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아시아 여러 나라의 춤 국제교류는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본격화 되더니 이즈음 들어서는 그 전략이 보다 더 적극적이고 다양화 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하는 광동국제댄스페스티벌 중 〈댄스 X〉가 플랫폼 성격을 띠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타이완에서도 새로 댄스플랫폼을 개최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후쿠오카프린지댄스페스티벌이 플랫폼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댄스플랫폼이(SDP)이 4년 동안 개최되었었고, SIDance의 〈후즈 넥스트〉와 경연 형태로 치러지고 있는 서울안무가페스티벌, SPAF의 서울댄스콜렉션, 서울아트마켓의 댄스 쇼케이스 프로그램 등이 안무가들의 국내외 유통을 위한 플랫폼 성격을 갖고 있다.
홍콩에서도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플랫폼이란 이름을 내건 행사가 있다. 홍콩댄스컴퍼니가 주최하는 ‘8/F 플랫폼’이 그것이다. 홍콩댄스컴퍼니의 연습실과 플랫폼이 열리는 전용극장이 건물의 8층에 위치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사의 명칭도 그렇게 정해졌다. 2016 8/F 플랫폼은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홍콩의 컨템포러리 댄스 8개 작품이 2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평자가 본 두 번째 카테고리는 12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 동안에 걸쳐 모두 4차례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초청된 안무가들과 무용가 그리고 기획자들이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과 워크숍 등이 병행되었다. 이 보다 일주일 전에 열린 카테고리 1 역시 같은 내용의 행사들로 짜여졌다.
코디네이터를 맡은 Yang Yuntao(홍콩무용단 예술감독)과 자문을 맡은 안무가 다니엘 영, 옹 양록이 선정한 공연들은 네 개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색채를 갖고 있는 데다 홍콩과 일본 댄서들의 협업 공연, 중국의 경우 평소 함께 작업을 하지 않았던 안무가와 댄서들의 작품을 공연하도록 하는 등 제작 배경이 서로 다른 작품들을 골고루 포함시키고 있어 더욱 흥미를 배가시켰다.
중국과 홍콩에서 공부한 Yuan Shenglun이 안무를, 북경과 상하이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댄서 Xie Xin과 Sun Gongwei가 출연한 〈Focus on 0〉은 두 명 댄서의 유연한 움직임과 손에 거머쥔 작은 플래시 불빛, 그리고 두 무용수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조화와 부조화가 볼만했다. 고정된 조명기기에 의한 빛의 변화가 아니라 무용수들의 동선에 따라 시시각각 조도와 각도가 변화하는 빛은 댄서들의 몸과 특별한 미감으로 조우했다.
일본의 부토 댄서 Yuri Nagaoka의 춤은 부토 특유의 절제된, 뒤틀리고 깡마른 독자적인 신체관을 부토에 반영하려 했으나 그 파장은 미미했다. 부토는 일본의 현대춤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는 평가되지만 초기의 가치가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부토의 그 정신성과 춤의 독자적인 형식을 정통적으로 잇는 무용가들의 작업을 오늘날 온전히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Yuri Nagaoka의 이날 공연은 서구의 컨템포러리댄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움직임 패턴을 쫓아가고 있었고 그 정신성 또한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오늘날 일본의 부토 댄서들은 ‘부토는 일어서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시체’라는 부토의 창시자 히지카타 타츠미의 말처럼 “뒤틀리고 오그라들고 깡마르고 약하고 병들고 늙은, 그러므로 아름답기는커녕 건강해보이지도 않는 몸을 표명한다”는 지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말에 함축된 부토의 특질들을 오롯이 부활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부토가 변화하는 컨템포러리댄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일본의 Namstrops와 홍콩의 Unlock Dancing Plaza의 협업 작품인 〈A Short, Thick Rainbow〉는 코믹적인 소재와 움직임의 매칭이 기발했다. Namstrops의 3명 댄서들과 미야지키대학의 Rumiko Takahashi가 안무를 맡은 이 작품은 5명의 댄서들의 아크로바틱한 역동적인 움직임과 표정연기, 옆으로 누운 사람의 형체를 무대 전면의 천장에 매달고 깜빡거리는 눈동자 하나를 작은 모니터로 투사시킨 오브제가 만들어내는 비주얼이 시종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평소 스포츠와 움직임의 매칭을 통한 컨템포러리댄스를 주로 보여주던 Namstrops의 작품 스타일이 홍콩 댄서들을 만나면서 변화를 보인 점, 곧 운동종목에서 보이던 움직임 패턴을 재구성하는 것에 편중되었던 아쉬움에서 벗어난 점은 이 단체의 또 다른 소득으로 보였다.
한국 마홀라(Maholra) 컴퍼니의 〈子〉는 안무자 김재승의 솔로춤이 황민황의 장구와 소리, 송휘경의 대금 라이브 연주와 만나면서 소극장 공간에서 더욱 상승효과를 발했다. ‘한량무’의 춤사위와 소품인 부채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움직임 변주는 한국의 민속춤을 독창적인 요소로 접목, 컨템포러리댄스로서의 경쟁력으로 치환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번 공연은 앞서 지적한대로 개개 작품이 갖는 차별성이 관람의 재미를 더해주었기 때문인지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제작방식에서 다른 유형의 작품을 플랫폼 출품작으로 선별한 것은 기획자에게는 흥미로운 시도로 비쳐졌다.
부대행사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서 각 작품의 안무가들은 자신들의 작업과정을 보다 상세히 소개했다. 다만, 참가했던 홍콩 중국 일본 한국의 컨템포러리댄스 작업환경과 제작된 작품의 유통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의견들이 활발하게 개진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나는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의 안무가 린 화이민이 한영숙의 ‘승무‘를 보고 장삼의 뿌림 사위를 자신의 컨템포러리댄스 작품에 접목한 예, 김재승이 〈子〉에서 ’한량무‘의 춤사위와 부채를 움직임과 매칭한 예를 들면서 춤 상품으로서 컨템포러리댄스가 가져야 할 독창성과 보편성 등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전통을 토대로 한 현대적인 작업은 아시아 안무가들에게 있어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으며 움직임 외에 음악적인 면에서의 매칭 작업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50석 정도 되는 소극장을 전용연습실과 전문공연장으로 사용하는 홍콩무용단의 운영체제를 지켜보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활용해 창작과 유통 그리고 춤 대중화를 함께 실현시켜 가고 있는 홍콩 정부의 춤 진흥 정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8/F Platform 현장 참관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유용한 행사를 통해 유통뿐 아니라 자국의 춤 경쟁력을 차근차근 확보해 나가는 홍콩 춤계의 또 다른 면모를 파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한 이 플렛폼이 홍콩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춤의 강국을 두루 포함시키고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이즈음 홍콩은 자국의 젊은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국가 간 협업작업과 작은 규모의 국제교류 사업을 적극 추진하면서 극장 공간이 갖고 있는 인프라를 활용한 차별화 된 춤 프로그래밍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시도는 덩치는 크지만 유사한 성격의 국제 페스티벌을 중복해 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춤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