장을 나왔을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줬다. “멕시코시티는 다섯 개의 호수를 메워 하나가 된 도시야. 그래서 여름만 되면 호수의 물이 자꾸 우리에게 돌아오는 거야. 지금처럼.” 과학적 사실이 뒷받침되는 이야기인지, 신화적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의 말은 멕시코를 표현하기 딱 걸맞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여 하나가 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흐려지지 않은, 보존과 순회, 혼재를 일삼는 특별하고 특정한 공간. 내심 나도 매년 돌아오는 호수의 물처럼 다시 한 번 그 곳으로 돌아가길 바래본다.
2017.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